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89화 (8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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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수사는 22세

“알겠느냐. 나와 함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지금도 살아있다. 물론 조선에 말이다.”

포로들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자 사화동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긴시요라와 무사들이 남만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려고 한 내 처자식들 그리고 2달 전에 나와 함께 조선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처자식들을 왜 조선군이 조선으로 데려가는지. 알고 있느냐? 조선군은 처음부터 그 사람들을 조선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지금 돌산도에서 밭을 일구고 소금을 만들고 있는 장정들이 처자식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려고 말이다.”

사화동의 말에 사쿠라타니 로쿠카즈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포로들이 처자식들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주려고 조선군이 이곳 까지 쳐들어왔다는 말이시오.”

“물론 이곳에 있는 조선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온 것이지만. 장군님은 처음부터 내 처자식들은 물론 지난 날 조선으로 갔던 사람들의 처자식들 역시 조선으로 데려가실 생각이셨다. 이일은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니 돌산도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물어 보거라. 내 목이라도 걸 수 있다.”

사화동이 당당한 태도로 대답하자 로쿠카즈는 물론 포로들 중에서 그 누구도 사화동의 말에 의심을 품을 수 없었다.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타가미 마고시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우리들도 조선에서 살 수 있는 것이오? 노예처럼 부려먹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고시타의 질문에 사화동은 답답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내 이미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느냐. 장군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장군님은 조선인이건 왜인이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장군님께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인자하시고 너그러운 분이시다. 조선에서는 아무래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배를 굶지는 않을 것이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처형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타가미 마고시타는 고개를 숙이고 사화동에게 말했다.

“알겠소. 순순히 조선군을 따라갈 테니 장군님께 잘 말씀드려 주시오.”

“나도 부탁하겠소. 잘 말씀드려 주시오.”

마고시타에 이어 사쿠라타니 로쿠카즈도 사화동에게 부탁을 하자 다른 포로들도 순순히 조선군을 따라갈 것을 약속했다. 포로들까지 좌수군의 통제에 순순히 따를 뜻을 보이자 철수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왜군 병사들이 포로로 좌수영에 끌려간다고 하자 포로로 잡힌 왜군들의 가족들도 포로들을 따라 좌수영으로 가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도 모두 항왜로 여겨서 좌수영으로 가는 전선에 탑승시켰다. 계획대로 화물을 적재하고 사람들을 태운 전선들은 항구에서 바다로 나와 대기했고 항구의 빈자리에는 다른 전선들이 들어가 다시 화물을 싣고 사람들을 탑승시키는 식으로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모든 배에 각종 화물과 사람들이 가득히 승선했다. 워낙 많은 수의 배가 움직이는 일이었고 승선하는 사람들의 수도 많아 13일 오후가 돼서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 모든 전선들이 준비를 끝냈다는 보고를 받은 나는 좌수군의 귀환을 명령했다.

녹도전선을 선두로 녹도만호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선들이 함대의 선두에 섰고 그 뒤를 관선들이 따랐다. 관선들의 뒤에는 좌수영 상선을 비롯해 8척의 판옥선이 달리고 있었고 판옥선의 뒤에는 3척의 갤리온이 마지막으로 갤리온의 뒤에는 김시민이 지휘하는 전선들을 비롯해 6척의 판옥선이 좌수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함대의 전선들이 모두 바다로 나와 뱃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것을 확인한 나는 손대남에게 상선의 지휘를 맡기고 선실로 내려갔다. 고토열도의 후쿠에섬과 히사카섬 그리고 나카도리섬이 초토화 된 이상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길에 적선을 만날 가능성은 없었고 바다에서 배를 모는 항해는 나보다 손대남과 좌수군의 장수들이 더 경험이 많았다. 나는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휴식을 취하고 그동안에 기록한 일지를 정리하기 위해 상선을 손대남에게 맡기고 선실로 내려갔다.

1587년 4월 19일 오전 한성 경복궁

“전하 전라좌수사 이대원이 왜국 오도를 정벌하고 지난 날 왜구들에게 잡혀간 우리 백성들을 구출하였다 하옵니다.”

병조판서 정언신이 전라좌수사가 올린 장계를 보고하자 편전에 있던 대신들은 하나 같이 입을 열었다.

“전하. 전라좌수사가 전하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함부로 군사를 움직였다니 이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전하. 전라좌수사가 전하께 아뢰지도 않고 군사를 일으켜 왜국에 까지 군사들을 몰고 갔다니 이것은 지난날 이징옥이 군사를 일으킨 것과 같은 사건으로 봐도 무방한 사건이옵니다. 전하.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는 전라좌수사가 역심을 품은 것이니 당장 금부도사를 파견해 전라좌수사와 좌수군의 장수들을 한성으로 압송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조정의 대신들은 당장 전라좌수사를 한성으로 압송해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선조는 별로 심각하게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선조는 대신들의 주장에 대꾸도 하지 않고 근엄한 표정으로 정언신에게 물었다.

“전라좌수사라. 전라좌수사의 이름이 무엇이었는가?”

선조의 질문에 정언신은 재빨리 대답했다.

“전하. 전라좌수사의 이름은 이대원이라 하옵니다.”

정언신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그제 서야 생각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이대원. 이제야 생각이 나는군. 나이가 꽤 어린 장수였던 것 같은데. 병판은 전라좌수사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가?”

