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25화
3명의 심복들과 3명의 명장
정해년(1587년) 10월 13일 전라좌수영.
히라도에 다녀온 이후 항왜들과 대립군의 훈련 그리고 무기 제작과 전선건조에 전라좌수군의 모든 전력을 기울인 나는 10월 말까지 건조 중인 5척의 첨저형 전선이 완성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후, 군관 손대남과 아전 이언세 그리고 나를 호위해 온 김개동을 불렀다.
셋 모두 내가 조선으로 떨어진 후부터 나를 섬긴 내 심복들이었지만, 조선 사회에서는 이들 셋 엄연히 신분이 달랐고 각자의 처지는 더욱 달랐다.
손대남은 하급무관인 군관이었으니 전공을 세운다면 얼마든지 장수로 진급할 수 있었고, 기회가 된다면 만호나 첨사로도 진급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전의 신분인 이언세는 조선에서는 평생 녹봉도 없는 아전의 신분을 벗어날 수가 없었고 김개동 역시 수군으로 구역을 치르는 양민(良民) 신분이었으니 손대남, 이언세와는 신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손대남과 이언세 그리고 김개동이 도착하자 나는 그들을 방 안으로 부른 후 탁주를 한 잔씩 따라주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네. 시원하게 마시게.”
좌수사가 직접 탁주를 따라주자 셋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잔을 받았다.
셋에게 탁주를 따라준 후 내 잔에도 탁주를 부은 나는 잔을 들어 단숨에 탁주를 비웠다.
내가 잔을 비우자 손대남과 이언세, 김개동도 잔을 들어 탁주를 마셨다. 모두 잔을 비우자 나는 그들에게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따라줘서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영감. 소장이 좌수사 영감을 모시는 것은 영광이옵니다.”
“소인도 영감을 모시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소인, 좌수사 영감의 총애를 받아 영광이옵니다.”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진심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정말 고맙네. 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항상 나와 함께한 그대들이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 않을 것이네.”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역모를 꾸미거나 반정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네. 조선이 아닌 제주도 보다 큰 섬을 정벌해 거점을 만들려고 하네.”
나는 그들에게 천천히 내 계획을 설명했다.
“나는 자네들이 나와 함께하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겠네. 단지 자네들에게는 솔직하게 내 계획을 알려주고 싶었네. 곧 울릉도로 떠날 것이니. 다른 곳에 발설하지 않을 것으로 믿겠네.”
손대남, 이언세, 김개남 셋 모두 내가 대놓고 설명한 적은 없었지만, 그동안 나와 함께 움직이며 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이 셋을 불러 내 계획을 설명한 것은 그들 중 하나라도 나와 함께 북해도로 이주하겠다고 지원할 것을 기대하는 마음에서였다.
“소장, 좌수사 영감께 받은 은혜가 큽니다. 오늘 영감께 들은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발설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인도 좌수사 영감의 은혜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좌수사 영감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소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셋 중에서 나를 따라나서겠다고 나선 사람은 없었지만 셋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발설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고 나는 우선 그것으로 만족했다.
“고맙네. 곧 좌수영을 떠날 것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도록 하게.”
나는 그들 셋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려보냈다.
* * *
내가 3명의 심복들에게 내 계획을 설명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 강릉에서 지내고 있던 정여립은 내가 보낸 서신을 읽고 있었다.
‘뭐라? 평택의 본가에 지내고 있는 어머니와 부인을 피신시켜 달라고…….’
서신을 읽은 정여립은 생각에 잠겼다.
‘좌수사가 직접 나서지 않고 나에게 어머니와 부인의 안위(安危)를 부탁한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
좌수사가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좌수사가 울릉도로 출발할 날짜가 임박했기 때문이겠지만.
