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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12화 (112/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12화

공짜는 없다

건장한 체격의 장정들이 도끼로 나무를 치고 있었다.

땅- 땅- 땅!

“그만.”

굵은 소나무를 도끼로 치던 장정들은 작업을 감독하던 군관의 명령에 일제히 도끼질을 멈췄다.

장정들이 치던 소나무를 살펴보던 녹도진 군관 허원종은 장정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제 됐다. 쓰러뜨려라.”

“예 군관 나리. 쓰러뜨려라.”

허원종의 명령이 떨어지자 소나무를 도끼로 치던 장정들은 소나무를 향해 밧줄을 집어 던졌다.

소나무의 가지에 밧줄이 걸리자 허원종이 장정들에게 외쳤다.

“당겨라!”

“예이- 당겨라!”

장정들이 일제히 밧줄을 붙잡고 잡아당기자 한동안 버티던 소나무는 장정들이 잡아당기는 방향으로 쓰러졌다.

“쓰러진다!”

“쓰러진다. 어서 피해라!”

나무가 쓰러질 때, 재빨리 피하지 않으면 쓰러지는 나무에 깔려서 그대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

허원종이 쓰러진다고 외치자 밧줄을 잡아당기던 장정들은 일제히 밧줄을 놓고 옆으로 피했다.

쾅!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가 쓰러지자 장정들은 도끼와 손도끼로 소나무의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밥이다. 점심밥이 왔다.”

“와아! 밥이다!”

“밥 먹고 하자.”

웃통을 벗어 던지고 나무에 도끼질을 하던 장정들은 밥이 왔다는 소리에 도끼를 내려놓고 기뻐했다.

허원종은 그 모습을 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보였지만 그도 장정들, 아니, 녹도진의 병사들을 굶길 생각은 없었다.

“하던 일은 잠시 멈추고 점심을 먹도록 한다. 들고 있던 연장들은 한쪽에 잘 모아놓도록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나무의 가지를 치고 산 밑으로 옮겨야 하니 점심을 든든히 먹어라.”

“예 감사합니다. 군관 나리.”

아침을 먹자마자 녹도진을 출발해 산으로 올라와 나무를 베었던 녹도진의 병사들은 다들 배가 고픈 상태였다.

병사들은 도끼와 손도끼를 한쪽에 모아놓고 줄을 서서 주먹밥을 받았다.

주먹밥과 된장국으로 점심을 먹은 녹도진의 병사들은 점심을 먹은 후 잠시 자리에 앉아 쉬고 있었다.

“밥을 다 드신 분들은 그릇을 들고 이리로 오시오.”

녹도진의 화병인 김인영이 병사들에게 외치자 강영남은 호기심에 김인영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냐?”

“형님. 그릇을 주시오.”

강영남이 국그릇을 내밀자 김인영은 나무통 안에 들어 있던 것을 바가지로 퍼서 강영남의 그릇에 가득히 담아주었다.

“어? 이게 뭐야.”

익숙한 향기에 강영남이 묻자 김인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탁주지 뭐겠소. 형님 어서 드시오.”

“뭐? 탁주?”

“지금 탁주라고 하셨소?!”

탁주라는 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앞다투어 그릇을 들고 김인영 앞으로 모여들었다.

“모두에게 한 잔씩은 돌아갈 테니 서두르지 마시오.”

김인영은 그런 병사들의 그릇에 탁주를 가득히 퍼주었다.

한편 병사들과 함께 점심밥을 먹은 후 자리에 앉아 잠시 졸고 있었던 허원종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니, 이게 무슨 소란이냐?”

“탁주입니다. 군관 나리도 한잔 드시지요.”

“뭐라고? 탁주? 누가 작업 중에 술을 마셔도 좋다고 했느냐!”

병사들이 탁주를 마시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허원종은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원종이 화를 내자 병사들은 허원종의 눈치를 보면서도 탁주가 든 그릇을 황급히 들이마셨다.

“어허. 이게 무슨 일인가?”

허원종이 병사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을 때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녹도만호 이순신이 나타났다.

“만호 나리.”

“그래. 허 군관 무슨 일인가?”

