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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21화 (121/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21화

혼인선물

내 어깨까지 두드리며 좋아하던 다카노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귀엽게 생긴 소녀가 3명이나 서 있었다.

헤이메 보다 어려 보이는 소녀들은 나와 다카노부를 보고 허리를 숙였다.

“헤이메와 함께 자라다시피 한 아이들이네. 헤이메의 시중을 들기 위해 보내기로 했네. 하녀를 들인다고 생각하고 받아주시게. 저 아이들이 따라가면 헤이메도 외롭지 않고 좋을 것이네.”

소녀들 옆에는 소녀들의 옷과 짐으로 보이는 나무 상자가 3개 나 있었다.

소녀들까지 데려가라는 말에 다카노부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히 웃음이 떠나지 않는 다카노부를 보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그래 저 아이들은 헤이메의 하녀들이니 사위의 하녀와 마찬가지야. 시킬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게. 무슨 명령이든 사위에게 복종할 테니.”

다카노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역시 이 사람은 전국시대의 영주다. 전형적인 영주야.’

일본은 물론 중국에서도 정략혼으로 공주나 영주의 자녀가 다른 가문이나 다른 나라에 시집을 가는 경우 시녀나 말동무의 명목으로 신부의 자매 혹은 비슷한 또래의 인척이 신부를 따라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신부를 따라간 여인들은 신부와 남편의 사이가 좋지 않았을 경우(애초에 신랑 신부 간의 애정이 있어서 혼인을 한 경우가 아닌 정략혼이었으므로) 혹은 부부 사이에 자녀가 없거나 신부가 일찍 사망하게 되는 등의 일이 일어날 경우.

신랑의 첩이 되는 일이 흔했다.

정략혼인은 양 가문이나 국가 간의 결속력이 목적이었으므로 신부 측의 문제로 부부간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신랑 측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

정략혼의 경우 신랑이 일찍 사망하는 경우 신랑의 동생이나 남자 형제가 형수였던 신부와 결혼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었다.

‘돌산도에서 히라도와 서신을 주고받을 수는 없을 것이니 첩자 노릇은 못할 것이고…… 헤이메의 하녀 역할과 잉첩으로 데려가라는 말인가. 역시 다카노부는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야.’

다카노부의 속셈이 뻔히 보였지만 이 자리에서 다카노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헤이메의 아우들처럼 여기고 보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아우들이라. 좋지 헤이메와는 자매 같은 아이들이니 잘 돌봐주도록 하게 사위.”

헤이메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한시라도 빨리 갤리온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다카노부는 나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혼인 예물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예물 외에 내가 개인적으로 축하선물을 준비했네.”

“선물이라니 아닙니다. 예물까지 준비해 주셨는데 따로 선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더 이상 틈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 선물을 거절하자 다카노부는 가볍게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선물은 이미 장군의 배로 보냈네. 사위가 아닌 이 장군에게 보내는 선물이니 사양하지 마시게. 아니, 사양할 수는 없을 것이야.”

마쓰라 다카노부는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웃으며 헤이메를 따라 돌산도로 갈 소녀들에게 다가가 뭐라고 주의를 주었고 소녀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다카노부의 말을 들은 후 ‘하이’라고 대답했다.

* * *

잠시 후 헤이메가 정원으로 나오자 나는 다카노부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리고 다카노부의 저택을 나왔다.

부두로 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고 헤이메는 가마를 타고 내 뒤를 따랐다.

가마는 장정 2명이 들고 걷는 작은 가마였고, 가마 뒤에는 소녀들이 가마를 따라 걷고 있었다.

소녀들의 뒤에는 예물과 옷이 들어 있는 상자와 짐 꾸러미들을 실은 수레를 장정 3명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갤리온에 정박해 있는 부두에 도착하자 부두 한쪽에는 이미 한 무리의 왜인들이 서 있었고 그들의 뒤에는 철괴와 구리괴 그리고 유황이 든 것으로 보이는 자루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우선 가마에서 내리는 헤이메를 부축해 주었고 전날 미리 갤리온으로 돌아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김개동과 사화동은 나를 따라온 일행들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부두로 내려왔다.

“헤이메와 소녀들을 내 선실(선장실)로 안내하도록 하라. 이 상자들과 짐 꾸러미들도 모두 내 선실로 옮기도록 하고. 어서 서둘러라.”

“예! 좌수사 영감.”

나와 헤이메와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김개동과 사화동은 항왜들을 시켜 나무 상자와 짐 꾸러미들을 선장실로 옮겼고, 사화동은 일본어로 헤이메와 소녀들을 선장실로 안내했다.

헤이메와 소녀들이 배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부두에 쌓여 있는 철괴와 구리괴를 확인했다.

‘이상하다…… 이거 지난번에 비해 구매한 철과 구리의 2배는 되는 것 같은데 유황도 주문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고…….’

철과 구리, 유황의 양이 이상하게 많은 것을 확인한 나는 철괴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왜인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가져온 철과 구리. 유황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내가 묻자. 왜인들 중에 앞에 서 있던 중년의 왜인이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철이 5,000근(3,000kg), 구리가 1만 근(6,000kg), 유황이 1,000근(600kg)이옵니다.”

