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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19화 (119/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19화

현실을 보여주자

정옥남, 이순신과 함께 돌산도에 도착한 나는 그들을 이끌고 갤리온에 올라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좌수사 영감.”

갤리온이 돛을 올리고 출항하려고 하자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던 이순신은 당황한 기색으로 나에게 물었다.

“이만호. 나는 자네의 상관이니 앞으로 닷새 동안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나를 따라주게. 녹도진의 공무는 걱정할 것 없어. 허원종에게 명령을 내려놓았으니 허 군관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야.”

내 대답을 들은 이순신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질문을 멈추지는 않았다.

“좌수사 영감. 묻지 말라고 하셨지만 하나만 묻겠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왜국의 평호도(平戶島)[히라도]로 가는 것이다. 왜 평호도로 가느냐는 묻는다면 대답하지 않겠네. 그것은 평호도에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야.”

왜국으로 간다는 말에 이순신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와 이순신이 나눈 대화를 들은 정옥남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런 정옥남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황급히 이를 악물며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원래는 정여립을 히라도에 데려가서 일본과 유럽 상인들이 얼마나 대규모로 무역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일본은 조선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작은 섬나라가 아닌 광업과 상업이 발달한 부유한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지만…… 강릉으로 올라간 정여립을 좌수영으로 불렀다가 울릉도에 항왜들을 수용할 준비가 늦어지면 큰일이란 말이야. 그래서 정여립 대신 정옥남을 불렀지 정옥남도 히라도를 보고 나면 깨닫는 것이 있겠지. 정옥남이 히라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정여립에게 알리지 않을 리가 없으니 정옥남에게 일본의 실상을 전해 들은 정여립도 한층 더 적극적으로 북해도 정벌을 지원할 거야.’

이순신을 데려온 것은 히라도에 가는 길에 정옥남을 데려갈 것을 결정한 후 생각한 일이었다.

‘기왕에 히라도에 가는 길이기도 하고 정옥남도 데려가는 김에 이순신 장군이나 이억기 장군에게도 히라도를 보여주고 싶었어. 일본이 조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유하고 20만 대군을 일으킬 수 있는 국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순신 장군도 한층 더 일본을 경계하게 될 거야.’

실제로 임진왜란 직전 조선에서도 왜국이 조선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순신, 이억기, 원균 등 함경도의 육진에서 활약했던 장수들을 남해안의 수군 지휘관으로 내려보내고 왜군이 조선에 상륙할 경우 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경상도 지역의 성들을 보수하려고 했던 것만 봐도 조선은 왜국과의 전쟁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대비는 충분하지 못했다.

조정은 물론 바다를 지키던 장수들도 왜군이 침략해 봤자 을묘왜변 수준이거나 그보다 약간 규모가 큰 정도의 왜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20만이 넘는 대군이 조선에 상륙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은 왜군이 쳐들어와도 기껏해야 왜선 100여 척에 왜사 1만 명 정도로 예상했겠지. 그 정도의 왜군이 조선에 상륙해도 한성으로 상경하기 전에 경상도에서 괴멸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고. 히데요시가 임진년으로부터 5년 전인 정해년에 20만 대군을 동원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리가 없고, 설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왜국을 바라보는 시야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

갤리온이 히라도로 향하는 동안 정옥남은 별말이 없었지만 이순신은 이언세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주로 이순신이 이언세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언세가 대답하는 것으로 보였다.

갤리온이 히라도에 가까워지자 나는 오타니 요시아키에게 서신을 맡겼다.

“이 서신을 도시히사 공에게 직접 드려야 한다. 서신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항구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입는 평상복 차림으로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었던 요시아키는 서신을 받아 가슴속에 품으며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심려를 놓으십시오. 장군. 제가 살아 있는 한 서신을 빼앗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요시아키에게 은화가 든 주머니를 내밀었다.

“은 50냥이다. 필요할 때 쓰도록 하라.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전공으로 여기겠다고 했다.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 오거라.”