“병사들이 작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술을 마시고 있기에 꾸짖고 있었습니다.”

허원종의 대답을 들은 이순신은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좌수사 영감께서 내리신 탁주일세. 허 군관도 한잔 들게.”

“예? 좌수사 영감께서요?”

술을 보낸 사람이 전라좌수사라는 말을 들은 허원종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병사들이 더운 날씨에 힘을 쓰고 있다고 좌수사 영감께서 녹도진에 탁주를 보내셨네. 전투와 다름없는 작업 중에 병사들이 술에 취해서는 안 되겠지만 탁주 한잔 정도는 병사들이 피로와 더위를 이기고 힘을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니. 허 군관도 한잔 들게.”

말을 마친 이순신은 직접 김인영에서 손을 내밀었다.

“나도 한잔 다오.”

“예 만호 나리.”

김인영은 바가지에 가득히 탁주를 담아 이순신에게 내밀자 이순신은 바가지에 담긴 탁주를 시원하게 마셨다.

꿀꺽- 꿀꺽- 꿀꺽-

소리까지 내가며 시원하게 탁주를 마신 이순신은 김인영에게 바가지를 돌려주고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밥은 잘 먹었느냐?”

이순신이 묻자 병사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예 만호 나리.”

“탁주는 시원하게 마셨느냐?”

“예 만호 나리.”

“그럼 이제는 힘이 나겠구나?”

“그렇습니다! 만호 나리!”

“좋다. 이제부터는 밥 먹고 술 마신 만큼 힘을 내어 이 산의 굵은 나무는 모조리 베어다가 전선을 만들어 그 전선을 타고 바다를 누비자꾸나.”

“예 만호 나리! 좋습니다!”

시원한 탁주를 마시고 힘이 난 병사들은 이순신에게 힘차게 대답한 후 도끼를 들었다.

이순신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현장을 둘러보며 허원종과 병사들에게 작업을 지시했다.

“가지는 모아서 땔감으로 쓸 것이니 하나도 버리지 말고 한곳에 모아두어라.”

“자른 나무는 산 아래로 가져가야 하니 서둘러라 밧줄로 잘 묶어야 한다.”

“나무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옮겨라. 이곳에서 나무껍질을 벗길 필요는 없으니 가지를 쳐낸 나무는 그대로 산 아래로 옮기도록 하여라.”

이순신은 현장을 둘러보며 병사들에게 하나하나 꼼꼼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날 점심때 마신 탁주와 이순신의 꼼꼼한 작업 지시로 인해 녹도진의 병사들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공평하게 녹초가 됐고 평소보다 2배 이상의 목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 * *

8월이 가까워오자 나는 다시 히라도에 다녀올 준비를 했다.

좌수영에 벌여놓은 일이 많았지만 마쓰라 다카노부를 상대하고 구리와 철을 구매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히라도에 가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좌수영 우후 김시민 대신 순천부사 이억기에게 좌수영을 맡겨볼 계획이었다.

8월이 되자 나는 좌수영 우후 김시민에게 좌수영 관할의 바다와 섬들을 순찰하고 전선과 병장기를 제작하는 재료로 쓸 수 있는 목재들을 구해올 것을 명령했다.

섬에서 목재를 구해오라는 명령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당시 조선은 공도 정책을 펼쳤고 원칙적으로는 관아가 설치되지 않은 섬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살 수 없었다.

물론 공도 정책을 펼치는 중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섬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조정에서도 섬에 사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육지로 끌고 올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하여간 공도 정책을 펼친 덕분에, 조선 특히 남해안의 섬 중에는 실제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많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섬들도 주민의 수가 많지 않은 덕분에 남해안의 섬 중에는 제법 큰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는 섬들도 있었다.

나는 김시민에게 그런 섬들을 찾아다니며 목재를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예정에도 없이 갑자기 남해안의 섬들을 순찰하고 목재를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리자 김시민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전라좌수군의 사령관인 전라좌수사였고 김시민의 상관이었다. 김시민이 내게 반항하거나 내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김시민은 내 명령대로 좌수영 전선 2척과 군사들을 거느리고 남해안의 섬들을 향해 출발했다.

