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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15화 (115/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15화

좌수사의 고민

헤이메와 밤을 보낸 나는 날이 밝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오늘 조선으로 돌아간다. 다음 달에나 히라도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다음 달에는 반드시 너를 조선으로 데려갈 것이니 너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

“장군님, 아니, 서방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항상 기다릴 것입니다.”

헤이메와 이별을 나눈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갤리온이 정박해 있는 부둣가로 돌아왔다. 부두에는 이미 다카노부의 부하들이 도착해 있었다. 내가 주문한 철과 구리 그리고 유황을 가지고 온 것이다.

부두에 쌓인 철괴와 구리괴의 수량과 무게를 확인한 나는 철과 구리 그리고 유황을 갤리온에 실을 것을 명령했고 화물을 모두 실은 후 곧바로 히라도항을 출발했다.

히라도를 출발한 갤리온은 후쿠에 섬 북쪽의 무인도로 향했고 무인도에서는 시마즈 도시히사와 시마즈의 무장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한 대로 장인들을 데려왔소. 모두 30명이오. 그리고 부탁한 무사들이오. 전부 52명이오.”

시마즈 도시히사의 말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도시히사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합의한 내용은 장인 30명과 무장 24명이 아니었습니까?”

도시히사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혼다 고로자에몬과 일부 무사들이 장군의 도움으로 몸을 피하는 데 성공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무사들이 예상외로 많이 지원했소. 나와 형님의 입장에서는 시마즈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무사들을 외면할 수도 없는 처지라.”

‘시마즈의 상황이 어지간히 안 좋은가 보군. 그래도 매번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지난번의 경우도 그렇고.’

북해도 정벌을 계획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용맹하고 실전 경험까지 풍부한 시마즈의 무사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쁘지 않았지만 매번 이렇게 약속을 어기는 것은 곤란했다.

나는 일부러 도시히사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내가 무사들을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하지 않자 도시히사는 다급한 표정으로 나에게 간청했다.

“이 장군, 내 멋대로 약속을 어겨서 미안하지만 저들을 받아주시오. 이미 사츠마에서의 모든 기반을 버리고 온 사람들이오. 이 장군이 받아주지 않으면 저들은 갈 곳이 없소이다.”

“장인들과 무사들이 82명이면 그 가족들까지 전부 300명은 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저라도 저만한 인원을 한 번에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대답에 시마즈 도시히사는 사정을 이어갔다.

“정말로 미안하게 됐소.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오. 다시는 이런 곤란한 부탁은 하지 않을 것이오.”

“좋습니다. 이왕에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니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 번뿐입니다. 매번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정말 고맙소. 그리고 미안하오. 이 장군.”

시마즈 도시히사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시마즈의 장인들과 무장들을 배에 태울 것을 명령한 후 도시히사에게 약속한 은 100냥을 지불했다. 도시히사에게 은을 지불하며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히데요시가 도시히사 공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시히사 공께서도 힘들어지시면 조선으로 오십시오. 제가 도시히사 공을 보호해 드릴 것입니다.”

뜻밖의 제안에 도시히사는 놀란 표정을 대답했다.

“정말로 고맙소. 이 장군. 내 이 장군의 호위를 결코 잊지 않겠소이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시마즈의 실질적인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사의 친동생으로 시마즈 가문에서의 위상도 높을 뿐만 아니라 시마즈가가 규슈 북부로 진군하던 당시 전략을 세웠을 정도로 지략이 대단한 인물이며 검술 실력과 전투력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다.

히데요시가 시마즈를 압박하는 상황을 이용해 시마즈 도시히사를 영입하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도시히사에게 도피처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시마즈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갤리온에 탑승한 후 나는 도시히사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갤리온에 탑승했다. 내가 탑승하자 갤리온은 좌수영을 향해 돛을 펼쳤다.

좌수영으로 돌아온 나는 갤리온에서 내리기 무섭게 철과 구리와 유황을 돌산도의 창고로 옮길 것을 명령한 후 판옥선을 건조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대목의 지휘 아래 장인들과 병사들은 나무를 다듬어 만든 판자를 연결해 나무못을 박아 전선을 건조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좌수사 영감.”

나를 발견한 대목이 나에게 인사를 하자. 대목에게 작업 지시를 받고 있던 장인들도 일제히 허리를 숙여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장인들의 인사를 받으며 대목을 불렀다.

“대목.”

“말씀하시지요. 영감.”

“건조하고 있는 판옥선이 완성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빠르면 이번 달 안에 끝날 것 같습니다.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는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빨리.’

예정보다 빠른 대답에 나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물었다.

“판옥선 4척을 새로 건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달 안에 일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내 질문에 대목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전선들을 조사해 본 결과 4척 중 1척은 판자만 몇 개 갈아내고 보수하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수리가 필요한 전선은 미리 수리를 끝내고 좌수영의 포구에 정박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수리가 끝난 1척을 제외하고 3척을 건조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전선을 건조할 목재가 준비되어 있어서 작업 속도가 빨랐습니다. 더구나 판옥선은 저희가 이미 여러 번 만들었던 전선이라 작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고 일손도 부족하지 않으니 이번 달 안에 일을 끝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기간을 넉넉하게 잡았을 뿐입니다.”

