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10화
전선과 무기
좌수영의 장수들이 전선과 총통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데 동의하자 나는 장수들에게 전선과 총통 제작에 필요한 업무를 맡겼다.
우선 작업을 총감독하는 일은 내가 맡기로 하고 그 외에 세부적인 업무들은 5관(전라좌수영 예하의 5개 수군진 - 사도진, 방답진, 여도진, 녹도진, 발포진)의 장수들과 5포(전라좌수영 관할의 5개 고을 - 순천부, 낙안군, 보성군, 흥양현, 광양현)의 수령들에게 나눠서 맡긴 것이다.
“우선 각 진의 장수들과 고을의 수령들은 각자 교체해야 할 전선과 총통의 수량을 파악하여 보고하도록 하고 더불어 각 진과 고을의 장병들이 군적에 맞게 복무하고 있는지. 각 진과 고을의 병장기와 화약은 장부에 맞게 준비되어 있는 보고해야 할 것이다.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의 수가 적은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본관이 차례대로 각 진과 고을을 일일이 방문해서라도 군적을 확인할 것이니 군적대로 군사들이 복무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확인하도록 하라. 다만 병사들의 생계와 건강 등의 이유로 대리인이 대신 복무하는 것은 인정하도록 하겠다.”
조선시대에 군역을 대신 복무하는 대립은 실제로 존재했었고 다른 사람의 군역을 직업적으로 대신 복무하는 대립군들도 존재했었다고 한다. 내가 대립을 알면서도 인정한 것은 조선시대에 수군의 복무는 육군보다 혹독한 환경에서 복무했고 복무 기간도 격월로 복무하였기에 가족들의 생계나 건강의 이유로 복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 대신 복무할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군역회피가 아닌 백성들의 건강과 생계가 달린 문제였기에 병력의 수만 맞는다면 대립은 눈감아주기로 했다.
“군사의 수가 부족한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병장기와 화약이 부족한 것은 솔직하게 보고하도록 하라. 이번에 병장기를 제작하면서 부족한 병장기의 수를 채워놓을 것이다.”
군적을 확인해서 맞추라는 명령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장수들은 부족한 병장기를 채워놓겠다는 말에 눈이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돌산도에서 생산한 소금으로 군사들과 항왜들이 잡은 생선을 절여서 군사들과 항왜들의 부식으로 사용하는 한편 일부는 상인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은 제장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인들에게 소금과 자반을 넘겨주고 받은 곡식과 면포를 좌수군의 군량과 피난민, 항왜들의 식량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지난달부터는 상인들에게 소금과 자반의 대금 중 일부를 철과 구리로 받았다. 이번 달과 다음 달에도 소금과 자반의 대금 중 일부를 철과 구리, 유황으로 받을 것이니. 상인들에게 받은 철과 구리로 부족한 병장기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좌수영에 부족한 병장기를 모두 채워놓을 것이니 부족한 병장기는 화살 한 개도 빠트리지 말고 보고하도록 하라.”
병장기를 채워놓는다는 말에 장수들은 크게 기뻐했다. 부족한 병장기를 채워준다는 말에 장수들이 기뻐하고 있었을 때 녹도만호 이순신이 질문을 던졌다.
“화약도 제조하실 생각이십니까?”
“물론이다. 제장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겠지만 돌산도에서 이미 염초를 제조하고 있다. 이일은 주상전하의 허락을 받고 진행한 일로 염초와 화약을 제조하는 일은 가벼이 누설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제장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돌산도에서 염초를 제조하는 데 성공한 것은 이미 전하께 장계를 올려 보고하였고 돌산도에서 염초를 제조하면서 시험한 제조법 또한 장계를 올려 보고하였다. 주상전하께서는 돌산도에서 제조한 염초의 품질에 만족하셨고 좌수영에서 염초와 화약을 제조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내 대답을 들은 이순신과 장수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돌산도에서 염초를 제조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선조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허락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유황의 경우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가 어려워 비록 많은 양은 구하지 못하겠지만, 돌산도에서 계속 염초를 제조할 것이니 좌수영에 필요한 만큼 화약을 제조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화약은 염초(75%), 목탄(15%), 유황(10%) 3가지 재료를 비율로 혼합해 제조했다. 그중에서 목탄 즉 숯가루는 구하기가 쉬었지만 염초와 유황은 구하기가 어려웠다.
