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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24화 (124/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24화

품 안에 들어온 호랑이

“알겠습니다. 다카노부 공. 그렇게 하시지요.”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내 속마음을 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나. 마쓰라 다카노부가 사위에게까지 인색하게 굴 것 같은가? 사위가 구매할 철과 구리, 유황은 이미 준비해 두었네. 지난달과 같은 양을 준비했으니 가져가도록 하게.”

“지난달과 같은 양이라면?”

“철 5,000근(3,000kg), 구리 1만 근(6,000kg), 유황 1,000근(600kg)이네. 사위에게 필요할 것 같아 넉넉히 준비했는데, 이 정도 수량이면 사위에게도 손해는 없을 것이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의 준비성과 용의주도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정말 대단한 노인이다.’

* * *

한편 내가 히라도에 도착했을 때 경복궁에서는 병조판서 정언신 대감은 선조를 독대하고 있었다.

“전라좌수사가 야인들을 토벌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 한다고.”

“그렇사옵니다. 전하.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북방의 소식을 들은 후 군사를 일으켜 북방의 야인들을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전라좌수사는 북방의 야인들을 토벌하기 위해 좌수영과 우수영에서 대립을 하던 장정들 중에서 날렵하고 건장한 장정들을 모집해 400명의 장정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정언신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매우 기뻐했다.

“기특한 일이다. 전라좌수영에서도 군사들의 병장기를 교체하고 전선을 건조하고 있다고 했으니 좌수사의 수고가 많았을 텐데, 야인들을 토벌하기 위해 장정들을 모아 훈련시키고 있다니! 기특한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왜구들이 사용하는 총통을 연구해 전라좌수영에서 왜국의 총통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전라좌수사는 북방의 야인들을 토벌하기 위해 좌수영에서 밤낮으로 총통을 제작하고 있다고 서신으로 알려왔습니다.”

“과인도 좌수사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다. 왜국에서 제작한 총통은 승자총통과 같이 휴대하기 편리할 뿐만 아니라 승자총통보다 명중률도 높으니 우리 군사들도 왜국의 총통을 장비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좌수사가 기어이 왜국의 총통을 제작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구나.”

“좌수사는 곧 장계와 함께 총통을 조정으로 올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전라좌수사는 출병 일을 언제로 생각하고 있는가?”

“장정들의 훈련이 끝나고 좌수사와 장정들이 좌수영에서 북방으로 올라가야 하니,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좌수사는 내년 3월에 출병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언신 대감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라좌수사에게 서신을 보내 2월 중에 출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전하라. 북병사 이일에게도 2월 중에 야인들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릴 것이다. 좌수사도 북병사가 야인들을 토벌하는 일정에 맞춰서 출병해야 할 것이다.”

2월이면 계절상으로 겨울이었다.

겨울에 북방의 여진족의 토벌하라는 선조의 명령에 정언신은 무리가 아닐지 걱정됐지만, 선조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정언신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심려를 놓으십시오. 전하 전라좌수사에게 서신을 보내 전하의 뜻대로 따르도록 하겠나이다.”

“좋다. 전라좌수사가 정식으로 조정에 장계를 올리면 좌수사의 기특한 계획을 조정의 대신들에게 알려 좌수사를 본받도록 하고 좌수사에게 호피(虎皮)[호랑이 가죽]를 내릴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 * *

대립을 하던 장정들이 전라좌수영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전라좌수영에서 화승총을 제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는 장정들과 화승총으로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다만 좌수사가 사병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정보가 선조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정언신 대감에게 거짓 서신을 보낸 것이다.

이 계략이 성공하면서 나는 내년 2월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히라도에서 다카노부와 거래를 마친 나는 히라도에서 시마즈 도시히사와 돌산도로 이주하기로 희망하는 시마즈의 무장들을 만났다.

무장들의 수는 총 100명이었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총인원은 400명이 넘었다.

시마즈의 무장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갤리온에 승선하도록 허락한 나는 도시히사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들었고 그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이번 히라도 행으로 또다시 많은 양의 철과 구리, 유황을 확보하고 100명의 무장을 영입하는 데 성공한 나는 이번 성과에 만족하며 히라도를 떠날 수 있었다.

히라도에서 돌산도로 돌아오는 동안에는 김시민, 이억기와 함께 탁주를 마시며 그들에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설명했다.

일본이 유럽의 상인들과 활발하며 교역을 할 뿐만 아니라 금광과 은광의 개발로 조선보다도 훨씬 부유하다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김시민과 이억기는 일본이 대군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는 김시민과 이억기에서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히라도에 자기와 찻잔을 판매했고 히라도에서 철, 구리, 유황을 구매해 무기와 화약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내가 그동안 준비해 온 계획을 일부분 설명하자 김시민과 이억기는 상당히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김시민과 이억기의 반응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정말 다행이다. 김시민 장군과 이억기 장군을 히라도에 끌고 온 것은 진짜 도박이었는데…… 다행히 이해해 주는구나. 이제는 됐다. 좌수영 우후인 김시민이 나에게 협조하면 좌수영에서 내가 자리를 비워도 문제없고. 이순신 장군, 이억기 장군, 김시민 장군이 협조해 준다면 항왜들을 울등도로 이주시키는 일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진행할 수 있다.’

