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99화
범선과 염초
히라도에서 자기와 다완의 판매로 말 그대로 대박을 친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가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자 곧바로 갤리온으로 돌아왔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여관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와 우리를 전송했지만 나는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손대남과 이언세을 갤리온으로 올려보내고 출항을 준비할 것을 명령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번 돈을 무사히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대항해 시대에 갤리온으로 무역을 하던 상인들은 해적들과 다를 것이 없어. 몇몇 선장들이 연합해 다른 선장의 갤리온을 약탈하는 경우도 실제로 있었으니 이제는 재빨리 좌수영으로 돌아가야 한다.’
손대남과 이언세가 병사들과 함께 갤리온에 올라간 후 부하들이 출할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부두에서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다카노부 공께서 보살펴주신 덕분에 이번에 손쉽게 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군은 언제라도 환영하겠소. 앞으로도 자주 히라도를 방문해 주시오.”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늦어도 다음 달에는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다음에는 우리 함께 취하도록 마셔봅시다.”
“저도 그날을 기대하겠습니다.”
훈훈한 분위기에서 마쓰라 다카노부와 작별인사를 마친 나는 다카노부 곁에 서 있는 다가와 헤이메를 바라보았다.
“장군님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가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내 시선을 느낀 헤이메는 부끄러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그러 헤이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대답했다.
“다음에 또 올 것이다. 그때 다시 보자.”
인사를 마친 후 곧바로 몸을 돌려 갤리온에 오른 나는 출항을 명령했다.
이미 닻을 올린 갤리온들은 돛대를 조정해 천천히 항구를 벗어났고 나는 갑판 위에 서서 다카노부와 헤이메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카노부와 헤이메를 바라보던 나는 그들의 뒤에서 있는 이토 겐타로를 발견하고 나서야 겐타로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 겐타로에게 배로 올라오라고 했었지. 견본으로 준 자기도 다카노부에게 빼앗겼을 것 같아 돈이라도 주려고 했더니. 다카노부가 부두까지 나와서 전송하는 바람에 배에 올라오지도 못했구나.’
다카노부가 무서워 갤리온으로 올라오지 못한 이토 겐타로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겐타로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다음에 보자.’
항구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갤리온들은 돛을 활짝 펴고 전라 좌수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 * *
한편 돌산도에서 전라좌수사 이대원에게 곧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정여립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약속대로 곡식과 재물을 전라좌수영을 보내는 한편.
친분이 있는 상인들과 역관들 그리고 대동계를 동원해 일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통신사가 아닌 이상 조선인이 일본에 입국할 방법은 없었지만 조선에는 왜관이 있었고 왜관에서는 왜인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물론 조선인이 허가를 받지 않고 함부로 왜관에 들어갈 수 없었고 왜관의 왜인들도 허락 없이 왜관 밖으로 나올 수는 없었지만 정여립 정도의 재물과 인맥이 있는 사람이라면 왜관에 자신의 원하는 사람들을 들여보내거나 왜관에 들어갈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사람들 통해 왜인들에게서 일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여립의 지시를 받은 대동계원들은 왜관의 왜인들, 더 나아가서 대마도와 왜관을 오고 가는 왜인들을 통해 일본의 현 상황을 조사했고 정여립에게 보고했다.
“뭐라? 풍신수길은 경도(京都)[교토]와 대판(大阪)[오사카] 일대의 광활한 지역을 자신의 영지로 만들었고, 그 땅에서 수확한 소출로 10만 명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다고?”
이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히데요시의 동생인 도요토미 히데나, 그리고 히데요시의 친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영지를 모두 합하면 일본의 석고 기준으로 무려 300만 석이 넘었다.
전국시대 당시 일본에서는 1만 석의 영지에서 250명 내지는 300명의 군사를 동원하는 것으로 국력과 군사력을 계산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농업 외에도 모리 가문과 공동으로 이와미 광을 경영하고 있어 이와미 은광 외에 다른 광산들과 상업을 통해서 얻는 수익도 있었으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마음만 먹으면 다른 영주들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10만 이상의 대군을 일으킬 능력이 있었다.
“왜왕도 아닌 자가 왜의 실권을 손에 쥐었을 뿐만 아니라 10만의 대군을 일으킬 수 있는 영지와 재력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왜국이 조용할 수 있겠는가…… 풍신수길이 20만 대군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좌수사의 주장은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닐 것이다.”
직접 일본에 대해 알아본 결과 일본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정여립은 전라좌수사가 요구한 대로 장인들을 하루빨리 좌수영으로 보내주겠다고 결심했고 그 외에도 전라좌수사를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히라도에서 성공적으로 자기와 다완을 판매하고 좌수영으로 돌아온 나는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동해도 진출을 준비했다.
우선은 좌수영에서 전선을 건조하는 목수들을 돌산도로 불러들여 갤리온을 보여주고 갤리온과 같은 구조의 범선을 건조할 수 있을지 물었다.
“완전히 같은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네. 다만 남만선의 특성은 살려서 격군이 없어도 항해할 수 있어야 하고, 배의 바닥이 평평해서는 안 되네. 어떠한가. 이런 배를 만들 수가 있겠는가?”
“좌수사 영감. 소인이 배를 만드는 일로 한평생을 보낸 놈입니다. 이런 배를 처음 봅니다만 시간만 주시면 이 배와 똑같은 배를 만들라고 하셔도 충분히 만들 수가 있습니다.”
