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16화
고정관념
화승총을 제작하는 공방을 비롯해 돌산도의 시설들을 둘러보고 좌수영으로 돌아온 나는 반가운 손님을 맞이했다.
“안녕하셨소이까. 좌수사 영감.”
“죽도 선생. 안녕하셨습니까.”
정옥남에게 내가 보낸 서신을 받은 정여립이 전라좌수영으로 찾아온 것이다.
이번에도 전라좌수군을 위로하고 격려한다는 명목으로 전라좌수영을 방문한 정여립은 쌀 500섬과 보리 1,000섬 그리고 소 10마리와 돼지 30마리를 좌수영으로 가지고 왔다.
정여립이 가져온 곡식을 풀고 돼지를 잡아 좌수영의 장졸들을 배불리 먹일 것을 명령한 나는 정여립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의 경과를 나누었다.
“영감께 말씀드렸던 대로 울릉도에 노비들과 장정들을 보냈습니다. 노비와 장정들을 100명 이상 보냈고 식량과 연장들도 충분히 보냈으니 울릉도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으실 것입니다.”
“울릉도에도 직접 가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장정들을 울릉도로 보내면서 저도 직접 울릉도에 다녀왔습니다. 울릉도를 직접 보니 좌수사 영감의 선견지명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울릉도가 인상 깊으셨나 봅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으로 보였지만. 울릉도에 도착해 보니 절대 작은 섬이 아니었습니다. 숲이 울창한 것으로 보아 물도 풍부한 것 같았고, 마음먹고 개간하면 천여 명의 사람들도 능히 부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여립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울릉도를 장악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을 듣자니 좌수영에서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풀리고 있는 것 같은데 좌수사 영감께서 이 사람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여립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묻자 나는 좌수영에서 전선과 무기 그리고 화약을 제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여립에게 설명하고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정여립에게 털어놓았다.
“병장기와 화약을 제조하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달 안에 좌수영에서 필요한 병장기를 제작할 것이고 다음 달부터는 동해도 정벌에 사용할 병장기들을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병장기와 화약은 올해 안에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전선과 시간입니다. 전선의 건조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올해 안에 필요한 만큼의 전선을 건조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 설명을 들은 정여립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위국(일본)이 군사를 일으키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올해 안에 준비를 마치셔야 하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정여립의 질문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가능하면 올해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년 봄이 되기 전에 동해도(북해도)로 출항하려고 합니다. 실은 지난번에 입궐하였을 때 주상전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년에는 북방의 육진으로 올려보내겠다고 말입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선조의 성격을 알고 있는 정여립은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우선 올해 안에 준비를 마치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여립은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좌수사께서는 몇 척의 전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전선을 건조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것입니까?”
“최소한 12척 전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선은 전투에도 쓰이겠지만 돌산도에 거주하고 있는 2,000여 명의 항왜들을 동해도로 이주시키기 위해서도 그 정도의 전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미 남만선 3척을 보유하고 있고 다음 달 안에는 건조 중인 첨저선이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동해도로 진군하기 전에 최소한 8척의 전선을 더 건조해야 하는데 건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문제입니다.”
판옥선과 시험 제작품인 첨저선을 완성시킨 후 새로운 첨저형 전선을 새로 건조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냐는 질문에 대목은 충분한 양의 목재와 못이 준비되어 있고 일손만 부족하지 않다면 두 달 안에 시험 제작품과 같은 첨저형 전선을 건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지금 건조하고 있는 첨저선이 시험 항해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런 전선을 건조하는 데 두 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현재 좌수영의 장인들과 병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두 달 동안 건조할 수 있는 전선의 수는 4척이 한계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정여립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남만선을 포함해 다음 달까지 동원할 수 있는 전선이 4척에 11월까지 4척이 더 확보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올해 건조할 수 있는 전선은 그 4척뿐입니다. 겨울에 장인들과 병사들은 전선 건조에 동원하면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할 것이 분명하니 내년 봄이 되기 전에는 다른 전선을 더 건조하기 어렵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정여립은 일이 급하다는 것을 실감했는지 지원을 약속했다.
“그럼 서둘러야겠습니다. 우선은 저희 계원들과 노비들을 좌수영으로 보내겠습니다. 일손이 많으면 아무래도 전선을 건조하는 기간이 단축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전선을 건조한 경험이 있는 장인들을 더 구해보겠습니다. 장인들을 바로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경험이 풍부한 장인들이 더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여립의 대답을 들은 나는 정여립의 정성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죽도 선생. 정말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좌수사 영감. 이번 일은 영감과 저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선을 지키기 위한 일이니 저에게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정여립의 대답을 들으니 더 고마웠고 감사했다.
