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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95화 (95/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95화

동해도

선장실 안에서 정여립과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정여립에게 몇 가지 부탁을 했고 정여립은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대화를 끝낸 후 갤리온에서 내려온 나는 정여립에게 돌산도를 안내했다.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한다는 말인가.”

염전을 안내하자 정여립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소금을 가열해 수분을 제거하고 있지만 기존의 자염(煮鹽)을 만드는 것보다는 장작도 훨씬 적은 양의 장작으로 소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저수지에 담겨 있는 바닷물과 수차를 바라보며 정여립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염전에 이어 항왜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항왜들이 일구고 있는 밭을 보여주며 나는 정여립에게 물었다.

“저 여인들과 아이들을 보십시오. 어떻게 보이십니까?”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여인들과 여인의 곁에서 흙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정여립은 대답했다.

“남루해 보이기는 하나 얼굴에 근심은 없어 보이는군. 저들에게는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인 것 같군.”

“저 여인들과 아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예로 팔려갈 운명이었습니다.”

정여립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말이 사실인가?”

“저들은 오도를 정벌했을 때 구출해온 왜인들입니다. 왜구들은 남만인들에게 저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려고 했습니다. 저들 중에는 성주의 성에 잡혀 있다가 좌수군 군사들이 왜성을 함락시키면서 구출된 여인들도 있고 남만선에 잡혀 있다가 구출된 아이들도 있습니다.”

항왜들의 사연들 들은 정여립은 충격을 받은 듯 항왜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나는 그런 정여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항왜들을 조선으로 데려오면서 저는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첫째는 다시는 너희가 노예로 팔려가지 않도록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 약속은 끼니를 굶지 않도록 보살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들은 지금 좌수군에게 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좌수군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곳 돌산도에서는 항왜들에게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끼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고 저들은 군사들에게 보호받고 있는 것과 두 끼의 식사에 만족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정여립은 무엇인가 짐작되는 것이 있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한발 앞서서 말했다.

“동해도를 점령한 이후 이곳에서 했었던 것 같이 동해도에서도 마을을 만들고 염전과 밭을 일구게 할 것입니다.”

“설마…… 저 항왜들로?”

“예. 항왜들을 동해도로 데려갈 것입니다. 돌산도에서 황무지를 밭으로 만들고 바닷가에 염전을 만들었던 것처럼 동해도에서도 밭을 만들고 염전을 만들게 할 것이며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은 5년 후, 10년 후에는 어엿한 군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정여립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좌수사는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었군. 항왜들로 왜를 칠 군사를 양병한다니 놀라운 계획이야.”

“왜국에서 태어났지만 왜국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성주와 무사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갈 뻔했으니 왜국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좌수사가 조선인으로 태어난 것이 정말 다행이군. 하늘이 조선을 구하기 위해 준비하신 것 같아.”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내가 겸손한 태도로 부탁하자 정여립은 자신 있는 태도로 힘차게 대답했다.

“걱정 말게. 자랑하자면 나는 만석꾼이야. 그것도 만석을 수확하는 만석꾼이 아니라 만석 이상의 곡식을 광속에 쌓아놓고 있는 만석꾼이지. 그리고 전라도의 양반들 중에서 이 정여립의 이름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양반은 많지 않지. 이제부터는 아무 염려하지 말게.”

다른 사람이 이런 소리를 했다면 허풍이라고 여겼겠지만 정여립이 한 말이나 허풍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아까 갤리온에서 대화를 나눌 때도 나는 정여립의 대답에 여러 번 놀랐다.

‘정여립이 대단한 양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 대체 뭐지……? 진짜 역모라도 일으킬 생각이었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는 정여립의 질문에 나는 우선 동해도로 데려갈 수 있는 대장장이와 목수 그리고 도공들을 부탁하자 정여립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여립의 대답에 놀란 나는 전선을 건조할 수 있는 목수들과 총통을 제작할 수 있는 장인들도 동해도로 데려가면 전력 증강에 큰 힘이 될 것이라도 말했고 정여립은 이번에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다음 달까지는 필요한 장인들을 구해주겠다고 대답했다.

‘부자고 인맥도 넓은 것은 짐작하고 있었는데 전선을 건조하는 목수들과 총통을 만드는 장인들까지 구해올 수 있다니. 총통을 만드는 장인들은 군기시나 관아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됐든 간에 구해준다고 했으니 정여립을 믿고 필요한 장인들을 부탁했다.

“보름 후에 좌수영으로 곡식과 재물을 보낼 것이니. 좌수사가 필요한 곳에 사용하시게. 그리고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으니 별칭을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정여립의 제안에 나는 찬성했다.

‘암호를 정하자니 좋은 생각이다. 기밀을 유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야.’

“좋은 생각입니다. 별칭은 생각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아까 남만선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대로 별칭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나? 조(趙), 위(魏), 제(齊)로 말이야.”

정여립의 의견대로 라면 조선은 조(趙)국, 일본은 위(魏)국 그리고 동해도는 제(齊)국으로 암호를 정하게 된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정여립에게 대답했다.

“그 생각도 나쁘지는 않지만 조, 위, 제로 부르다가 이 이야기가 누설될 경우 위위구조를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조와 위는 그대로 부르고 한(韓)이 조, 위와 함께 삼진(三晋)이었으니 제(齊) 대신 한(韓)으로 별칭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행히 내 의견에 정여립은 찬성했다.