대목의 자신 있는 말투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좋아. 배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눈을 크게 뜨고 갤리온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대목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생각을 마치자 대답했다.
“판옥선의 만드는 방식으로는 좌수사 영감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배를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왜선을 만드는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 좌수사 영감께서 말씀하신 배를 만들기에 적합할 것 같습니다. 왜선 한 척을 이곳으로 보내주시면 왜선과 남만선의 생김새와 특성을 살펴서 말씀하신 배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석 달만 시간을 주십시오.”
석 달이나 걸린다는 말에 나는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건조했던 판옥선과는 전혀 다른 배를 만드는 것이니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심하도록 하게. 격군이 필요 없이 돛만으로 항해할 수 있어야 하고 남만선처럼 돛대를 3개 이상 세울 수 있어야 하네. 판옥선과는 다른 형태지만 판옥선보다 선체가 약해서는 안 될 것이야. 판옥선만큼 튼튼한 배로 만들어야 하네.”
점점 요구 조건이 많아지자 대목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런 대목을 바라보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원할 것이고 일손도 필요한 대로 지원해 줄 것이네. 그리고 오늘 대목 자네의 집에 보리쌀 한 섬을 보내도록 하지. 다른 목수들의 집에도 보리쌀 다섯 말씩 보낼 것이니 오늘부터 배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도록 하게.”
일도 시작하기 전에 보리쌀 한 섬을 준다는 말에 대목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영감”
나는 그런 대목을 바라보며 당근을 제시했다.
“석 달 후, 대목과 목수들이 만든 배가 내 마음에 들면 대목에게는 보리쌀 한 섬과 면포 다섯 필을 더 줄 것이고 목수들에게는 보리쌀 한 섬씩을 주겠네. 만약 석 달이 아닌 두 말 만에 배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 대목과 목수들에게 각각 면포 열 필씩을 주지. 내가 약속하겠네.”
내 말을 들은 대목은 마치 ‘이게 꿈이냐 생시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대목의 뒤에서 내가 한 말을 들은 목수들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을 빨리 끝내면 성과급을 주겠다는 것…… 조선시대에는 아직 성과급이라는 게 없는 제도겠지. 하지만 몇 필 나눠주고 한 달을 절약할 수 있으면 오히려 싼값이다. 아주 싼값!’
동해도의 진출과 항왜들의 이주를 위해 더 많은 범선이 필요했던 나는 대목과 목수들에게 막대한(목수들의 기준에서) 성과급을 걸고 범선을 제작할 것을 명령하고는 염초 밭으로 향했다.
돌산도에 둔전을 일구기 시작했을 때부터 염초 밭을 만들어 분뇨 구덩이 속에서 볏짚을 숙성시키고는 있었지만 그동안 바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터라 염초를 만드는 실험도 해보지 못했었다.
고토열도를 정벌하면서 좌수영에 비축되어 있던 화약을 꽤 많이 사용한 것이 마음에 걸린 나는 소모된 화약을 보충하기 위해 염초 제작을 시도했다.
우선은 한국에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염초 제작에 필요한 도구들을 미리 준비시킨 나는 조천군과 호위병들만 거느리고 염초 밭으로 향했다.
염초 밭으로부터 300미터 정도 떨어진 평지에 작은 오두막이 세워져 있었고 오두막 안에는 체와 가마솥을 비롯해 내가 지시한 대로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선 구덩이에서 분뇨와 볏짚을 퍼오너라.”
내 명령에 염초 밭을 관리하던 병사들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자루가 달린 바가지로 분뇨 구덩이에서 분뇨와 볏짚을 퍼서 나무로 된 통에 담았다.
분뇨 냄새가 퍼지자 병사들은 물론 나와 조천군도 미간을 찌푸렸고, 나는 조천군이 건넨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병사들이 분뇨와 볏짚이든 나무통을 들고 오자 나는 목욕통으로 쓰이는 나무통 위에 나무막대 두 개를 가로로 올려놓고 나무막대 위에 체를 올려놓게 한 후 볏짚을 체에 걸렀다.
“통으로 떨어지는 분뇨는 놔두고 체에 걸린 볏짚만 가마솥에 넣고 끓여라.”
가마솥에는 이미 물이 들어 있었고 분뇨에 숙성된 볏짚을 가마솥에 넣고 끓이자 악취가 다시 올라왔다.
한참을 끓이다 가마솥의 물이 반 이하로 줄어들자 나는 아궁이의 불을 끄고 가마솥을 식힐 것을 명령했고, 잠시 후 솥이 식자 다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위에 뜬 맑은 물만 다른 가마솥에 옮겨서 끓여라. 그 물이 반 이하로 줄어들면 그만 끓이고 그릇에 옮겨서 식혀야 한다.”
내 명령에 병사들은 다시 국자를 들고 맑은 물을 떠서 작은 가마솥으로 옮겨 담았고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조천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첫 번째 구덩이 안에 들어 있는 모든 볏짚을 구덩이에서 퍼와 이와 같은 방법으로 끓이게. 작은 가마솥에서 끓인 물은 다른 그릇에 담아 응달에서 식히고 모든 작업을 조군관이 직접 감독하도록 하게.”
이것이 염초를 제작하는 과정인 것을 알지 못했던 조천군은 내 명령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뇨를 끓이는 작업을 오늘 하루 종일 직접 확인하라니…… 좌수사가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