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03화
도자기와 찻잔
마쓰라 다카노부와 대화를 마친 후 갤리온으로 돌아온 나는 내일 있을 경매를 준비하며 가져온 자기와 다완의 상태를 확인한 후 곧 잠자리에 들었다.
다카노부에게서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듣기는 했지만 다카노부와의 대화는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항해의 피로와 다카노부와의 대화로 인해 쌓인 피로 때문인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울릉도를 향해 출발하는 손대남의 갤리온이 히라도에서 출발했고 다카노부의 부하들이 내가 지휘하는 갤리온으로 찾아왔다.
이번에도 자기와 다완이 든 상자들은 좌수군의 병사들이 짊어졌고 다카노부의 부하들은 우리를 상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여관으로 안내했다.
여관은 지난달에 자기를 판매했던 여관과 같은 장소였지만 이번에는 소문이 난 것인지 지난번보다 훨씬 많은 상인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병사들은 천천히 상자를 내려놓았고 나는 일부러 천천히 상자를 열어서 자기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역시……!”
“과연…….”
자기를 보자마자 몇몇 상인들이 참지 못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나는 상인들의 반응을 살피며 일부러 천천히 자기들을 꺼내 놓았고 자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상인들을 바라보며 일본어로 외쳤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은 수량의 자기를 가지고 왔소이다. 자기가 마음에 드시는 분은 가격을 불러보시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인들은 살벌한 눈빛을 뿌리며 자기를 바라보았고 나는 이번에도 자기들이 높은 가격에 판매될 것을 예상했다.
‘얼핏 봐도 지난번에 왔던 상인들이 대부분 보인다. 거기에 지난번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얼굴들도 상당수야. 구매를 원하는 상인들의 수는 늘었지만 판매할 자기의 수는 지난달과 같으니 자기의 가격은 지난번보다 오를 수밖에 없겠구나.’
나는 일부러 지난달에 가져왔던 자기와 같은 수의 자기만을 가져왔다.
좌수영에는 도공들이 납품한 자기들이 아직도 많이 쌓여 있었고 자기가 더 필요하면 다른 도공들에게 주문해서라도 자기를 만들어 오게 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수량을 맞춰서 지난달에 가져온 만큼만 가져온 것이다.
‘일본에서 조선의 도자기가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물량이 대량으로 풀리게 되면 가격이 하락하는 법이지.’
아직 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제조할 도공들도 존재하지 않고 도자기의 제작 기술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가져오는 자기의 수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도 자체적으로 도자기를 생산할 수도 없고, 더구나 조선의 청자를 일본에 판매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 마음대로 물량을 조절할 수 있고, 계속 높은 가격에 도자기를 판매할 수 있지.’
내 예상대로 일본 상인 하나가 가격을 외치자 다른 일본 상인과 포르투갈 상인들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불렀고 시작부터 치열하게 가격이 치솟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역시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히라도에 가져오는 도자기의 수를 조절해서 도자기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일본에서 도자기를 제조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가면서부터였지.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가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일본으로 도자기가 제조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해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높은 가격으로 일본에 도자기를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임진왜란에 개입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았다.
지난번처럼 백자는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화려한 청자는 주로 일본 상인들이 구매하려고 했다.
상인들의 경쟁이 치열했기에 준비해간 자기는 순식간에 팔렸고 판매대금으로 받은 금화와 은화가 상자에 쌓였다.
자기가 모두 판매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인들에게 일본어로 외쳤다.
“준비한 자기는 모두 판매가 됐지만 다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소이다. 다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잠시만 기다리시오.”
다완이라는 말에 일본 상인들은 정신이 번쩍 드는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있던 탁자를 바라보았고 포르투갈 상인들은 관심이 없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직접 상자를 열어 상자에서 다완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고 일본 상인들은 이번에도 다완에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판매하는 방법은 이번에도 동일하오. 구매를 원하는 분은 가격을 부르시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인들은 가격을 부르며 다완을 구매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나는 상인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부르는 것을 보며 기쁘다기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찻잔 판매도 이윤이 많이 남는 장사인데 아쉽게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이야.’
한국에서 역사를 공부했을 때의 기억으로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던 조선에서 만든 다완의 인기가 시들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일본에 다완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분명해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에서 만든 찻잔의 인기가 일본에서 떨어지는 것은 기억나는데…… 왜 인기가 떨어졌는지 그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단 말이야. 일본에서 다완을 제작하는 데 성공해서 그렇다는 설도 있었던 것 같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영주와 귀족들이 사치를 부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다완의 수입을 금지시켰다는 설도 있었던 것 같고. 이유를 알면 다완을 계속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텐데…….’
지난달의 히라도에서 자기와 다완을 판매하면서 판매 가격에 나는 많이 놀랐다.
첫째는 예상했던 것 이상의 높은 가격에 자기와 다완이 판매된 것에 놀랐고 둘째는 다완의 판매 가격이 자기 가격보다 낮지 않았던 것에 놀랐다.
다완이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선의 도자기와 같은 가격에 판매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다완의 가치에 놀랐고 다완을 계속 판매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이번에 찻잔을 넉넉히 준비해 왔으니 이번에도 꽤 많이 벌어갈 것 같다.’
일본에 다완을 판매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도자기와는 달리 다완은 지난번에 가져왔던 수량의 2배를 가져왔고 다완의 판매로도 큰 수익을 올릴 것을 기대했다.
