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18화
대립
전라좌수영에서 대립으로 복무를 하고 있던 고천봉은 이언세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언세를 찾아갔다.
“진무 나리. 소인 고천봉이옵니다. 소인을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언세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천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자네를 찾았지. 지금 바로 나를 따라오게.”
이언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따라올 것을 재촉하자 고천봉은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르고 이언세를 따라갔다.
이언세가 발걸음을 멈춘 것은 좌수군 병사들의 병장기를 제작하고 있는 대장간 앞이었고, 그곳에는 전라좌수사 이대원 영감이 새로 제작된 병장기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좌수사 영감. 고천봉을 데려왔사옵니다.”
“그래 수고가 많았네.”
영문도 모르고 이언세는 따라온 고천봉은 전라좌수사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땅에 엎드렸다.
“소인 고천봉. 좌수사 영감을 뵙습니다.”
“자네와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조용히 따라오게.”
고천봉은 좌수사를 따라 대장간 옆에 있는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좌수영의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는 대장장이들이 생활하는 초가집 안으로 들어간 나는 고천봉이 방 안으로 따라 들어오자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앉게.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네.”
고천봉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고 나는 고천봉에게 물었다.
“자네가 좌수영에서 군역을 대립하는 자들을 잘 알고 있다고 들었네. 사실인가?”
고천봉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좌수사 영감. 대립으로 입에 풀칠을 하다 보니 대립을 하는 이들을 여럿 알고 있습니다.”
“대립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고 대답해도 좋아. 좌수영에서 남의 군역을 대립하는 자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는가?”
대립을 탓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좌수사 앞에서 대립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거북한지 고천봉은 계속 내 눈치를 살피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적어도 300명은 넘을 것이옵니다. 대립을 연이어 하는 자들도 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달씩 대립을 하는 이들도 있어서 정확한 숫자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럼. 생업으로 대립을 하는 자들은 몇이나 되는가? 대립을 연이어서 하는 자들 말일세.”
네 질문은 고천봉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200명은 넘을 것입니다.”
‘200명이라…… 그럼 생각보다 수가 적은데.’
대립을 하는 자들의 수가 기대했던 것보다 적자. 나는 고천봉에게 다시 물었다.
“우수영에서 군역을 대립하는 사람들과도 친분이 있는가?”
“예. 좌수사 영감. 우수영에서 대립을 하는 사람들 중에 같은 마을에서 자란 사람들도 있기에 친분이 있는 사람도 몇 명 있습니다.”
‘그럼 잘됐다.’
고천봉의 대답을 듣고 잘됐다고 생각한 나는 고천봉에게 용건을 말했다.
“자네는 내 말을 잘 듣고 좌수영과 우수영에서 대립을 하는 자들에게 전하도록 하게. 알겠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좌수사 영감.”
“추석이 지난 후 좌수영에서 대립으로 복무할 자들을 모집할 것이네. 정확히는 좌수사인 내가 대립으로 복무할 자들을 모집할 것이야.”
좌수사가 직접 대립을 할 자들을 모집하겠다는 말에 고천봉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고천봉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대립을 하던 자들이 아니라도 좋아. 복무할 자들을 모집하는 날 모인 장정들 중에서 건강하고 힘이 좋고 몸이 날쌘 자들로 골라서 선발할 것이고, 최소한 300명을 선발할 생각이네. 선발된 장정들에게는 면포 1필씩을 지급할 것이야.”
면포를 지급한다는 말에 고천봉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16세기 조선에는 아직 화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쌀과 면포가 화폐를 대신해 사용되고 있었다.
면포 1필의 쌀 4말에서 5말의 가치가 있었으니 대립으로 복무하는 장정들에게 면포 1필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선발된 장정들에게는 일 인당 면포 1필씩 지급할 것이다. 장정들은 한 달간 좌수영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훈련을 받을 것이고, 훈련은 좌수영의 군관들과 아전들이 시킬 것이니. 좌수영과 우수영에서 복무했던 이들이라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네. 훈련을 받는 한 달간의 언행과 훈련에 임하는 태도를 봐서 훈련을 견디지 못하거나 태도가 불량한 자들은 그대로 집에 돌려보낼 것이고, 명령에 잘 따르고 훈련을 잘 견딘 장정들은 최소한 다섯 달 동안 내가 고용할 것이야.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장정들에게 지급한 면포를 뺏기는 일은 없을 것이야.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면포 1필씩은 가져가게 된다는 말이지. 그리고 나에게 고용된 장정들은 달마다 면포 1필씩 지급받게 될 것이고, 고용 기간이 끝날 때까지 무사히 복무한 장정들에게는 특별히 면포 3필씩을 지급할 것이네.”
고천봉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좌수사 영감 그것이 참이십니까? 매달 면포 1필에 복무가 끝날 때는 면포 3필을 주신다는 말씀 말입니다.”
“내가 자네에게 장난을 치겠는가. 전부 사실이야. 복무 기간이 다섯 달 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지만. 복무 기간에는 매달 면포 1필씩을 지급할 것이야. 다섯 달만 복무한다고 해도 면포 9필을 받게 되는 것이지.”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고천봉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 인사를 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실소를 지으며 고천봉에게 말했다.
