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31화
북해도 상륙
조선에서 가져온 면포를 꺼내자 무장의 입이 귀밑에 걸릴 정도로 벌어졌다.
“마실 물과 먹을 것, 특히 곡식과 채소를 주면 이 면포를 드리겠소.”
내 제안을 들은 무장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대답했다.
“면포 10필을 주면 당신들 일행이 한 달은 먹고도 남을 식량과 목욕을 하고도 남을 물을 드리겠소.”
“좋소. 면포를 드리겠소.”
내가 좋다고 하자 무장은 신이 나서 부하들에게 물과 식량을 가져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왜인들이 물과 식량을 가져오는 동안 나는 면포 10필을 보트에 싣고 왜인들이 타고 있는 배로 건너갔다.
무장은 내가 왜선에 올라가려고 하자 부하들을 시켜 나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보시오. 명나라에서 가져온 면포요. 품질이 좋은 상품이오,”
“정말로 고맙소.”
내가 면포를 내밀자 무장은 면포를 만져보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고 다른 왜인들도 면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왜인들이 면포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나와 함께 왜선에 오른 도시히사와 김개동은 왜인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나는 무장의 부하들이 식수와 식량을 가져오기를 기색을 보이며 항구와 항구에 정박해 있는 왜선들을 살펴보았다.
‘왜선들은 고깃배 수준이지만 항구는 제법 잘 정비되어 보이는구나. 오시마 반도에 살고 있는 왜인들의 주 수입원은 북해도의 특산품으로 혼슈의 상인들과 교역을 하는 것이니, 상선들이 정박하기 편하도록 항구를 정비한 것이겠지. 항구를 점령하기만 하면 병력과 대포를 북해도에 상륙시키기에 편리할 것 같다.’
식량을 기다리는 것처럼 항구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 왜인들이 나무로 된 물통과 곡식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마니를 짊어지고 왔다.
잠시 후 왜선에 물이 가득 들어있는 물통 10개와 쌀이 2섬 그리고 채소와 말린 생선 등 부식거리가 도착했다.
물과 식량을 확인한 나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무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물과 식량이 도착했군. 정말로 고맙소이다.”
“면포를 받았으니 내가 고마운 일이오. 정말로 고맙소.”
무장은 기분이 좋은 듯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나는 무장과 훈훈한 인사를 나눈 후 보트를 타고 갤리온으로 돌아왔다.
* * *
오시마 반도의 무장이 제공한 물과 식량을 모두 갤리온에 옮겨 실은 후 갤리온의 뱃머리를 남쪽으로 들려 사카이로 향하는 척하면서 울릉도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북해도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와 최도진을 선장실로 불렀다.
“동해도의 왜인들의 상태가 어떤 것 같은가?”
내 질문에 도시히사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무장 상태는 군사라기보다는 산적들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만, 복장이나 무장 상태를 보니 칼이나 휘둘러 봤을까 싶었습니다. 군사 훈련을 제대로 받은 놈들 같지는 않았습니다.”
도시히사의 보고가 끝나자 최도진도 입을 열었다.
“항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의 위치와 항구 주위의 망루와 요새들을 보니 북쪽의 육지에서 공격받을 것을 대비해 군사들을 배치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항구 앞바다에 전선을 정박시켜 화승총과 편전으로 공격한다면 항구의 적병은 물론 항구 인근의 망루들도 아군 병력이 상륙하기 전에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보기에도 항구를 지키고 있는 왜군들의 좌수영에서 훈련을 받은 대립군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시마 반도에 상륙을 시도할 때. 항구 주변에 서 있는 망루와 요새에서 활이나 화승총으로 상륙 병력을 공격할 경우가 염려되기는 했지만.
최도진의 의견대로 전선으로 항구에 최대한 접근시켜 사정거리가 긴 편전으로 적병을 공격한다면 상륙병력이 공격을 받기 전에 망루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항구를 점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군.”
기대한 것 이상으로 유리한 상황에 기분이 좋아진 내가 말하자 최도진은 힘차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영감. 소장이 선봉으로 나서서 적병을 제압하고 항구를 점령할 것입니다.”
최도진의 뒤를 이어 도시히사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항구를 점령한 후에는 소인을 선봉으로 나서겠습니다. 적장의 수급을 베어 주군께 바칠 것입니다.”
최도진과 시마즈 도시히사가 선봉으로 나서기를 자청하며 승리를 확신하나 나는 한층 더 자신감이 솟구쳤다.
‘오시마 반도의 왜인들은 지금까지 오시마 반도 북쪽의 아이누인과 전투가 벌어진 적은 있었어도 바다가 있는 남쪽에서 공격을 당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전선으로 항구를 기습 공격해 점령하고 항구를 통해 병력을 상륙시킨다. 항왜 출신 병사들과 대립군 그리고 대동계원들 까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1,000여 명에 달하니 이들을 오시마 반도에 상륙시킨다면 왜인들을 정벌하고 오시마 반도를 점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정찰 결과에 만족하며 울릉도에 돌아가는 대로 오시마 반도를 정벌할 군사를 일으킬 생각을 했다.