마루 밑의 바닥과 아궁이의 흙을 모아서 만들었던 염초는 제조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산량이 많지 않았고 유황은 조선에서 생산되지 않아 전량을 수입에 의존했었다.
조선은 17세기 이후에서야 유황 광산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서 유황 문제를 해결했다.
염초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고 상인들에게서 유황을 구매하기로 했다는 대답을 들은 장수들은 나이 어린 좌수사가 보기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전라좌수군의 전력을 강화시켜 두 번 다시는 조선의 백성들이 왜구들에게 짓밟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 제장들은 맡은 임무를 완수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전라좌수군이 오도의 왜군들을 토벌해 남쪽 바다를 안정시켰지만 앞으로 몇 년간의 시간만 벌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왜구들은 다시 그 수가 늘고 세력을 회복해 다시 조선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니. 우리 전라좌수군은 단 한시라도 방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항상 최상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좌수영에서 전선과 병장기를 교체하는 이유가 전라좌수군의 전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전라좌수군의 전력을 항상 최상으로 유지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군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 알고 있었던 나는 전라좌수영을 떠나기 전에 좌수영의 전력 최대한 강화시켜 놓고 떠나고 싶었다.
방심하지 말고 최상의 전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좌수영 우후 김시민이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좌수사 영감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김시민의 뒤를 이어 좌수영의 장수들이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좌수사 영감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장수들이 밖으로 나가자 나는 종이와 붓을 꺼내 정언신 대감에게 보내는 서신을 썼다.
좌수영에서 낡은 전선들과 녹슨 병장기를 교체하기 위해 전선을 건조하고 병장기를 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서신이었다.
‘무슨 일을 벌일 때마다. 매번 서신을 써서 정언신 대간과 선조에게 알려야 하니…… 이것도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정언신 대감을 통해 선조에게 미리 알리지 않으면 나중에 함부로 병장기를 만들고 화약을 제조했다고 의심을 살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지. 조선에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몸조심하고 입조심 하자.’
좌수영의 전선과 무기를 교체하는 작업은 동해도(북해도) 정벌을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좌수영의 소속의 장인들과 병사들 그리고 정여립을 통해 영입한 장인들을 통해 전선과 병장기를 제작하면서 북해도를 정벌에 필요한 범선들과 대포, 무기 그리고 화약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전선을 건조하는 것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나는 일은 아니지. 전선마다 총통을 10여 문씩 장비하고 있으니 교체해야 할 총통도 수백 문 단위일 테고. 총통을 제작하는 일도 몇 달은 걸릴 거야. 여기에 창, 칼등의 병장기와 화약을 제조하는 일까지 계산하면 몇 달 동안은 좌수영 전체가 정신이 없겠지. 좌수영의 장수들이 각자 맡은 일에 정신이 없는 사이에 북해도에 가져갈 대포와 무기들을 제작하자.’
조선에서 전선을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목재는 소나무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나무를 벌목해 바닷물에 담가두었다가 다시 말린 나무를 다듬어서 전선을 건조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우선 말려둔 목재로 판옥선을 건조하는 동시에 군사들을 동원해 나무를 벌목하고 바닷물에 담갔다가 말려서 범선을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었다.
‘판옥선을 건조하는데 목재가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고 이번에 사용하지 않더라도 판옥선의 파손이나 추가 건조를 대비해 목재를 준비한다고 하면 군사들을 벌목에 동원할 명분은 충분하지. 그렇게 준비한 목재를 범선을 건조한다.’
판옥선을 몇 척이나 건조해야 하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판옥선을 건조하는 작업이 한 달은 넘게 걸릴 것이니 그동안 목재를 벌목하고 말리는 시간을 충분할 것 같았다.