“자네가 할 일인 내가 한 말을 장정들에게 전달해서 장정들을 모집하는 날 최대한 많은 장정이 좌수영에 모이게 하는 것이네. 할 수 있겠는가?”
“예. 할 수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좌수사 영감.”
고천봉은 열정적으로 대답했고 나는 그런 고천봉에게 선물을 주었다.
“밖으로 나가면 이진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이진무에게 말해 놓았으니 면포 1필을 받아가게. 내가 주었다는 말을 다른 병사들에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소인. 그 정도 눈치는 있는 놈입니다. 아무 염려 마십시오. 좌수사 영감.”
고천봉 다시 한번 내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고천봉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직업적으로 대립을 하는 자들의 수가 생각보다 적어서 걱정했었는데…… 고천봉의 반응을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저 모습을 보니 좌수영, 우수영 할 것 없이 대립을 하는 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니며 떠들고 다닐 것 같아.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예상 인원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문제였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도자기와 찻잔을 판매해 벌어들인 돈도 있었고, 당장 필요한 식량과 면포는 정여립을 통해서도 구할 수 있었으니 기왕이면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기대했다.
‘아예 1,000명 이상이 모여도 좋겠다. 어차피 쓸 만한 사람들만 골라서 선발할 것이고, 장정들만 충분하다면 모집 병력을 300명 이상으로 늘리는 것도 괜찮고.’
대립군 출신 장정들로 300명의 병력을 확보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고천봉의 반응을 보니 모집에 지원할 장정들이 수가 예상보다 많을 것 같았다.
건강한 장정들만 충분하다면 대립군 출신 병력을 예상 인원보다 더 많이 확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립군 출신이건 대동계 출신이건, 조선인 병사들을 가족들과 함께 북해도에 정착시킬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오시만 반도를 정벌한 이후에도 오시마 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은 그대로 북해도에 남아 있을 것이고 여기에 2,000명이 넘는 항왜들을 이주시킬 계획이니 북해도를 내가 통치한다고 해도 인구의 대부분이 일본인들인 셈이야. 물론 항왜들과 시마즈 출신 무장들은 나에게 충성하겠지만 조선인들을 정착시켜 어느 정도 인구 비율을 맞추는 것이 좋겠어.’
북해도에 조선인들을 이주시킬 생각은 북해도 정벌 계획을 처음 생각했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인들을 북해도에 정착시킬 뚜렷한 방법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정여립도 대동계원들을 북해도 정벌에 동원하는 것은 찬성했지만 병사로 동원된 대동계원들이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돌려보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대동계원들을 북해도에 정착시키는 것은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정여립은 북해도를 점령한 후 조선인 노비들을 북해도로 이주시키자고 했지. 조선인을 북해도에 정착시키는 것만 생각하자면 가장 간단한 방법이긴 한데…….’
아직 21세기 한국인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는 노비들을 북해도에 이주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는 것만 따지면 노비들도 상관없기는 한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 대동계원들만 적극적으로 이주를 장려해도 괜찮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나는 대동계에 대한 기대가 컸다. 대동계는 신분과 직업에 상관없이 정여립을 주축으로 모인 조직이다.
즉,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특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정여립의 영향력이 강한 조직이란 점에서 나는 대동계에서 북해도에 필요한 장인들과 인재들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정여립은 대동계원들을 북해도에 정착시키는 일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 나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차라리 정여립에게 일본의 지금 모습을 보여줄까.’
정여립은 임진왜란을 일어날 것을 믿고 나는 지원해 주고 있었지만 직접 일본의 상황을 목격한 적은 없었다.
나는 일본에 지금 얼마나 부강한지 일본이 조선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본이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면 북해도 정벌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실 것 같은데…… 대동계원들을 북해도에 정착시키는 일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 같고.’
고민 끝에 나는 정여립을 히라도에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 * *
정해년(1587년) 9월 05일
녹도만호 이순신은 전라좌수사 이대원이 자신을 좌수영으로 불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좌수사 영감이 나를? 무슨 일이지?’
이순신은 좌수사가 무슨 일로 부르는지는 몰랐지만, 좌수사가 부른다고 하니 일단 말을 달려 좌수영으로 향했다.
좌수영으로 찾아온 정옥남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던 나는 녹도만호 이순신이 좌수영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공. 녹도만호가 도착했다고 하니 이제 갑시다.”
“좌수사 영감.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디로 가자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보낸 서신을 받고 좌수영으로 찾아온 정옥남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랐다.
“정공. 본관이 정공의 부친이신 죽도 선생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계십니까?”
내 질문에 정옥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아버님께서도 좌수사 영감이 부탁하는 것은 가능한 들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본관이 죽도 선생과 무슨 일을 왜 준비하고 있는지도 아십니까?”
옥남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물으십니까?”
“그래서 오늘 정공을 초대했습니다. 정공에게 본관과 죽도 선생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왜 그런 일을 준비하게 되었는지 직접 보여드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