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17화
사냥개
정여립이 나와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간 날로부터 6일 후 좌수영에 한 무리의 장인들과 장정들이 찾아왔다.
바로 정여립이 보낸 장인들과 노비들이었다.
장인들과 장정들은 곧바로 전선을 건조하는 작업에 동원되었고 일손이 많아지자 확실히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좌수영에서 무기와 화약을 제조하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전선을 건조하는 작업 역시 속도를 내자,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평소처럼 좌수영의 공무를 보던 나는 오전 공무가 끝나고 정오가 가까워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좌수사 영감. 이언세가 좌수사 영감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래. 마침 점심을 먹으려던 참인데 잘됐다.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라.”
“예. 영감.”
이언세는 녹도군의 진무로 녹도진 소속 아전이었지만 이제는 좌수영에 머무르면서 내가 내리는 명령을 듣고 있었다. 내 직속 부하인 셈이었다.
“영감. 부르셨습니까?”
“그래 이진무 함께 밥이나 먹자고 불렀네. 곧 상이 나올 것이니 자리에 앉게.”
이언세는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후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밥 먹자고 자신을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언세도 알고 있었다.
“밥상이 나오기 전에 간단히 묻겠네.”
“말씀하십시오. 영감.”
“좌수영과 우수영에서 수군역을 대립하는 장정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이언세는 왜 그런 것을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좌수영에서 대립을 하는 장정들의 수가 300명은 넘을 것입니다. 우수영에서 대립하는 자들의 수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우수영의 수군진이 좌수영의 2배가 넘으니 우수영에서 대립을 하는 자들도 좌수영에서 대립을 하는 자들보다 적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영감.”
이언세의 대답을 들은 나는 이언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대립을 하는 자들 중에 안면이 있는 자가 있는가?”
“아무래도 자주 수군진을 드나드는 자들은 안면이 있사옵니다. 대립을 하지 않으면 진의 병사수를 맞추기 어렵다 보니 만호와 첨사 나리도 대립을 눈감아 주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립을 하는 자들 중에서 젊고 힘 좀 쓰는 자들이 있는가?”
“예. 대립을 하는 자들이 대부분 다른 사람들보다는 힘을 쓰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군역을 자주 겪은 자들이다 보니 말귀도 잘 알아듣고 눈치도 빠른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언세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눈치도 빠르고 말도 잘 듣고 힘도 잘 쓴다. 아주 좋아.’
“대립을 하는 자들 중에 우두머리가 있는가? 우두머리라고 나서지는 않아도 대립하는 자들을 잘 알고 대립을 하는 다른 이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는가?”
이번에도 정여립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고천봉이라고 나이는 많지 않지만 언행이 신중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항상 사람들과 어울려 다닙니다. 대립을 하는 이들 중에서 우두머리의 역할을 감당할 만한 사람입니다.”
“좋아 그럼 내일 저녁이라도 당장 고천봉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게.”
“고천봉을 직접 만나시려고 하십니까?”
“그래 고천봉에게 시킬 일이 있으니 빠른 시간 안에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게.”
“알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 * *
이언세에게 고천봉과의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명령한 후 함께 점심을 먹은 나는 이언세와 김개동을 거느리고 돌산도로 향했다.
좌수군이 사용할 창, 검, 활, 총통 등의 병장기는 좌수영에서 제작하고 있었고 판옥선도 좌수영에서 건조하고 있었지만, 돌산도에는 염전과 염초 밭이 있었고 화승총도 돌산도에서 제작하고 있었기에 나는 거의 매일 돌산도를 드나들었다.
돌산도에 도착한 나는 염전과 염초 밭을 둘러본 후 시마즈 출신 무장들이 지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혼다 고로자에몬을 비롯한 시마즈의 무장들은 돌산도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돌산도의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고, 나는 이들을 염전과 농사에 동원하기보다는 검술과 사격술을 연마할 것을 명령했다.
“오셨습니까. 장군님.”
“장군님.”
나를 발견한 혼다 고로자에몬은 허리를 숙이며 나에게 인사했고 다른 무장들도 그 뒤를 이어 허리를 숙이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잘 지내고 있는가?”
“장군님 덕분에 부족한 것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도록 하라. 구할 수 있는 것은 구해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무장들과 인사말을 나눈 후 혼다 고로자에몬을 따로 불러낸 나는 고로자에몬에게 조용히 물었다.
“사쓰마의 시마즈가나 시마즈 도시히사공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는가?”
“아닙니다. 장군님. 조선에 있는 저희가 어떻게 사쓰마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겠습니까?”
혼다 고로자에몬은 내가 자신들을 의심하는 것을 생각했는지 시마즈와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고 펄쩍 뛰면서 대답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장군님.”
혼다 고로자에몬은 내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고로자에몬 자네는 히데요시가 노리고 있는 인물이니 위험할 것 같고. 돌산도에 있는 무장들 중에서 히데요시나 다른 영주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히라도에서 사쓰마까지 서신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나?”
내 질문에 혼다 고로자에몬은 자존심이 상한 듯이 대답했다.
“히라도에서 사쓰마로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쓰마와 히라도 간에 교역이 있으니 히라도에서 사쓰마로 돌아가는 상선에 숨어서 돌아가는 방법도 있고, 상선에 탑승하는 것이 어렵다면 작은 어선이나 조각배를 타고 규슈 남쪽 바다로 가서 밤에 사쓰마에 상륙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좋아. 그럼 사쓰마에 몰래 상륙할 수 있는 무장을 추천해 주게.”
내 요구에 혼다 고로자에몬은 무장들을 바라보더니 그중에 하나를 가리켰다.
