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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28화 (128/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28화

호랑이의 주인

“좌수사 영감. 그런데 말입니다.”

“보고할 일이 더 있는가?”

내 질문에 조천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보고할 일이 아닌 단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말해보게.”

내가 말하라고 하자. 조천군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좌수사 영감께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좀 서운해서 그럽니다.”

“서운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왜놈들을 데리고 떠날 생각을 하시면서 왜 소장에게는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묻지도 않으신 겁니까. 솔직히 섭섭합니다…….”

조천군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조 군관. 자네가.”

조천군을 데려가면 일은 잘할 것 같지만, 왜 나와 함께 가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좌수사 영감께서 좌수영을 맡으신 다음부터 부족한 것 없이 지냈습니다. 솔직히 다른 수사 영감들을 모셨을 때보다 더 편하게 지낸 것은 아니지만, 부정도 저지르지 않으시고 좌수군 전체에 병장기와 군량이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셨으니. 좌수사 영감만큼 좌수영을 이끄신 분도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좌수사 영감의 명으로 돌산도에 들어와 왜놈들과 함께 지낸 시간도 벌써 1년에 가깝습니다. 소장도 사람인데. 1년 가까이 좁은 섬에서 왜놈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살았으니 어찌 왜놈들과 정이 들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보기만 지긋지긋했던 왜놈들이지만 지금은 정이 많이 들었는지 아침에 보이지 않는 놈들이 있으면 어디 아픈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항왜들을 관리하면서 항왜들과 정이 들었다니 뜻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나와 함께 조선을 떠날 생각이 있는가?”

내 질문에 조천군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하나뿐인 노모는 고향에서 형님이 모시고 계시고. 처자식도 없는 홀몸이니 조선을 떠나는 것이 두려울 이유가 없습니다. 좌수사 영감. 소장도 영감을 따르겠습니다.”

조천군의 대답에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각오는 되어 있는가? 조선처럼 집이며 관청이 세워진 곳에 가는 것이 아니네. 당장 움막에서 잠을 자고 맨땅을 파헤쳐서 밭을 만들어야 하는 곳이야.”

“어차피 돌산도에 와서 처음 한 일이 초가집을 짓고 황무지를 개간해 밭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같은 일도 이미 해본 사람이 더 잘하지 않겠습니까.”

조천군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는 더 말릴 이유가 없었다.

“좋아. 조 군관 자네도 닷새 후에 배에 탈 수 있도록 짐을 싸게. 그리고 돌산도의 군사들 중에도 자네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다면 닷새 안에 보고하도록 하게.”

“예. 좌수사 영감.”

조천군은 신이 나서 대답했고 나는 뜻밖의 상황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조 군관이 함께 북해도에 가겠다니 나에게는 잘된 일이지만. 항왜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라고 배치해 놨더니. 병사들은 일본 여자들과 연애질을 하지를 않나, 병사들을 지휘하는 군관은 항왜들과 정이 들었다고 같이 가겠다고 하지를 않나…… 완전 콩가루구만.’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가 혀를 차고 있었을 때 혼다 고로자에몬과 시마즈 출신 무장들이 시마즈 도시히사를 내가 있는 집으로 데려왔다.

“좌수사 영감. 도시히사가 도착했습니다.”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김개동이 보고하자 나는 김개동에게 명령을 내렸다.

“도시히사를 방 안으로 들여보내라.”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도시히사가 들어오자 나는 손짓으로 도시히사에게 자리를 권했다.

도시히사가 자리에 앉자 나는 일본어로 도시히사에게 울릉도를 거쳐 북해도로 진군하려는 내 계획을 설명했다.

