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06화
울릉도는 중간 기착지
“아주 좋은 생각이군. 울릉도에 장정들이 정착한다면 울릉도를 한나라(동해도)[북해도]과 조나라(조선)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로 사용할 수도 있으니 말이오.”
정여립이 내 의견에 찬성하자 나는 정여립에게 울릉도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이미 신세를 많이 졌지만, 이번에도 죽도 선생의 신세를 지려고 합니다. 저의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울릉도에 정착할 장정들과 그들이 가져갈 연장과 식량을 준비하라는 말이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소. 좌수사 영감. 나 정여립이 만석꾼이란 사실을 잊으셨소.”
정여립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단순히 장정들과 식량을 준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울릉도로 장정들과 식량을 보내는 과정도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정여립에게 직접 울릉도로 장정들과 물품들을 보내라는 말은 정여립의 신분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무례한 부탁이었지만 정여립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좌수사 영감은 이 정여립을 두고두고 부려먹을 생각이시구려. 직접 일을 살피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말이오.”
역시 정여립은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았다. 동해도를(북해도) 점령한 이후에도 최소한 2년은 조선으로부터 식량과 여러 가지 물품들을 보급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정여립에게 식량과 물품들의 보급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울릉도로 장정들과 연장 그리고 식량을 보내면서 정여립이 쌓은 경험은 나중에 동해도로 식량과 보급품을 수송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죽도 선생 외에는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없어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직접 울릉도에 가서 확인하고 싶지만 좌수영을 비울 수 없으니 말입니다.”
내가 직접 나서고 짚을 정로도 중요한 일이라는 말에 정여립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지. 유람을 다녀온다고 생각하고 내가 직접 강릉으로 가서 울릉도로 장정들을 보내고 울릉도로 보낼 도구들과 식량도 확인하지.”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부탁하기는 했지만 울릉도에 장정들을 보내는 것은 정여립이 직접 나서기에는 하찮은 일이었다.
나는 정여립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정여립은 내 인사를 받은 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좌수사 영감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울릉도가 앞으로 한나라와 조나라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소홀히 할 수 없는 곳인데. 나는 단순히 노비들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소. 노비들을 보내면 자기들이 살 집을 짓고 자기들이 물 마실 우물을 파는 일은 잘하겠지만 지켜보는 상전이 없으니 집 짓고 우물 파는 일이 끝나면 그 후에는 놀기 바쁠 것이오. 먹을 식량도 있겠다, 배를 두드려가면서 밥 먹고 낮잠을 자든지 물가에서 고기나 잡고 놀았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소.”
정여립의 말을 들은 나는 왠지 일이 커질 것 같은 불안한 느낌에 정여립에게 물었다.
“그럼 누구를 보내려고 하십니까?”
“젊고 건장한 노비 40명과 함께 대동계원 중에서 무술 실력이 뛰어나고 힘센 장정으로 10명을 울릉도에 보낼 것이오. 대동계원들이 따라가면 노비들도 꾀를 부르지 못할 것이고 마을을 만드는 일이 끝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살고 있는 마을을 제압해 울릉도를 완전히 장악하라고 명하겠소. 울릉도가 장악하는 것이 한나라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 쓰기에도 편리할 것이오.”
정여립의 말을 들은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에 놀랐지만 정여립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 반대할 수는 없었다.
‘확실히 울릉도에 거점을 만드는 것보다는…… 완전히 울릉도를 장악하는 것이 울릉도를 사용하기에는 편리하지. 군사들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대동계원들과 노비만을 보내서 장악하겠다니 내가 반대할 이유도 없고.’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죽도 선생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앞으로도 많이 지도해 주십시오. 죽도 선생.”
내가 정여립의 의견에 찬성하자 정여립은 기뻐하며 말했다.
“내 부족한 재주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에 도움이 된다니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오. 울릉도를 장악하는 일은 비가 그치는 대로 내가 직접 강릉으로 가서 진행할 것이오.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에는 내 아들 옥남이를 집에 남겨둘 것이니 필요한 것은 옥남이에게 서신을 보내면 될 것이오. 좌수사와 좌수영에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라고 옥남이에게 일러두겠소.”
“정말 감사합니다. 죽도 선생.”
정여립이 이 정도까지 나서는 것은 정여립의 신분과 위치를 생각했을 때 정말 파격적인 지원이었다.
음력으로 6월 중순이 되면서 장마가 시작돼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정여립은 내 서신을 받고 한달음에 좌수영까지 달려왔고 내 부탁을 받아들여 직접 강릉으로 가겠다고 했으니…… 정여립의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지원이었다.
“감사합니다. 죽도 선생 그리고 염치없지만, 부탁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부탁이 더 있다는 말에 천하의 정여립도 이번에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무슨 부탁이오. 말씀해 보시오. 좌수사 영감.”
“죽도 선생, 주석을 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주석을 구해달라는 말에 정여립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주석은 얼마나 필요하시오?”
