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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98화 (98/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98화

가격을 불러라

식사를 마친 후 부하들과 합류한 나는 저택에서 나와 갤리온으로 돌아왔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저택에서 자고 갈 것을 권했지만 부하들을 그냥 둘 수는 없다는 이유로 갤리온으로 돌아온 나는 선장실에서 손대남, 이언세 그리고 사화동을 불러 놓고 입조심을 당부했다.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이곳에서 벌이는 일은 내 개인적인 사욕을 위해 벌이는 일이 아니며, 절대로 조선에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보장하겠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대남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좌수사 영감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저희가 이곳을 방문한 사실이 다른 곳에 새어나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병사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켜놓겠습니다. 영감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손대남의 뒤를 이어 이언세도 비밀을 지키겠다고 대답했지만 손대남과는 다른 음흉한 느낌으로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무엇이냐?”

이언세의 웃음이 눈에 거슬린 내가 날 선 목소리로 묻자 손대남은 황급히 나를 말렸다.

“오해이십니다. 좌수사 영감 이진무가 웃고 있는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뜻이 없다니 그럼 웃을 이유가 따로 있다는 뜻이냐? 그것이 무엇이냐?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이언세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좌수사 영감께서 왜인의 저택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 것을 짐작하기에 저희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것입니다. 영감.”

‘좋은 시간? 이게 무슨 도깨비 바나나 까먹는 소리냐.’

이언세의 대답에 인상이 험악해진 나는 손대남을 노려보며 말했다.

“손군관은 자세히 설명해 보라. 좋은 시간을 보냈다니 무슨 말이냐?”

잠시 내 눈치를 본 손대남은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좌수사 영감에게 여인의 분 냄새가 진동을 하기에 영감께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신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영감.”

‘분 냄새. 화장품 냄새, 말인가?’

나에게서 화장품 냄새가 난다는 말에 이게 무슨 일인지 고민하던 나는 다가와 헤이메를 떠올렸다.

‘마쓰라 다카노부와 협상하고 있었을 때부터 헤이메와 같은 방에 있었지. 저녁을 먹을 때는 헤이메가 내 옆에 붙어서 시중을 들었으니, 분 냄새는 헤이메가 바른 화장품의 냄새구나.’

순간 나는 다가와 헤이메의 얼굴이 떠올라 당황했다.

“괜찮으십니까. 영감.”

내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손대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으음…… 괜찮다. 그리고 너희가 오해한 것이다. 저녁을 먹는 동안 하녀가 내 시중을 들었을 뿐.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당황한 나머지 어색한 말투로 해명하자 손대남과 이언세는 믿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화동은 제법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장군님께서 오늘 다카노부 나리의 저택에서 주무셨으면 장군님의 방에 여인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왜의 영주와 무사들은 자신의 집에 귀한 손님이 묵게 되면, 손님의 방에 여인들 들여보내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예의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문화를 잘 모르는 김개동과 호위병들은 사화동의 말을 듣고 놀란 얼굴로 사실이냐며 물었고 사화동은 당연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사화동 덕분에 오해를 푼 나는 부하들을 선장실 밖으로 내보낸 후 선장실 한쪽에 해먹을 치고 해먹에 누웠다.

쉬려고 눈을 감았지만 오늘 워낙 큰 경험을 한 덕분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고 자꾸 마쓰라 다카노부와 다가와 헤이메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화동의 말대로 오늘 밤 다카노부의 집에서 잤으면 방에 누가 들어왔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기를 쓰고 배로 돌아왔다. 다카노부의 집에서 잤으면 헤이메가 방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니. 아니지, 다카노부라면 확실하게 헤이메를 방으로 들여보냈을 거야.’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나는 미인의 기준도 이 시대의 사람들과 달랐다. 특히 오늘 본 헤이메는 내 기준으로 미인이 아닌 귀여운 인상이었다.

‘귀여운 인상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직 20살도 안 됐을 텐데. 너무 어려.’

이성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 한편에서는 아쉬워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내가 이 시대에 익숙해져 가는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 * *

다음 날 날이 밝자 이토 겐타로가 길 안내를 위해 갤리온으로 찾아왔다.

협상을 마친 이상 다카노부가 어리석은 짓을 할 리는 없다고 판단한 나는 손대남을 갤리온에 남겨 병사들과 함께 배를 지킬 것을 명령하고.

이언세와 김개동 그리고 사화동과 함께 자기와 다완을 담은 상자를 운반할 병사 10명을 데리고 겐타로를 따라갔다.

겐타로의 안내로 도착한 건물은 상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여관 같았다.

제법 넓은 1층의 전체를 깨끗이 비워서인지 넓은 회의장 같은 느낌이 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선 이미 10여 명의 상인이 모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인들은 이미 설명을 들었는지 우리가 여관에 들어서자 일제히 우리를 주목했고 나는 그들의 시선이 사람이 아닌 병사들이 등에 지고 있는 나무상자에 집중되어 있는 발견하고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 상품을 앞에 두고 설명이 길 필요는 없지.”

병사들이 상자를 내려놓자 나는 상자 중 하나를 열어 안에서 충격 방지용으로 담은 볏짚을 헤치고 면포로 감싼 자기를 꺼내 들었다.

내가 자기를 들어 올리자 포르투갈인들과 왜인으로 보이는 상인들은 일제히 내 손에 든 자기를 주시했고, 내가 면포를 벗겨내어 청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상인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청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앞의 탁자 위에 청자를 올려놓은 나는 다른 상자를 열어 다른 자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하얀 우유 빛깔 백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상인들은 다시 숨을 참고 백자를 바라봤고 나는 다른 상자를 열어 일본에서 찻잔으로 쓰이는 다완을 꺼내 탁자에 올렸다.

