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30화
좌수사의 선물
조정에서 좌수영 우후 김시민을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는 것이 결정된 그 날, 저녁 돌산도의 포구에는 첨저형 전선이 3척이나 도착해 있었다.
전선들을 지휘한 사람은 좌수영 군관 조천군이었다.
“울릉도와 좌수영으로 오고 가느라 고생이 많군.”
“이제는 제법 동쪽 바다의 뱃길에 익숙해졌습니다.”
이순신이 조천군을 반갑게 맞이하자 조천군도 반갑게 대답하며 인사를 받았다.
“여기 좌수사 영감의 서신입니다.”
“그래 알았네.”
조천군으로부터 좌수사의 서신을 받아 내용을 확인한 이순신은 놀란 얼굴로 조천군에게 말했다.
“좌수사 영감께서는 마지막까지 좌수영에 큰 선물을 주시는군. 돌산도의 창고에 있는 철과 구리 중에서 철 2,000근과 구리 3,000근, 유황 500근을 좌수영에서 병장기와 화약을 제작하는 데 사용하라고 하셨고, 화승총 10정과 현자총통 5문도 좌수영에서 사용하라고 하셨군…… 좌수군의 화력 증강을 위한 선물이라고 하셨네.”
“좌수사 영감께서는 늘 좌수군과 좌수영에 남아계시는 분들을 걱정하시고 계십니다.”
조천군의 대답에 이순신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참…… 우리야 좌수영에서 잘 지내고 있지. 좌수사 영감을 따라간 자네들이야말로 맨땅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네들이 걱정이지.”
“아직은 지낼 만합니다. 울릉도에 집도 있고, 먹을 양식도 넉넉해 아직까지는 크게 불편한 점이 없습니다.”
조천군의 이순신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좌수사 이대원이 항왜들과 함께 울릉도로 출항한 이후 그동안 좌수영에서는 총 4차례에 걸쳐 갤리온과 전선(첨저형 전선)으로 항왜들과 대립군 400명이 울릉도로 이주했다.
대립군에는 좌수영을 떠나는 것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좌수사가 책임지고 조선으로 돌려 보내주겠다고 장담하면서 좌수영을 떠나 있는 동안에는 면포를 한 달에 2필씩 지불하겠다고 하자 순순히 전선에 승선했다.
이렇게 항왜들과 시마즈 그리고 정여립을 통해 영입한 장인들과 무장들. 그리고 대립군까지 울릉도로 향하는 배에 오르자 좌수영의 병사들 중에도 좌수사를 따라 을릉도로 가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우선 일본 여인들과 연애질을 하던 17명의 병사는 고민 끝에 모두 울릉도로 따라갔고, 좌수사의 지휘를 받으며 정해왜변을 겪었던 녹도진과 좌수영 본영 소속의 군사들 중에서 100여 명이 좌수사를 따라가겠다고 지원했다.
대부분 혼인하지 않았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는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군관들 중에 조천군에 이어서 최도진도 좌수사를 따라 울릉도로 향했으니 좌수사 이대원은 최도진의 합류를 기뻐하였다.
그렇게 4차례에 걸쳐 왜인들과 장인들 그리고 군사들을 울릉도로 수송하며 울릉도에서 좌수영까지의 뱃길에 익숙해진 조천군은 마지막으로 돌산도와 좌수영에 남아 있는 무기들과 화약, 히라도와 교역을 하며 모아놓은 철과 구리와 유황 그리고 돌산도의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 등의 물품들을 가져가지 위해 돌산도로 돌아온 것이다.
이순신이 조천군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좌수영의 병사들과 전선에서 내려온 항왜들은 창고에 쌓여 있던 철괴와 구리괴를 부지런히 포구로 운반했고 포구에서는 판옥선에 철괴와 구리괴를 실어 갤리온으로 가져갔다.
병사들과 항왜들은 철괴와 구리괴를 모두 운반한 후 공방에 남아 있던 화승총과 대포 그리고 포차를 운반했고 그 광경을 보며 조천군은 이순신에게 말했다.
“좌수사 영감께서 명하신 대로 화승총 10정과 현자총통 5문은 좌수영에 놓고 가겠습니다. 좌수사 영감께서는 소금 창고의 소금과 화약도 절반만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창고에 남아 있는 소금과 화약은 좌수영에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병기에 화약과 소금까지…… 좌수사 영감께 감사할 뿐이네. 화약과 소금은 좌수사 영감께도 필요할 텐데.”
“소금과 화약은 또 만들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돌산도에 염전과 염초 밭을 만들었었으니 동해도에 염전과 염초 밭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조천군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이순신은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좌수사 영감이나 좌수사를 따라간 이들이나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맨땅에서 밭을 만들고 염전을 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인데.’
이순신은 자신보다 19살이나 어린 전라좌수사 이대원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참, 좌수사 영감께서는 평안하신가? 좌수사 영감의 안부를 묻는 것이 늦었군.”
이순신의 질문에 조천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좌수사 영감께서는 늘 바쁘시지요. 좌수영에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지만 울릉도에서는 2배는 더 바쁘게 지내십니다. 울릉도에 있는 놈들은 조선인이건 왜인이건 전부 좌수사 영감만 바라보고 울릉도 따라간 놈들 아니겠습니까. 영감께서 나서지 않으시면 되는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지만 처음 며칠간은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이순신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젊으신 나이에 정말 큰 짐을 지셨군.”
“그동안 정말 정신없으셨을 겁니다. 그래도 요 며칠간은 푹 쉬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좌수사 영감께서 호위병들과 함께 동해도로 정찰을 가셨으니 말입니다. 동해도를 다녀오시는 동안은 별일 없이 푹 쉬실 수 있으실 겁니다.”
