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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14화 (114/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14화

이제는 식구

“헤이메는 지금 당장에라도 장군을 따라가고 싶겠지만 한 달만 참도록 하라. 내가 비록 장사꾼에 불과하지만 예의를 아는 사람이고 너는 내 딸과 다름없으니 너를 어찌 빈손으로 장군에게 보내겠느냐. 준비해야 할 것이 많으니 다음 달에 장군이 히라도에 오셨을 때 장군을 따라가도록 하여라.”

“예 아버님.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네가 나를 아버지라 부르니 내 너를 어찌 딸로 대하지 않겠느냐. 너는 이제부터 마쓰라 다카노부의 딸이다. 너는 오늘부터 마쓰라 헤이메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헤이메와의 대화를 마친 마쓰라 다카노부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장군께서도 하루빨리 헤이메를 데려가고 싶으시겠지만 조금만 참으시오.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준비해서 보내려고 하니. 다음 달에 헤이메를 보내드리겠소이다. 그러나 장군은 이제부터 내 손님이 아닌 가족이니 히라도에서 지낼 때는 내 집에서 머물도록 하시오. 원하시면 장군의 부하들도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집을 준비해 드리겠소.”

다카노부의 집에서 지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는 않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다카노부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하지만 오늘은 부하들에게 지시할 것도 있고 내일 상인들에게 자기와 찻잔을 판매할 일도 준비해야 하니. 오늘은 이만 배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모든 일을 마친 후 다카노부 공의 저택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장군도 부하들이 많고 바쁜 일이 많을 것이니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이제부터 장군은 내 가족이니 히라도에서는 그 누구도 장군을 거역하지 못할 것이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다카노부 공.”

마쓰라 다카노부와의 대화가 끝난 후 나는 헤이메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에서 나왔다.

‘부인은 아직 만나지도 못했는데 첩을 들이게 되었구나. 그것도 일본 여자를 첩으로 들이게 되었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마쓰라 다카노부와 앞으로 계속 거래를 이어갈 것을 생각하면 다카노부와 이런 인연을 맺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북해도를 점령한 이후에 식량과 필요한 물품을 조선에서 보급받을 생각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히라도를 통한 보급도 가능하겠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자.’

갤리온으로 돌아온 나는 이언세와 사화동에게 다카노부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내일부터는 다카노부의 집에서 지내겠다고 선언했다.

이언세는 내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사화동은 예상했었다는 듯이 말했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장군에게 자신의 딸을 준 것은 장군과 혈연을 맺기를 바라는 것이니. 그만큼 장군께서 위대하신 호걸이신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나쁘게 생각하실 일은 아닙니다.”

역시 사화동은 일본인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화동의 말이 옳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남만인들과의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거상이며 다카노부의 아들 마쓰라 시게노부는 평호도(平戶島)[히라도]와 구주(九州)[규슈]의 비전(肥前)[히젠] 지역의 일부를 통치하는 영주이다. 마쓰라 다카노부와 혈연을 맺어서 우리도 나쁠 것이 없으며 다카노부의 사위가 됐다고 해도 내가 다카노부에게 휘둘릴 일은 없을 것이니 안심하도록 하라.”

“좌수사 영감을 믿습니다. 영감께서 명하시기에 바다를 건너 왜에 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아무 염려 마시지요. 영감.”

이언세는 변함없이 나를 믿고 충성을 다짐했다. 그런데 정작 마쓰라 다카노부와 혈연을 맺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던 사화동은 나와 이언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다카노부의 저택에서 지내는 것 외에 큰 변동 사항은 없을 것이다. 오늘 밤은 편히 쉬도록 하고 내일 나갈 병사들은 모든 준비를 끝내놓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좌수사 영감.”

이언세가 대답한 후 선장실 밖으로 나가자 나는 이언세를 따라 나가려는 사화동을 붙잡았다.

“너는 잠깐 기다려라.”

이언세가 선장실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선장실의 문을 닫고 사화동에게 물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무엇이냐 말해보아라.”

잠시 머뭇거리던 사화동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좌수사에게 이렇게 물을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굳게 마음을 먹고 혼다 고로자에몬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하며 물었다.

“만약에 장군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신다면 저희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장수가 좌수사로 오시면 저희를 이대로 놔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좋게 끝나봐야 노비 신세가 될 것이고 어쩌면 저희의 목을 쳐서 왜구들을 토벌했다고 보고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사화동과 항왜들이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아직도 조선에서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화동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에서 좌수사의 임기는 2년. 내가 북해도로 출진하지 않아도 2년 후에 내 임기가 끝나면 다른 장수가 좌수사로 부임하게 된다. 만약 이순신이나 이억기 같은 상식이 있는 장수가 좌수사로 온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원균이 전라좌수사로 온다면…….’

어차피 내년 봄에는 북해도로 진군한다는 생각에 좌수사의 임기나 항왜들이 느꼈을 불안감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우선 사화동을 진정시키고 이번 기회에 내가 준비하고 있는 북해도 정벌 계획을 사화동에게 설명했다.

“장군님. 그것이 정말이십니까?”

내 설명을 들은 사화동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고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내 계획을 설명했다.

