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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13화 (113/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13화

뜻밖의 선물

마쓰라 다카노부는 백자 찻잔을 손에 들고 기뻐했다.

“선물이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내 말을 들은 다카노부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은 후 자신의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장군께서 주신 선물을 내 방에 가져다 놓고 이곳에서 나가거라. 내가 부를 때까지 들어올 필요는 없다.”

“예, 나리.”

다카노부의 부하가 찻잔 세트를 들고 나가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내 친구 페드로 선장이 이곳 히라도에서 장군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장군이 구하던 작물을 가져왔다고 하더이다. 그 작물을 경작할 수 있는 노예들도 데려온 모양이오. 장군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장군께서 괜찮으시다면 내일 저녁에 약속을 잡도록 하겠소이다.”

“다카노부 공. 감사합니다. 매번 도움을 받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 이제는 듣는 사람도 없으니 솔직하게 말씀해 보시오. 장군. 페드로 선장이 가져온 작물과 노예 외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없으시오?”

다카노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롭기가 그지없었다.

다카노부는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살펴보며 취조하듯이 말했다.

‘역시 다카노부는 노회한 상인이다. 눈치가 보통 빠른 것이 아니야. 여기에서 용건을 말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은 다카노부와의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제는 대답해야 해.’

나는 일부러 웃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하하- 역시 다카노부 공에게는 못 당하겠군요. 무인의 자존심 탓에 아쉬운 소리를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다카노부 공에게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나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 너무 언짢게 여기지는 마십시오.”

내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아니오. 장군께서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내가 고마울 뿐이오. 그래, 장군. 무엇이 필요하시오?”

“철과 구리가 더 필요합니다. 다카노부 공. 이미 구입하기로 한 양보다 더 많은 철과 구리를 구매할 수 있겠습니까?”

“장사꾼에게 상품을 더 구매하시겠다니. 장군이 고마울 뿐이오. 장군. 철과 구리가 얼마나 더 필요하시오?”

다카노부의 질문에 나는 다카노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철 3,000근(1,800kg)과 구리 5,000근(3,000kg)이 필요합니다. 다카노부 공. 매달 철 3,000근과 구리 5,000근을 구매할 수 있겠습니까?”

매달 히라도에서 구매하던 철과 구리의 양은 철 1,000근과 구리 2,000근이었다.

갑자기 구매하던 양의 철은 3배, 구리는 2.5배를 구매하겠다고 하자 다카노부도 놀란 것 같았다.

‘돌산도를 출발할 때만 해도 매달 구매하던 양의 2배를 주문하려고 했었지만, 생각해 보니 4,000근이나 5,000근이나 별 차이가 없지. 철은 무기를 제작하는 것 외에도 연장과 솥을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하니 이번 기회에 넉넉히 쌓아놓고 쓰는 것도 나쁠 것 없는 일이고.’

놀란 표정을 숨기려는 듯 다카노부는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철과 구리는 언제까지 필요하시오. 장군.”

“내일 당장에라도 철과 구리를 구매하고 싶지만…… 당장 그만한 수량이 없다면 이번에는 지난달처럼 철 1,000근과 구리 2,000근이라도 구매하겠습니다. 다음 달에는 철 3,000근과 구리 5,000근을 구매할 수 있겠습니까?”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이전보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매달 그 정도의 철과 구리를 구매하실 생각이시오?”

“예.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철과 구리를 구매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최소한 일 년 동안에는 매달 같은 양의 철과 구리를 구매할 계획입니다.”

내 대답을 듣고도 다카노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다카노부는 잠시 후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소이다. 장군. 장군의 남만선이 히라도를 떠나기 전에 철과 구리를 남만선으로 보내드리겠소이다.”

다카노부의 대답에 이번에는 내가 놀랄 지경이었다.

‘아니, 미리 주문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주문량을 3배와 2.5배로 올렸는데 그만한 양의 철과 구리가 히라도에 있었단 말인가? 5,000근이면 3톤인데…… 구리 3톤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었단 말이야?’

다카노부의 재력과 준비성에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철과 구리의 대금은 지난번과 같이 자기와 다완을 판매한 후에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군께서 편하신 대로 하시오. 그래, 장군. 철과 구리 외에 필요한 것은 더 없으시오?”

다카노부의 질문에 나는 조선에서 쓰는 부대를 펼쳐 보이며 대답했다.

“곡식을 주문하려면 추수 전에 주문하려고 하셨기에 미리 주문하려고 합니다. 쌀을 준비해 주십시오.”

히라도에서 구매한 쌀은 내년 북해도 정벌을 위한 군량미와 함께 북해도로 이주할 항왜들을 위한 식량으로 쓸 생각이었다.

북해도 정벌을 계획하면서 북해도를 점령한 이후 북해도에서 밭을 경작하는 데 성공할 때까지.

조선에서의 보급을 통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했지만, 히라도에서도 곡식을 구매할 수 있다는 다카노부의 대답을 들은 후 계획을 변경했다.

조선에 식량을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북해도에서 필요한 식량의 일부를 히라도에서 구매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쌀이라…… 장군. 쌀은 또 얼마나 필요하시오?”

