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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11화 (111/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11화

장군의 영지

“조선의 수군을 지휘하는 장군이면서 조선을 노략질했던 무리까지 제압해 자신의 백성으로 삼다니…… 과연 이 장군은 대단한 인물이군. 이 혼다 고로자에몬이 주군으로 모시기에 부족하지 않으신 인물이시구나.”

사화동에서 돌산도에서 생활하는 항왜들의 사정을 들은 혼다 고로자에몬은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시마즈에서 온 무장들은 고로자에몬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사화동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지으며 고로자에몬에게 물었다.

“장군님께서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기는 하십니다. 그런데 장군님의 백성이라니. 그것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화동의 질문에 혼다 고로자에몬은 몰라서 묻는 것이냐는 듯이 사화동에게 말했다.

“이곳을 보아라. 여기가 조선으로 보이느냐? 내가 보기에 이곳은 조선 땅이 아니라 장군의 영지로 보인다. 그리고 이곳이 장군의 통치를 받는 곳이 아니었으면 너희가 처자식들과 함께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었겠느냐? 장군이 이곳을 통치하지 않으신다면 너희는 어떤 신세가 될 것 같으냐?”

혼다 고로자에몬의 대답을 들은 사화동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자신은 이렇게 돌산도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지만 고로자에몬의 말대로 이대원 장군이 아닌 다른 조선 장수가 좌수군의 지휘관으로 온다면 자신은 물론 돌산도의 항왜들은 전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장군님을 찾아뵈어야 한다.’

사화동은 전라좌수사 이대원이 자신은 물론 항왜들의 생사여탈권과 미래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이대원을 찾았다.

* * *

전선과 병장기를 교체하겠다고 선언하고 좌수영의 장수들과 수령들에게 건조해야 할 전선의 수와 교체해야 할 병장기의 수를 좌수영에 보고할 것을 명령한 지 5일 만에 각 진과 고을에서는 낡은 전선의 수와 교체하거나 부족한 병장기의 수량을 보고했다.

보름의 여유를 주었지만 각 진의 만호와 첨사 그리고 고을의 현감, 군수, 부사들은 자신의 진과 고을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전선과 병장기의 상태와 수량을 보고해 좌수영에 보고한 것이다.

“분명히 보름 안에 보고하라고 했을 텐데. 명령을 내린 지 5일 만에 5관 5포의 장수들과 수령들이 보고를 마치다니. 참, 평소에도 이렇게 신속하게 명령을 수행하면 좋겠네.”

이렇게까지 빠른 보고를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예상 밖의 상황에 웃음을 지으며 기분 좋게 보고서를 펼쳐서 건조해야 할 전선의 수와 제작해야 할 병장기의 수량을 확인했다.

“일을 빨리 시작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추수 전에 끝내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겠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제작해야 할 병장기의 수가 많았다.

각 진과 고을의 병기고에는 병장기의 수량을 맞추기 위해 그동안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던 낡은 병장기들의 수가 적지 않았고, 이번 기회에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기 위해 낡은 병장기의 수량을 확인해 보고한 것이다.

“좌수영의 대장간은 이미 작업을 시작하고 있으니, 당장 내일부터라도 병사들 중에서 대장간 일을 해본 병사들을 차출해서 대장간에 투입하기로 하고 히라도에 다녀올 때 철과 구리도 더 주문해야겠다.”

매달 히라도에서 구리 2,000근(1,200kg), 철 1,000근(600kg)을 구매하고 있었지만 좌수군의 병장기를 보충하고 동해도(북해도) 정벌을 위한 대포와 무기들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구리와 철의 수량을 계산해 보니 히라도에서 구매하고 있는 구리와 철로는 어림도 없었다.

‘선조는 내년에는 나를 북방의 6진에 배치하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올해 안에 무기와 범선들을 준비해서 내년 봄에는 북해도로 진군해야 해. 6진으로 끌려가기 전에 북해도로 출병하려면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좌수영의 군사들과 관노들 그리고 항왜들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빨리 전선과 병장기들을 제작하고 히라도에서 구리와 철을 더 들여와야 한다.’

구리와 철의 구입량을 늘려야 하는 이유는 북해도 정벌을 위한 무기. 특히 대포 때문이었다.