정여립은 좌수사가 직접 어머니와 부인에게 연락을 하거나 자신이 가서 모셔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부탁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정여립은 좌수사의 속셈을 깨닫고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일부러 자신의 모친과 부인을 나에게 맡기는 것인가. 자신이 다른 마음을 먹고 있지 않다고 보여주려고……? 좌수사 이 사람, 독한 구석이 있는 사람일세.’
조선은 유교 사회이고 조선의 선비들은 효와 충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모친과 부인을 다른 사람에게 인질로 맡기다니…….
정여립은 나이도 어린 좌수사가 의외로 독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좌수사의 속셈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좌수사에게 부탁을 받은 이상 정여립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정여립은 전주의 본가를 지키고 있는 정옥남에게 서신을 보냈다.
* * *
탕- 탕- 탕!
좌수영에서 조정에 진상한 화승총이 불을 뿜자, 과녁에 총탄이 박혔다.
화승총의 사격과 장전 시범을 보이기 위해 좌수영에서 선발돼 한성으로 올라온 임홍남과 총병들은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 그리고 수많은 장수가 보고 있는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총구에 화약을 넣고 삭장으로 발사용 화약을 다졌다.
화약을 다지고 총구에 총탄을 놓은 후 다시 한번 삭장으로 탄환을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은 후, 발사용 화약을 포장하고 있던 종이를 총구에 밀어 넣고 삭장으로 종이를 밀어 넣었다.
발사용 화약과 총탄을 장전한 후 화문에 점화용 화약을 부은 임홍남은 자세를 바로 하고 총병들을 바라보았다.
임홍남과 함께 상경한 총병들도 이미 장전을 마치고 임홍남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총병들이 장전을 마친 것을 확인한 임홍남은 정면의 과녁을 바라보며 외쳤다.
“방포!”
“방포!”
임홍남이 외치자 총병들은 방포를 따라 외치며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다시 한번 총성이 울리고 화약 연기가 시야를 가리면서 과녁에는 총탄이 박혔다.
“장하다. 아주 훌륭하구나.”
사격 시험에 만족한 선조가 임홍남과 총병들은 칭찬하자 총병들은 감격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리 가까이 오라.”
선조의 명이 떨어지자 임홍남과 총병들은 손에 들고 있던 화승총을 내려놓고 선조에게 다가갔다.
“실력이 대단하구나. 너희 같은 정병들이 남쪽 바다를 지키고 있으니 과인이 베개를 높이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선조의 칭찬에 임홍남은 황송한 표정으로 지으며 머리를 조아렸고 선조는 그런 임홍남과 총병들을 기특하다는 듯이 내려 보며 총병들에게 비단을 내리라는 명을 내렸다.
총병들을 격려하고 상을 내린 후 선조는 직접 화승총을 만져보았다.
“대단하구나. 승자총통과 흡사하게 생겼지만…… 승자총통과는 많이 다른 것 같구나.”
“왜구들이 사용하는 총통을 좌수사가 개량하였다고 하옵니다. 전하.”
병조판서 정언신은 선조가 화승총에 관심을 가지자 선조에게 화승총에 대해 설명했다.
“전라좌수사는 다방면에 재주가 많구나. 군사만 잘 부리는 줄 알았더니 언제 이런 총통을 개발했다는 말인가. 이 총통의 위력이 놀라우니 병판은 하루빨리 오위의 군사들을 총통으로 무장시켜야 할 것이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전하.”
선조는 이날 보인 화승총의 사격시험에 만족하며 조선의 중앙군인 오위의 군사들을 화승총을 무장시킬 것을 명령했다.
전라좌수영에서 조정에 진상한 화승총은 10정에 불과했으니 오위의 군사들을 무장시키기 위해서는 좌수영에 추가로 화승총을 진상할 것을 명하든지 군기시에게 화승총을 제작해야 했다.
