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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22화 (122/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22화

준비

돌산도로 돌아오는 동안 이순신과 정옥남에게 일본의 상황과 히라도와의 무역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 나는 덧붙여서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설명했다.

“왜국이 지난 100여 년간 영주들 간의 내전을 치른 것은 이만호와 정공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 따로 설명하지 않겠소. 왜국은 지금 풍신수길에 의해 통일을 앞두고 있소. 풍신수길은 왜국에서 가장 많은 영지와 가장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영주이자 무장이고, 그가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과 그를 따르는 영주들의 군사들까지 합하면 20만 명이 넘는 대군을 동원할 수 있는 왜국의 최고 실력자요. 왜국의 본주(本州)[혼슈] 동부의 영주들은 아직까지 풍신수길의 가문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풍신수길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미 재력으로든 군사력으로든 그들은 이미 풍신수길의 상대가 되지 못하오. 몇 년 안에 풍신수길은 자신에게 저항하는 영주들을 토벌하고 왜국을 통일할 것이 확실하오. 문제는 그다음이오.”

풍신수길이 왜국을 통일한 이후가 문제라는 말에 정옥남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순신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풍신수길이 왜국을 통일하고 나면 거느리고 있는 수십만의 대군을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무장시키는 데 많은 재물이 들 뿐만 아니라 군대를 계속 유지하는 데도 많은 군량과 유지비가 필요하니 말입니다.”

나는 이순신의 대답에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이 만호의 말이 옳소. 왜국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니. 조선처럼 야인의 침범을 염려할 필요도 없고, 명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도 않소이다. 풍신수길이 왜국을 통일해 영주들 간의 내전이 끝나면 왜국의 영주들은 더 이상 수십만이나 되는 군사들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오. 하지만 왜국의 군사들은 조선군과 다르오. 왜국의 군사들은 영주들이 모집해 훈련시키고 무장시킨 군사들이고 영주들의 사병과 다름없소. 영주들이 자신들의 사병인 군사들을 쉽게 해산시킬 수 있겠소?”

이순신과 정옥남 둘 다 나를 바라보며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풍신수길이 왜국을 통일한 후에도 왜국의 영주들은 자신들의 군대를 쉽게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오. 생각해 봅시다. 왜국은 타국의 침략을 받을 가능성이 적으니 많은 군대를 유지할 필요는 없는데, 영주들은 자신들의 사병을 포기할 생각이 없을 것이오. 그렇다면 수십만의 대군은 그대로 유지되겠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풍신수길은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소.”

이언세를 통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을 들었던 이순신과 정옥남은 어두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라도 영주들의 군대를 해산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다른 나라를 침략할 것 같습니다.”

“풍신수길의 입장에서는 전쟁의 결과는 상관이 없겠군요. 전쟁에서 승리해 조선을 차지하면 좋고 조선에 패한다고 해도 조선이 왜국을 침략할 가능성은 없으니 말입니다.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전멸한다고 해도 영주들의 군대가 사라질 뿐이고 왜국에서 풍신수길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 확실해지겠군요.”

“이 만호와 정공 두 분의 말씀이 옳소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병장기를 제작하고 전선을 건조해야 하는 이유이오.”

이순신, 정옥남과 대화를 나눈 나는 이번 히라도 행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헤이메를 돌산도로 데려왔을 뿐만 아니라 대포를 제작하기에 충분한 구리를 확보했고. 이순신과 정옥남의 마음까지 얻었으니 이번에 히라도를 다녀오면서 얻은 것이 정말 많구나.’

* * *

돌산도에 돌아온 나는 우선 돌산도에 준비해 놓은 집으로 헤이메와 하녀들을 안내했다.

헤이메와는 신혼이었지만 헤이메를 좌수영을 데려갈 수는 없었고 신혼 분위기를 낼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헤이메도 내 상황을 이해하는지 자주 찾아오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좌수영으로 돌아온 나는 히라도에서 선물 받은 구리와 철로 병장기의 제작을 명령했고 화약도 추가로 제조할 것을 명령했다.

이순신도 이전보다 열심히 병사들을 독려해 나무를 벌목해 오고 전선을 건조하는 현장에 나와 독려하니 전선을 건조하는 작업 속도가 나날이 빨라졌다.

무기와 전선을 건조하는 것 외에도 군사 훈련이 시작되었다.

우선 돌산도의 항왜들 중에서 20대의 장정 200명을 선발했다.

“사쓰마에서 온 무장들과 함께 저들을 훈련시키게.”

“제가 말입니까?”

혼다 고로자에몬은 의외라는 듯이 항왜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들은 왜국의 고토열도 출신들이네. 나와 조선의 장수들이 훈련시키는 것보다는 자네와 사쓰마의 무사들이 훈련시키는 것이 저들도 마음 편하겠지. 훈련에 대한 전권을 맡기겠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청하도록 하고 가벼운 부상자는 어쩔 수 없지만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게.”

충성을 맹세했다고는 하지만 벌써부터 임무를 맡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지 혼다 고로자에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훈련을 시키려면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혼다 고로자에몬을 비롯한 16명의 사쓰마 출신 무사들은 장인으로 신분을 위장했던 탓에 사용하던 무기는 물론 갑옷과 투구도 가져오지 못했다.

“무기는 걱정 말게. 우선은 자네와 무사들이 사용할 무기부터 지급하지 훈련병들은 우선 목검과 목창으로 훈련시키도록 하고 차후에 무기를 지급하도록 하겠네.”