정여립이 장정들과 장인들을 보내준다고 해도 올해 안에 8척의 첨저형 전선을 건조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지만 한두 척이라도 더 건조할 수 있다면 그것도 없는 것 보다는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북해도의 정벌과 항왜들의 이주를 위해 최소한 12척 이상의 첨저형 전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북해도의 오시마 반도에 자리 잡은 왜인들을 정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혼슈에서 밀려 북해도까지 올라간 놈들이니 전국시대를 거친 다른 왜군들과는 달리 전투 경험도 별로 없을 것이고 대포도 보유하고 있지 않을 테니 고토열도 정벌보다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오시마 반도를 점령한 후 좌수영에서 북해도로 이주하는 과정인데…… 좌수영에서 제작한 병장기와 화약 그리고 식량과 도구들을 좌수영에서 북해도까지 수송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무엇보다 항왜들을 이주시키는 것이 큰일이다…….’
돌산도에서 북해도로 이주해야 하는 항왜들의 수가 2,000명이 넘었으니 2,000여 명의 승객과 그들이 북해도까지 항해하는 동안 필요한 식량과 식수 그리고 항왜들이 가져갈 살림살이까지.
수송할 것들을 생각하면 12척의 전선도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정여립의 도움으로 전선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될 것으로 보이자 나는 다른 걱정거리도 정여립과 상의했다.
“죽도 선생 제가 사실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또 있다고 하자 정여립은 나를 불쌍히 바라보며 물었다.
“좌수사 영감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다른 문제는 무엇이십니까?”
“좌수영에서 출정하기 전에 제가 직접 동해도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동해도를 정벌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면서 동해도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시간이 문제입니다.”
역시 정여립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바로 알아들었다.
“동해도는 울릉도 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좌수사 영감께서 다녀오시려면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좌수사 영감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좌수영을 비우실 수는 없으시겠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북해도를 정찰하는 것이었다. 도자기의 판매와 구리의 구매를 위해 히라도에 다녀오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북해도를 정찰하고 오겠다고 좌수영을 비우면 난리가 날 것이고 선조의 귀에도 내가 좌수영을 비우고 밖으로 돌아다닌다는 소식이 들어갈 것이다.
나는 북해도로 출병하기 전에 선조에게 호출당해 한성으로 올라가거나 좌수영에서 금부도사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북해도 정찰을 다른 장수에게 맡기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다녀오기 어렵다고 정찰 한번 안 하고 북해도로 출병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고토열도와 후쿠에 섬은 사화동과 항왜들을 통해 얻은 정보가 있었지만…… 북해도는 상황이 달라.’
이 상황을 이해한 정여립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금방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정말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시간과 거리의 문제이니 말입니다.”
“그렇죠. 어려운 문제가 맞습니다. 거리도 멀고 시간도 없으니 말입니다. 좌수사 자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상은 하루도 마음대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자리입니다.”
“좌수사 영감뿐만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관직에 있는 동안은 하루도 마음 편히 쉬기 어려운 법입니다. 저처럼 관직을 내려놓으면 모를까 말입니다.”
정여립의 말에 나는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죽도 선생께서 울릉도를 다녀오신 것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한가해지면 여행 삼아 다녀오고 싶습니다.”
“좌수사 영감께서도 관직을 내려놓으시면 울릉도에 다녀오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동해도를 정벌하러 가시는 기에 울릉도에 들리시지 않겠습니까.”
정여립의 대답을 듣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북해도를 정벌하는 길에 울릉도를 지나가야 하지.’
내 표정을 본 정여립도 생각나는 것이 있었는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좌수사 영감. 전선이 부족한 문제와 동해도를 정탐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도 선생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간단한 방법이 있었는데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여립에게 대답하며 나 스스로 놀랐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나?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었다니. 어차피 좌수군을 이끌고 북해도를 정벌할 것도 아닌데 왜 북해도를 출병하는 날 좌수영을 떠나겠다고 생각했지? 올해까지 준비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울릉도로 이주하면 그만인데.’
울릉도로 기반을 옮겨놓고 울릉도에서 북해도로 출병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고민거리가 해결된다.
좌수영에서 항왜들을 울릉도로 이주시키는 것도 두세 차례에 걸쳐 나눠서 이주시킨다면 전선이 부족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고, 좌수영을 떠난 후 울릉도로 기반을 옮긴 다음에는 내가 북해도로 정찰을 떠나는 것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여립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나는 정여립에게 질문을 던졌다.
“울릉도에 2,000명 이상의 여인과 아이들이 한 달간 지낼 수 있는 초가집을 짓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실 것 같으십니까?”
내 질문에 정여립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여인과 아이들이 2,000명이라면 장정들까지 3,000명 이상이 울릉도에서 지낼 것으로 예상해야 하겠습니다. 그 정도 인원이 지내려면 집뿐만 아니라 식수도 중요하니 샘물을 찾던지 우물도 파야 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울릉도에 장정들을 더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올해 11월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죽도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