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27화 (127/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27화

이주선언

바다 위를 달리던 전선들이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포문을 열자 현자총통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현자총통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쾅! 쾅! 쾅! 쾅! 쾅! 쾅!

각 전선마다 3문씩의 현자총통을 발포한 후 다시 포문을 닫았다.

“정말 대단합니다.”

첨저형 전선들의 훈련 장면을 지켜본 이순신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판옥선보다 빠르고 화력도 판옥선에 못지않으니, 정말 탐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순신이 첨저형 전선에 시선을 떼지 못하자 나는 이순신에게 말했다.

“좌수영의 대목과 목수들도 이제는 첨저형 전선을 건조할 수 있으니 몇 척 더 건조하면 되지 않겠나. 판옥선은 화력이 강하고 선회 능력이 좋으니 방어에 적합하고 첨저선은 속도가 빠르지. 판옥선이 방패라면 첨저선은 창의 역할에 적합한 전선이니 좌수군이 판옥선과 첨저선을 모두 운용한다면 좌수군의 전력은 더 막강해질 것이야.”

내 말을 들은 이순신의 불타는 듯한 눈빛으로 첨저형 전선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좌수사 영감의 말씀이 지극히 옳으십니다. 첨저선이 있으면 판옥선만으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작전도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니, 판옥선과 첨저선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봄이 되는 대로 목수들과 군사들을 동원해 전선을 건조할 것입니다.”

이순신은 눈빛과 목소리를 들어보니 날씨가 풀리자마자 전선을 건조하겠다고 나설 것 같았다.

나는 내년에도 전선건조에 동원될 좌수영 병사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훈련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보면 전선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출정은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 옆에서 전선의 훈련 장면을 바라보던 김시민이 물었다.

“전선이 준비되었으니 곧 떠나야겠지. 다만 가야 할 사람도 많고 가져갈 물건도 많은데…… 배의 수가 적어서 걱정이네. 한 번에 떠나지 못하고 두 번에 나눠서 가야 할 것 같아. 늦어도 보름 안에는 일차로 떠날 왜인들을 울릉도로 보낼 생각이네.”

내 대답을 들은 이억기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울릉도로 가는 선단은 누구에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누구에게 맡기겠나. 내가 지휘해야지. 항왜들은 내가 한 약속을 믿고 이곳 돌산도까지 따라온 사람들이네. 내가 직접 이끌지 않으면 불안해 할 것이 분명하고 울릉도까지 가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내가 직접 선단을 지휘할 것 같네.”

“좌수사 영감께서 직접 나서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김시민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듯이 물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내가 직접 나서는 것이 제일 확실하네. 내가 울릉도에 다녀오는 동안 좌수영과 남아 있는 항왜들을 잘 부탁하네.”

내 말을 들은 김시민과 이억기, 이순신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심려를 놓으십시오. 좌수사 영감.”

* * *

전선들이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좌수영으로 돌아온 나는 좌수영으로 돌아가 울릉도로 항왜들과 대립군을 수송할 계획을 세웠다.

돌산도에서 거주하고 있는 항왜들에 400명의 대립군까지 더하자 울릉도로 수송해야 할 사람의 수만 해도 4,000명에 가까웠다.

게다가 사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무기와 화약 거기에 울릉도로 가는 동안 먹고 마실 물과 식량까지 계산해야 했으니 업무량이 상당했다.

낮에는 좌수영의 공무를 보고 저녁에는 이순신, 이억기, 김시민, 손대남, 이언세와 함께 수송 계획을 세우는 나날이 계속됐다.

간신히 계산을 끝내고 수송계획을 세웠을 때 이언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좌수사 영감. 그런데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인가? 서슴지 말고 말해보게.”

“좌수군의 군사들은 울릉도에 데려가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이언세의 질문에 나는 속이 쓰려오는 것을 느꼈다.

‘데려가면 나는 좋지. 우선 믿을 수 있고 이미 항해 경험에 전투 경험까지 있는 고급인재들인데 그런데 나를 따라서 울릉도, 아니, 북해도까지 가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렇다고 강제로 끌고 갈 수도 없고…….’

“나를 따라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갈 생각은 있지만…… 강제로 데려갈 생각은 없네. 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번에 나를 따라가면 다시는 조선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네.”

내가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웃으며 대답하자 이언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좌수사 영감께서 항왜들과 함께 좌수영을 떠나신다는 소문이 병사들 사이에 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산도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 가운데 항왜들과 정분이 난 병사들이 있다고 합니다.”

“뭐? 항왜들과 정분이 났어?!”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고 이언세는 자신의 죄인 듯 고개를 숙였다.

돌산도에 거주하고 있는 왜인 중에는 남편이 없는 과부들이나 시집을 가지 않은 어린 소녀들도 상당히 많았다.

항왜들 가운데 여인이 많은 것이 신경 쓰인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졸들에게 여인을 강간한 자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참수해서 수급을 효수하겠다고 협박했고, 강간이 아니라도 여인과 관계를 가진 자는 그 여인과 혼인을 치르게 하겠다고 협박했었다.

그런데도 여인들과 연애질을 벌인 병사들이 있다는 말에 나는 기가 막혔다.

‘아니, 참수해서 효수하겠다고 협박했는데도 연애질을 벌였다는 말이야? 참 시대를 막론하고 사내들은 눈앞에 여자가 있으면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나…….’

나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 * *

정해년(1587년) 11월 22일 전라좌수영 돌산도.

아침 일찍부터 항왜들에게 포구에 모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일터에 나가기 위해 또는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려던 왜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포구로 나오라는 병사들의 외침을 듣고 황급히 포구가 있는 바닷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포구에는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나무상자를 쌓아 만든 연단 위에는 갑옷 차림의 장군이 서 있는 것이 왜인들의 눈에 보였다.