정여립을 통해 영입한 장인들과 좌수영에서 전선을 건조하던 장인들은 그동안 판옥선을 비롯해 협선, 사후선 등 조선 수군이 사용하는 전선들을 여러 차례 건조했던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에게 재료와 노동력만 충분하다면 판옥선을 건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선과 병장기를 제작하는 데 병사들은 물론 좌수영의 관노들까지 동원하고 있었지. 그래서 일손이 부족하지 않았고. 평생 판옥선을 건조하던 전문가들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작업 속도가 빠르구나.’

예상보다 작업 속도가 빠른 것에 만족한 나는 다시 대목에게 물었다.

“내가 전에 명했던 첨저선을 건조하는 일은 얼마만큼 진행되었나?”

“남만선과 같은 구조로 만들라고 하셨던 전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영감께서 명하신 대로 남만선과 왜선의 구조를 참고해 도면을 그려 건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판옥선을 건조하는 데 모든 장인들과 장정들이 동원되고 있어서 지금은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판옥선의 건조에 우선순위가 밀려 첨저선의 작업을 멈췄다는 대답에 나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판옥선을 건조하는데 보름 정도 시간이 더 걸려도 상관없네. 첨저선을 건조하는 작업에도 장인들을 동원하게 첨저선이 제대로 바다를 달릴 수 있는지 확인한 후 첨저선을 추가로 건조할지를 결정할 것이니. 건조하던 첨저선을 우선 완성시키도록 하게.”

“장인들이 손에 익숙한 판옥선을 건조하는 일을 먼저 끝낸 후 천천히 첨저형 전선을 건조할 계획이었지만 좌수사 영감의 명대로 내일부터 첨저형 전선을 건조하는 일에 장인들과 장정들을 동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목의 대답에 만족한 나는 첨저선의 완성 시기를 물었다.

“건조 중이던 첨저선은 언제쯤 완성될 것 같은가?”

“다음 달 안에는 건조가 끝날 것 같습니다.”

“만약에 같은 첨저선을 다시 건조하라고 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내 질문에 대목은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하더니 필요한 기간을 대답했다. 대목의 대답을 들은 나는 좌수영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

대목에게 작업을 서두를 것을 당부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시간이 너무 부족해. 나 혼자만 고민해서는 방법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의논할 상대가 필요하다.’

좌수영으로 돌아온 나는 고민 끝에 정옥남에게 서신을 보내 정여립에게 서신을 전해줄 것을 부탁하는 한편 좌수영에서 복무 중인 대동계원의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알렸다.

‘이순신 장군, 이억기 장군, 김시민 장군과 상의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구나. 그 3명의 명장에게 북해도 정벌 계획을 털어놓고 상의할 수 있으면 좋은 방법이 나올 것 같은데.’

그들은 물론 조선인 중에서 안심하고 이 일을 상의할 사람은 정여립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하지만 정여립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고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니 나는 정여립에게서 해결책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

‘정옥남에게 서신이 전달되는 데 이틀은 걸릴 것이고 정여립은 강릉에 있을 테니. 정여립이 서신을 받고 좌수영으로 오기까지 열흘은 걸리겠구나. 마음 편하게 먹고 기다리자.’

서신을 보낸 후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좌수영의 공무를 보며 전선의 건조와 무기의 제작을 감독했고 시마즈 출신 장인들에게 화승총의 제작을 지시했다.

이번에 새로 돌산도에 도착한 왜인들은 사화동과 항왜들의 도움을 받아 돌산도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7일 후.

“탕.” “탕.” “탕.”

사츠마 출신 장인들이 돌산도의 세운 공방에서 화승총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공방에서 제작한 화승총을 직접 장전해 시험 발사한 나는 화승총의 성능에 만족했다.

“정말로 수고가 많았다. 잘 만들었구나.”

내가 직접 일본어로 칭찬하자 장인들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장인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다구치 야스로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늦었다고 꾸짖지 않으시고 칭찬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장군님. 철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공방을 꾸미고 도구를 갖추는 데 시간이 걸려 이제야 철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장군님.”

“아니다. 충분히 잘했다. 수고가 많았어. 그런데 내가 원하는 형태로도 철포를 만들 수 있겠느냐?”

내 질문에 다구치 야스로는 장인의 자부심을 숨기지 않으며 대답했다.

“어떤 형태로 만들기를 원하시는지 보여주십시오. 장군님. 장군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야스로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나는 준비해 간 그림을 야스로에게 내밀었다. 내가 그린 그림은 야스로와 장인들이 만든 화승총과는 형태가 약간 달랐다.

우선 사수의 어깨에 대고 화승총을 고정시킬 수 있도록 개머리판이 달려 있었고 총구 부위에는 가늠쇠가, 그리고 총열에는 가늠좌가 붙어 있었다.

이 당시 왜군이 사용하던 조총(화승총)에는 개머리판과 가늠좌가 없었고 가늠쇠도 없는 조총도 존재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개머리판과 가늠좌를 부착하고 가늠쇠의 크기를 키운 것만으로도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이런 형태로 만들 수 있겠느냐?”

그림을 바라본 야스로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나는 그림에서 개머리판을 가리키며 용도를 설명했다.

“병사는 이 부위를 어깨에 대고 철포를 방포할 것이다. 이 부분(가늠좌)과 이 부분(가늠쇠)은 일직선이 되어야 하며 병사가 이 가늠좌와 가늠쇠를 바라보며 목표를 조준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늠좌는 따로 제작해서 총열에 부착하는 형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개머리판과 가늠좌의 용도를 이해한 야스로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10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장군님.”

“좋다. 시간은 넉넉하게 줄 것이다. 그럼 기대하고 있겠다.”

“장군님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다구치 야스로의 대답을 들은 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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