후쿠에 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동원해 재미를 본 현자총통(玄字銃筒)의 무게는 155근(93kg)에 달했다.

조선 시대에는 청동으로 총통을 제작했고 총통을 제작하는 총통에는 구리와 주석이 9 대 1의 비율로 들어갔으니, 현자총통 1문을 제작하는데 139.5근(83.7kg)의 구리와 15.5근(9.3kg)의 주석이 들어갔다.

매달 히라도에서 2,000근(1,200kg)의 구리를 구매하고 있었으니 현자총통 14문을 제작할 분량이었다.

북해도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북해도로 출정할 범선들을 무장시킬 대포가 필요했고 북해도에 상륙한 이후 지상 전투에 동원할 대포도 필요했으니, 나는 최소한 100문 이상의 대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북해도에 출병할 범선과 군대를 모두 현자총통으로 무장시킨다고 해도 매달 14문씩 대포를 제작한다면 100문을 제작하는데 7달 이상이 걸린다는 계산 결과가 나왔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만 7달 이상이 걸려서는 곤란해…… 그리고 총통을 제작하는 장인에게 갤리온에 장비하고 있던 유럽식 대포를 연구해서 유럽식 대포를 모방한 신형 대포를 제작하라는 명령도 내려놓았으니 구리와 주석이 예상보다 더 많이 필요할 거야.’

좌수영에 크게 일을 벌여놨지만. 구리와 철의 구매량을 늘리기 위해 나는 다음에도 히라도에 직접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정해년(1587년) 7월 22일 동해.

평소에는 조운선으로 쓰이던 상선 3척이 돛을 펴고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바람을 타는 돛과 함께 힘찬 노질에 힘차게 달리던 상선은 맑고 넓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 보이자 섬을 향해 다가갔다.

“어르신. 섬이 보입니다.”

“그래. 거의 다 왔구나.”

섬을 발견했다는 선원의 말에 선실에서 나온 정여립은 쏟아지는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저 멀리 보이는 섬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폈다.

“저곳인가 보구나. 과연 강릉에서 멀리 떨어져 있구나. 저곳으로 도망가도 조선에서 잡아 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어.”

전라좌수사의 부탁대로 인맥을 동원해 유기장이들에게 주석을 주문한 정여립은 전라좌수영에 주석을 보내기가 무섭게 대동계원들을 거느리고 직접 강릉으로 향했다.

유람을 핑계로 면포와 재물을 잔뜩 가지고 강릉으로 온 정여립은 유람을 즐기는 양반답게 강릉 지역의 양반들을 초청해 술을 대접하고 함께 뱃놀이를 즐기며 친분을 쌓는 한편 강릉 지역의 상인들과 접촉해 별장으로 지낼 집을 짓는다는 핑계로 노비들과 연장들을 사들이고 소금과 곡식까지 주문했다.

새로 산 노비들을 시켜서 직접 집을 짓겠다는 정여립의 말에 상인들은 의심하지 않고 각종 연장을 판매했고 노비들이 일을 하는 동안 먹을 식량이라는 핑계로 곡식과 소금을 사들이는 것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릉에서 준비를 마친 정여립은 모든 준비가 끝나자 미리 섭외해 놓은 상선에 강릉에서 준비한 연장과 곡식 그리고 소금을 실었고 대동계원들과 노비들도 모두 배에 올라탔다.

마지막으로 직접 배에 오른 정여립은 울릉도를 향해 출발할 것을 명했다.

강릉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울릉도에 직접 갈 계획이 없었지만 울릉도로 보낼 노비들과 물품들을 구매하면서 울릉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정여립은 대동계원들과 노비들을 울릉도로 보내면서 직접 배에 오른 것이다.

배가 울릉도에 점차 가까워지자 울릉도를 바라보던 정여립은 생각했다.

‘내가 직접 오기를 잘했다. 내 눈으로 봐야 실상을 알 수 있지. 이야기만 전해 듣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지.’

그동안 몇 차례나 울릉도에 다녀왔던 강릉 지역 어부들의 안내로 상선은 무사히 울릉도에 도착했고 상선에서 장정들이 내려왔다.

정여립과 함께 온 대동계원들과 정여립이 구입한 노비들이었다.

