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00화
울릉도
조천군에서 염초 제작을 감독할 것을 명령한 나는 좌수영으로 돌아가기 전에 항왜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은 점차 안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작은 초가집이었지만 주택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움막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다.
항왜들의 마을에 도착하자 사화동과 이와마츠 요시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대남과 이언세를 거느리고 마을로 들어선 나는 사화동이 안내하는 대로 마을 한가운데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초가집이었지만 방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내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손대남과 이언세가 따라 들어왔고 그 뒤에 사화동과 요시히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간단하게 말하겠으니 지금부터 잘 듣게.”
“예, 좌수사 영감.”
손대남이 내게 대답하자 이언세와 사화동 그리고 요시히는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음 달에도 지난번처럼 평호도(平戶島)[히라도]에 다녀올 것이다. 이번에도 자기와 찻잔을 가져가 상인들에게 판매할 것이고 판매대금을 받아올 것이다.”
전라좌수사 대놓고 도자기를 밀수를 하겠다고 말했는데도 손대남과 이언세는 나를 믿는 것인지 태연한 표정이었고 사화동과 요시히는 어차피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지난번과는 달리 남만선 2척이 출항할 것이다. 1척은 나와 함께 판매대금을 가지고 좌수영으로 곧바로 돌아올 것이지만 다른 1척은 평호도(平戶島)에서 곧바로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손대남과 이언세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사화동과 요시히는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이언세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이진무. 그것을 주게.”
이언세는 들고 다니던 보따리에서 내가 맡겨놓았던 서책을 꺼내 내게 주었고 나는 서책에서 곱게 접은 한지를 한 장 꺼내 바닥에 펼쳐 놓았다. 내가 그린 지도였다.
“이곳이 평호도. 그리고 이곳이 울릉도일세.”
내가 손가락으로 울릉도를 가리키자 손대남과 이언세 그리고 사화동과 요시히는 일제히 울릉도를 바라보았다.
“울릉도로 가는 뱃길을 확인하려고 하네. 물론 경상우수영과 경상좌수영에는 알리지 않고 말이지.”
조선에서 전라좌수군의 전선은 조정의 허락 없이 함부로 전라좌수군이 아닌 다른 수군이 담당하는 지역으로 나갈 수 없었다.
경상도 수군과 선조 몰래 울릉도 가지의 바닷길과 울릉도의 상황을 살피고 싶었던 나는 히라도에서 울릉도로 출항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이번에는 손 군관이 수고해 주게.”
내 말을 들은 손대남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손 군관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기에 부탁하는 것이네.”
나는 명령이 아니라 부탁한다고 말했고 손대남은 한숨을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승낙했다.
“소장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정말 고맙네. 손 군관.”
손대남에게 고맙다고 말한 것은 예의상 한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항왜나 포로가 아닌 조선의 군관인 손대남을 내 일에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은 나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
‘손대남과 이언세. 이 둘이 아니면 이 정도의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 내가 동행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사화동과 요시히에게 갤리온의 지휘권을 완전히 맡기는 것은 불안한 일이고 좌수영의 장수들 중에 손대남과 이언세보다 믿고 이 정도의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손대남이 못하겠다고 했다면 이언세 외에는 다른 대안도 없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내가 울릉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동해도 진출의 중간 기착지로 울릉도가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갤리온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좌수영에서 동해도까지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특히 항왜들 가운데 아이와 여인들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동해도로 가는 도중 하루 이틀 정도 정박해서 여인과 아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식수를 보충할 중간 기착지가 필요한데, 이에 울릉도만큼 적합한 곳은 없었다.
“울릉도까지의 바닷길을 확인하고 울릉도의 현재 상황도 확인했으면 좋겠군. 울릉도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섬에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바닷가 지역을 확인하고 돌아오도록 하게. 돌아오는 길은 물론 다시 평호도(平戶島)를 거쳐서 돌아오도록 하고.”
내 말이 길어질수록 손대남의 얼굴이 점차 어둡게 변했다. 나는 그런 손대남을 애써서 외면하고 사화동과 요시히에게 말했다.
“너희는 항왜들 중에 손 군관과 함께 울릉도에 다녀올 선원들을 선발하도록 하라. 물론 이번에도 돌산도에 처자식이 있는 사람들로 선발하도록 하고. 긴 항해가 될 것이니, 바다와 뱃일에 익숙한 선원들로 선발해야 할 것이다.”
“예, 장군님.”
사화동과 요시히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항왜 신분인 사화동이나 요시히는 내가 내린 명령을 거절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자신들에게 직접 울릉도에 다녀오라는 것이 아니라 울릉도에 다녀올 선원들을 선발하라는 것이니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사화동은 아직도 내가 무서운 것인지, 좌수사나 영감이 아닌 장군님이라고 부르는군. 사화동의 영향 때문인지 다른 항왜들도 나를 장군님이라고 부르고. 잘된 일이지. 너무 있어야 가까운 것보다는 적당히 거리가 권위가 서고 위계가 잡히는 법이니까.’
항왜들의 대답을 들으며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날 저녁에서야 돌산도를 떠나 좌수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정오 오전동안 좌수영에서 공무를 본 나는 다시 돌산도로 향했다.
돌산도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염초 밭으로 향했다. 오두막에 도착한 나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제 볏짚을 끓여서 식힌 것을 가져오너라.”
내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사발만 한 크기의 그릇들을 연이어서 들고 왔다.
그릇의 수는 전부 20개에 달했고 그릇 안에는 하나같이 하얀색 결정들이 굳어져 있었다. 그릇들을 바라본 나는 병사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빈 그릇과 수저, 그리고 볏짚을 가져오너라.”
병사들이 내가 말한 것을 가져오는 동안 염전에 나가 있었던 조천군이 오두막에 도착했다.
