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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04화 (104/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04화

시마즈 도시히사

규슈 최남단인 사쓰마가 기반은 시마즈 가문은 16대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사를 비롯해 그의 동생인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 도시히사, 시마즈 이에히사까지.

뛰어난 지략과 용맹을 자랑하는 4형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인접한 오스미를 점령하고 뒤이어 휴가까지 점령하는 데 성공해 규슈 지역 남부 3개 영지를 통치하게 된다.

뒤이어 휴가를 침공한 오토모 소린의 4만 대군에 맞서서 2만의 군사로 휴가를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역습을 가해 오토모 소린의 대군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 시마즈 요시히사는 남부 3개 영지를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북진해 규슈 중부 지역을 점령했다.

규슈 중부 지역의 영주들이 시마즈군의 전투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항복하자 규슈 북부의 패자 오토모 소린은 홀로 시마즈의 북진을 저지하게 되고 결국 시마즈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시마즈가 규슈 전 지역을 통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히데요시는 시마즈 요시히사에게 서신을 보내 오토모 소린과 휴전을 하고 군사를 철수시킬 것을 요청했지만, 오토모 소린은 이미 시마즈 군의 진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성에서 농성전을 벌이는 상황이었으니.

시마즈가 규슈 전체를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시마즈 요시히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청을 거절하고 오토모 소린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히데요시는 자신의 직속군은 물론 자신에게 우호적인 영주들의 군사까지 동원해 20만 대군을 일으켜 규슈로 출병했다.

무장들에서부터 병사들까지 사납고 용맹하기로 유명한 시마즈 군이었지만 20만이 넘는 대군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시마즈군의 공격을 받던 규슈 북부의 영지들이 히데요시군의 진군으로 구원을 받자 시마즈에게 항복했던 규슈 중부의 영주들은 히데요시의 군대가 진군해 오자 곧바로 시마즈를 배신하고 히데요시에게 항복했다.

결국 히데요시의 군대가 규슈 남부까지 진군해 오자 시마즈 요시히사는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고 만다.

‘시마즈 가문이라면 지금 상황이 좋지 못하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0만 대군을 출병시켜 규슈 북부까지 진군했던 시마즈군을 격퇴시키고 시마즈가의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사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 1587년 5월이니…… 시마즈가 히데요시에게 항복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겠구나.’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를 보며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고 시마즈 도시히사 역시 나와 마쓰라 다카노부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자 마쓰라 다카노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군께서는 유황과 구리, 철과 함께 철포를 제작할 장인들을 구하셨습니다.”

다카노부가 말을 마친 후 나를 바라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유황, 구리, 철은 이미 다카노부 공께서 구해주실 수 있다고 하셨고 철포는 제작할 수 있는 장인들을 구하는 것은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장군께서 필요로 하시는 장인들은 시마즈 도시히사가 장군에게 구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장인뿐만 아니라 유황도 구해드릴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다카노부가 시마즈 도시히사를 바라보자 도시히사도 다카노부와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일본에서 철포를 처음 제작한 곳이 바로 사쓰마의 다네가 섬(種子島)이오. 우리 시마즈에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장인들이 여럿 있고 그들이 제작한 철포는 전국의 영주들이 구입할 정도로 유명하오. 유황 역시 장군이 원하시는 만큼 구해드릴 수 있소이다.”

시마즈 도시히사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마쓰라 다카노부가 나에게 시마즈 도시히사를 소개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거 잘하면 화승총 제작 기술은 물론이고 시마즈 가문까지 아군으로 만들 수 있겠는데.’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시마즈 가문에게도 출병을 명령했고, 시마즈 도시히사의 형인 시마즈 요시히로가 약 1만의 군사로 조선에 출병했다.

시마즈 요시히로가 지휘하는 시마즈군은 울산성 전투에서 조명연합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조선에서 전투만 벌인 것이 아니라 조선의 도공을 일본으로 잡아가는 일에 앞장섰고 그 덕분에 일본에서 도자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임진왜란과 도자기를 생각하면 시마즈는 반가운 상대가 아니었지만 아직 임진왜란은 발발하지 않았고 규슈 점령을 눈앞에 두고 히데요시의 출병으로 규슈 중부를 빼앗긴 시마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지. 지금의 시마즈라면 손을 잡을 수 있을지도.’

생각 끝에 마음을 굳힌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직접 뵌 것은 처음이지만 당주이신 시마즈 요시히사 님과 형제분이신 요시히로 님 그리고 도시히사 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지략이 뛰어나실 뿐만 아니라 검술 실력도 그에 못지않으시고 용맹하기까지 하여 천하에 명성이 자자하신 도시히사 님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쁘기가 한량없습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자 시마즈 도시히사도 기쁜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저야말로 단 며칠 만에 왜구들을 소탕하고 고토열도를 평정하신 이 장군의 명성을 듣고 오랜 기간 흠모해 왔소이다. 장군을 직접 뵙고 놀랐소이다. 수십 척의 전선과 일만의 군사를 호령하시는 장군이 이렇게 젊고 미남이실 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장군을 뵙게 되어 정말 기쁘오.”