이 계획을 처음 들은 도시히사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특히 북해도에서 군사들을 양병하고 전선을 더 건조할 것이라는 말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해하지는 마시게. 동해도에서 양병하고 건조한 군사와 전선으로 왜국을 침략하지는 않을 것이야. 나는 오로지 히데요시를 칠 것이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관백(関白)[도요토미 히데요시]을 치신다니요. 주군께서 어찌하여 관백을 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히데요시는 이미 조선과 명국을 노리고 있네. 시마즈 가문을 굴복시킨 후 히데요시는 대마도주에게 조선에 사신을 보낼 것을 명령했고 이미 대마도주의 신하가 조선에 사신으로 와서 무례를 범했다고 하네. 나는 시마즈를 굴복시킨 후 자신감을 얻은 히데요시가 규슈에 20만 대군을 상륙시켰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조선에 대군을 상륙시켜 조선을 침략할 마음을 먹었다고 확신하고 있네. 물론 조선에서도 히데요시의 침략에 대비해 전쟁을 준비할 것이니 히데요시가 조선에 군사들을 상륙시켜도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이야. 나는 히데요시가 조선에 자신의 가신들과 히데요시를 따르는 다이묘(大名)[일본의 영주]들의 군사들을 상륙시켰을 때 동해도에서 출병해 히데요시를 칠 것이네.”

내 계획을 들은 시마즈 도시히사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전장에서 히데요시를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가슴이 뛰는 것이었다.

“그 말씀이 진심이십니까. 히데요시를 치실 생각이십니까?”

“히데요시 하나 때문에 조선과 왜국 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네. 히데요시만 사라진다면 왜국에서 바다를 건너 조선을 침략할 생각을 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조선에서도 바다를 건너 왜국을 침략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니, 지금처럼 조선과 왜국은 평화를 누리며 공존할 수 있을 것이네.”

내 대답을 들은 도시히사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장군. 히데요시의 목을 칠 전장에서는 소인이 선봉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소인을 선봉에 세워 주소서.”

“자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네. 그리고 그보다 우선 동해도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동해도의 남쪽 끝의 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왜인들 토벌해야 하는데. 동해도에서의 활약도 기대할 수 있겠나.”

시마즈 도시히사는 자신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군께서는 아무 염려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본토(혼슈)에서 버티지 못하고 북쪽의 섬으로 밀려간 오합지졸 따위는 주군의 걱정거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소인에게 시마즈 출신 무사들만 맡겨주신다면 하루 안에 그깟 놈들을 토벌하고 동해도를 주군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오만하게 들릴 정도로 자신이 넘쳤다. 그리고 다행히 도시히사는 자신이 말한 대로 실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시마즈 가문의 당주였던 친형 시마즈 요시히사의 전략 참모로 시마즈 가문이 규슈 북부로 진군했을 때. 시마즈 군의 군사작전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세운 그야말로 지용을 겸비한 무장이니, 200명도 안 되는 시마즈 출신 무장들만으로 오시마 반도를 정벌하겠다는 장담이 허풍으로 들리지는 않는구나. 시마즈 도시히사를 부하 장수로 쓸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름없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시마즈의 군사들이 규슈 북부로 진군해 규슈 전 지역의 점령을 앞두고 있었을 때 시마즈 가문의 당주이자 총사령관인 시마즈 요시히사의 부장으로 수만 명의 시마즈군을 지휘했었다.

대규모 전쟁에서 만 명 이상의 군사를 지휘했던 도시히사는 내가 놓칠 수 없는 인재였다.

“동해도에서는 물론 히데요시를 칠 때도 도시히사 자네의 활약을 기대하겠네. 히데요시의 팔, 다리를 꺾어 놓기만 해도 시마즈 가문에게는 큰 기회가 될 것이네.”

내가 시마즈 가문을 거론하자 도시히사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자네는 시마즈 요시히사 공과 현 당주이신 시마즈 요시히로 공의 친형제이니 시마즈 가문은 자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 그래서 도시히사 자네의 역할이 중요하네. 히데요시가 우리에게 공격을 받고 규슈로 출병할 수 없게 되면 시마즈는 사쓰마와 오스미에서 다시 북진해 규슈 전체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니.”

