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07화
구황작물
‘그래,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구황작물이 있었어! 감자, 고구마, 옥수수, 호박. 구황작물은 벼농사가 안 되는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밥 대신 먹을 수 있지. 극단적으로 감자와 고구마만 먹어도 사람은 생존할 수 있어.’
기근에 대한 해결책으로 구황작물을 떠올린 나는 구황작물을 조선에 들여오기로 작정했다.
‘히라도에 가서 알아보자. 감자와 옥수수, 호박은 남미가 원산지니 포르투갈 상인들은 감자, 옥수수, 호박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야. 그동안은 도자기 가격이 떨어질까 봐 조금씩 팔았었는데 이번에는 안 되겠다.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으니 최대한 팔아서 돈을 모으고 히라도에서 곡식도 구매할 수 있을지 알아보자. 지금은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식민지 신세니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구황작물을 주문하자. 고구마도 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포르투갈 사람들이 고구마를 알지 모르겠네.’
* * *
장마가 끝나고 7월이 되자 나는 히라도로 갈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히라도로 가는 만큼 좌수영 우후 김시민에게 평소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했고 매달 무력시위와 왜구토벌을 명목으로 자리를 비우는 내가 의심스러울 법도 했지만 김시민은 이번에도 순순히 좌수영의 공무를 맡아 주었다.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범선을 제작 중인 목수들이 살펴볼 갤리온은 남겨두고 두 척의 갤리온이 히라도를 향해 출발했다.
이번에는 지난번 히라도에서 판매했던 자기와 다완의 2배가 넘는 양의 자기와 다완이 갤리온에 실렸고 특별히 백자를 제작하는 도공들에게 주문해 제작한 백자 접시와 유럽식 찻잔과 주전자도 갤리온에 실었다.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비싸게 팔기 위해 도공들에게 주문했던 찻잔세트인데 구황작물을 구할 미끼로 쓰기 위해 히라도에 가져가는 것이다.
‘백자로 된 주전자와 찻잔, 접시를 보면 포르투갈 상인들은 눈이 뒤집힐 거야. 감자와 옥수수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상으로 주겠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감자를 구해오겠지.’
마음이 급해진 나는 틈만 나면 갑판으로 올라와 속도를 높일 것을 재촉했고 이언세와 병사들은 내가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자 별일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갤리온이 히라도에 도착하자 이언세에게 갤리온의 지휘를 맡긴 나는 사화동과 호위병 5명만 거느리고 마쓰라 다카노부를 찾아갔다.
“어서 오시게. 장군.”
“안녕하셨습니다. 다카노부 공.”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셨소. 장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시오?”
인사말을 나누며 안부를 묻는 말투였지만 다카노부의 눈은 빛을 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노회한 장사꾼이다. 예정보다 며칠 일찍 왔을 뿐인데.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으니.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제가 히라도에 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히라도에 오기만 하면 큰돈을 벌어가니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나 봅니다.”
다카노부의 질문에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한 나는 다카노부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카노부 공. 지난번에 부탁드린 물품들은 준비가 되었습니까?”
“물론이오. 철과 구리는 일찌감치 준비해 놓았고 유황도 얼마 전에 도착했소. 시마즈 도시히사는 이틀 후에 도착할 예정이오. 장군이 원하던 장인들도 도시히사와 함께 올 것이오.”
“모든 것이 순조롭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역시 자기와 다완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많이 가져왔으니 구매를 원하는 상인들을 더 불러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자기와 다완을 더 가져왔다는 말에 다카노부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자기와 다완을 사고 싶어 하는 상인들은 많으니 상인들을 모으는 일은 어렵지 않소. 그래, 그래서 이번에는 얼마나 가져오셨소?”
“지난번에 가져왔던 수량의 정확히 2배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기와 다완을 많이 가져왔다고 싸게 팔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제가 가져온 자기와 다완은 다른 곳에서는 만들기 힘든 보물들입니다. 자기와 다완이 제값을 받지 못하면 차라리 깨뜨려 버리고 말지, 보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판매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싸게 팔 생각이 없다는 말을 힘줘서 강조해 말했고 다카노부는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소. 그 일은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다카노부 공.”
내가 부탁이 있다고 하자 다카노부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대답했다.
“무엇이든지 말해보시오. 장군.”
“남만인들에게 알아볼 일이 있습니다. 남만인들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자기와 다완을 판매한 후에 남만인들을 만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만인들에게 알아볼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보시오. 남만인들과 20년 이상 거래를 해왔으니 웬만한 것은 내가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남만인들에게 알아볼 용건을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다카노부의 반응에 잠시 당황했지만 구황작물을 구하는 것이 알려져도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아 나는 다카노부에게 감자, 옥수수, 호박, 고구마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 작물들은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사람이 먹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남만인들이 식민지로 삼은 대륙에 이런 작물들이 많다고 하니 구해다가 조선에 키워보려고 합니다.”
