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90화 (90/223)

────────────────────────────────────

────────────────────────────────────

────────────────────────────────────

서신과 장계

그렇게 군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후 나는 방에 들어가 정벌 기간 동안 틈틈이 작성한 일지를 정리한 후 그 자리에서 붓을 들어 병조판서 정언신 대감에서 보내는 서신을 작성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좌수군이 고토열도를 정벌하고 항왜들을 데려왔다는 소식은 길어야 일주일 안에 선조의 귀에 들어갈 것이 분명해 선조가 어떤 인물인데 좌수영을 감시하지 않을까. 이미 감시하고 있는 중이고 좌수영의 전선들이 출정했던 것도 이미 알고 있을 거야. 고토열도를 정벌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을 통해 선조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선수를 쳐야해.’

나는 출병한 좌수군의 규모에서부터 정벌군이 좌수영에서 출정한 후의 모든 일정과 전투기록 그리고 전과를 상세하게 서신에 적어 넣었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한 서신을 정언신 대감에게 보낸 후 정식으로 조정에 올리는 장계를 작성했다. 정언신 대감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고토열도 정벌의 자세한 일정과 모든 전과를 기록한 것에 비해 정식으로 조정에 올리는 장계에는 좌수군이 고토열도를 정벌하고 조선인들을 구해왔다는 사실만 적어 간략하게 작성했다.

‘좋아. 정언신 대감에서 오늘 서신을 보냈으니 장계는 내일 한성으로 보내도록 하자. 장계가 한성에 도착하는 것보다 먼저 정언신 대감이 서신을 받으면 정언신 대감이 선조에게 알아서 설명해 주겠지.‘

정해왜변 직후부터 내가 고토열도 정벌을 계획했다는 것을 정언신 대감과 선조가 알고 있었기에 한발 앞서 정언신 대감에게 서신을 보낸 것이다.

‘선조는 내가 고토열도를 정벌하는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어. 정벌이 성공했고 큰 전과를 올렸다는 것을 선조가 알게 되면 나를 처벌하지는 않겠지.’

임진왜란 당시의 행적으로 선조는 무자비하고 잔혹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로 선조는 자신이 신뢰하는 인물에게는 용서와 자비를 베푼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선조가 신뢰한 신립장군의 경우 정해왜변 당시 우방어사로 임명된 신립이 좌수영으로 내려오던 중 마을의 처녀를 첩으로 삼자 대간들은 이를 문제 삼고 신립을 탄핵하자 결국 파직되었지만 얼마 후 다시 관직에 올랐을 정도였다.

‘비록 승리하고 돌아왔지만 정식 명령도 없이 좌수군을 이끌고 고토열도를 정벌한 일은 역모로 몰아도 할 말이 없지. 이번 일이 조정에 올라가면 사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어. 그런데 선조와 정언신은 나와 좌수군이 고토열도를 정벌한 준비를 알면서도 말리거나 방해하지 않았단 말이야. 오히려 이순신, 이억기, 김시민을 보내줬으니 지원해준 셈이지. 선조가 나를 쓸 만한 무장으로 봤다는 증거지. 이미 정벌은 성공했고 적지 않은 전과까지 올렸으니 선조에게 설명만 잘 하면 처벌받을 일은 없을 거야.’

서신과 장계를 잘 써서 한성으로 보낸 후에는 그동안 밀린 좌수영의 공무와 함께 정벌의 뒷정리까지 쌓여있는 일거리를 하나하나 해치워야 했다.

“우선 갤리온은 돌산도에 그대로 정박시켜 놓자. 여러 사람이 봐서 좋을 것은 없지.”

가능하면 갤리온을 독점하고 싶었던 나는 갤리온을 돌산도에 정박시켜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피하게 만들고 싶었다.

“포르투칼인들 역시 우선은 돌산도에서 지내도록 하고 이놈들이 갤리온을 훔쳐서 도망치면 곤란하니 항상 병사들이 감시하게 하고 갤리온에도 병사들을 붙여서 내 명령 없이는 누구도 갤리온에 오르지 못하도록 한다.”

