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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02화 (102/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02화

유황과 구리 그리고 철

정언신의 말을 들은 선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좌수사 이대원은 이미 오도를 정벌해 전공을 세웠고 내년에는 어차피 육진으로 올려보내겠다고 했으니…… 좌수사가 특별히 상이나 벼슬을 바라고 염초를 제조하거나 염초를 제조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지난 전란과 오도정벌 당시 좌수영에서 소모한 화약을 보충하기 위해 염초를 제조하고, 그 과정에서 염초를 제조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것 같군. 그리고 이런 일을 조정에 알리면서도 병판을 통해 과인에게 한발 앞서서 먼저 아뢰다니 전라좌수사의 행동이 제법 갸륵하구나.’

선조는 전라좌수사 이대원이 자신을 존경하기 때문에 조정에 보고하기 전에 먼저 알렸다고 생각하고 이대원을 기특하게 생각했다.

“병판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전라좌수사가 마음을 쓰는 것이 장하고 기특하구나.”

“전라좌수사 같은 젊은 인재가 전하를 존경하고 마음으로 전하를 섬기고 있으니 전하께서는 태평성세를 누리소서.”

정언신의 아부가 기분 나쁘지 않았던 선조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병판이 과인의 곁에 있기에 과인은 항상 든든하다. 병판과 좌수사가 과인을 보좌하고 있으니 좌청룡 우백호로구나.”

“전하께서 태평성세를 여셨으니 조선의 선비와 장수들은 항상 전하를 존경하며 성심성의껏 전하를 섬길 것이옵니다. 전하.”

“병판의 그 말이 듣기에 좋구나. 그리고 전라좌수사는 정말 아깝구나…… 나이가 너무 어린 것이 아까워.”

“좌수사 이대원은 아직 젊으니 오랜 시간 동안 전하를 섬길 것이옵니다. 전하.”

“전라좌수사가 과인을 오랜 기간 섬기는 것은 과인은 물론 좌수사에게도 즐거운 일일 것이나, 좌수사의 나이가 어려 조정으로 불러들일 수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좌수사가 서른만 넘었어도 당장 참의(參議)에 제수해 과인의 곁에 두었을 것인데. 아직 좌수사의 나이가 어려 한성으로 불러들여 과인의 가까이에 둘 수 없으니 안타깝구나.”

“좌수사가 서른이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전하께서 좌수사를 조정으로 부르는 것도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정언신은 선조에게 대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좌수사가 보낸 서신이나 좌수사의 행동을 보면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전하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전하께서 좌수사를 조정으로 불러들이시는 것보다 변방을 지키게 하시는 것이 좌수사에게도 전하께도 좋을 것 같은데.’

정언신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아무래도 아쉬운지 정언신을 바라보며 물었다.

“차라리 좌수사에게 내금위나 겸사복의 자리를 내려 좌수사를 과인의 곁에 두는 것은 어떠한가?”

선조의 질문에 놀란 정인신은 황급하게 대답했다.

“전하. 송구하오나 좌수사가 겸사복이나 내금위로 들어온다면 좌수사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될까. 염려되옵니다. 바다를 지키고 수천의 군사와 수십 척의 전선을 호령하고 있는 좌수사이나 아직 22세에 불과하고 무과에 급제한지도 얼마 되지 않으니 당장 겸사복장이나 내금위장에 임명하는 것은 다른 장수들과 조정의 대신들 반대할 가능성이 크옵니다. 그렇다고 좌수사 이대원을 한낱 부장이나 군관으로 쓰는 것은 좌수사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전하께서는 좋은 장수를 쓰시지 못하시게 되옵니다.”

내금위와 겸사복은 왕을 경호하는 부대로 왕의 호위와 궁궐의 방어가 주요 임무였다.

경복궁을 방어하고 선조를 경호하는 부대였으니 그 중요성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고 내금위장과 겸사복장은 종2품의 고위직이었지만 내금위 군사의 수는 190명, 겸사복 군사의 수는 50명으로 소규모의 부대였다.

“좌수사는 이대로 변방에 두셔서 외적의 침입을 막게 하시고 좌수사 나름대로 경험을 쌓게 하시면 전하께서 좌수사를 크게 쓰실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옵니다. 전하.”

자신의 고집을 잘 꺾지 않는 선조였지만 이번에는 정언신의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아직 22세에 불과한 좌수사를 내금위장이나 겸사복장에 임명하는 것은 선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무리였고, 그렇다고 수천 명의 군사를 호령하던 좌수사를 내금위나 겸사복 소속의 부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선조가 생각하기에도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일에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래 과인이 생각이 짧았군. 좌수사의 대한 처우는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정언신은 선조가 전라좌수사 이대원을 내금위에 임명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망극하다고 외쳤다.

* * *

돌산도를 출발한 갤리온들은 순조롭게 항해를 계속해 다음 날 오후 히라도에 도착했다.

히라도에 도착한 나는 갤리온으로 찾아온 관원 복장의 왜인들을 따라 마쓰라 다카노부의 저택으로 향했고 마쓰라 다카노부는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장군. 먼 길을 오느라 수고하셨소이다.”