“좌수사 영감.”
“조 군관 수고 많았네. 어제 끓인 물을 식힌 것은 이것이 전부인가?”
“아닙니다. 영감 어제 볏짚을 끓여서 끓은 물들을 통에 담아 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나무통에 담아 광속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기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더 있다니 다행이군. 우선 여기에 있는 것으로 확인한 후에 통 안에 든 것을 확인해 보지.”
“무엇을 확인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좌수사 영감.”
조천군은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지만 나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잠시 후 병사들이 빈 그릇과 수저와 볏짚을 들고 오자 나는 오두막 한쪽에 있는 호롱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불을 붙여라.”
병사들이 아궁이의 불씨를 살려서 불을 피우는 동안 나는 직접 숟가락을 들고 조심스럽게 그릇 안에 말라붙어 있는 결정을 긁어서 빈 그릇에 담았다.
그릇에 떨어진 결정 덩어리는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눌러서 완전히 가루로 만든 후 그릇을 들고 오두막 밖으로 나와 땅바닥에 그릇을 내려놓고 병사들이 호롱에 불을 붙이자 호롱으로 마른 볏짚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볏짚을 들고 바닥에 놓은 그릇 안으로 던지자 하얀 가루에 불이 붙으면서 순식간에 불꽃이 일어나며 가루가 타올랐다.
그 광경을 본 조천군과 병사들은 입을 다물지를 못했고 나는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만세 성공이다! 염초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좌수사 영감.”
조천군이 놀란 얼굴을 하며 묻자 나는 조천군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염초야. 조군관. 염초를 제조하는 데 성공한 것이네.”
염초라는 말에 조천구은 물론 병사들은 기겁을 하며 놀랐다.
“아니, 이것이 염초라는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이런 것이 염초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조천군은 군관인 만큼 화약을 염초와 목탄(숯가루) 그리고 유황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 유황은 조선에서 나오는 곳이 없어 명과 왜로부터 수입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염초는 아궁이와 마룻바닥의 흙을 긁어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분뇨 구덩이 속에 있던 볏짚을 끓어서 염초를 만들었다니? 이제까지 소문으로라도 들어 보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우선은 여기에 있는 그릇과 통 안에 있는 염초를 조심스럽게 긁어서 모아주게. 그리고 다른 구덩이 안에 있는 볏짚들도 모두 끓여서 염초를 만들어야 할 것이야. 끓어서 염초를 만들고 남은 볏짚들과 분뇨들은 모두 밭에 거름으로 주도록 하고.”
“예, 좌수사 영감.”
염초라는 말에 놀랐던 조천군과 병사들은 구덩이 안의 볏짚을 모두 끓어서 염초를 제조하라는 명령에 얼굴을 찌푸렸다.
분뇨 구덩이 안에서 숙성된 볏짚을 끓이는 것은 고약한 약취를 맡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염초를 제조해 오도정벌 당시 소모한 화약을 보충한 후에는 조정에 장계를 올릴 것이네. 장계에는 조군관과 좌수영의 군사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분뇨 구덩이를 만들었고 몇 달에 거쳐 잘 관리했으며 그 덕분에 염초를 제조할 수 있었다. 상세하게 적을 것이야. 장계가 조정에 올라가면 조군관은 물론 분뇨구덩이를 만들고 염초를 제조하느라 수고한 병사들에게 상이 있을 것이네. 그러니 기대해도 좋아.”
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조천군과 병사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좌수영의 장수들은 물론 군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장수들과 군사들에게 인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장계를 올릴 때마다 장수들과 군사들이 수고하였다는 것을 반드시 기록했고, 조정에서 상과 재물이 내려왔을 때마다 착복하지 않고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다.
조정에 장계를 올리겠다고 하자 조천군과 병사들은 앞으로 받을 상을 기대하며 힘차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좌수사 영감.”
“그래. 염초를 모으고 다시 볏짚을 끓이려면 많이 바쁠 것이네. 서둘러서 어서 시작하도록 하게. 그리고 분뇨와 볏짚을 모두 퍼낸 구덩이에는 다시 분뇨와 볏짚을 채워 넣게. 계속 염초를 만들어야 하니.”
“알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조천군은 이번에도 힘차게 대답한 후 병사들에게 작업지시를 내렸고 나는 그릇 안에 굳어져 있는 염초와 아직 분뇨가 들어 있는 구덩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염초 밭은 이곳 돌산도 외에 절이도에도 있다. 돌산도에서 염초를 제조한 후에 다시 구덩이에 볏짚과 분뇨를 채운다고 해도 볏짚을 몇 달은 숙성시켜야 하니 그동안 절이도에서 염초를 제조하자. 염초를 제조한 후에는 절이도에서도 염초 밭에 다시 분뇨와 볏짚을 채워 넣고…….’
절이도에서 염초를 제조할 때는 돌산도에서 볏짚을 끓였던 병사들을 절이도로 보내 절이도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볏짚을 끓이고 염초를 제조하는 방법을 지도할 생각이었다.
절이도의 병사들이 염초를 제조하는 방법을 익히면 돌산도와 절이도 2곳에서 동시에 염초를 제조할 수 있으니 염초의 생산 속도는 2배로 빨라지게 될 것이다.
‘목탄은 숯을 사오거나 좌수영 인근 야산에서 나무를 베어 숯을 구우면 될 것이고 유황은 아직 조선에서 구할 방법이 없으니 히라도에서 구해와야겠다.’
돌산도에서 제조한 염초로 화약을 제조할 생각을 하던 나는 갑자기 선조가 떠올랐다.
‘어차피 장계를 올릴 생각이면 하루라도 빨리 올리는 것이 좋겠지. 장계에 염초까지 조정으로 보낸다면 효과는 더 좋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