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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92화 (92/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92화

괴물 선조

“전라좌수사는 어찌하여 군사를 일으켰느냐?”

선조가 질책하듯 나에게 물었지마는 나는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왜구들에게서 조선의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출병하였습니다. 전하.”

“왜구들에게서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였다니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보라.”

선조는 여전히 질책하는 말투로 나에게 물었지만 이곳이 의금부가 아닌 경복궁 그것도 편전인 사정전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편했다.

나는 심문을 당한다기보다는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에게 고토열도 정벌의 과정과 전과를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선조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지난 전란(정해왜변)이 끝난 후 소장은 좌수군에 항복한 항왜들에게서 왜구들이 조선인이나 명국의 사람들을 잡아서 왜인들이나 남만인들에게 노예로 파는 경우가 있다는 진술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항왜들의 진술을 조합해 보니 왜구들이 조선에서 백성들을 납치해 노예로 팔았던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왜구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난 전란 당시에 왜구들에게 끌려간 백성들도 노예로 팔려가는 것은 시간문제였기에 소장은 왜구들에게 끌려간 백성들이 노예로 팔려가기 전에 구출하기 위해 오도로 출병한 것입니다.”

내 대답을 모두 들은 선조는 다시 매섭게 물었다.

“그러면 전라좌수사는 어찌하여 과인과 조정에게 알리지도 않고 마음대로 군사를 출병시켰느냐?”

“우선 조정에 출병을 요청하면 출병 허락을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노예로 팔려가기 전에 구출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출병하여야 하는데 조정에 사정을 알리고 출병을 요청하면 출병 허락이 언제 떨어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출병이 허락되지 않으면 조정의 명을 어기고 출병하는 것이 되니 그것이야말로 반역의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선조는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다시 물었다.

“과인과 조정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군사를 출병시키는 것은 반역이 아닌 것으로 보이느냐?”

이전에 상경했을 때도 선조와 독대를 했었지만 선조의 모습과 목소리는 대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내가 이번 고비만 넘기면 어떻게든 북해도로 떠난다. 정말.’

나는 마치 독사같이 나를 노려보는 선조를 상대하기 위해 배에 힘을 주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것은 소장이 책임질 것입니다. 소장이 모든 책임을 지기 위해 조정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내 대답에 선조는 흥미를 느낀 모습을 보이며 다시 물었다.

“좌수사가 책임을 지겠다고 했느냐?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해보라.”

‘됐다. 지금이 고비다. 내가 좌수군을 출병시킨 것은 반역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선조와 조정 대신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선조의 질문 덕분에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 앞에서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예, 전하. 만약 조정에서 출병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조정의 명을 어기고 출병하는 좌수군의 장수들과 군사들은 반역의 죄를 범하는 것이 되니 소장은 좌수군의 다른 장수들과 군사들에게 조정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을 알리지 않고 출병을 명하였습니다. 다른 장수들과 군사들은 상관인 소장의 명을 따른 것뿐이지 반역의 죄를 범한 것이 아니옵니다. 죄를 범한 것은 전하께 아뢰지 않고 출병을 명한 소장이오니. 소장을 벌하여 주옵소서. 전하.”

내 대답을 들은 선조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조정의 대신들도 내 대답에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래. 네가 제법 대범한 짓을 벌였더구나. 전라좌수군의 군사들을 얼마나 이끌고 출병했으며 왜에서는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됐다. 자연스럽게 전과 보고로 넘어갔다.’

조정에 알리지 않고 출병한 것에 대해 선조가 더 묻지 않자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침착한 표정으로 선조의 질문에 대답했다.

“예, 전하. 전라좌수군의 전선 12척과 지난 전란 당시 왜군들에게서 포획한 관선 4척에 군사는 2,000명이 출병하였습니다. 장수로는 소장과 순천부사 이억기, 녹도만호 이순신이 출병하였으며 오도에서 가장 큰 섬이자 왜구들의 소굴인 복강도에 상륙해 복강도의 왜성들을 함락시키고 왜구 300명을 참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전란 당시 왜구들에게 끌려간 조선의 백성 150명과 왜구들이 남만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려던 부녀자들과 아이들 1,000여 명을 구출하였습니다.”

“복강도 말고 다른 섬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고 들었다. 어찌 된 일이냐? 그리고 좌수영 우후 김시민도 출병했다고 하던데 김시민은 어찌하여 좌수사와 함께 출병하지 않은 것이냐?”

선조는 때맞춰서 질문을 던졌고 나는 선조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후쿠에 섬 외에도 히사카 섬과 나카도리 섬까지 정벌한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2,000명이 넘는 항왜들을 조선으로 데려왔으며 고토열도에서 참살한 왜군들의 수가 1,000명에 가깝고 조선으로 가져온 수급의 수가 500여 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내 대답을 들은 선조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모두 들었느냐. 150명의 백성을 구해서 돌아왔고, 왜구들의 수급을 500개나 베었으며, 참살한 왜구들의 수가 1,000여 명에 달한다니! 그리고 항왜를 2,000명이나 데려왔다니! 이런 허풍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선조는 껄껄거리며 웃었지만 대신들은 따라 웃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신들 중에서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자 나는 선조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전하 소장이 비록 어리석고 재주가 없으나 전하 앞에서 허풍을 떠는 못난이는 아니옵니다. 소장이 아뢴 것은 모두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전하”

“그래 증좌(증거)가 있느냐?”