나는 좌수영에 도착하는 대로 울릉도 이주 계획을 추진할 생각이었다.

* * *

좌수영 돌산도에서 항왜 출신 장정들을 훈련시키고 있던 혼다 고로자에몬은 남만선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훈련을 중지시키고 시마즈 출신 무장들과 함께 해변가로 향했다.

‘오타니 요시아키도 돌아왔겠구나…… 이번에도 사쓰마 사람들이 온다고 했지. 이번에는 누가 왔을까?’

사쓰마에서 오는 사람들을 통해 사쓰마의 소식을 들을 것을 기대하고 있던 혼다 고로자에몬과 무장들은 해변가에 들어서자마자 한 무리의 왜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왜인들에게 다가갔다.

“이번에 사쓰마에서 온 사람들이냐. 나는 혼다 고로자에몬이다. 누구, 나를 아는 사람은 없느냐?”

혼다 고로자에몬이 호탕하게 외치자 고로자에몬을 알아본 무장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안심해라. 장군님께서는 왜인이라고 차별하는 분이 아니시니.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지내기에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혼다 고로자에몬은 왜인들에게 외치다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반갑구나.”

‘아니…… 이 목소리는?’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 혼다 고로자에몬과 무장들은 시마즈 도시히사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주군.”

“어서 일어나라. 나는 이제 너희들의 주군이 아니다.”

도시히사의 말에 정신을 차린 고로자에몬과 무장들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시히사가 눈치가 있어서 다행이군.’

혼다 고로자에몬과 시마즈 출신 무장들이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절을 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무장들을 향해 다가갔다.

“도시히사 공과는 오랜만에 만났으니 나눌 이야기가 많겠지만. 낮에는 할 일이 많으니 저녁때까지 기다리거나 저녁에 탁주 한 동이 보낼 테니.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저녁에 탁주 한잔하면서 나누도록 하거라.”

“감사합니다, 장군님.”

혼다 고로자에몬을 비롯한 무장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외쳤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군.”

시마즈 도시히사도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지만 시마즈 출신 무장들이 도시히사에게 절을 한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도시히사에게 고개를 숙여 대답한 후 고로자에몬과 무장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들은 이곳에 오면서 한 맹세를 기억하는가?”

혼다 고로자에몬이 무장들을 대표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장군님, 아니, 실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군. 충성을 맹세했으니 이제는 저희의 주인이십니다. 주군.”

혼다 고로자에몬이 나에게 주군이라 외치자 시마즈 출신 무장들도 일제히 외쳤다.

“저희의 주인이십니다. 주군.”

나는 무장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도시히사를 바라보았다.

이제 이들은 나의 부하들이니 다른 마음 먹지 말라는 경고였다. 도시히사도는 내 경고를 이해했는지 무장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엎드려 나에게 절을 했다.

“오갈 곳이 없는 자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군. 저도 한 사람의 무사로써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주군.”

도시히사가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주군이라고 부르자 시마즈 출신 무장들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무장들의 시선을 받으며 당당하게 외쳤다.

“나에게 충성하는 한 그대는 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군.”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라.”

도시히사는 내 허락을 받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그런 도시히사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그대가 돌산도로 피신하겠다고 했을 때는 그만한 각오를 했을 것이니.’

돌산도로 이주하고 싶다는 도시히사의 요청을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지난번 시마즈의 무장들을 받아들였을 때 상황이 위험해지면 돌산도로 피신해도 좋다고 권한 적이 있었으니 도시하사의 요청을 피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도시히사의 전투 경험과 지략이 욕심나서 보호해 주겠다고 했지만, 막상 도시히사가 돌산도로 왔을 때의 시마즈 출신 무장들의 반응이 염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도착한 인원까지 돌산도에 거주하는 시마즈 출신 무장들과 장인들의 수는 200명이 넘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계산하면 800명에 달하니.

그들이 시마즈 도시히사를 구심점으로 삼아 파벌을 형성하거나 내 명령보다 도시히사의 명령을 우선적으로 여기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나는 도시히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확인한 후 사화동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은 돌산도에 새로 온 사람들이 많으니 우선 사람들을 마을로 안내해 주고 이곳에서의 생활하는 방법부터 설명해 주거라. 새로 도착한 사람들이 지낼 집도 주선해 주도록 하고.”

“예. 주군.”

사화동도 나에게 허리를 숙이며 주군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사화동의 대답에 가볍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시히사가 시마즈 출신 왜인들로 파벌을 형성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시마즈 출신들을 전부 토벌하는 한이 있더라도 도시히사를 제거하겠다. 하지만 나에게 충성하고 파벌을 만들 움직임만 보이지 않는다면 히데요시에게 복수할 기회를 줄 것이니 도시히사도 만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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