왜인의 대답에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주문한 양의 2배에 가까운 양이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어르신께서 장군님께 보내시는 선물이십니다. 철과 구리의 가격은 더 지불하셔도 받지 말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왜인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모든 것이 이해됐다.

‘다카노부가 준비했다는 선물이 바로 이것이었군. 능구렁이 같은 노인……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더니 진짜 거절하지 못할 선물을 준비했네.’

마쓰라 다카노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철과 구리 그리고 유황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구리 6톤이면 현자총통 70문을 제작하고도 남는다. 지난달에 구매한 구리도 있으니 이 구리들만 가져가도 현자총통을 100문 이상 제작할 수 있다. 그런데 거절할 수는 없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다카노부가 보내준 철과 구리와 유황을 받기로 결정하고 중년의 왜인에게 말했다.

“알겠다. 다카노부 공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니 고맙게 받도록 하겠다. 철과 구리, 유황을 배에 실어라. 다카노부 공께는 내 다음에 인사를 드릴 것이다.”

“예 장군. 알겠습니다.”

중년의 왜인은 나에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한 후 다른 왜인들에게 철과 구리를 실을 것을 명령했다.

왜인들이 철괴와 구리괴를 짊어지고 갤리온으로 올라가자 배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항왜들이 배에서 나와 철과 구리 그리고 유황을 운반했다.

철과 구리의 양이 많았던 탓에 갤리온 2척에 철과 구리를 나눠 실었는데도 모두 싣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왜인들이 철과 구리를 싣는 것을 감독하던 나는 가마를 들고 왔던 왜인들과 수레를 끌고 왔던 왜인들도 다른 왜인들과 함께 철과 구리를 운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저 사람들은 왜 다카노부의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지? 저들도 다카노부의 부하들이니 일을 거드는 것인가.’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카노부의 부하들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철과 구리를 모두 배에 싣고 난 후 부두의 왜인들이 돌아가자 나는 가마를 들고 온 왜인에게 은화를 내밀었다.

“수고가 많았네. 이것으로 동료들과 술 한잔하게. 이만 돌아가도 좋네.”

돌아가라고 하자 가마를 들고 온 왜인들 중에서 눈이 크고 눈빛이 날카롭게 생신 사내가 나서서 말했다.

“저희는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장군님. 저희는 헤이메 아가씨를 따라가 모시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나는 놀라서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누가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말인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저희는 저희의 주인이신 마쓰라 다카노부 님의 명령만을 듣습니다. 장군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헤이메 아가씨를 모시라는 명을 받았으니. 명국으로 가시든 남만으로 가시든 헤이메 아가씨를 따라가서 모실 것입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내가 노려보고 있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대답했고 함께 가마를 들고 온 사내와 수레를 끌고 왔던 사내들도 대답을 한 사내의 뒤에 서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뜻을 보였다.

‘이놈들은 평범한 하인들이 아니야. 딱 봐도 무사들이다. 다카노부가 헤이메의 안전을 염려해서 무사들을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무슨 속셈이지.’

나는 무사들을 딸려 보낸 마쓰라 다카노부의 속셈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고작 5명이서 따라가겠다고 버티는 무사들의 모습을 보니 기특하기보다는 어리석어 보였다.

‘돌산도에는 내 명령을 듣는 항왜들 중에 장정들만 해도 500명이 넘는다. 그중에 시마즈 출신 무장들의 수는 60명이 넘고. 그런데 너희 5명이 따라와서 무슨 일을 벌일 수 있을 것 같으냐. 돌산도에 도착하기만 하면 너희는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고작 5명으로는 돌산도에서 어떤 짓도 벌일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다카노부의 부하들의 승선을 허락했다.

“좋아. 다카노부 공께서 보내셨는데 내가 거절할 수는 있나. 너희도 배에 오르도록 하라. 단 소지하고 있는 무기는 모두 꺼내 놓아라. 무기를 소지하고는 배에 오를 수 없다.”

무기를 내놓으라는 말에 사내들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나에게 대답하던 사내가 먼저 허리에 차고 있던 와키자시(날 길이 40~50cm의 일본도)와 탄토(단검)을 허리에서 풀러 나에게 내밀었다.

“검을 땅에 내려놓을 수 없으니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장군님.”

나는 검을 받으며 사내에게 대답했다.

“검을 아끼는 것을 보니 그대는 무사가 확실하군. 이름이 무엇이냐?”

무사가 확실하다고 하자 사내는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잠시 후 나에게 엎드려 절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츠가와 이에키요라 하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장군.”

츠가와 이에키요가 나에게 절을 하자 이에키요의 뒤에 서 있던 무사들도 일제히 검을 풀어놓고 나에게 절을 올렸다.

나는 그런 무사들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짓을 보니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무사들이군. 하루도 못 돼서 정체가 발각되는 것을 보니 첩자로 들여보낸 것은 아닌 것 같고. 정말 헤이메의 호위들인가.’

무사들의 행동을 보니 남의 뒤통수를 치는 짓은 하지 않을 것 같아 약간은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배에 올라라. 시간이 없다.”

무사들이 배에 오르자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김개동은 헤이메와 소녀들은 있는 선장실 앞에 호위병을 배치하고 무사들을 선실에 몰아넣고 선실 앞에도 호위병을 배치했다.

무사들까지 배에 오른 후 갤리온은 히라도 항을 빠져나와 돌산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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