내가 시마즈 도시히사와 인사말을 주고받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잘됐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장군과 도시히사는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소이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시작되니 아주 보기 좋소이다.”

다카노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마즈에서도 필요한 것이 있으니 이 자리에 도시히사 같은 거물이 나온 것이겠지. 괜히 빙빙 돌려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카노부 공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유황과 철포를 제작할 장인들이 필요합니다. 도시히사 님께서는 유황과 장인들은 구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도시히사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곧 대답했다.

“물론이오. 이 장군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구해드릴 수 있소.”

“저는 우선 유황 500근이 필요합니다. 한차례가 아닌 매달 500근씩 구매하기를 원합니다.”

500근이라는 수량 때문인지 아니면 구매하기 원한다는 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도시히사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밝아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문제없소. 500근이 적은 양은 아니지만 한 달에 500근을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오.”

“대금은 어떤 것으로 지불하는 것이 좋으시겠습니까? 은으로 지불하는 방법도 있고 원하시면 조선에서 제작한 자기와 다완으로 지불해도 좋습니다.”

유황의 구매대금을 지불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도시히사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조선의 자기와 다완의 명성은 사쓰마에서도 듣고 있었소. 절반은 은으로 절반은 자기와 다완으로 지불해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도시히사의 반응을 보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돈이구나. 시마즈 가문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이 확실해. 현재 시대의 사쓰마 지역은 규슈에서도 척박한 지역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마즈는 수만 명의 군사를 동원해 규슈 전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으니 전쟁 기간 동안 소비한 군비만 해도 엄청난 거야. 거기에 전쟁에서는 지고 영지까지 줄어들었으니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인 것이 확실해.’

“좋습니다. 구매대금의 절반은 은으로 드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만한 가격의 자기와 다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철포를 제작하는 장인들도 다음 달까지 구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철포를 제작할 수 있는 장인들은 일본에서도 고급인력일 텐데 도시히사는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가능한 일이오. 장인들은 몇 명이나 원하시오?”

도시히사의 대답을 들은 나는 욕심을 냈다.

“철포를 제작하는 작업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포를 제작하는 모든 공정을 알고 있는 장인들로 10명을 원합니다. 장인들을 보내주실 때 그들의 처자식들도 함께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면 장인들도 일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도시히사도 고민하는 눈치였다. 장인들을 10명이나 보내달라고 했고 더구나 가족들과 함께 보내달라고 했으니 나에게 보낸 장인들이 다시 사쓰마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는 걸 짐작한 듯싶었다.

“실력이 뛰어난 장인으로 10명이나 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오.”

도시히사가 안 된다고 말하지 않자 나는 쐐기를 박을 생각으로 말했다.

“은으로 300냥을 지불하겠습니다. 철포를 제작할 수 있는 장인 10명과 그들의 처자식들까지 모두 보내주시면 은 300냥으로 도시히사 님께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은 300냥이라는 말에 도시히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황의 가격은 20근에 은 1냥은 어떠십니까? 유황 100근에 은 5냥을 드리겠습니다.”

장인들을 보내주는 대가로 은 300냥을 제안하고 유황의 가격도 후하게 지불하겠다고 하자. 도시히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역시 이 장군은 듣던 대로 배포가 대단하시오. 좋소. 그 정도 조건이면 어렵지 않을 것이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도시히사 님과 좋은 친구로 남고 싶습니다.”

“나 역시 이 장군 같은 호걸을 만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소.”

도시히사의 입장에서는 아니 시마즈에서는 화승총을 만들 수 있는 장인들이 한두 명이 아닐 테니. 그들 중 10명을 골라 보내고 은 300냥을 벌 수 있다면 남는 장사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은 300냥이 작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화승총을 제작할 수 있는 장인들을 데려오는 대가로 생각한다면 나에게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다.

서로의 이해가 일치했으니 가격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구체적인 거래 방법에 대해서도 일사천리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다음 달에 히라도로 유황 500근을 가져오도록 하겠소. 철포 장인들 역시 다음 달에 데려올 것이고 이 장군이 원하는 대로 장인들의 처자식들 역시 함께 데려올 것이오.”

“유황에 대한 대금으로 은 25냥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인들과 장인들의 처자식을 확인하는 즉시 은 300냥을 드릴 것입니다. 대금은 도시히사 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절반은 은으로 절반은 자기와 다완으로 지불할 것입니다.”

이렇게 거래가 진행되고 있었을 때 다카노부가 나섰다.

“이 장군 실례하겠소. 미안하지만 도시히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눠야겠으니 양해해 주시오.”

“그렇게 하시죠. 괜찮습니다.”

도시히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다카노부에게 다가갔고 잠시 대화를 나누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장군 미안하오. 내가 세상 물정을 몰랐소. 유황의 대금은 전부 은으로 주시오. 장인들을 보내는 대금의 절반만 자기로 받겠소.”

다카노부와 대화를 마친 도시히사는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내게 말했다.

“그렇게 하시죠. 저는 상관없습니다.”

‘다카노부가 히라도에서 판매되는 자기와 다완의 가격을 말해줬나 보군. 시마즈의 입장에서는 당장 현금이 필요할 테니. 자기와 다완보다는 은으로 받는 것이 편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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