갤리온과 포르투칼인들에 대한 조치는 이정도면 됐다고 생각한 나는 다른 문제를 고민했다.

“장계를 올렸으니 조정에서는 곧 난리가 났겠지. 분명히 입궐하라는 명령이 내려올 테니 미리 준비해놓자.”

한성으로 올라오라는 명령은 곧 내려오겠지만 무슨 의도로 상경하라고 할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 자리가 허락도 받지 않고 군사와 전선을 움직인 것을 추궁 받는 자리가 될 수도 있었고 정벌의 전과를 보고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번 상경에 정벌의 성공했다는 것을  보고하고 그 전과를 선조와 대신들에게 보여주는 자리가 되어야 했다.

“금부도사가 의금부로 압송하러 올지. 선전관이 대궐로 입궐하라는 명령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대궐로 입궐할 준비를 해야겠지.”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 앞에서 이전 정벌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설명하고 정벌의 전과를 보고하기 위해 나는 정벌기간 중에 작성한 일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고 고토열도에서 가져온 전리품의 품목과 수량을 기록한 문서도 살펴보았다.

“노획품은 눈에 잘 뜨이는 갑옷과 투구 위주로 가져가고 일본도와 창은 질 좋고 깨끗한 것만 가져가자 그리고 화승총은 20정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좌수영에 남겨놓고 내가 쓰자. 화약도 몇 통 가져가는 것이 좋겠지. 10통만 가져갈까.”

포르투칼 상인들은 화승총과 화약으로 노예들의 값을 치를 생각이었기에 갤리온에는 적지 않은 양의 화약과 화승총이 실려 있었다. 갤리온을 군사들이 점령하면서 노예구매대금으로 가져왔던 화승총과 화약은 물론 갤리온의 선원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적재되어 있던 화승총과 화약까지 모두 좌수군 군사들이 노획하는데 성공했다. 정벌이 끝난 후 정리해 보니 정벌 기간에 노획한 화승총의 수가 400정이 넘었고 화약은 100통에 달했다. 여기에 갤리온에 장비되어 있는 대포들 까지 계산하면 이번 정벌은 아무리 계산해도 크게 남는 장사였다.

노획품 외에도 왜구들에게 고토열도로 끌려갔었던 조선인 10명과 노예로 팔려갈 뻔했던 항왜도 5명 정도를 증인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여기에 왜군들의 수급까지 보여준다면 이번 정벌의 전과를 선조는 물론 조정의 대신들도 인정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군의 피해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부상자들도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어. 2000명이 넘는 병력이 출동한 것을 감안하면 피해는 거의 없었지 반면에 150명의 조선인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했고 노예로 팔릴 위에에 처한 항왜들을 2100명이나 구해왔고 왜군들의 수급이 500구나 넘으니 이정도면 4군6진 개척이후 조선군의 해외원정 중에서 가장 성공한 정벌 같은데.”

전과에 만족해 흐뭇한 미소를 짓던 나는 좌수군의 명장들이 생각났다.

“그래 좌수군 우후 김시민, 순천부사 이억기, 녹도만호 이순신 그리고 군관들도 수고 많았지. 한성으로 상경하기 전에 이들과 같이 밥이라도 한번 먹어야겠다. 술도 한잔 곁들여서”

무장들과 식사를 하는데 술이 빠질 수는 없었다.

“그래 소뿔도 단김에 뺀다고 오늘 저녁에 이순신 장군과 다른 장수들도 함께 불러서 저녁식사를”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생각을 하자 갑자기 머릿속에 임진왜란이 떠올랐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 장군은 큰 전공을 세우고도 의금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었지 심지어 왜군에게 한 번도 패하지 않았었는데도 말이야.”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이순신 장군은 왜군들과 싸우기만 하면 승리하였고 왜군의 피해에 비해 조선수군의 피해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적었다. 선조는 1597년 무려 6년간이나 조선의 바다를 지킨 무패의 명장을 의심해서 파직했고 고문까지 했다. 이순신 장군이 파직 당한 이후 원균의 행적이나 이순신 장군께서 고문 후유증으로 전장에서도 고생하셨다는 것을 보면 선조가 조선수군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다.