총통과 무기, 화약을 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교체해야 할 총통과 무기를 우선 제작한 후 교체에 필요한 총통과 무기를 제작한 후에도 계속 무기 제작해 북해도 정벌에 필요한 무기들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정해왜변과 오도를 정벌하면서 왜구들에게서 노획한 무기들이 있지만 왜구들에게서 노획한 무기들만 사용할 수는 없지 북해도를 정벌하고 임진왜란에 대비하자면 대동계원들도 무장시켜야 하고 조선인 병사들도 확보해야 하니.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은 병장기를 만들어 놓자.’
전라좌수군의 병력과 전선으로 북해도를 정벌한다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아쉽게도 전라좌수군을 북해도를 점령하는데 동원할 수는 없었다.
‘고토열도 정벌은 왜구들을 정벌하고 붙잡혀간 조선인들을 구출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래서 전라좌수군을 고토열도로 진군시킬 수가 있었지. 그러나 전라좌수영의 장수들에게 내 계획을 설명하고 북해도로 진군하자고 하면 과연 순순히 따를 장수들이 있을까.’
이순신, 이억기, 김시민이 좌수군의 장수로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내가 좌수사라고 해도 조선에 역심 품고 있다고 생각하고 체포하려 들지도 몰랐다.
‘좌수군의 장수들과 군사들이 따르지 않는 것은 물론. 임진왜란에 대비하려면 전라좌수군이 조선에 남아 있어야 하니 전라좌수군을 동원할 수는 없겠어.’
나는 전라좌수군을 동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의 현실과 임진왜란을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정언신 대감에게 보내는 서신을 작성했다.
서신을 쓴 후 조정에 올릴 장계를 작성한 나는 장계를 모두 쓴 후 전선과 병장기의 제작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이번 계획은 내가 조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였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좌수사의 지위로 좌수영의 장인들과 군사들을 동원했고 정여립의 지원으로 장인들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으며 히라도와 시마즈와의 거래를 통해 구리, 철, 유황을 확보하였기에 무기와 화약을 제작할 수 있었다.
* * *
내가 좌수영에서 장수들에게 좌수군의 전선과 무기를 교체할 것을 선언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 사화동은 혼다 고로자에몬과 시마즈 출신의 장인과 무장들에게 돌산도를 안내하고 있었다.
혼다 고로자에몬과 무장들은 조선에서 이렇게 많은 왜인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돌산도에 살고 있는 왜인들이 큰 불만 없이 지내고 있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조선에 노략질을 하러 왔었다는 말인가?”
사화동에게 돌산도에서 지내게 된 사정을 듣던 혼다 고로자에몬은 정해왜변에 대해 듣고 사화동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고토열도와 히라도의 무사들이 주축이 되어 2,000명이 조선으로 건너왔었습니다. 물론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함대에 패해서 포로가 됐지만 말입니다.”
“그럼 이 섬에 사는 일본인들은 모두 장군님의 포로들이란 말인가?”
“사내들은 대부분 포로들입니다. 저와 함께 바다를 건너왔던 사람들도 있고 장군님께서 고토열도를 점령하셨을 때 포로로 잡혀 온 자들도 있습니다. 여인과 아이들은 사내들의 아내와 자식들이고 일부는 지난 전란 당시 사망한 사내들의 가족들도 있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을 듣던 고로자에몬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사망한 사내들의 아내와 자식들이라고 그럼 과부들이란 말인가? 과부와 그들의 자식들이 어떻게 이 섬에 살고 있는 것인가? 남편이 조선군의 손에 죽었을 텐데.”
“그것은 말입니다.”
사화동은 정해왜변에서부터 포로로 잡힌 왜인들은 전라좌수사가 살려주어 돌산도에 정착시킨 이야기며 고토열도를 정벌하면서 노예로 팔려갈 뻔했던 여인과 아이들을 조선군이 구출한 것까지 모두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