“2,000근(1,200kg)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정여립에게 주석을 부탁한 것은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조선에서 총통은 청동으로 제조하고 청동은 구리에 주석을 섞어서 만든다. 히라도에서 구리를 구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만 주석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여립이 보내준 장인에게 구리를 가져다주며 총통의 제작을 부탁하자 윤노인(총통장인)은 주석이 있어야 청동을 만들고 청동이 있어야 총통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
다행히 반평생 총통을 만드는 일로 보낸 윤노인은 구리와 주석만 있으면 총통을 제작하는데 적합한 청동을 자신이 직접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2,000근이라면 적지 않은 양인데…….”
주석은 조선에서 채굴되지 않는 금속이다. 전량을 명나라에서 수입해야 하기에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가격도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던 정여립은 몇 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주석을 구할 곳을 생각했는지 대답했다.
“유기(놋그릇)를 만드는 유기장이들이 구리와 주석을 섞어 유기를 만들고 있으니 유기장이들을 통하면 주석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한 번에 2,000근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구하는 대로 좌수사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소.”
정여립 정도의 인물이 주석의 사용처를 짐작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모든 것을 짐작하고도 주석을 구해 주겠다고 하는 정여립에게 나는 엎드려 절을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고 정여립은 절을 하는 나를 말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 * *
히라도에서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장마로 좌수영과 돌산도에는 며칠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동안 항왜들과 농부들은 논과 밭에 물길을 내기 위해 삽과 괭이를 들고 바쁘게 움직였지만 물길은 내고 난 후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대부분의 군사들과 장정들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군사 훈련도 비로 중지됐고 염전도 비로 인해서 저수지에 물이 차자 소금을 생산하지 못하게 됐다.
범선을 제작하던 목수들도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일손을 멈추고 갤리온과 관선의 구조를 참고해 제작한 범선의 모형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며 범선을 설계했다.
군사들과 항왜들 역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동안 방안에서 새끼줄을 꼬거나 멍석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대장간이었다.
캉- 캉- 캉- 캉- 캉-
태구련은 쇠망치로 두들기던 창날을 무쇠 집게로 들어 천천히 살펴보았다.
창끝은 뾰족하기 그지없었고 붉게 달아오른 창날은 마치는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불에 달궈진 창날에서 나오는 열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천천히 창날을 살피던 태구련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창날을 그대로 물통에 담갔다.
치이익-
물통에서 연기가 나오며 뜨겁게 달궈진 창날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태구련이 두들기던 창날을 창대에 장착하면 또 하나의 창이 완성되는 것이다.
비가 내리는 장마였지만 대장간에서는 연기와 열기를 내뿜었고 대장장이들은 쉬지 않고 망치를 두들기며 창과 검을 만들었다.
장마 기간에는 나도 대부분의 시간을 좌수영 안에서 보냈다.
비가 내리는데 함부로 바다에 나갈 수도 없었고 군사들이 감기에 걸리는 것을 염려해 훈련시키는 것도 어려웠으니 그동안 밀린 공무를 보고 틈나는 대로 사화동을 불러 일본어를 배웠다.
6월 말이 가까운 날 장마가 끝나려는지 평소보다 비가 적게 내리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던 그때 정언신 대감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했다.
‘정언신 대감이 서신을 보내다니 무슨 일이지?’
서신을 펼쳐보니 정언신 대감이 보낸 서신은 공무로 보낸 것이 아닌 사적인 서신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있으라고 보낸 서신인 모양이구나.’
정언신 대감이 보낸 서신에는 평안도 안주에 돌림병이 돌고 기근이 들어 백성들 가운데 죽은 사람이 많아 이원익 대감이 안주목사로 부임해 안주의 백성들을 구휼했다는 소식과 함께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황해도에도 기근에 돌림병이 돌아 죽은 사람들이 많다고?’
이 시기에 조선에 가뭄이 들고 기근이 드는 지역이 많은 것은 말고 있었다. 심지어 곡창지대인 전라도에도 가뭄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병들고 굶어서 죽은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자. 무엇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내가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는 구하고 지켜주려고 했는데…… 좌수영과 항왜들은 반드시 지켜주려고 했는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외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이곳 전라도가 곡창지대이고, 정여립의 지원이 있어서 나는 물론 항왜들도 먹는 것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조선에서 병들어서 죽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수천 명 단위라니…… 이걸 그냥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생각에 생각을 해봤지만 이런 사실을 외면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가 전면에 나서서 무엇을 할 수도 없었다.
‘도자기와 찻잔을 팔아서 번 돈이 있지만, 대부분 은화와 금이니 그것을 처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일본에서 주조한 은화를 처분해서 쌀을 구하려고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일본에 도자기를 팔았다는 사실이 발각될 수도 있으니 안 될 일이지.’
설사 은화로 쌀을 구해서 사람들을 구휼한다면 당장 효과는 있겠지만 가뭄이 들거나 기근이 들 때마다 매번 쌀을 나눠줄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고민 끝에 나는 번뜩 구황작물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