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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09화 (109/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09화

꿩 대신 봉황

“시마즈에게 충성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충성을 맹세한다면 나는 저들의 안전과 생계를 보장할 것이오.”

충성을 요구하자 혼다 고로자에몬을 비롯한 시마즈의 무장들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마즈 도시히사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을 본 도시히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외쳤다.

“시마즈 가문은 더 이상 너희를 보호할 수 없다. 히데요시는 나와 너희의 목을 요구하고 있고 너희가 시마즈를 떠나지 않으면 시마즈는 히데요시에게 계속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가 조선으로 가는 것이 너희도 살고 시마즈도 편해지는 일이니 나를 믿고 이 장군을 따르도록 하라.”

왜인들에게 외친 도시히사는 괴로워하며 내게 부탁했다.

“저들을 부탁하오. 장군. 내 수족과 같은 부하들이나 내 능력이 부족해 히데요시의 마수로부터 저들을 구할 수 없으니 장군께 부탁드리겠소.”

“저들이 나에게 충성하고 다른 마음만 먹지 않는다면 저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이오. 내 비록 저들이 시마즈에서 대우받았던 만큼 대우해 주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충성한 만큼은 충분히 보상할 것이오.”

“고맙소. 이 장군. 이 도시히사, 장군의 자비를 잊지 않을 것이오.”

혼다 고로자에몬을 비롯한 시마즈의 무장들을 받아들일 것을 결정한 나는 도시히사에게 물었다.

“저들 중에 장인들은 몇 명이오?”

“철포를 만드는 장인이 8명이고 무장들이 16명이오. 여인들과 아이들은 장인과 무사들의 가족들이니 전부 106명이오.”

철포 장인 10명을 약속했었는데 장인의 수가 8명에 불과하다고 하니 나는 손해를 본 기분이 들었다.

“약속한 장인의 수가 10명이었으니 장인의 수가 약속보다 적은 수이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무장들까지 조선으로 데려가게 되었으니 장인들을 더 보내주시오. 장인들을 보내주면 약속했던 사례를 지불하겠소.”

“이 장군의 뜻대로 장인들은 더 보내주겠소. 그리고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약속했던 은은 지금 주실 수 없겠소?”

도시히사의 대답에 나는 놀랐다.

‘전쟁이 끝난 후 영지가 줄어들어 시마즈가 재정적으로 어려웠다는 기록이 있었지…… 시마즈가 한참 어려운 시기인가 보구나. 자존심 센 도시히사가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을 보니.’

평소 같았으면 손해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도시히사의 부탁을 거절했겠지만, 이토 겐타로에게 인심을 쓰고 뜻하지 않은 귀중한 정보를 얻은 경험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도시히사에게 인심을 쓰기로 했다.

“좋소이다. 약속대로 은 300냥(180kg)을 드리겠소. 대신 철포 장인을 10명 더 보내주시오. 그리고 목수와 대장장이들도 각각 10명씩 가족들과 함께 보내주시오. 물론 보답은 하겠소. 은 100냥을 더 드리겠소이다.”

은 100냥이 적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철포 장인 10명과 가족들을 보내주는 대가로 은 300냥을 제시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에 제시하는 액수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액수였다.

그러나 도시히사는 순순히 내 요구에 응했다.

“오늘 일은 이 장군께 미안하게 되었소. 한 달 안에 장인들을 보내드리리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한 가지 부탁을 더 드려도 되겠소?”

“혹시 조선으로 피신해야 하는 무장들이 더 있으시오?”

내 질문에 도시히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이오?”

“지난 전쟁 당시 히데요시군을 상대로 활약한 무장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소. 전부 24명 정도 되오.”

전국시대 일본에서도 용맹하기로 유명한 시마즈의 무장들을 이미 16명이나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24명을 더 받아들이게 된 나는 속으로는 좋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곧 북해도를 정벌해야 하는데 시마즈의 무장을 40명이나 확보하다니! 이들에게 항왜들의 군사 훈련을 맡기고 북해도를 공격할 때 선봉으로 투입하자.’

나는 애써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들도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내 명령을 따른다면 보호해 주겠소. 시마즈에서 대우받았던 만큼 대접해 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밥은 굶지 않을 것이오.”

“고맙소. 장인들을 보낼 때 무장들도 함께 보내겠소. 이 도시히사 오늘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무장들도 장인들처럼 가족들과 함께 보내셔야 하오.”

“물론이오. 이장군.”

* * *

이렇게 도시히사와 합의한 나는 다음에는 히라도 대신 후쿠에 섬 북쪽의 무인도로 장인들과 무장들을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시마즈의 장인들과 무장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마쓰라 다카노부가 알아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시히사에게 은을 넘겨준 후 왜인들을 갤리온에 탑승시킨 나는 그대로 히라도를 출발해 좌수영으로 돌아왔다.

갤리온이 히라도를 출발해 바다로 나오자 장인으로 위장하고 있고 시마즈의 무장들이 내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다.

“신분을 속여서 죄송합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무사의 수치이나 주인이신 시마즈 도시히사 님의 명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혼다 고로자에몬이 무장들을 대표해 내게 자신들의 사정을 말했다.

“도시히사 공 앞에서 약속한 대로 나에게 충성하겠느냐?”

“이 장군을 새로운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장군. 주인에서 짐이 된 못난 저희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혼다 고로자에몬은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혼다 고로자에몬과 무장들의 태도에 나는 감격했다.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시마즈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에게 짐이 됐다고 생각하다니…… 과연 시마즈의 무장들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이 끝난 후 히데요시는 시마즈 가문의 분열을 노렸다.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사에게 시마즈 가문의 거점인 사쓰마의 통치를 인정하고 요시히사의 동생인 시마즈 요시히로를 오스미의 영주에 임명한 후, 요시히로의 아들이자 요시히사의 사위인 시마즈 히사야스에게 휴가 모로카타군을 영지로 주었다.