조천군의 대답에 이순신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벌써 동해도로 가셨다는 말인가? 울릉도로 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는데.”
“동해도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가셨습니다. 아직 겨울이고 바다도 거칠어서 저희도 바다가 잠잠해지면 다녀오라고 말씀드렸지만 좌수사 영감께서는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고 남만선을 타고 가시면 안전하게 다녀오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순신은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후 혀를 찼다.
“너무 서두르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구나. 하여간 무사히 다녀오셔야 할 텐데.”
* * *
다음 날 아침 좌수영에서 가져가야 할 화물들을 모두 실은 전선들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돌산도를 출항해 남쪽 바다로 향했다.
경상도 수군의 눈을 피해야 하는 이들은 남쪽으로 달리다가 동쪽으로 우회해 동해를 돌아 울릉도로 돌아가야 했다.
전라좌수군 군관이었던 조천군이 좌수영에서 무기와 화약들의 물품들을 가져오기 위해 울릉도를 출항한 다음 날 울릉도에서는 갤리온 1척이 출항했다.
북해도의 오시마 반도를 정찰하기 위해 출발한 갤리온이었다.
갤리온에는 나를 비롯해 김개동과 호위병 6명, 시마즈 도시히사와 항왜 출신 군사 20명 그리고 좌수군 군관이었던 최도진과 좌수군 출신 군사 10명과 함께 포르투칼인 항해사 드베로와 포르투칼인 선원 20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포르투칼 선원들 외에 항왜 출신들과 좌수군 출신 군사들도 능숙한 뱃사람이었고 수병이었으니 갤리온이 항해를 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는 울릉도를 출발하기 전에 드베로에게 내가 그린 지도와 함께 북해도의 대략적인 위치와 거리를 알려주었고, 정확한 위치를 확신할 수 없었던 드베로는 육분의로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며 동북쪽으로 갤리온을 몰았다.
갤리온이 북해도를 향해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동안 나는 시마즈 도시하사와 최도진에게 북해도에 대해 설명했다.
시마즈의 거점인 규슈의 사쓰마와의 끝에서 끝에 위치하고 있기에 도시히사는 북해도에 대해 이야기만 들어본 수준이었고, 최도진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기에 둘 다 북해도에 대한 설명을 아주 집중해서 들었다.
북해도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마자 시마즈 도시히사는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군께서 동해도를 원하시는 것을 알았으니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해도에 도착하는 대로 눈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베고 동해도를 주군께 바칠 것이옵니다.”
도시히사가 당장 검을 뽑아 들고 북해도의 왜인들을 향해 달려들 기세로 말하자 나는 도시히사의 대답에 흐뭇함을 느끼며 말했다.
“적진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적진을 공격할 수는 없으니 우선은 적진인 오시마 반도의 상황을 살필 것이다.”
도시히사에게 이번 북해도행의 목적을 다시 한번 설명하고 있었을 때 선장실의 밖에서 김개동의 목소리가 들렸다.
“좌수사 영감. 육지가 보입니다.”
좌수영을 떠났지만 부하들은 아직도 나를 좌수사라고 불렀고 나도 부하들을 좌수영 시절의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드디어 동해도에 도착했나 보군. 갑판으로 올라가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도시히사와 최도진의 내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판으로 나와 정면에 보이는 육지를 바라보았다. 해변이 펼쳐져 있었지만 포구나 항구 같은 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면에 보이는 육지를 바라보며 항해사인 드배로에게 명령을 내렸다.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려라. 섬의 남쪽 끝에 항구가 있을 것이다.”
드베로에게 일본어로 명령을 내리자 내 명령을 알아들은 드베로는 키를 남쪽으로 돌렸다.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리고 해변을 따라 한참을 내려간 끝에 기다렸던 항구가 보였다.
항구가 보이자 갤리온은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항구에 다가갔다.
“드디어 도착했다. 모두 준비해라.”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갑판에 나와 있던 병사들은 밧줄을 만지고 갑판을 청소하는 시늉을 하며 평범한 상선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일단의 병사들은 갑판 아래에서 화승총에 총탄과 화약을 장전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항구 근처에 요새와 망루를 세워 놓았습니다. 항구를 공격하면서 망루와 요새를 제압할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최도진이 해변가에 세워져 있는 요새를 바라보며 말했고 도시히사 역시 갑판에 나와 항구 주변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했다.
“항구에 상륙하기만 하면 망루를 함락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망루와 요새가 있지만 아군은 충분한 수의 철포를 보유하고 있으니 철포로 제압사격을 퍼붓는다면 적군은 제대로 대항하지 못할 것입니다.”
갤리온이 항구에 다가가자 항구를 지키고 있던 왜인들이 갤리온을 발견하고 작은 배로 갤리온에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소.”
갤리온을 보고 놀랐는지 왜인 무장은 비교적 정중한 말투로 물었다.
“우리는 사카이항으로 가는 상인들이오. 명나라의 영파항을 출발해 사카이로 가던 중 바다가 거칠고 바람까지 세게 불어서 길을 잘못 들었소. 이곳은 어디요?”
내가 나서서 상인이라고 대답하자 무장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곳은 와진치(和人地)[오시마 반도]요. 사카이는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 곳이오.”
무장의 반응이 예상외로 친절하자 나는 항구에 상륙할 구실을 찾았다.
“우리 배에 물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러니 이곳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겠소? 기왕이면 먹을 것도 부탁하겠소. 물론 대가는 지불하겠소.”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말에 무장은 구미가 당겼는지 고민하지도 않고 물었다.
“물과 식량이라면 물론 팔 수 있소. 대가로 무엇을 주시겠소?”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조선에서부터 준비해 온 상품이 있었다.
“면포를 주겠소. 아주 상품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