“내가 동해도로 가려는 이유까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이유까지 설명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는 늦어도 내년 봄에는 좌수영에서 건조하고 있는 범선들과 지금 제작하고 있는 병장기로 무장한 군사들을 거느리고 동해도를 정벌해 동해도를 통치할 것이다. 그곳에 지금 돌산도에 있는 너희들도 나와 같이 가자.”

“장군님. 정말 저희를 데려가시는 것입니까?”

“그래 동해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조선인이건 왜인이건 모두 나의 백성들이다. 나에게 충성하고 내 명령을 따르는 이들은 출신과 신분에 상관없이 보호해 줄 것이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굶주리지 않게 할 것이다. 동해도에서는 너도 신분을 숨길 필요가 없이 항왜가 아닌 조선 출신 사화동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이 보장된다는 말에 사화동은 엎드려 외쳤다.

“장군님 저희를 데려가 주십시오. 장군님께 평생 충성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미 내 백성들이다. 내가 너희를 버려둘 리가 있겠느냐. 안심해라.”

“장군님.”

사화동은 걱정했던 문제가 해결된 기쁨에 통곡하며 울었고 나는 그런 사화동을 달래며 진정시켰다.

다음 날 날이 밝기 무섭게 나는 왜인으로 위장한 병사들과 함께 상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고 이번에도 자기와 다완 그리고 유럽식 찻잔 세트를 팔아 막대한 양의 금화와 은화를 벌어들였다.

자기와 찻잔을 판매한 판매 대금을 계산한 후 다카노부에게 지불할 수수료와 히라도에서 구입할 물품의 대금을 은화로 준비해 다카노부의 저택으로 향했다.

다카노부의 저택에는 다카노부와 함께 페드로 선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카노부와 인사를 나눈 나는 다카노부에게 페드로 선장을 소개받았다.

페드로와 인사를 나눈 후 선물로 준비해 간 백자를 내밀자 페드로는 매우 기뻐했다.

선물을 받은 페드로가 기뻐하자 다카노부는 페드로 선장에게 일본어로 말을 걸었고 페드로 역시 일본어로 다카노부에게 대답했다.

다카노부는 페드로와 대화를 나눈 후 부하에게 무엇을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렸고 잠시 후 다카노부의 부하들은 제법 커다란 나무 상자와 함께 필리핀인으로 보이는 남녀 한 명씩을 끌고 왔다.

고구마가 든 상자와 고구마 농사를 지을 노예들이었다.

“페드로가 노예들은 마음껏 부려먹어도 좋다고 했네. 비록 말은 통하지 않겠지만 그 작물을 땅에 심어야 한다고 이미 명령했다고 하더군. 잔뜩 겁을 줬으니 반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네.”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다카노부와 페드로에게 감사 인사를 하자 다카노부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장군과 나는 이제 가족이 아닌가. 별것 아닌 일로 신경 쓸 필요 없네. 페드로에게도 잘 말해 두었으니 그 작물이 더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만 하시게. 그 작물 외에 장군이 부탁했던 다른 작물들도 페드로에게 부탁해 두었네. 페드로도 알고 있는 작물이라고 하더군. 곧 구해줄 것이니 이제는 마음 놓으시게. 작물과 노예의 대금도 내가 페드로에게 지불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늘 피곤했을 테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게 나는 페드로와 함께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야 하니 말이야.”

헤이메를 맞이한 덕분인지 다카노부는 감자와 옥수수까지 구해주겠다고 했다.

고구마와 고구마 농사를 지을 노예를 구한 것만 해도 큰 성과인데 감자와 옥수수까지 구해주겠다니. 나는 다카노부와 페드로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했다.

인사를 마친 나는 하녀의 안내를 받으며 내실을 나왔다. 내실 밖으로 나와 안내된 곳에는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목욕통과 수건으로 쓰는 천, 그리고 갈아입을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녀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마친 나는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하녀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향했다. 방안에는 이미 요가 깔려 있었고 베개가 놓여 있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나를 안내한 하녀는 내게 절을 한 후 방문을 닫았고 나는 자리에 누웠다.

그동안 배 안에서만 지내다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자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쉽게 잠이 들것 같았다. 자리에 누워서 팔다리를 뻗으며 온몸의 관절의 움직임을 느끼던 나는 방문이 열리자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문밖에는 예상대로 마쓰라 헤이메가 서 있었다. 곱게 단장을 한 헤이메는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고 헤이메가 방 안에 들어오자 곧 방문이 닫혔다.

이미 이렇게까지 된 이상 다른 말은 필요가 없었다. 나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헤이메를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나는 이 시대의 기준으로 체격이 큰 편이다. 키도 175㎝ 이상에 어깨도 벌어져서 조선인치고는 키와 체격이 상당히 큰 편이었다.

그런 내가 16세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14세 이하로 보이는 헤이메를 껴안자 헤이메는 내 품 안에 완전히 들어왔다.

내가 헤이메를 껴안자 헤이메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나는 헤이메가 내 품 안에서 몸을 떠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에 나는 욕정보다는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나는 상관없다. 나는 너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너도 좋다고 했으니 나는 이제부터 너의 신랑이고 너는 이제부터 나의 신부이다. 앞으로는 내가 너를 보호하고 지켜줄 것이다.”

“장군님을 평생 서방님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군님.”

헤이메의 떨리는 음성을 들으며 나는 헤이메를 꼭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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