포르투갈인들이 감자와 옥수수, 호박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지 못했던 나는 종이에 감자와 옥수수, 호박을 그리며 설명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구마도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며 설명을 듣던 다카노부는 어렵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장군이 왜 저런 작물들에 관심을 가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구할 수는 있을 것 같소.”
다카노부가 너무 쉽게 대답하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다.
“예? 정말이십니까?”
“놀라셨소? 이 다카노부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오. 장군이 구하려고 하는 작물들은 이곳에 장사를 오는 남만인들에게 들어보았던 작물들이오. 이 마쓰라 다카노부가 20년이 넘도록 남만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 남만인 친구가 하나도 없을 것 같소? 히라도에 들리면 거래를 마치고 나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들이 있소이다. 물론 이야기 중에 절반은 허풍이겠지만 그 친구들에게 들은 적이 있소이다.”
구황작물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반가워서 물었다.
“그럼 언제쯤 구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침 히라도에 머물고 있는 친구가 있소이다. 그 친구에게 부탁하면 그 친구가 남만에 다녀오는 길에 구해올 수 있을 것이오. 시간은 1년 정도 걸릴 것 같소이다.”
1년이나 걸린다는 말에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보다는 쉽게 구황작물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애써 아쉬운 마음을 억눌렀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탁드린 작물들을 구해주시면 섭섭하시지 않도록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남만과 히라도를 오고 가는 세월을 10년 이상 보낸 친구니 실수할 리는 없소.”
“종자로 쓸 것이니 작물은 익히거나 말리는 일 없이 땅에서 캐낸 그대로 가져다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양을 부탁드립니다.”
“그것도 걱정할 것 없소. 잘 당부하리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장군이 말한 작물 중에서 마지막에 말한 작물은 곧 구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나는 다카노부가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다카노부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무엇을 곧 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이것 말이오. 장군이 마지막에 설명한 작물.”
다카노부가 가리키는 것을 보니 내가 고구마를 설명하면서 그린 그림이었다.
‘고구마를 구할 수 있다고? 횡재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이것은 어떻게 구하실 수 있으십니까?”
“남만인 친구들 중에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 온 친구도 있소이다. 스페인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필리핀이란 섬에 도시와 항구를 만들었고 스페인 상인들은 남만과 필리핀 그리고 일본을 오고 가며 장사를 하고 있소이다. 스페인 친구에게 이런 작물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소이다.”
기대하지 않고 있었던 고구마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필리핀이 가깝다고? 필리핀이 일본에 가까운 거리는 아닌데. 하긴 스페인과의 거리를 계산하면 필리핀이 일본에서 가까운 거리이긴 하지. 아, 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그럼 필리핀에서 그 작물을 구해주시겠습니까? 다카노부 공”
“물론이오. 필리핀에서 오는 친구도 자기를 구하기 위해 히라도에 머물고 있소. 그 친구에게 부탁해 다음 달에는 장군이 원하시는 작물을 구해놓겠소.”
고구마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던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감자 농사와 고구마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카노부 공 친구분께 한 가지 더 부탁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필리핀에서 작물을 구해오실 때 작물을 심고 키우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도 같이 데려오실 수 있는 말입니다.”
내 질문을 들은 다카노부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장군은 대단하신 분이시오. 빈틈이 없으시니 말이오. 알았소이다. 친구에게 부탁하겠소. 사람을 데려오거나 아니면 그 작물을 키우는 방법을 적어오기라도 하라고 말이오.”
“정말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구황작물을 구하는 문제가 해결되자 마음이 놓인 나는 마음 편히 앉아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말로 다카노부에게 물었다.
“다카노부 공. 이것은 궁금해서 묻는 것인데 말입니다. 히라도에서 곡식도 거래를 하십니까?”
내 질문에 다카노부는 웃으며 대답했다.
“상인이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을 사고팔지 않겠소. 물론 곡식도 사고팔지만, 곡식은 미리 주문을 하지 않으면 구하기가 어렵소. 히라도는 섬이다 보니 곡식을 구하기 어려우니 말이오.”
“미리 주문을 한다면 쌀도 구매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오. 그러나 추수 이후에 주문하시면 쌀을 미리 확보하지 못해서 가격이 높아질 것이오. 쌀을 구매하실 생각이 있으시면 추수 전에 미리 주문을 하시오. 추수 전에 인근의 농민들이나 영주들에게 쌀을 확보해 놓을 것이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내년에는 쌀이나 보리를 구매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진으로 발령이 나기 전에 동해도(북해도)를 점령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는 내년에는 동해를 점령하고 그곳으로 이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무심결에 내년에는 곡식을 구매할지도 모르겠다는 소리를 다카노부에게 한 것이다.
“알겠소이다. 쌀이든 보리이든 추수 전에만 주문을 하시면 곡식을 확보해 놓겠소이다.”
곡식을 구매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다카노부는 눈에 빛을 내며 흔쾌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