“감사합니다. 장군.”

갤리온이 히라도 항에 상륙하기가 무섭게 오타니 요시아키는 배에서 내려 상선들이 정박해 있는 부두로 향했다.

부두에서 사쓰마로 향하는 상선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히라도에 도착한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서신을 보내 히라도에 도착한 것을 알리고 할 일이 있으니 자기와 다완을 판매한 후 방문하겠다고 알렸다.

‘다카노부를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헤이메를 데려와야 하지만 오늘은 할 일이 있지.’

다카노부에게 서신을 보낸 후 나는 이순신과 정옥남에게 옷을 갈아입을 것을 명령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조금만 참으시게. 이곳에서 조선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곤란하니 말이야.”

이순신은 왜인으로 위장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아 돌산도에서 만들어온 유럽식 복장을 준비해 왔다. 돌산도에 포로로 감금되어 있는 포르투갈 선원들의 의상을 본떠 만든 옷으로 위장을 위한 복장이었다.

정옥남은 완전히 포기했는지 순순히 내가 내민 옷을 입었고 이순신도 오랑캐의 옷을 입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상관인 내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김개동과 사화동을 거느리고 이순신과 정옥남 함께 항구로 내려온 나는 사화동을 통해 포르투갈에서 온 갤리온들이 정박해 있는 곳을 물어서 갤리온들이 정박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부두에는 얼핏 봐도 수십 척의 갤리온이 정박해 있었다.

부두 한쪽에는 갤리온에서 내리고 있는 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두에 쌓여 있는 상자들을 갤리온에 싣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생전 처음 보는 정옥남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항구와 갤리온들을 바라보았고, 이순신 역시 많이 놀란 표정으로 갤리온들을 바라보았다.

“이곳 평호도(平戶島)는 왜국에서 제일 큰 무역항이 아니다.”

갤리온을 바라보고 있던 이순신과 정옥남은 내가 한 말에 반응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국에는 이곳보다 더 큰 항구가 여럿 있다고 하더군. 그런데 제일 큰 항구도 아닌 이곳에 이렇게나 많은 남만선이 정박해 있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는가?”

정옥남과 이순신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곧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야.’

나는 그런 둘의 반응을 보며 그 둘에게 말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내일은 더 놀라운 것을 보여줄 테니.”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말에 정옥남은 얼굴이 하얗다 못해 창백해질 지경이었고 이순신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 *

다음 날, 날이 밝자 예정대로 상인들이 모여 있는 여관으로 자기와 다완 그리고 백자 찻잔을 가지고 갔다.

그동안 소문이 났는지 자기와 다완의 구매하려는 상인들의 수가 부쩍 많아졌다.

늘 하던 대로 자기를 꺼내놓자마자 상인들은 경쟁적으로 가격을 불렀고 준비해간 자기와 다완은 모두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자기와 다완이 모두 판매된 후에도 상인들은 백자 찻잔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상인들의 시선을 즐기며 백자로 만든 찻잔 세트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지난번과 같은 찻잔과 접시 그리고 주전자 세트입니다. 이번에도 5벌밖에 준비하지 못했으니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신 분께 찻잔 세트를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전자와 찻잔 그리고 접시까지 포함된 찻잔 세트에 상인들은 눈을 떼지 못했고 이번에도 5벌밖에 가져오지 않았다는 말에 경쟁적으로 가격을 불렀다.

“은 600냥.”

“은 700냥”

처음부터 찻잔 세트만을 노렸는지 자기와 다완을 판매할 때는 가격을 부리지 않았던 상인도 찻잔 세트 앞에서 힘차게 가격을 불렀고 다른 상인들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불렀다.

결국 찻잔 세트는 상인들의 가격경쟁 속에 각각 은 700냥에 판매되었다.

