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01화
히라도행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알아본 후 임진왜란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정여립은 좌수사에게 약속한 대로 재물과 곡식 그리고 좌수사가 원하는 장인들을 좌수영으로 보냈다.
총통과 전선을 제작할 수 있는 장인들은 나라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고급 인재들이었지만, 그들을 좌수영으로 보내는 것은 정여립에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총통을 제작하는 장인들은 군기시나 병영에서 평생을 일하다가 나이가 들어 은퇴한 사람들 중에서 경험이 많고 아직 건강에 큰 이상이 없는 사람들에게 큰 재물을 약속하고 전라좌수영으로 보냈다.
나이가 들어 직접 힘든 일은 못 하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젊은 장인들이 총통을 제작하는 것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전선을 건조할 수 있는 목수 역시 전선을 건조하는 일이 매번 있는 일이 아니니만큼 목수와 장인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막대한 재물을 안겨주고 전라좌수영으로 보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이들은 정여립이 보낸 대동계원들을 통해 재물을 받은 후 한밤중에 소리 소문도 없이 살던 집에서 사라졌고 정여립의 입김이 통하는 상단의 상선을 타고 비밀리에 좌수영 관할인 절이도에 도착했다.
절이도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돌산도에 도착한 이들은 각자의 장기에 따라 업무를 부여받았다.
장인들을 좌수영으로 보낸 후 한시름 놓고 있었던 정여립은 전라좌수사가 보낸 서신을 받았다.
재물과 장인들을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로 시작한 서신은 중반부에 가서야 본론이 적혀 있었다.
[한국에 가기 위해서 가야 하는 길이 머니 울릉도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울릉도를 잘 아는 길잡이가 있다면 한국에 가는 길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좌수사의 서신을 읽은 정여립은 한국(동해도)의 위치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울릉도라…… 위치가 좋지. 동해 한가운데에 있으니 동해도(북해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셈이고, 조선에서 동해도로 식량이나 도구들을 보낼 때도 곧바로 동해도로 보내는 것보다는 울릉도로 보냈다가 울릉도에서 상황을 봐서 동해도로 운송하는 것이 안전하지.’
정여립은 좌수사가 알면 알수록 유능한 인재라고 생각했다.
‘당장 내 주위에 울릉도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없지만 찾아보면 못 구할 것도 없어. 경상도 북부 지역과 강원도가 그나마 울릉도에서 가까우니, 강원도와 경상도 바닷가 고을에서 그 지역 토박이 어부를 찾아보자.’
조선은 공도 정책을 펼치면서 울릉도에 백성들이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조선시대에도 울릉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삼국사기에도 명주(溟州)[강릉] 정동 쪽 바다에 있는 섬이 울릉도라는 기록이 있었으니, 조선에서도 울릉도의 위치나 정보를 알아내려고만 하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
정여립은 자신에게 또 다른 일거리를 안겨준 이대원을 생각하며 젊은 친구가 자신을 알뜰하게 부려먹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라좌수사 이대원이 밉지는 않았다.
* * *
시간이 흘러 6월이 되자 돌산도에서는 다시 갤리온이 출항했고 이번에도 내가 직접 나섰다.
이번에도 좌수영의 업무는 우후 김시민에게 맡겼고 오도지역 왜구들에 대한 무력시위와 남만선의 항해 훈련을 핑계로 삼아 히라도를 항해 출정한 것이다.
지난달과 다른 것은 이번에는 3척이 아닌 2척이 출항한 것과 한 척은 내가, 또 한 척은 손대남이 선장을 맡아 각각 갤리온을 지휘한 것이다.
물론 손대남이 지휘하는 갤리온은 히라도에서 북동쪽으로 항해해 울릉도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이번에 출항하지 않은 갤리온은 돌산도에 남아 있었다. 배를 만드는 목수들이 범선을 제작하는데 참고용 견본으로 남은 것이다.
정여립이 보내준 목수들이 좌수영에 도착하자 나는 그들도 범선 제작에 동원했다.
갤리온을 처음 본 그들은 갤리온을 신기하게 여기며 배에서 살다시피 하며 갤리온을 살펴봤고, 그 모습을 본 좌수영의 목수들도 경쟁심이 붙었는지 갤리온의 안팎을 샅샅이 살피고 확인하며 선체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좌수영의 목수들과 새로 온 목수들이 처음부터 합작으로 범선을 제작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에게는 좌수영의 목수들과는 별도로 3달 안에 범선을 제작할 것은 요구했다.