“사쓰마에 남몰래 상륙하는 것은 저희 중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 친구라면 장군님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인가 불러오게.”
“예. 장군. 오타니 요시아키.”
고로자에몬이 무장의 이름을 부르자 이름이 불린 무장이 고로자에몬에게 다가왔다.
“이 친구의 이름은 오타니 요시아키라고 합니다.”
고로자에몬이 자신을 소개하자 오타니 요시아키는 나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입도 무겁고 힘도 좋습니다. 이곳에서는 저 다음으로 칼을 잘 쓰는 친구입니다.”
과연 요시아키는 다른 무장들에 비해 키는 크지 않아 보였지만 다부진 체격의 무장이었다.
“좋아. 마음에 들어.”
오타니 요시아키가 마음에 든 나는 요시아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음 달에 나와 함께 히라도에 갈 것이다. 시마즈 도시히사 공에게 보내는 서신을 줄 것이니 혼자서 히라도에서 사쓰마까지 돌아가 도시히사 공에게 서신을 전달할 수 있겠느냐? 물론 히데요시나 다른 영주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히 돌아가야 한다.”
“무사는 오로지 주군의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장군님께서 서신을 전하라 명하시면 소인의 목숨이 남아 있는 한 서신을 전달할 것입니다.”
서신 하나 전달하는 일에 목숨까지 걸겠다는 요시아키의 대답에 살짝 놀랐지만 솔직히 나쁘지는 않았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인가? 목숨을 걸겠다는 말부터 나오다니. 그래도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 이런 대답이 나쁘지는 않네.’
요시아키의 대답이 마음에 든 나는 요시아키를 격려하며 대답했다.
“서신 하나 전달하는 일로 죽어서야 되겠느냐. 앞으로 너희와 내가 함께할 일이 많으니 무조건 살아서 돌아 오거라. 무사히 돌아오는 것도 전공을 세운 것으로 여길 것이다.”
오타니 요시아키를 격려한 후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기와 화약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 같고. 전선이 부족한 것도 항왜들을 나눠서 수송하면 해결될 것 같으니…… 이제는 병력을 확보해야지.’
북해도를 정벌하는데 전라좌수군 병력을 동원할 수는 없었으니 수군역을 대립해 주는 장정들과 대동계원들 그리고 항왜들을 훈련시켜 북해도 정벌에 동원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여립은 대동계원에서 300명의 장정을 병력으로 동원할 수 있다고 했고, 좌수영에서 군역을 대립하는 장정의 수가 300명에 달한다고 했으니.
대립하는 자들의 절반만 고용할 수 있어도 450명. 대립하는 자들을 전부 고용하면 600명의 병력이 확보되는 셈이었다.
‘북해도 오시마 반도의 왜인들을 제압하고 오시마 반도를 점령해야 하니 병력이 최소한 1,000명은 있어야 해. 군역을 대립하는 자들은 면포를 주고 고용할 생각이니 최대한 많이 모아보자. 어차피 돈 때문에 대립을 하는 자들이니 보수만 넉넉히 주면 300명을 전부 고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항왜들 가운데서 200명 정도를 선발해 군사 훈련을 시키고 시마즈 출신 무장들도 있으니 병력 1,000명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야.’
오타니 요시아키를 통해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도 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서신의 내용은 시마즈의 무장들과 장정들을 최대 100명까지 더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시마즈는 지난 전쟁 이후 영토가 급감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고, 시마즈의 무장들 가운데는 시마즈에게 하사받은 봉토(封土)를 잃어 당장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시마즈의 무장들은 용맹하고 충성스럽기로 유명하지. 더구나 지금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히데요시에 대한 원한이 굉장할 거야. 지금 같은 상황이면 배고픈 늑대가 된 시마즈의 무장들을 히데요시를 사냥하는 사냥개로 동원할 수 있지.’
* * *
같은 시간 정여립은 강릉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들 정옥남에게 전라좌수영과 좌수사를 항상 주의 깊게 살필 것을 명했다.
“알겠느냐. 항상 좌수영과 좌수사를 주시해야 할 것이며 좌수사가 요청하는 것은 가능한 한 들어주도록 하여라. 그리고 좌수사가 나에게 서신이나 인편으로 연락해 오면 너는 즉시 내가 있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야 할 것이다. 나는 강릉으로 올라가는 즉시 이곳으로 사람을 보내 내가 지내고 있는 거처를 알릴 것이다. 그러니 서신이나 인편이 오는 즉시 내 거처로 사람을 보내 나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특히 좌수사가 요청하는 대로 재물이나 곡식을 보내주는 것은 상관없지만 좌수사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좌수사를 소개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시나 좌수사가 다른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더라도 바로 수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아버님.”
정옥남에게 단단히 당부를 한 정여립은 울릉도에 장정들과 식량을 더 보내기 위해 강릉으로 향했다.
정여립이 말안장에 앉자 정여립의 노비가 말의 고삐를 잡고 말을 끌었고 10여 명의 장정이 등짐을 지고 정여립의 뒤를 따라 걸었다.
말 위에 앉은 정여립은 말이 걸을 때마다 몸이 흔들리는 진동을 느끼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좌수사가 동해도를 점령하고 한국을 세우는 데 성공해도 한국은 결코 조선의 영토가 되지 못한다. 울릉도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조선이 한국을 관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좌수사가 한국을 조선에 받치겠다고 해도 조선은 한국을 통치할 능력이 없어. 좌수사가 과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좌수사가 동해도를 점령하려는 목적이 과연 왜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지키는 것뿐일까? 이것은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