김시민이 좌수영을 비우자 나는 더 이상 다른 장수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손대남과 이언세에게 히라도에 다녀올 준비를 할 것을 명령한 나는 김시민이 좌수영을 떠난 다음 날 순천부사 이억기를 좌수영으로 불렀다.

이억기와 인사말을 주고받은 나는 인사말이 끝나자 이억기에게 좌수영을 맡을 것을 명령했다.

“본관은 예정대로 오도의 왜구들에게 무력시위를 벌이고 좌수영으로부터 오도까지의 바다를 살피기 위해 곧 출항할 것이네. 본관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우후가 좌수영을 맡아야 하나 우후도 지금 자리를 비운 상황이다. 목재를 구하기 위해 남쪽 바다로 내려간 상황이지. 우후가 섬에서 목재를 구해 돌아오려면 빨라도 닷새 이상은 걸릴 것이니 내일 아침부터 우후가 좌수영에 돌아올 때까지 순천부사가 좌수영을 맡아서 지켜야 할 것이네.”

내 명령에 순천부사 이억기는 당황했다.

좌수영 전체가 전선의 건조와 병장기의 제작으로 인해 정신이 없는 상황인데 자신에게 좌수영을 지키라니.

이것은 좌수사나 우후가 돌아올 때까지 지금 좌수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작업을 이억기가 관리하고 감독하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본관은 오도로 출진할 준비를 해야 하니. 오늘까지만 좌수영을 맡고 내일 아침부터는 순천부사가 좌수영을 지휘해야 하네.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습니다. 좌수사 영감. 소장을 믿고 좌수영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억기는 갑자기 좌수영을 맡게 되어 놀랐지만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휘관인 좌수사가 자리를 비우면 우후가 좌수영을 지휘하게 되어 있었고, 우후마저도 자리를 비웠다면 좌수영으로 가장 품계가 놓은 장수가 좌수영을 지휘해야 했다.

좌수영의 장수와 수령들 중에서 좌수사와 우후 다음으로 품계가 높은 사람이 바로 순천부사 이억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이억기는 좌수사가 자신에게 좌수영을 맡긴 것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좌수영을 맡겠다고 대답했다.

“본관이 돌아오기 전에 우후가 먼저 좌수영에 돌아올 것이니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것이네. 본관도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노력하겠지만…… 워낙 먼 거리를 다녀오는 일정이고, 바다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으니 예정보다 늦을 수도 있을 것이네. 그렇게 알고 내일부터 좌수영을 잘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좌수사 영감. 심려를 거두시지요.”

좌수영을 지휘할 기회를 가지게 된 이억기는 긴장보다는 흥분한 표정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어렵지 않게 이억기에게 좌수영을 맡긴 나는 다음 날 아침 지난번처럼 자기와 찻잔을 판매하고 구리와 철을 구해오기 위해 또 고구마와 고구마 농사를 지을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그리고 히라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마즈의 장인들과 무장들을 데려오기 위해 히라도로 출발했다.

* * *

이번에도 2척의 갤리온으로 돌산도를 출발한 나는 히라도에 도착하기 무섭게 마쓰라 다카노부를 찾았다.

그동안은 자기와 다완을 무기로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배짱을 부릴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으니 선물을 잔뜩 준비해서 찾아가야 했다.

“어서 오시오. 장군. 그동안 건강하셨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다카노부 공께서도 평안하셨습니까?”

마쓰라 다카노부와 인사말을 나눈 후 나는 준비해간 상자를 다카노부에게 내밀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편의를 봐주신 다카노부 공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제 성의이니 부담 없이 사용해 주십시오.”

“하하하. 장군 나 같은 장사꾼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부담가지지 말라는 말이오. 세상이 공짜는 없는 법이니 말이오.”

다카노부는 웃으며 대답하고 있었지만 다카노부의 눈은 빛을 내며 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장군의 선물을 사양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고맙게 받겠소이다. 장군.”

다카노부가 눈짓을 하자 다카노부의 부하가 나서서 상자를 받았다.

부하가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자 다카노부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유럽식 디자인의 백자 주전자와 찻잔 4개, 그리고 접시 6개가 들어 있었다.

“장군. 받기가 두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들이오. 정말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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