좌수영의 목수들이 같은 조건으로 범선을 제작하고 있다고 하자 장인들 간의 자존심 때문인지 그들의 대목은 문제없다고 흔쾌히 응했고 지금 돌산도에서는 두 무리의 목수들이 각각 자신들의 방식으로 범선을 건조하고 있었다.
히라도로 출항한 갤리온 중에서 내가 지휘하는 1번 함에는 히라도에서 판매할 자기와 다완이 실려 있었고 손대남이 지휘하는 2번 함에는 식량과 식수가 1번 함보다 5배 이상 실려 있었다.
울릉도까지의 항해를 위한 식량과 식수를 넉넉히 준비한 것이다. 물론 2척의 갤리온 모두 병사들을 충분히 무장시킬 수 있을 정도로 무기와 화약도 넉넉히 싣고 있었다.
돌산도를 출항한 직후 손대남은 진무에게 배를 맡기고 내가 있는 1번 함으로 건너왔다.
“울릉도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강원도 강릉에 도착하면 울릉도로 길을 안내할 사람이 나와 있을 것이다. 경상좌수군에게 발각되지 않고 강릉으로 갈 수 있겠는가?”
“맡겨주십시오. 좌수사 영감. 평호도(平戶島)[히라도]를 출발하는 즉시 북동쪽으로 배를 몰 것입니다. 배의 속도와 별자리를 보고 방향과 어디까지 왔는지 거리를 짐작할 수 있으니 강원도에 들어서는 대로 어두운 밤에 단선(보트)으로 육지에 상륙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배를 몰아 강릉으로 향할 것입니다. 강릉에서도 안내할 어부를 밤에 찾아갈 것이니 경상도나 강원도의 군사들이 남만선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믿음직한 대답이었다.
“역시 손 군관은 믿을 수 있어. 정말 든든하군. 든든해.”
손대남을 격려한 나는 몇 가지 주의사항과 함께 울릉도에서 확인해야 할 것들을 설명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평호도로 와야 하네. 송포륭신(松浦隆信)[마쓰라 다카노부]에게는 내가 부탁해 놓을 것이니. 평호도에서 좌수영으로 돌아오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요구하게 물이나 식량 기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요청하게. 알겠는가?”
“이리도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좌수사 영감.”
“먼 길이고 위험을 무릅쓰는 일인데 이 정도는 준비해 놓아야지. 무엇보다 무사히 안전히 다녀오게 손 군관.”
울릉도 탐사를 명령한 이후 울릉도까지의 뱃길을 아는 사람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좌수영의 장수와 군사들 중에서는 울릉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GPS도 내비게이션도 없는 시대에 생전 처음 가 보는 곳을 알아서 찾아가라고 할 수도 없었던 나는 정여립에게 부탁해 가까스로 울릉도로 가는 뱃길을 아는 사람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 사람이 강릉 지역에 사는 어부라 바로 전라좌수영으로 데려오는 것도 문제였고, 좌수영으로 데려온다 해도 이 사람이 히라도에서 울릉도로 가는 뱃길을 알고 있을 리도 없었다.
고민 끝에 손대남은 히라도를 출발해 동해를 통해 강릉 인근의 해안에 상륙해 강릉에서 뱃길을 안내할 어부를 만나 울릉도까지 길 안내를 부탁한다는 많이 복잡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손대남은 자신 있다고 대답했고 그동안 내가 본 손대남은 충분히 임무를 완수할 능력이 있었지만 이 계획을 세우면서 정작 나는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적지 침투에 야간상륙. 안내인과 접선 후 목표지점으로 진격이라…… 이거 완전 내 전문 분야인데. 좌수영을 오래 비워둘 수 없지만 않았어도 울릉도에는 내가 다녀오는 건데. 이건 완전히 재미있겠는데…….’
전라좌수사로 5곳의 고을과 5곳의 수군진 그리고 수천 명의 군사와 수십 척의 전선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나는 대한민국의 해병이었고 특전사의 장교였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고 그때 받았던 교육과 훈련들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 그래. 나침반 그리고 육분의도 있었지.’