이렇게 사쓰마와 오스미 2개 지역과 휴가의 1개 군이 시마즈의 영지가 되었고 히데요시에게 항복하면서 출가한 요시히사를 대신해 시마즈 요시히로가 시마즈가의 당주가 되었지만, 시마즈가는 히데요시의 생각대로 분열되지 않았다.

시마즈 요시히사가 당주에서 물러났지만 시마즈의 가신들은 여전히 요시히사의 명령을 따랐고 요시히사와 요시히로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요시히사는 히데요시의 요구에 핑계를 대거나 시간을 끌며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 방법으로 시마즈 가문의 자존심을 세우며 가신들을 결속시킨 반면 요시히로는 히데요시의 요구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면서 히데요시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런 시마즈의 형편 탓에 시마즈의 실질적인 당주는 시마즈 요시히사였지만 임진왜란 당시 히데요시의 출병 요청에 따라 군사를 이끌고 조선에 상륙한 것은 시마즈 요시히로였고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에 편으로 출병한 것도 요시히로였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시마즈가 가담한 서군의 패배로 끝났지만 시마즈의 군사들은 약 1,600명의 군사로 수만 명에 달하는 적군에게 포위당해 퇴로까지 봉쇄된 상황에서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수밖에 없는 철수작전을 벌인다.

바로 적군이 있는 방향으로 철수한 것이다.

전황이 서군에게 불리해지고 동군에게 퇴각로까지 봉쇄되자 시마즈의 군사들은 요시히로를 탈출시키기 위해 동군을 향해 돌격한 후 그야말로 적진을 뚫고 전장을 벗어나 시마즈 요시히로를 무사히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마즈 군이 포위망을 뚫기 위해 상대한 적군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천왕인 혼다 타다카츠와 이이 나오마사의 군사들이었다는 설도 있으니.

1,600명의 군사로 이에야스의 군대 중에서도 정예군인 혼다 타다카츠와 이이 나오마사의 군사들을 상대로 싸워서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요시히로는 무사히 전장을 탈출해 시마즈의 영지로 돌아갔지만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시마즈군은 100이 채 안 되는 소수였다고 한다.

‘과연 주군을 구출하기 위해 수만의 대군 속으로 뛰어든 시마즈의 무장들답다. 하나같이 용맹스럽고 충직하구나.’

나는 시마즈 무장들의 충성심과 용맹이 탐났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충성한다면 너희에게도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 나는 부하들의 충성에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이니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내 말이 끝나자 혼다 고로자에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군. 좋은 기회라고 하시면?”

“너희 같은 용맹한 무장들을 내가 그대로 썩힐 것 같으냐. 무장은 전장에서 꽃을 피우는 법이니 너희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줄 것이다.”

전장으로 나간다는 말에 혼다 고로자에몬을 비롯한 무장들은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국시대 무장들에게 전쟁터는 직장이었고 전투는 상을 받거나 승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국시대 일본의 무장들은 전쟁에서의 공로에 따라 지위가 올라갔고 전장에서 전공을 세워 영지를 하사받아 영주가 되는 것이 모든 무장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기회만 주신다면 불 속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 것입니다. 주군.”

혼다 고로자에몬과 무장들은 전장으로 보내달라고 외쳤고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화승총을 제작할 장인들을 구하려고 했었는데 이런 무장들을 얻게 되다니. 꿩을 잡으러 왔다가 봉황을 얻은 셈이구나.’

나는 무장들로 인해 좌수영으로 돌아오는 내내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었다.

* * *

히라도에서 좌수영으로 돌아오자 나는 좌수군의 모든 장수를 소집했다.

“좌수군 군사들의 병장기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있는 사실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병장기의 교체가 끝나는 대로 낡은 전선과 오래된 총통 역시 새것으로 교체할 것이니. 각 진의 장수들과 고을의 수령들은 각자 교체해야 할 전선과 총통의 수량을 보름 안에 보고하도록 하라.”

전선과 총통을 교체한다는 말에 장수들은 놀란 기색을 보였다.

“전선을 건조하고 총통을 제작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전선과 총통을 제작하는 비용은 어떻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좌수영의 공무를 맡았던 좌수영 우후 김시민이 비용 문제를 물었다.

“총통을 교체하는 것은 큰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다. 오래되고 낡은 총통을 녹여서 다시 만들 것이니 총통을 제작하는 장인들의 품삯 외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다. 장인들 외에도 좌수군의 병사들 중에서 대장간 일을 할 줄 아는 자들도 동원할 것이니 따로 노비나 백성들을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선을 건조할 목재 역시 이미 준비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전란(정해왜변) 이전부터 전선을 건조하기 위해 좌수영에서 벌목해 말려놓은 목재들이 있으니 그 목재들을 사용할 것이고, 전선을 건조할 장인들 역시 좌수영에 이미 도착해 있다. 장인들과 좌수영의 군사들로 전선을 건조할 것이니 따로 큰 비용이 들 일은 없을 것이고 장인들의 품삯과 목재 외에 다른 재료들을 소금으로 값을 치르고 구할 것이다.”

소금으로 값을 치른다는 말에 김시민은 물론 다른 장수들도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장마 기간 동안 돌산도에서는 소금을 생산하지 못했지만 장마가 시작되기 이전에 생산된 소금들은 돌산도의 창고에 쌓여 있었고 비가 그친 후에는 염전에서 다시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다.

전선과 총통을 제작할 장인들이 이미 준비되었고 좌수영의 군사들을 동원한다고 하자 좌수영의 장수들은 큰 비용이 들지 않고도 전선과 총통을 교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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