“좋은 생각이군. 조(趙), 위(魏), 한(韓)이라…… 누가 들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네.”

이렇게 별칭을 정하기로 결정하고 나는 정여립과 함께 좌수영으로 돌아갔다.

정여립은 재물과 장인들을 보내는 것 외에도 다음 달부터 대동계원들을 비롯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장정들을 좌수군에 복무시키겠다는 뜻을 전했고 나는 그들을 사부와 포수, 총병 등 전투 병력으로 훈련시키기로 정여립과 합의했다.

좌수영으로 돌아와 식사를 마친 정여립은 황급히 자택으로 돌아갔고 그날 저녁 정여립이 가지고 온 술과 고기로 좌수영에서는 잔치를 벌였다.

정여립이 돌아간 후 본격적으로 북해도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한 나는 좌수영의 공무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손대남와 이언세 등 내 심복을 자처하는 부하들 그리고 고토열도 정벌을 함께 한 최도진, 김윤문, 허원종의 군관들과 함께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군관과 아전들은 좌수사인 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격의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렇게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군관, 아전들과 친분을 쌓던 나는 5월이 되어 이토 겐타로와 약속한 날이 가까워지자 좌수영의 공무를 우후 김시민에게 맡겼다.

“잠시 출정하여야 할 것 같네. 며칠 걸릴 것이니 그동안 공무는 우후가 맡아주게.”

갑자기 좌수영의 공무를 맡으라는 말에 김시민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좌수사 영감. 어디를 가시려고 하십니까?”

“후쿠에 섬에 다녀올 것이네. 후쿠에 섬을 정벌하여 남해안의 백성들과 안심하고 있는데 다른 왜구들이 후쿠에 섬에 둥지를 틀면 다시 조선을 노릴 수도 있지 않겠나. 화포로 무장한 남만선을 끌고 가 후쿠에 섬과 오도의 왜구들에게 전라좌수군의 위용을 보여주고 올 것이네. 좌수군의 위용을 보고 나면 조선을 침략한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

갤리온을 끌고 가 고토열도에서 무력시위를 펼치겠다는 말에 김시민도 고토열도가 왜구들의 거점이 되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찬성했다.

“오도에 다녀오신 지도 얼마 되지 않으셨는데.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좌수사 영감. 좌수영의 공무가 소장이 빈틈없이 처리해 놓을 것이니. 안심하고 다녀오십시오.”

“고맙네. 내일 아침 일찍 출병할 것이니. 내일부터 좌수영의 공무를 부탁하네.”

“내일 바로 출병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내일 바로 출병한다는 말에 김시민은 놀라다 못해 기겁을 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출병 준비는 이미 끝났네. 이번에는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남만선 3척과 군사 100명만 출정할 것이니 별로 준비할 것도 없었네.”

말을 마친 나는 김시민을 남겨두고 그대로 방을 나왔다.

* * *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돌산도의 해변가에는 100여 명의 군사들과 항왜들 그리고 포르투갈 선원들이 모여 있었다.

나를 비롯해 이번에 출정한 군사들은 전날 미리 돌산도에 들어와 하루를 보냈고, 항왜들과 포르투갈인들은 이미 돌산도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니 아침에 곧바로 출항할 수 있었다.

모여 있는 군사들 가운데 이언세와 손대남을 발견한 나는 군사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갔다.

“이미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이번 출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라. 절대로 너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모두가 조선을 위한 일이니 어떤 일에도 의심을 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좌수사 영감.”

손대남이 병사들을 대신해서 대답하자 나는 손대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출정할 것이다. 출항하라.”

“출항하라.”

손대남이 내 명령을 다시 한번 외쳤고 군사들과 항왜들은 일제히 사후선을 타고 갤리온으로 향했다. 군사들이 먼저 갤리온에 올랐고 그 뒤를 이어 항왜들이 갤리온에 올랐다.

손대남은 군사들이 갤리온에 오르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나지막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심하시지요. 좌수사 영감. 오늘 출정하는 병사들은 좌수사 영감과 함께 지난 전란 때 왜구들과 싸우고 오도를 정벌할 때도 용감하게 자원했던 병사들입니다. 소장과 저들은 좌수사 영감께서 명만 내리시면 불구덩이로 뛰어들 수도 있는 놈들입니다. 영감께서 무슨 명을 내리셔도 믿고 따를 것입니다.”

나는 손대남의 말을 듣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희의 충성과 믿음에 반드시 보답할 것이다. 너희는 항상 내가 지켜줄 것이다.”

“좌수사 영감.”

손대남은 감격한 표정으로 군례를 올렸고 나는 그런 손대남의 등을 두들기며 함께 사후선에 올랐다.

잠시 후 군사들과 선원들이 모두 탑승한 갤리온은 천천히 바다로 나왔다. 돛을 활짝 펼친 갤리온들은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도자기 무역은 나는 물론 이토 겐타로에게도 큰 이윤을 보장하는 거래였고, 내가 강력한 함대와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장군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이토 겐타로가 나를 배신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첫 번째 거래이니만큼 상대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갤리온을 3척 전부 출항시켰다.

3척의 갤리온에는 각각 좌수군 군사 30명과 항왜 20명씩이 탑승하고 있었고 포르투갈 선원들이 10명씩 탑승하고 있었고 화포와 화승총 그리고 편전까지 준비해서 완전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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