대동계원들은 건장하고 무술에 능한 장정들로 25명이었고 노비들은 젊고 힘쓸 수 있는 나이의 장정들로 80명에 달했다.

노비들에게 배에서 내리라고 하자 노비들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대동계원들과 상선의 선원들이 몽둥이를 들고 노려보자 어쩔 수 없이 한 명씩 배에서 내려왔다.

그런 노비들을 보며 정여립이 입을 열었다.

“이곳은 울릉도라는 섬이다. 너희 중에는 이곳이 어디에 있는 섬인지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내린 곳이 울릉도라는 사실에 노비들은 더욱 겁을 먹었다.

“이곳에서 너희가 할 일이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동안 너희가 했었던 일보다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 있을 장정들이 시키는 대로 집을 짓고 우물을 파고 밭을 일구며 살아가면 된다. 먹을 것은 넉넉할 것이고 너희가 반항하지 않고 시키는 일만 잘한다면 매를 맞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반항하거나 이곳에서 도망치려고 한다면…….”

노비들을 한차례 바라본 정여립은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띠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은 강릉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다. 이곳에서 노비가 하나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조선에서는 별문제 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정여립의 경고에 노비들은 일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너희가 순순히 명령에 따르고 일만 열심히 한다면 너희를 면천시켜주겠다.”

정여립의 말에 노비들인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여립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10년이다, 10년간 시키는 대로 일하고 반항하지 않는다면 10년 후에는 너희 모두를 면천시켜 줄 것이다.”

면천(免賤)은 노비가 노비의 신분을 벗어나 양인의 신분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노비들은 정여립이 면천을 약속하자 놀란 얼굴로 일제히 정여립을 바라보았다.

“10년이다. 앞으로 10년간 열심히 일하면 면천시켜 줄 것이다.”

노비들은 면천을 시켜준다는 약속에 하나같이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나리.”

“나리.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노비들이 정여립에게 감사 인사를 하자 노비들이 진정된 것을 느낀 정여립은 대동계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제 일을 시작하자.”

“어서 움직여라. 일을 열심히 해야 면천될 수 있을 것이다.”

대동계원들은 노비들을 시켜서 상선에 실린 곡식 부대와 소금 자루 등의 짐들을 울릉도로 내렸다.

노비들과 대동계원들이 상선의 짐을 내리는 동안 정여립은 대동계원 2명을 거느리고 상륙한 지점 근처를 걸으며 두 눈으로 직접 울릉도를 살펴보았다.

‘과연……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섬이라고 하더니 숲이 우거져 있고 땅도 거칠지 않은 것이 이렇게 버려두기에는 아까운 섬이구나. 섬의 위치도 좋다. 강릉에서 이곳 울릉도까지의 거리보다 울릉도에서 동해도까지의 거리가 더 멀다고 했었지. 그런 먼 곳에 있으면 조선의 소식을 듣기가 어렵고 조선에서 식량과 물품을 동해도로 운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이런 섬이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울릉도에서 강릉을 오가며 조선의 소식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야.’

노비들이 상선의 짐을 모두 울릉도에 내리는 동안 해가 지면서 곧바로 울릉도를 떠나지 못하고 상선에서 하룻밤을 보낸 정여립은 다음 날 아침 울릉도를 떠나기 전에 노비들에게 다시 한번 면천을 약속했고 울릉도에 남을 대동계원들도 격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달 후에 다시 상선을 보내 식량과 물품을 보내줄 것을 약속한 정여립은 상선을 타고 울릉도를 출발했다.

상선이 강릉을 향해 출발하자 정여립은 갑판에 서서 멀어지는 울릉도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작지 않은 섬이구나. 나무도 많이 자라고 있고, 사람들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의 섬인데도 조정에서는 공도 정책을 펼치며 섬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만 있으니…….’

조선에서 울릉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정여립은 문득 동해도(북해도)를 떠올렸다.

‘조선은 울릉도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동해도에 가본 적은 없지만 좌수사는 강릉에서 울릉도까지의 거리보다 울릉도에서 동해도로 가는 거리가 더 멀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좌수사가 동해도를 점령하고 동해도에서 군사를 기른다면 과연 왜와의 전쟁이 끝난 후 과연 동해도는 조선의 영토로 남을 수 있을까? 울릉도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조선이 동해도를 관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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