해병대와 특전사에서 훈련받았던 기억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나침반이 생각났고 그와 더불어 갤리온에서 육분의를 발견한 기억을 떠올렸다.
‘맞아. 유럽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에 올 정도의 항해술이라면 나침반과 육분의는 자유자재로 사용하겠지.’
“항해사, 아니, 타공들을 불러라. 지금 당장!”
“예, 영감.”
포르투갈 항해사들을 떠올린 나는 항해사들을 불렀고 손대남은 황급히 군사들을 보내 항해사들을 데려왔다.
* * *
나와 손대남이 지휘하는 갤리온이 돌산도를 출발한 날 저녁.
병조판서 정언신은 선조의 부름을 받고 경복궁의 작은 전각에서 선조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전라좌수사가 병판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예, 전하.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서신에서 조정에 장계를 올리기 전에 신에게 따로 서신을 보냈다고 하옵니다. 내일에는 정식으로 조정에 장계가 올라올 것입니다.”
“그래 서신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는가?”
“전라좌수사가 신에게 보낸 서신은 신을 통해 전하께 고하는 글이었고 전라좌수영에서 염초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옵니다.”
전라좌수사가 보낸 서신의 내용을 궁금해하던 선조는 염초를 제조했다는 대답에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염초의 제조 역시 지난날 과인이 좌수사에게 허락한 일이다. 지난 전란 당시 전라좌수군이 입은 손실을 회복하고 왜구의 재침에 대비해 좌수사에게 총통의 제작과 염초의 제조를 허락했었다.”
“전하. 전라좌수영에서는 이번에 아궁이와 마루 아래의 흙을 사용하지 않고 염초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전라좌수영에서는 분뇨와 볏짚을 사용해서 염초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고 장계를 올리며 이번에 제조한 염초를 조정에 올렸다고 하옵니다.”
“뭐라? 아궁이의 흙을 사용하지 않고도 염초를 제조했어?”
선조는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정언신을 바라보았다.
“좌수사는 좌수영에서 염초를 제조한 방법을 장계에 자세히 기록해서 올렸다고 하옵니다. 좌수사는 이번에 좌수영에서 개발한 방법대로 각 병영과 수영에서 염초를 제조하면 조선의 염초 생산량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정언신의 설명을 들은 선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명 염초를 제조하는 새로운 방법이 발견된 것은 조선을 위해 잘된 일이었다.
조선은 왜구들과 야인들과의 전투에서 총통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총통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약이 필요했기에 니탕개의 난 이후부터 선조는 화약과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의 생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선조는 전라좌수사가 장계를 통해 염초의 제조법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굳이 정언신을 통해 자신에게 따로 알린 이유가 궁금했다.
“이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무엇이 이상하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전하.”
“전라좌수사가 염초의 제조 방법을 개발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칭찬을 받을 일이다. 장계를 올리는 것으로 충분했을 텐데. 왜 병판을 통해 과인에게 따로 그 사실을 알렸는지, 과인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선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정언신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신중하고 용의주도한 장수입니다. 아마도 조정의 주목을 받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목을 받는다니, 그것이 무슨 말이냐?”
“좌수사의 나이만 봐도 다른 장수들이나 조정 대신들의 질투를 받을 만합니다. 22세의 나이에 이미 당상관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좌수사는 왜변으로 전임좌수사가 전사하는 참변을 겪은 전라좌수영을 수습했을 뿐만 아니라 오도까지 정벌하고 돌아왔습니다. 불과 22세의 나이에 이 정도 전과를 올린 사람이 조정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언신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그제 서야 전라좌수사의 상황을 이해했다.
“하긴 전라좌수사가 오도를 정벌하고 돌아왔을 때도 조정의 대신들은 좌수사를 역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했었지. 여기에 좌수영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염초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는 장계가 올라오면 좌수사가 염초를 제조하는 것은 역모를 준비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대신들이 나오겠구나.”
선조가 좌수사 이대원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정언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좌수사의 입자에서는 염초의 제조 방법을 알리지 않고 좌수영에서만 새로운 제조 방법으로 염초를 제조하는 것이 편하고 간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염초의 제조 방법을 조정에 알리는 것이 조선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에 장계를 올렸다고 생각됩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