“예 전하.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올해 스물둘로 약관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정언신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계속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전라좌수사를 압송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대신들은 그제 서야 이상한 기미를 느끼고 말을 아꼈다. 그들의 생각에도 22세의 청년이 역모를 일으킨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대신들이 입을 다물자 선조는 이번에는 대신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라좌수사가 스물둘이라 그렇게 젊은 장수가 홀로 역모를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병판은 전라좌수의 가족들 중에 관직에 있는 사람이 있는지 혹시 누구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사에 부임하였는지 알고 있는가?”

정언신은 이번에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예 전하. 전라좌수사 이대원의 가족들 중에는 관직에 있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라좌수사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형제들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전하께서 친히 전라좌수사에 제수하셨습니다.”

“그렇군. 전라좌수사 이대원에게 관직에 있는 가까운 이가 없으며 과인이 직접 전라좌수사로 제수하였다.”

정언신의 대답을 들은 선조가 대신들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말하자 대신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조정에서 역모라는 말이 나오면 우선 당사자부터 잡아다가 조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인 조선에서 장수가 군사를 함부로 움직였다는데 선조와 병조판서가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으니 대신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속이 타들어갔다. 대신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영의정 노수신이 나섰다.

“전하. 전라좌수사가 왜구들에게 잡혀간 우리 백성들을 구출하였다 하니 이것은 장한 일이옵니다. 그러나 장수가 전하의 허락도 받지 않고 군사를 움직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우선 전라좌수사를 불러 어찌된 일인지 사정을 들어봐야 하옵니다.”

노수신의 의견은 대신들의 주장했던 의견(전라좌수사를 역모로 잡아들이자고 했던 주장)과는 다른 전라좌수사의 사정을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노수신의 의견을 들은 선조는 흔쾌히 대답했다.

“영상의 말이 옳다. 전라좌수사에게 직접 어찌하여 군사를 일으켜 오도를 정벌하였는지 전후 사정을 들어볼 것이다. 당장 전라좌수사에게 입궐하라 명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선조의 대답을 들은 노수신은 속으로 생각했다.

‘전하께서 방금 전라좌수사가 오도를 정벌하였다고 말씀하셨지. 주상전하께서는 전라좌수사가 군사를 일으킨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아니 전라좌수사는 전하의 명을 받고 군사를 일으켜 오도를 정벌한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스물둘에 불과한 젊은이가 겁도 없이 오도를 정벌할 수 있었겠는가. 상황을 보니 주상전하는 물론 병판 정언신도 이일을 알고 있었던 것 같구나. 전하께서는 왜 조정의 공론을 거치지 않으시고 전라좌수사에게 직접 명을 내리셨을까?’

노수신이 적당한 때에 나서주어 원하던 대로 일이 진행되자 선조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선조는 내전으로 향하면서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었다.

‘전라좌수사가 과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왜구들의 수급이 500여구에 항왜의 수가 2000명이 넘는다고 했겠다. 이는 세종대왕 시절에 대마도를 정벌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큰 전과다. 전라좌수사가 오도를 정벌해 올린 전과를 대신들이 알면 종4품 만호였던 이대원을 정3품 전라좌수사에 제수한 과인의 안목을 대신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조는 자신의 앞에서 대신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할 것을 기대하며 하루 빨리 전라좌수사가 입궐하기만을 기다렸다.

한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나는 전라도 순천(현재의 여수)에 위치한 전라좌수영에서 정벌의 뒷정리로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고토열도를 정벌하고 무사히 좌수영으로 귀환하는데 성공한 나는 우선 돌산도에 갤리온과 관선들을 정박시키고 항왜들을 돌산도에 상륙시켰다. 돌산도에서 지내고 있던 항왜(정해왜변 당시 붙잡힌 포로)들은 갤리온에서 내리는 항왜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신의 가족들을 찾았고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발견한 자들은 그 즉시 아내에게 달려갔다. 고토열도를 출발해 돌산도

까지 온 항왜들도 죽을 줄로만 알고 있었던 남편을 발견하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니 그날은 돌산도에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한편 돌산도 까지 와서도 남편을 발견하지 못한 여인들의 수도 적지 않았으니 정해왜변 당시 사망한 왜구들의 부인들이었다. 500여명의 항왜(포로 출신)들이 살던 돌산도에 2000명이 넘는 항왜(대부분 여인과 아이)들이 도착했으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은 급한 대로 움막을 세워 항왜들의 잠자리를 만들도록 하는 한편 곡식과 생선을 풀어 대부분 여인과 아이들인 항왜들을 배불리 먹였다. 이렇게 돌산도를 수습한 후 군사들을 거느리고 좌수영으로 돌아온 나는 이번에 출정한 군사들을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먼 길을 다녀오느라 수고들 많았느니라. 제군들은 이번 정벌로 우리 전라좌수군이 조선에서 제일가는 정예수군이라는 것을 증명하였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무방할 것이다. 제군들의 활약과 헌신으로 왜구들에게 잡혀갔던 우리의 이웃들이 무사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노예로 팔려갈 예정이었던 여인과 아이들을 구출하였으니 제군들의 활약은 내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잠시 말을 마친 나는 좌수군의 군사들을 쭉 둘러본 후 힘차게 외쳤다.

“이번 정벌의 전과와 제군들의 활약을 주상전하께 고할 것이니 모두에게 포상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마음 편히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라.”

“와아~”

포상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에 좌수군의 장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고토열도 정벌에 참가한 군사들을 치하한 나는 좌수영에서 끓인 국밥으로 배불리 먹이고 군사들에게 소금을 한말씩 주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전장에서 돌아온 군사들에게 휴가를 준 셈이었다. 군사들 중에는 지난 2월부터 석 달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군사들도 있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자 군사들은 소금자루를 짊어지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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