‘그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증거가 있냐는 선조의 질문에 나는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얼굴로는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다.

“왜구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진술할 포로들과 항왜들이 한성으로 올라오고 있는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장이 상경하는 길에 왜구들의 수급을 가지고 왔나이다. 전하.”

“오, 그래. 수급을 가져왔어.”

선조는 흥미로운 표정을 보이며 물었다.

‘그래, 그 수급 가져오느라 많이 힘들었다.’

좌수영과 돌산도를 오가며 입궐할 경우를 대비하던 나는 좌수영으로 선전관들이 찾아와 입궐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전하자 우선 안심부터 했다.

선조가 나를 팽할 생각이었다면 선전관이 아닌 금부도사들이 나를 의금부로 압송하려 했을 것이기에 선전관들이 온 것만으로도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없이 호랑이굴이나 다름없는 경복궁에 들어갈 정도로 나는 순진하지 않았다.

선조의 명을 확인한 나는 우선 포로들과 항왜들 중에서 한성에서 증언하기 위해 선발된 사람들을 전선을 통해 한성으로 올려보낼 것과 전리품들을 역시 전선에 실어 한성으로 올려보낼 것을 명령하고 왜군들의 수급을 챙겼다.

그리고 한성으로 상경하는 길에 가져가기 위해 500여 구의 수급들을 10개의 나무상자에 나눠서 포장해 놓은 상태였다.

군마를 동원해 5마리의 말에 10개의 상자를 나눠 싣고 말을 탄 군관들이 상자를 실은 말들을 몰아서 한성으로 끌고 온 것이다.

말을 달려 한성에 도착하는 것보다는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이 더 걸렸지만 군마를 동원한 덕분에 달구지나 전선으로 수송하는 것보다는 훨씬 빨리 한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장이 상경하면서 오도를 정벌하면서 얻은 왜군의 수급을 가져왔나이다.”

“그래. 그 수급들은 어디에 있느냐?”

선조는 재미있는 것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이며 물었고 나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보이며 대답했다.

“왜군들의 수급은 흉한 것이라 대궐로 가져올 수 없어 훈련원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훈련원에 수급들을 가져다 놨다는 대답에 선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좌가 있다 하니 무엇을 기다리겠느냐. 과인이 친히 훈련원으로 나가 증좌를 확인할 것이다. 전라좌수사는 물론 대신들도 과인을 따르라.”

선조가 직접 훈련으로 나가 수급을 확인하겠다고 하자 대신들은 놀란 표정이었고 몇몇 대신들은 얼굴이 하얗게 창백해졌다.

그러나 대신들 중 그 누구도 선조를 말리거나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대신들이 사정전 밖으로 나가자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선조가 한성을 버리고 평양까지 도망가고, 평양에서도 도망쳐 의주까지 도망가고도 죽을 때까지 대신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조정을 좌지우지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임금이 저런 모습을 보여도 대신들 중에 누구 하나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보아하니 말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말리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런 대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대신들이 한심하다고 생각보다는 선조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조정을 보면 조선에 결코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야. 서애 유성룡, 오리 이원익, 오성 이항복, 한음 이덕형 직접 만나보니 정언신 대감도 보통 유능한 양반이 아니고…… 그런데 이런 인재들이 있어도 선조를 당해내지 못하다니 선조는 대체 어떤 괴물인 거야.’

기어이 훈련원까지 행차한 선조는 왜군들의 수급을 확인하고 대신들에게까지 수급을 확인시켰고 그 자리에서 나와 좌수군의 전공을 치하했다.

소금물에 절여지고 피가 빠진 수급들은 보기에 흉했기에 대신들은 수급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선조가 대신들에게 수급을 직접 보게 한 것이 전공의 확인 보다는 대신들의 기를 죽이려는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간에 선조가 전라좌수군의 전공을 치하하는 것으로 조정의 허락 없이 군사를 출병시킨 나의 죄를 다스리는 것은 사실상 끝났다.

* * *

그로부터 이틀 후 좌수영을 출발한 전선이 한성에 도착하면서 항왜들과 포로들이 선조와 대신들 앞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진술하고 전라좌수군의 전공을 증언하였지만 이미 수급을 확인한 선조와 대신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행사였다.

선조는 항왜들을 위로하며 쌀과 면포를 내렸지만 누가 봐도 요식적인 행위였고 포로들은 예상대로 죽음을 면치 못했다.

선조의 명에 따라 포로들은 한강변에서 참수된 후 그 자리에 효수됐고 좌수영에서 가져온 수급들도 한강변과 남대문 일대에 효수되어 남대문 일대는 귀신의 집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한성에 상경한 후 선조와 대신들 앞에서 출병의 이유와 전라좌수군이 올린 전공을 설명하고 항왜들의 진술을 듣고 포로들을 참수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닷새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사정전으로 불려갔다.

“그동안 확인한 증좌와 항왜들의 진술을 보니, 전라좌수사가 왜의 오도로 출병한 것을 좌수사의 공명심이나 사사로운 욕심이 아닌 조선의 백성들을 구출하고 왜군들을 응징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전라좌수사와 전라좌수군의 군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도로 출병했을 뿐만 아니라 왜구들과 용감히 싸워 응징하고 백성들은 물론 노예로 팔려갈 위기에 처한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까지 구하였으니, 과인은 전라좌수군의 용기와 그들이 올린 전공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선조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자 나는 오히려 바짝 긴장하면서 선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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