정해왜변 당시 왜구들로부터 노획한 무기들과 고토열도 정벌 당시 노획한 무기들을 떠올리면 나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말을 마친 후 나는 혼다 고로자에몬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빠르면…… 내년 초에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네. 시간이 많지 않으니 하루라도 빨리 훈련을 시작하도록 하게. 사쓰마 무사들의 명성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네. 저들의 훈련을 자네와 사쓰마 무사들에게 맡기는 이유를 자네 정도의 무사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네.”

내가 말하는 뜻을 알아들은 혼다 고로자에몬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사쓰마의 무사들은 무식해서 주군에서 충성하는 것과 적군과 용감히 싸우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할 줄 모릅니다. 저들을 적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달려들 수 있도록 훈련시킬 것이고 장군의 명령이라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도록 훈련시킬 것입니다.”

나는 혼다 고로자에몬의 대답에 만족하며 고로자에몬의 어깨를 두드렸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요청하게. 나에게 충성하는 한 무기가 없어 적과 맨손으로 싸우거나 식량이 부족한 일은 없을 것이네.”

혼다 고로자에몬과 사쓰마 출신 무장들이 항왜 출신 신병들의 훈련을 맡은 이후 돌산도에서는 매일 같이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항왜들 외에 조선인들 중에서도 훈련병을 모집했다.

추석이 지난 후 좌수영에는 한 무리의 장정들이 모여들었으니 고천봉에게서 소식을 듣고 모인 장정들이었다.

장정들이 좌수영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나는 손대남과 이언세를 거느리고 장정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들이 오늘 모인 장정들이란 말인가?”

나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장정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좌수사 영감. 모두 영감께서 대립할 장정들을 모집하신다는 소문들 듣고 지원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언세의 대답을 들은 나는 예상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잘됐다고 생각했다.

‘좋아 500명은 넘을 것 같군. 지원자가 적을까. 걱정했었는데…… 이 정도면 건강한 자들만 골라내도 충분할 것 같다.’

내가 장정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자. 장정들을 살펴보던 손대남이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장정들을 보아하니. 대립을 하던 장정들만 모인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립을 하는 이들은 얼굴이 낯익기 마련인데 낯선 얼굴들이 여럿 보입니다.”

손대남의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장정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군.”

평소에 대립을 하던 장정들뿐만 아니라 대립을 했던 경험이 없는 장정들도 선발되기만 하면 면포를 준다는 소문을 듣고 좌수영으로 모인 것이다.

나는 장정들을 바라본 후 손대남에게 명령을 내렸다.

“좋아. 어차피 제 발로 찾아온 자들이니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지. 손 군관은 저들을 오늘 하루 동안 좌수영의 군사들과 똑같이 훈련시켜 저들 중에서 체력이 약한 자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자들을 골라내도록 하게. 인정 사정 봐줄 것 없으니 철저하게 골라내도록 하게.”

“명을 받드옵니다. 좌수사 영감.”

힘차게 대답한 손대남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임무를 맡았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장정들을 바라보았다.

표정만 보면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바라보는 듯 인자한 미소였지만, 손대남의 눈빛은 이미 먹이를 바라보는 맹수의 눈빛이었다.

‘손 군관이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나……? 이 사람 눈빛이 왜 이래.’

손대남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나는 손대남과 이언세에게 훈련병의 선발을 맡기고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날 오후 좌수영의 연무장에서는 장정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좌수영으로 찾아온 600명의 장정 중 400명만이 남아 훈련병으로 배속됐다.

* * *

대장간과 공방에서 매일 쉬지 않고 창과 검과 화승총 그리고 대포가 제작되었고, 전선을 건조하는 작업도 성과를 보여서 건조 중이던 판옥선과 첨저형 전선이 완성됐다.

새롭게 건조된 전선들은 시범 항해를 위해 바다로 나갔고, 특히 새로 개발된 첨저형 전선은 장거리 항해가 가능한지 시험하기 위해 좌수영에서 절이도를 거쳐 손죽도에 다녀오는 장거리 항해를 다녀왔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판옥선 2척이 첨저형 전선을 따라갔고 전선을 설계하고 건조한 대목과 장인들도 전선에 탑승해 전선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첨저형 전선의 시범 항해는 성공적이었고 직접 전선을 몰고 손죽도에 다녀온 군관 김윤문은 첨저형 전선의 속도에 놀랐다고 한다.

첨저형 전선이 성공적으로 시범항해를 마치자 나는 좌수군의 모든 병력과 관노들을 동원해 첨저형 전선을 건조할 것을 지시했다.

연이은 벌목과 전선의 건조에 좌수군 군사들은 물론 장수들도 불만이 많았지만 나는 좌수사의 권위로 작업을 강행했고 그 대신 직접 나무를 벌목하고 전선을 건조하는 병사들에게는 평소보다 많은 음식과 술을 풀어서 중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병사들을 위로했다.

하루 3끼의 식사는 물론 일을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군사들에게는 탁주를 곁들인 야식까지 제공했고 하루에 한 끼는 생선이나 닭고기가 반찬으로 나왔으니, 당시 조선군의 식사 수준으로는 최고의 성찬을 제공한 것이다.

탁주를 곁들인 야식과 매일 같이 나오는 고기 반찬 덕분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병사들도 대놓고 반항하거나 작업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장수와 병사들을 이끌어가며 북해도로 진군할 준비를 하던 나는 정언신 대감과 정여립이 보낸 서신을 같은 날 동시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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