* * *
“장군께서 가져오신 자기와 다완을 구매하기 위해 상인들 간에 싸움까지 벌어졌다고 들었소. 장군 축하드리오.”
“다카노부 공께서 빈틈없이 준비해 주신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준비해간 자기와 다완을 모두 판매하고 현장에서 판매대금을 정산한 나는 판매대금을 받은 금화와 은화를 계산하고는 병사들을 갤리온으로 돌려보낸 후 다카노부의 저택으로 찾아갔다.
다카노부에게 지불할 수수료를 계산하고 어제 다하지 못한 대화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장군께서 가져오신 자기는 정말 보물이오. 상인이 보물을 알아본 것이지. 어떻게 이런 보물들을 구하셨는지 모르겠소.”
다카노부는 내가 선물로 건넨 자기가 마음에 드는 듯 청자를 쓰다듬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지난달에 히라도에서 거래를 마치고 좌수영으로 돌아갔던 나는 다카노부에게 아무런 선물을 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거래를 시작한 것에 대한 예물을 겸해서 선물로 청자와 백자를 하나씩 준비해 왔다.
어제 다카노부의 저택에 왔을 때 가져왔어야 하는 선물이었지만 어제는 항해로 지쳐 있었고 물품의 구매를 부탁할 일을 생각하느라 선물을 준비한 것을 깜빡 잊고는 빈손으로 왔던 것이다.
자기와 다완의 판매를 마치고 다시 다카노부의 저택을 찾아온 내가 선물로 준비한 청자와 백자를 꺼내 놓자 다카노부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카노부 공께 선물로 드린 자기들이야말로 진짜 보물입니다. 조선에서도 제일가는 실력을 자랑하는 도공이 정성을 다해 만든 자기이니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보물입니다. 어제 찾아뵈었을 때 드려야 했지만 저도 심신이 피곤해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실례라니. 아니오. 이런 보물을 주셨으니 내가 장군께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 실례라니 당치도 않소.”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나는 준비해간 상자를 다카노부 앞에 내밀었다.
“오늘 판매한 자기와 다완의 판매대금의 7푼(分) 5리(釐)입니다. 약속한 수수료입니다.”
다카노부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상자를 내려놓으시오. 장군. 내가 들기에는 너무 무거워 보이니 직접 받지 못하는 무례를 용서하시오.”
“아닙니다. 무례라니요.”
“좋은 선물도 받았고 장군께서 이렇게 신용을 지켜주시니 이 늙은이도 장군께 선물을 드려야겠소.”
선물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선물을 주신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무엇입니까?”
다카노부는 나를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장군께서 고민하는 것들이 해결된다면 충분한 선물이 되시겠소?”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대답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하늘이 장군을 돕는 것 같소이다. 유황은 물론 철포를 만들 장인까지. 장군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귀인이 이곳에 있소이다. 만나보시겠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언제라도 좋습니다. 다카노부 공.”
“역시 장군은 시원해서 좋소이다.”
다카노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다카노부를 따라 일어났다.
타카노부와의 대화를 통역하던 사화동이 나를 따라오려고 하자 다카노부는 나에게 말했다.
“장군의 부하는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소. 많은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는 일이니 말이오. 통역이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적당한 사람을 준비해 두었으니.”
다카노부의 말을 들은 사화동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나는 다카노부의 말대로 사화동에게 기다릴 것을 명령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장군의 부하에게 식사를 대접하도록 하겠소. 곧 하녀들이 안내를 할 것이오.”
역시 손님 접대에 빈틈이 없는 다카노부였다.
사화동을 남겨두고 다카노부의 뒤를 따라 저택 안쪽으로 들어갔다. 한쪽 구석에 있는 방 앞으로 가니 방문 앞에는 곱게 단장한 다가와 헤이메가 서 있었다.
헤이메는 나를 보더니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고 다카노부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 헤이메가 장군을 도울 것이오. 장군께서도 헤이메가 편하실 것 같아 준비했소이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카노부 공.”
나와 헤이메를 보며 가볍게 웃은 다카노부는 헤이메에게 명했다.
“방문을 열어라.”
히에메가 공손히 방문을 열자 다카노부가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다카노부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고 중년의 왜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왜인은 다카노부가 방에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카노부는 왜인에게 다시 앉을 것을 권했다.
다카노부와 내가 방 안에 앉자 하녀들이 다과상을 들고 와 다카노부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다과상이 놓이자 다카노부는 왜인에게 말했다.
“어제 말씀드린 이 장군이오. 조선에서 가장 정예의 수군을 거느리고 계신 장군이오.”
내 신분을 들은 중년의 왜인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이 장군. 저는 시마즈 도시히사(島津歳久)라 하오.”
‘뭐? 시마즈?’
나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시마즈 도시히사라고 하자 놀란 표정으로 다카노부를 바라보았다.
“시마즈라고 하시면?”
“역시 장군은 알고 계실 줄 알았소. 그렇소. 규슈 남부의 사쓰마, 오스미, 2개국과 휴가국의 일부를 통치하는 시마즈 가문의 무사, 아니, 중신이오.”
다카노부는 중신이라고 했지만 시마즈 도시히사라는 보통 중신이 아니었다.
시마즈 가문의 당주 시마즈 요시히사의 친동생이었고, 시마즈 가문이 규슈 통일을 앞두고 있었을 때 요시히사의 참모로서 작전을 세웠을 정도로 지모가 뛰어났으며, 직접 군사를 지휘해 전공을 세웠을 정도로 용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