“왜국은 조선과 곡식을 세는 기준이 달라 조선에서 쓰는 부대를 준비해 왔습니다. 조선에서는 이 부대 쌀을 담아 쌀 한 섬으로 셉니다. 이 부대를 기준으로 5,000섬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5,000섬이라 어렵지 않은 일이오. 장군. 추수가 끝난 후에 쌀을 찾으러 오시오. 5,000섬을 준비해 둘 것이오.”

“매번 감사드립니다. 다카노부 공.”

“천만의 말씀. 도리어 내가 장군께 고마워할 일이오. 장군, 장군이 히라도에서 자기와 다완을 판매하는 덕분에 매달 상인들이 히라도에 모여들고 있고, 자기와 다완의 판매 수수료에 철과 구리에 이어 쌀까지 대량으로 구매하니. 내가 장군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장군 덕분에 매달 큰돈을 벌고 있고, 귀한 선물까지 받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오. 나는 장사꾼이라 계산이 확실한 것을 좋아하니 아무래도 장군께 내가 아끼는 보물을 선물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소. 장군 내 선물을 받으시겠소.”

선물을 준다고 하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선물을 주신다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고맙소. 장군.”

내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안쪽을 향해 외쳤다.

“들어오너라.”

다카노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가 내실로 들어왔다. 내실로 들어온 사람을 바라본 나는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다가와 헤이메.’

한껏 꾸미고 평소보다 화려한 기모노 차림이었지만 헤이메가 확실했다. 내 앞에선 헤이메는 허리를 숙이며 나에게 조선말로 인사말을 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장군.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따로 연습이라도 했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자연스러운 조선말이었다.

“그래. 오래간만이구나. 너도 잘 지냈느냐.”

헤이메는 나에게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고 다카노부의 옆으로 물러났다.

“역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오. 장군 헤이메가 마음에 드시오?”

다카노부는 말에 나는 찬물을 마신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뭐? 어울리는 한 쌍? 설마 선물을 준다고 한 것이…….’

“헤이메는 내 부하였던 마사이에의 딸이지만 지금은 내 여식과 다름이 없소.”

나는 다카노부의 설명을 들으며 다카노부와 헤이메의 관계를 예상할 수 있었다.

‘헤이메의 아버지인 마시이에가 사망한 후 헤이메의 친모 즉 마시이에의 아내가 미망인이 된 후 다카노부의 첩이 된 것이로구나.’

미망인이 된 부하의 아내를 첩으로 삼은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다카노부가 헤이메를 믿고 통역을 맡긴 것인가?’

“헤이메의 나이가 이제 열여섯이나 되었으니 빨리 신랑감을 구해야겠는데…… 이 늙은이가 무서운 것인지 헤이메를 달라고 하는 사내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소이다. 그런데 헤이메가 장군을 볼 때마다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겠소. 이것은 헤이메가 장군을 사모해서 그러는 것이니. 장군께서 헤이메를 거둬주시면 감사하겠소이다.”

다카노부가 다가와 헤이메를 통역으로 내세울 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었지만 막상 일이 닥치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국시대 일본의 영주들과 귀족들의 혼사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일도 헤이메의 의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다카노부가 나를 사위로 삼겠다는 목적인 것은 알겠는데 왜 그러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곳 히라도에 온 목적을 떠올리고 결정을 내렸다.

‘그래. 어차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그러나 불씨를 남겨놓을 수는 없어.’

“다카노부 공 헤이메를 저에게 맡기신다는 제안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다카노부 공의 제안을 승낙하기 전에 2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역시 장군은 빈틈이 없는 사람이오. 그래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이오.”

“저는 조선인이고 이미 본처가 있는 몸입니다. 그런 저에게 다카노부 공의 금지옥엽인 헤이메를 맡기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내 질문에 다카노부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장군의 말씀대로 우리는 왜인이오. 왜국에서 장군 같은 호걸이 부인이 여럿인 것은 크게 허물될 일이 아니니 상관없소이다. 장군 같은 호걸이 삼처 사첩을 거느린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오.”

“다카노부 공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쭈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얼마든지 물어보시오. 장군.”

“저는 글을 쓰는 선비가 아닌 창검을 다루는 무장입니다. 돌려서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사오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카노부 공께서 저를 사위로 삼으시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히라도에서 매달 자기와 다완을 판매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카노부 공이나 히라도에서의 교역 규모로 봤을 때는 그리 큰 액수가 아닐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내 질문에 다카노부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역시. 장군은 호걸이시오. 이제까지 이 다카노부에게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없었소이다.”

한참을 웃던 다카노부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장군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이 다카노부는 앞으로도 계속 장군과 인연을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소이다. 이 다카노부 평생을 장사꾼으로 살아왔고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 정확하다고 자부하고 있소. 장군은 결코 그 자리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시오.”

다카노부의 대답에 놀란 내가 다카노부를 바라보며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고 하자 다카노부는 아무 말할 필요 없다는 듯이 나에게 손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내 눈을 믿소이다. 그리고 헤이메가 장군에게 시집을 간다고 해서 이 다카노부가 장군의 장인 노릇을 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시오. 장군.”

다카노부의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다카노부가 이 정도면 성의껏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다카노부 공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헤이메를 맡기신 것을 후회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맙소.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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