찻잔 세트까지 준비해간 모든 상품을 판매하고 판매대금을 정산하자 큰 나무상자 하나에 은화가 가득했고 작은 나무상자 하나에는 금화와 손바닥 크기의 금괴가 가득히 쌓였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순신과 정옥남은 입이 딱 벌어졌다.

아마 이만한 양의 금과 은을 본 것은 이순신은 물론 정옥남도 생전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준비해간 자기와 찻잔을 모두 판매한 후 그 자리에서 판매대금을 계산한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지불해야 할 수수료와 철, 구리, 유황의 대금을 계산해 작은 상자에 은화로 담았다.

마쓰라 다카노부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한 나는 이순신과 정옥남에게 말했다.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잘 보았겠지. 남만인들과 왜인들이 도자기와 사발 같은 모양의 찻잔에 큰돈을 쓰는 것을 절대 잊지 말게.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질문은 차후에 받도록 하겠네. 오늘은 이만 배에 돌아가 쉬도록 하게.”

내 말이 끝나자 이언세와 호위병들이 이순신과 정옥남을 호위하듯 에워싸서 갤리온으로 향했다.

* * *

판매대금이 든 상자들을 호위병들이 들고 갤리온으로 향하자 나는 김개동과 사화동을 거느리고 마쓰라 다카노부의 저택으로 향했다.

다카노부를 만나 판매 수수료와 함께 이번에 구매할 철, 구리, 유황의 대금을 담은 상자를 건네자 다카노부는 크게 기뻐했다.

“장군이 가져갈 철과 구리는 내일 아침에 장군의 배에 실을 수 있도록 이미 준비해 놓았네. 유황도 물론 준비되어 있고. 그리고 쌀 5,000섬을 주문했었지? 쌀도 추수가 끝나는 대로 구입하기로 영주들과 계약을 맺었으니 걱정하지 마시게.”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쌀의 대금은 어떻게 지불하면 되겠습니까?”

“나야 자기와 다완으로 받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 욕심이고 은으로 지불하시게 쌀 2섬에 은 1냥을 받겠네. 5,000섬이니 2,500냥으로 하지.”

다카노부의 대답을 들은 나는 쌀을 추가로 주문했다.

“다카노부 공. 좋습니다. 2,500냥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쌀을 5,000섬 더 주문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쌀을 더 주문하자 다카노부는 웃으며 말했다.

“더 주문할 수 있지. 왜 안 되겠는가. 그런 모두 해서 1만 섬인가. 역시 내 사위야. 이 장군은 통이 크군. 좋아 1만 섬을 더 주문하도록 하지. 아직 추수가 끝나지 않았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야.”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그리고 주문한 쌀은 히라도에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가져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쌀 1만 섬을 보관하자면 따로 보관료를 받아야 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장군이니 내 그냥 보관해 주기로 하지. 아예 창고를 몇 개 비워줄 것이니, 히라도에 보관해 놓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보관해 두도록 하게. 물론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가져가고 말이야. 내 따로 창고 임대료는 받지 않지.”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께서 원하시면 추가로 주문하는 5,000섬의 가격은 다완과 찻잔(유럽식 찻잔 세트)으로 지불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야 좋지. 이 장군이 판매하는 다완과 찻잔은 상인들에게 인기가 많으니. 나야 고마울 뿐이네.”

다카노부가 내 제안에 찬성하자 거래는 쉽게 이뤄졌다.

“좋습니다. 다카노부 공 그럼 다음 달에 쌀의 대금을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이장군은 신용이 좋으니 내가 믿을 수 있지. 그리고 우리가 남인가?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아닌가. 헤이메가 어제부터 목이 빠지게 이장군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만 헤이메에게 가보게.”

“감사합니다. 다카노부 공.”

마쓰라 다카노부는 의도적으로 장인과 사위의 관계를 언급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다카노부에게 빈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버지나 장인어른으로 부르지 않고 다카노부 공이라 불렀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상인이자 일본 전국시대를 살아온 영주다. 다카노부에게 빈틈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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