“환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다카노부의 옆에서 통역을 하던 다가와 헤이메는 무슨 일인지 보이지 않았지만, 그동안 틈틈이 공부한 일본어 실력으로 나는 다카노부와 직접 인사말을 나누었고 자세한 대화는 사화동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에도 자기와 다완을 가져왔다는 말에 다카노부는 매우 기뻐하며 다음 날 곧바로 구매를 희망하는 상인들을 불러주겠다고 했고 손대남이 울릉도에 다녀오는 길에 히라도에서 식수와 식량을 보급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도 흔쾌히 승낙했다.

“다카노부 공께 부탁할 일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다카노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무엇이든지 말씀하시오 장군. 내가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드리리다.”

미소를 짓고 있는 다카노부의 얼굴에서 영업용 웃음을 띠고 있는 상인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거래를 하러 온 것이니 나는 다카노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유황과 구리 그리고 철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물론 가격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말입니다.”

다카노부는 어렵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니 걱정 마시오. 장군 그리고 가격도 염려하지 마시오. 이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신용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남만인들과 거래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 정도 부를 쌓지는 못했을 것이니 말이오. 이번에 말씀하신 상품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장군께서 납득할 수 있는 가격에 상품을 공급하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유황, 구리, 철은 다음 달에 히라도에 왔을 때 구매할 수 있겠습니까?”

유황은 화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료이고 구리와 철 역시 대포와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이다. 조선의 수군 장수인 내가 유황과 구리, 철을 주문한다면 어디에 사용할지 짐작할 수 있을 텐데도 마쓰라 다카노부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장군께서 말씀하신 상품들이 얼마나 필요하시오? 히라도에 보관 중인 상품도 있고 상품을 싣고 온 상선들도 있을 것이니 필요한 수량을 말해주시오. 가능하면 내일 중에라도 구해드리다.”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 추진력이라니 과연 영주보다는 거상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다카노부의 대답에 나는 놀라면서 대답했다.

“유황 500근(300kg)과 구리 2,000근(1,200kg), 철 1,000근(600kg)이 필요합니다.”

“구리와 철은 이틀 안에 장군이 필요하신 만큼 구해 들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유황은 그만큼이 안 될 것 같소이다. 이틀 안에 최대한 구해 보리다.”

이틀 안에 구해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역시 상업으로 부를 쌓은 거상답구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국시대의 일본에서는 무기의 재료가 되는 구리와 철의 가격이 높았을 것이다.

영주의 신분이지만 본바탕은 상인인 마쓰라 다카노부가 많은 양의 구리와 철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달에 히라도를 방문할 때도 같은 양의 유황과 구리, 철을 구매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나 마쓰라 다카노부는 한 달이나 시간 여유가 있는데도 그 정도의 물량을 준비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지 않소. 그 두 배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으니 걱정 마시오.”

다카노부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그의 자신감과 능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다카노부 공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달에도 같은 수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장군께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오. 유황과 구리를 대량으로 주문해 주셨으니 말이오. 그리고 장군. 유황과 구리 그리고 철 말고도 필요한 것이 또 있으시오?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시오.”

마쓰라 다카노부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자 나는 그런 다카노부를 보며 오늘 벌써 몇 번째 놀랐는지도 모를 정도로 놀랐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할 말은 다하고 웃고 있으면서도 내가 한 말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구나. 내가 몇 가지 부탁이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묻는 것이 분명해.’

나는 다카노부에게 기죽지 않았다는 인상을 보이기 위해 눈에 힘을 주며 눈을 크게 뜨고 다카노부를 바라보고 대답했다.

“다카노부 공 이번에는 상품이 아닌 사람을 구합니다. 사람을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 이렇게 심각한 분위기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평범한 노예들을 구하시는 것은 아니신 것 같고. 필요한 사람이라도 있으시오.”

다카노부의 질문에 나는 진지한 표정을 대답했다.

“철포(鐵砲)[조총]를 제작할 수 있는 장인들을 구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그들만으로 철포를 제작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장인들을 구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화승총을 제작할 수 있는 장인이 필요하다는 말에 마쓰라 다카노부도 이번에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인 다카노부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장군,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돈이 많이 들 것이오. 몇 명이나 필요하시오?”

“철포를 제작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합니다. 철포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노예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장인을 고용해도 좋으니 최소한 3년간 나를 따라가서 철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교활한 느낌이 드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선에는 아직 철포 제작 기술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오. 장군께서 조선의 장인들에게 철포 제작 기술을 익히게 하시려는 것을 보니 말이오.”

다카노부의 말대로 화승총은 아직 조선에 알려지지 않았고 조선에는 화승총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없었다.

북해도를 점령한 이후 북해도의 방비를 위해 그리고 임진왜란에 개입하기 위해 화승총과 대포 그리고 전선을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때문에 나는 다카노부에게 화승총을 제작할 수 있는 장인들을 구해 북해도에서 화승총을 제작하고, 북해도로 이주한 장인들에게 화승총 제작을 돕게 하면서 장인들이 화승총 제작 기술을 배우게 만들 생각이었다.

“다카노부 공의 생각대로입니다. 장인들은 언제까지 구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일 대답을 드리겠소. 어째 하늘이 장군을 돕고 있는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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