청자에 이어서 백자 그리고 일본에서는 없어서 못 판다는 다완까지 나오자 상인들은 손이 근질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을 몰랐다.

자기와 다완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나는 일본어로 호기롭게 외쳤다.

“무조건 비싸게 부르는 사람에게 팔겠다. 구매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가격을 불러라.”

내가 외친 소리를 들은 상인들은 눈을 크게 뜨고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욕심이 많아 보이는 왜인 하나가 손을 들며 외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상인들은 손을 들며 경쟁적으로 가격을 외쳤고 자기는 물론 다완의 가격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폭등했다.

준비해간 자기와 다완이 모두 판매되기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팔겠다고 하자 상인들은 경쟁적으로 높은 가격을 불렀고 그 와중에 하나라도 더 많은 자기를 확보하기 위해 말다툼까지 벌였다.

자연히 자기와 다완의 판매 가격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고 자기와 다완을 담았던 상자에 가득히 금화와 은화가 쌓였다.

자기와 다완을 판매하면서 구매하는 상인들을 유심히 살펴본 나는 포르투갈 상인들은 주로 백자를 사려 하고 왜인들은 청자를 선호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다완은 예상대로 왜인들이 싹쓸이해갔다.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준비해간 자기와 다완을 모두 판매한 나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고 김개동과 사화동 그리고 병사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쌓인 금화와 은화를 정신을 못 차리고 바라보았다.

상인들은 주로 일본에서 주조된 은화로 대금을 지불했고 간혹 나온 금화도 일본에서 주조된 금화였다.

16세기 일본은 이와미 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세계적인 은 생산국이 되었고,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금광의 개발도 적극적으로 진행하여 일본 전역에서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이 채굴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명국이 금과 은을 요구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금광과 은광의 개발을 금지하고 있었다.

“정신들 차려.”

넋을 잃고 금화와 은화를 바라보고 있던 병사들은 내가 호통을 치자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 나무 상자를 단단히 닫았다.

“괜히 욕심부리지 말게. 조선으로 돌아가면 내가 알아서 챙겨줄 테니.”

병사들에게 다시 한번 호통을 친 나는 이토 겐타로를 바라보고 말했다.

“수고가 많았다.”

“아닙니다. 장군님”

“내가 다카노부 공과 직접 거래하게 된 것은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오늘 자기와 다완을 판매하는 것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을 사람이 바로 이토 겐타로였다.

겐타로에게 구매자를 구해올 것을 요구하면서 수수료로 판매액의 1푼(分)[1%]을 약속했었으니 겐타로가 오늘 판매대금을 보고 얼마나 속이 쓰릴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겐타로에게 다가가 직접 일본어로 말했다.

“이따가 우리 배로 찾아 오거라. 선물을 주마.”

“감사합니다. 장군님”

겐타로의 얼굴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이토 겐타로가 나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말한 것은 괘씸한 일이었지만 다카노부는 겐타로가 저항할 수 없는 거물이었으니 겐타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히라도에서 성공적으로 자기를 판매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겐타로 덕분에 다카노부와 거래할 수 있게 되었으니 겐타로에게도 선물을 줄 생각을 했다.

판매대금을 모두 상장에 담아 갤리온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마쓰라 다카노부가 나타났다.

“다카노부 공을 뵙습니다.”

“히라도에서의 첫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치신 것을 축하드리오. 장군”

“다카노부 공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다카노부와 인사말을 주고받았을 때 다카노부의 뒤를 따르고 있던 부하들 중에서 다가와 헤이메가 내 앞으로 나와 조선말로 인사를 했다.

“축하드립니다. 장군님.”

“다시 만나서 반갑다.”

내가 헤이메와 인사를 주고받자 사화동과 김개동은 놀란 표정으로 나와 헤이메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큰 거래가 성공했으니 축하주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오늘은 이 늙은이가 장군은 물론 장군의 부하들도 대접하리다. 오늘 밤 우리 마음껏 취해봅시다.”

다카노부가 초대했지만 나는 히라도에 계속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카노부 공의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번 출항은 히라도까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 촉박합니다. 늦어도 다음 달에는 다시 자기와 다완을 가지고 올 것이니 다카노부 공의 환대는 그때 받도록 하겠습니다.”

“일정이 바쁘시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오. 장군은 큰일을 하시는 분이시니 어쩔 수가 없지. 오늘은 이만 헤어지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예상외로 다가노부는 시원하게 나를 놔줬다.

“죄송합니다. 다가노부 공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니오. 다음을 기약합시다.”

다가노부는 다음에 보자고 했지만 히라도를 떠나기 전에 계산할 일이 있었다.

“돌아갈 길이 바쁘니. 다가노부 공께서 괜찮으시다면 약속드린 판매 수수료는 지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오. 그럴 것 없소. 장군.”

수수료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다카노부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자 나는 의외라는 얼굴로 다타노부를 바라보았다.

‘상인이 돈을 마다할 리는 없고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인가?’

“장군과 부하들은 본래 이곳 히라도까지 올 계획이 없었으나 이 늙은이 때문에 계획을 변경해 히라도까지 오지 않으셨소. 나는 계산이 정확한 사람이오. 이번에는 장군의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에 대해 사과하는 의미와 장군과 이 늙은이의 계약이 체결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수수료를 받지 않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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