“그래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정언신 대감에게 이미 상황을 설명하는 서신을 보냈고 조정으로도 정식으로 장계를 보냈으니 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상대가 선조인 만큼 방심은 금물이었다.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닌 선조야. 내가 아무리 잘했어도 자신의 입장이나 기분에 따라 나를 토사구팽 하고도 남을 사람이야. 이미 고토열도를 정벌했으니 선조 입장에서는 토끼사냥이 끝났다고 생각할지 몰라. 만약 선조가 이번 정벌의 전과를 보고 일본의 전력을 과소평가한다면. 왜구들이 크게 혼이 났으니 한동안은 조선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제는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의심을 하자면 끝이 없었지만 상대가 선조이다 보니 이런 의심도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최소한의 준비를 해놓는 것이 좋겠어.’

나는 궁리 끝에 도주계획을 세울 생각을 했다. 금부도사가 오거나 선조가 나를 배신할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갤리온에 식량과 무기를 싣고 나를 따르는 항왜들과 함께 오키나와나 대만으로 도주할 계획까지 생각했다.

조정과 좌수영이 이번 정벌의 뒷정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때 돌산도의 항왜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2000명이 넘는 항왜들이 섬에 도착했으니 당장 잠자리부터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은 급한 대로 돌산도에서 생활하고 있던 항왜들(정해왜변 당시 포로로 잡힌 왜구들)이 자신들이 살던 집을 여인과 아이들에게 양보했고 항왜들은 물론 항왜들을 감시하고 있던 좌수군 병사들 까지 괭이와 도끼를 들고 땅을 파고 나무로 지붕을 씌워 급하게 움막을 만들었다. 여인과 아이들은 사내들이 살던 초가집에서 지내고 남자들은 우선은 움막에서 지내며 초가집을 지어 잠자리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잠자리가 해결되자 그 다음으로 급한 것은 먹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어렵지 않게 해결됐다.

전라좌수사는 항왜들을 돌산도로 데려오면서 밥을 굶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있었다. 우선은 정벌군이 군량으로 가지고 있던 곡식으로 항왜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인원이 많고 살림살이가 부족한 만큼 커다란 솥에 밥을 지어 나눠주거나 곡식과 채소를 넣은 죽을 끓여 나눠주었다. 식사는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끼를 제공했다. 16세기는 조선인들은 물론 일본인들도 부자나 영주가 아닌 다음에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끼의 식사만 먹는 것이 보통이던 시대였으니 항왜들도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돌산도에서 가족들이 상봉을 하고도 집이 부족해 가족단위로 생활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초가집들이 세워지면 가족단위로 집을 배정해 줄 테니.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문제는 돌산도에서 가족을 만나지 못한 항왜들이었다. 항왜들 중에 고토열도 출신이 아닌 항왜들은 가족을 만날 수가 없었고 고토열도 출신이라고 해도 항왜가 돌산도에 있는 동안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재혼해 정벌군을 따라오지 않고 후쿠에 섬에 남은 경우도 있어서

기다리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항왜들은 실망감에 좌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난 함께 희망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의 공간이 된 돌산도에 전선들이 연이어 도착하자 포구와 해변가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당황했다.

“아니 소식도 없이 무슨 일이지.”

“글쎄 말이야.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야.”

포구에 전선이 도착하자 전선에서는 손대남이 내려오면서 병사들에게 외쳤다.

“좌수사 영감께서 직접 오셨다. 조군관은 어디에 있느냐?”

좌수사가 도착했다는 말에 병사들은 놀라서 대답했다.

“군관 나리께서는 염전에 계실 것입니다. 곧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포구를 경비하던 병사들이 손대남에게 대답하고 있었을 때 내가 포구로 내려왔다.

“그럴 것 없다. 조천군 군관도 바쁠 텐데 내가 염전으로 갈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