시마즈 도시히사 정도의 인물이 그 정도 계산을 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도시히사는 내 계획대로 내가 북해도에서 출병하는 것이 시마즈 가문에도 기회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 다시 엎드려 절했다.

“저는 물론 저희 가문에도 치욕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군. 소인 시마즈 가문이라는 성을 버릴 수는 없지만, 소인이 살아있는 한 주군을 주인으로 모시며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나는 직접 도시히사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자네 같은 명장을 휘하에 두게 되었으니 참으로 든든하네. 내 반드시 자네에게 기회를 줄 것이니 아무 염려하지 마시게.”

* * *

항왜들에게 북해도로 이주할 것을 발표하고 좌수영을 떠날 준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때 때마침 정옥남이 보리쌀과 면포를 가지고 좌수영에 도착했다.

정옥남은 은 1,000냥으로 보리쌀 3,600섬과 면포 2,500필을 구매해 좌수영에 가져왔다.

조선시대에 보리의 가격이 쌀의 가격에 최소 2배에서 최대 5배에 달했고 면포의 가격은 쌀 4말에서 5말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은 1,000냥으로 그 정도의 보리와 면포를 구해온 것은 정옥남이 상당히 거래를 잘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보리와 면포에 내가 감탄하자 정옥남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버님과 친분이 있는 상인들과 거래했기에 은을 좋은 가격에 넘길 수 있었소. 보리와 면포도 그들을 통해 구한 것이니. 품질은 믿어도 좋을 것이오. 보리와 면포를 좌수영까지 가져오는 것이 상인들과 거래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소이다.”

“수고하셨소이다. 정공.”

나는 정옥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작은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오늘 저녁, 정공과 술이라도 한잔 함께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소이다. 죽도 선생에게 서신을 보내 주시오. 사흘 안에 좌수영에서 울릉도를 향해 출발할 것이오.”

사안의 중요성을 깨달은 정옥남은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좌수사 영감께서도 사흘 후에 떠나실 생각이시오?”

“나도 사흘 후에 배를 탈 생각이지만 나는 다시 좌수영으로 돌아올 것이오. 배를 타야 할 사람들이 많고 가져가야 할 물건들도 많아. 두세 번에 나눠서 배에 태워야 할 것 같소.”

“알겠소이다. 아버님께 소식을 전하겠소이다.”

나는 정옥남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어찌하면 이번이 정공께는 직접 뵙고 인사하는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겠소. 그동안 고마웠소이다.”

“영감이야말로 수고가 많으시오. 부디 큰 뜻을 이루시기를.”

정옥남 역시 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서둘러 좌수영을 떠났다.

* * *

정옥남이 좌수영을 떠난 후 사흘째 되는 날 새벽 돌산도 앞바다에서는 갤리온 3척과 첨저선 1척이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고, 포구에는 각자 짐 보따리를 손에든 왜인들이 배에 오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에 출항하는 배는 갤리온 1척과 시제품으로 건조한 첨저형 전선 1척으로 총 4척이었다.

좌수영에는 첨저형 전선 5척이 있었지만 건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전선인 데다가 아직은 갤리온에 익숙한 병사들의 수가 많지 않은 관계로 시험 항해와 병사들의 훈련을 위해 새 전선 5척은 좌수영에 남겨놓기로 결정했다.

“첨저선은 포구에 가까이 올 수 없으니 배에 오를 사람들은 단선(보트)에 태워 배에 올려보내야 할 것이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출항해야 하니 모두 서둘러라.”

“예, 좌수사 영감.”

항왜들을 보트에 태워 갤리온에 승선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자 손대남과 조천군은 병사들을 지휘해 짐 보따리를 든 항왜들을 보트에 태웠다.

“가족들 단위로 태워라.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서 다른 배에 타면 불안해하잖아. 가족들 단위로 태워.”

“거기는 자리가 비잖아. 최대한 많이 태워. 걱정할 것 없다. 장정 열두 명이 타도 끄떡없었던 배다. 작아도 아주 튼튼한 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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