붉은색 두정갑 차림에 장검을 찬 나는 연단 위에 올라 항왜들이 모이는 것을 내려다보았고 연단 앞에는 이순신과 이억기가 두정갑 차림에 장검을 차고 있었다.

항왜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나는 항왜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는 내가 너희와 한 약속을 기억하느냐?”

나는 일본어를 할 줄 알았지만 일부러 조선말로 외쳤고 사화동을 비롯해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이들이 일본어로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한 말을 설명했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군님.”

이와마츠 요시히가 항왜들을 대표해 나에게 대답했다.

“내가 이제까지 너희와의 약속을 어긴 적이 있느냐?”

이번에도 이와마츠 요시히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장군님께서는 저희를 보호해 주셨고 저희에게 먹을 것을 부족하지 않게 내려주셨습니다.”

“너희는 앞으로도 나를 믿고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

이번에는 사화동이 있는 힘껏 외쳤다.

“저희는 장군님 덕분에 이제까지 목숨을 부지했고 처자식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장군님께 충성을 맹세했으니 앞으로도 장군님께 충성할 것입니다.”

사화동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이와마츠 요시히와 다른 항왜들도 일제히 외쳤다.

“맞습니다. 장군님께 충성할 것입니다.”

“장군님을 믿고 따를 것입니다.”

나는 장검을 검집째 들어 항왜들을 진정시킨 후 외쳤다.

“좋다. 너희가 나를 믿고 따르겠다니 나도 너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조선을 떠나려고 한다. 너희는 나와 함께 가겠느냐? 그곳은 조선도 아니고 왜국도 아닌 곳이다. 이곳과는 다른 새로운 섬에 들어가 다시 밭을 일구고 배를 만들며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겠느냐? 나를 따라오는 자들을 나는 최선을 다해 보호할 것이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를 따르는 자들을 굶주리지 않게 할 것이다.”

“따르겠습니다. 장군님과 함께 갈 것입니다.”

이번에도 사화동이 제일 먼저 외쳤고 사화동의 뒤를 이어 이와마츠 요시히가 나를 따라가겠다고 외쳤다.

“좋다. 너희 모두 나와 함께 가자.”

내가 항왜들에게 함께 가자고 외치자 항왜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아-!”

“닷새 후에 배가 돌산도를 떠날 것이다. 모두 한 번에 갈 수는 없을 것이니. 두 번에 나눠서 배를 탈 것이다. 후쿠에 섬 출신들로 가족 모두가 돌산도에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우선 배를 탈 것이고 닷새 후에 배를 타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로부터 열흘 후에 배를 타게 될 것이다. 오늘부터는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좋다. 각자의 짐을 싸고 배를 탈 준비를 하라. 사용하던 연장과 살림살이는 신경 쓸 것 없다. 배에 다 실을 수는 없을 것이니. 각자의 옷과 각자에게 소중한 물건들만 짐에 싸도록 하라. 알겠느냐!”

“예. 장군님!”

항왜들은 일제히 대답했고 그 광경을 본 이순신과 이억기는 많이 놀란 얼굴이었다.

내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항왜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고 시마즈 도시히사는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방금 일어난 일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이 장군은 조선의 왕위를 노리는 것이 아니었나? 한성으로 진군하는 것이 아니라. 섬으로 갈 것이라니 그것도, 조선도 아니고 왜국도 아닌 섬으로…….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마을을 떠난다는데도 모두 좋다고 떠나겠다니. 살고 있는 집과 밭을 이대로 놓고 떠나도 좋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 장군은 조선인인데. 이 장군이 가자는 곳으로 무조건 가겠다니…….’

도시히사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을 때 누군가 도시히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시히사가 고개를 들어보니 혼다 고로자에몬과 무사들이 도시히사의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도시히사의 질문에 혼다 고로자에몬은 도시히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대답했다.

“주군께서 찾으십니다.”

혼다 고로자에몬에 말하는 주군이 이 장군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서운한 마음이 살짝은 들었지만 궁금한 것이 많았던 도시히사는 이 장군이 자신을 찾는다는 대답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군께서 찾으신다니. 어서 가지.”

* * *

항왜들에게 북해도로의 이주를 발표한 나는 일본 여인들과 연애질을 한다는 병사들을 질책하기 위해 조천군을 불러 병사들에 대해 물었다.

“강제로 하지 않았어도 왜국 여인과 관계를 가진 자들은 내내 반드시 혼인을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었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작은 섬에서 남녀가 같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 같습니다. 병사들 말로는 왜인이라고 하지만 여인들이 남편도 없이 먹고살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밭 갈고 조개 캐고 물질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해서 밭에서 일할 때 도와주고 먹을 것이 생기면 같이 나눠 먹고…… 그러다 보니 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조천군의 대답에 나는 기가 막혀서 물었다.

“그래. 그렇게 여인들과 정이든 병사들이 몇이나 되는가?”

“17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조천군은 머뭇거리면서 대답했고 대답을 들은 나는 조천군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놈들 처자식이 있는 놈들은 아니겠지? 만약 처자식이 있는 놈들이 여인들과 정분이 났다면 볼 것도 없이 참수할 것이네.”

“아닙니다. 대부분 홀아비들이고 3명은 아직 장가도 들지 않은 놈들입니다.”

참수시킨다는 말에 조천군은 놀라서 대답했고 나는 조천군을 노려보며 명령을 내렸다.

“그놈들 오늘 저녁까지 좌수영으로 잡아 오게. 아니, 이참에 돌산도의 군사들을 모조리 단속해 그놈들 외에도 여인들과 정분 난 놈이 있거나 여인을 범한 놈이 있다면 함께 잡아 오게. 한 놈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네.”

“예 알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