정언신은 화승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선은 전라좌수사에게 서신을 보내 총통을 있는 대로 더 진상하라고 해야겠구나. 군기시에 좌수사가 진상한 총통을 보여주고 같은 화승총을 제작할 것을 명해야 할 것이고, 오늘 방포 시범을 보인 병사들은 오위에 배속시켜 오위의 군사들에게 방포술을 가르치도록 해야겠다.’
조선군이 화승총을 무장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였으니, 조선군은 원래의 역사보다 5년 빨리 화승총을 도입하게 되었다.
* * *
오전에 손대남, 이언세, 김개동에게 내 계획을 설명한 나는 그날 업무를 끝낸 후 저녁이 가까워진 시간에 좌수영 우후 김시민, 순천부사 이억기, 녹도만호 이순신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좌수사 영감.”
내가 존경하는 3명의 장수가 방으로 들어오자 나는 그들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잠시 후 따듯한 차가 나왔고 모두 차를 마시며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장수들이 반쯤 빈 찻잔을 내려놓자 나는 3명의 명장을 바라본 후 탁자 위에 있는 지도를 펼쳤다.
“이곳을 보게. 왜국의 북쪽에 있는 이 섬을 보게.”
내가 북해도를 가리키자 장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북해도로 향했다.
“이 섬은 왜국과 가깝지만 왜국은 아니네. 소수의 왜인들이 건너가서 살고 있지만 그들은 섬 남쪽의 작은 반도에 몰려 살고 있을 뿐이지. 섬의 주인은 아이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지. 나는 이 섬의 왜인들을 토벌하고 그곳을 점령할 생각이네.”
내 말을 들은 장수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곳을 점령해 거점을 세우고 이곳에서 군사들을 양병하고, 전선을 건조해 왜국이 조선을 침략하는 것을 대비할 것이네.”
좌수사가 왜국의 북쪽에 있는 오랑캐들이 살고 있는 섬을 정벌하고 그곳에서 군사들을 양병하겠다고 하자 장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일행 중에 가장 지위가 높은 김시민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영감.”
나는 김시민과 장수들을 보고 대답했다.
“우선은 항왜들과 내가 좌수영을 떠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니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게. 좌수영을 떠나는 날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할 것 같으니 군사들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내가 좌수영을 떠난 이후에는 그대들은 좌수영에 남아 조선을 지켜주게. 나는 항왜들과 대립군을 거느리고 동해도(북해도)를 정벌할 것이야. 왜군들이 조선을 침략할 때 그대들은 조선군을 지휘해 왜군의 진격을 저지하도록 하게. 그대들의 활약으로 조선에 상륙한 왜군의 발이 묶이면 내가 양병한 군사들과 함대가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할 것이고. 왜국의 항구를 불태울 것이야.”
내 대답을 들은 장수들은 더욱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동해도에서 기른 군사들로 반정을 일으키거나 조선을 침략하는 일은 없을 것이네. 나는 왜국이 조선을 침략하는 그 날, 왜국을 공격해 풍신수길의 목을 칠 것이네. 다만 그대들은 내가 양병한 군사들이 왜국을 공격하는 그 날까지 조선이 왜군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조선을 지켜주게.”
내가 말을 마치자 이순신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좌수사 영감 몇 가지 여쭤도 괜찮겠사옵니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게나.”
“저희에게 이런 계획을 설명하신 까닭이 궁금하옵니다.”
“나는 곧 항왜들과 대립군들을 거느리고 울릉도로 이주할 것이네. 아무래도 많은 인원과 많은 전선이 움직여야 하니, 제장들이 도와준다면 일이 쉽게 진행되지 않겠나. 그렇다고 좌수영의 모든 장수에게 이 일을 알릴 수는 없으니. 내가 가장 믿고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우후와 순천부사, 그리고 녹도만호에게 이 일을 알린 것이네.”
믿고 신뢰하는 장수들이라는 말에 김시민과 이억기는 기분이 좋은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숨겼지만 이순신은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다시 물었다.
“소장이나 우후, 순천부사가 좌수사 영감의 계획을 조정에 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