그러나 북해도를 출발한 지 9일 만에 울릉도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북해도로 출병할 수 없었다.
정여립이 약속한 대동계원들이 그때까지 울릉도에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정여립에게 서신을 보내 정여립이 약속했던 300명의 대동계원들을 울릉도로 보내줄 것을 요청한 후 정여립과 대동계원들을 기다리는 동안 군사들을 재편성했다.
그동안은 조선군식 편제인 오(伍) - 대(隊) - 여(旅)의 편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좌수영을 떠난 이상 굳이 조선군식 편제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항왜 출신 군사들과 시마즈 출신 무장들은 조선군식의 편제가 익숙하지도 않으니 편제를 바꾼다고 해도 큰 불만이 없었다.
나는 나에게 익숙한 분대 - 소대 - 중대 - 대대로 군사를 재편성하기로 결정하고 분대장을 포함해 군사 10명으로 분대를 구성했다.
소대는 3개 분대(군사 30명)에 소대장과 소대장의 호위와 전령을 겸할 군사 4명으로 총 35명이었고, 중대는 3개 소대(105명)에 중대장과 호위와 전령을 겸할 군사 9명과 정찰병 5명을 더해 총 120명.
대대는 3개 중대(360명)에 대대장의 호위, 전령, 정찰병 그리고 지원 병력까지 모두 합해서 400명으로 구성했다.
우선은 항왜 출신 병사 200명에 168명의 시마즈 출신 무장들을 합하고 항왜들 가운데 모병을 통해 병사를 모집해 400명을 채워 1개 대대를 편성하고 부대 이름을 흰색호랑이 백호대라고 붙였다.
백호대에 이어서 대립군 병력 400명을 그대로 1개 대대로 편성하고 백호와는 반대가 되는 검은색 호랑이 흑호대로 이름을 붙였고, 이들 외에 좌수군 출신 군사들은 우선은 내 직속 병력으로 거느리고 있다고 대동계원들이 도착하는 대로 대동계원들과 합해서 1개 대대를 편성할 계획이었다.
* * *
이렇게 군사들을 새롭게 정비하고 훈련시키는 동안 한 달이 금방 지나가고 무자년(1588년) 2월이 되었다.
그동안 조선에서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북방의 육진에서는 북병사 이일이 녹둔도가 습격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북병영의 병력 2,500명을 동원해 여진족들이 살고 있는 시전부락을 토벌했다.
역사에 시전부락 전투로 기록되는 이 전투에서 북병영은 전과로 올린 여진족 수급의 수가 380여 개에 달했을 정도로 큰 승리를 거뒀다.
한편 조정에서는 병조판서 정언신 대감이 우찬성(종1품)으로 승진했다.
선조의 신임을 받고 있는 정언신 대감이 우찬성으로 승진하자 조정의 대신들은 정언신 대감이 다음에는 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 * *
무자년(1588년) 3월 01일 10:00 북해도 오시마 반도 남쪽 바다.
거친 파도를 뚫고 3척의 갤리온과 5척의 전선이 오시마 반도를 향해 다가갔다.
전선들이 항구를 향해 다가갈 때만 해도 항구를 지키고 있던 왜군들은 이 전선들이 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남쪽 바다에서 다가오는 배들은 대부분 상인들이 탄 상선들이었고 무장한 전선들이 바다로부터 접근해야 오시마 반도의 왜인들을 공격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규모가 큰 상단이 상선들을 몰고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 다가오는 배들이 무장한 전선이라거나 오시마 반도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항구를 지키고 있던 군사들을 지휘하던 이코마 야스마사는 항구를 향해 다가오는 전선들을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큰 상단이 오는 모양이군. 이번에도 재미 좀 보겠는데.”
항구로 상선들이 드나들 때면 야스마사와 항구를 지키는 병사들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야스마사와 왜군들이 항구를 향해 배들을 상선으로 생각하고 이번에도 용돈이 두둑하게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을 때 항구를 향해 다가오던 전선들이 갑자기 그 자리에 뱃머리를 좌측으로 돌리고 있었다.
“뭐야 왜 저러는 거지.”
해전 경험이 없던 야스마사와 왜군들이 생전 처음 보는 장면에 전선들이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을 때 항구를 향해 측면을 드러낸 전선의 선체에서 일제히 포문이 열렸다.
“좌수사 영감. 방포 준비가 끝났나이다.”
최도진의 보고를 받은 나는 항구를 바라보며 힘차게 외쳤다.
“방포하라.”
“예이. 방포하라.”
방포명령이 떨어지자 항구를 조준하고 있던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일제히 포성이 울리며 대포에 장전되어 있던 차대전이 날아갔다.
차대전은 조선군이 총통으로 발사하는 화살로 길이가 6척 3촌 7분(약 3m), 둘레 지름이 2촌 2분(약 66cm) 이고, 무게는 7근(4.4kg)에 달했다.
현자총통으로 차대전을 발사했을 경우의 사정거리가 800보에 달했다고 한다.
포성과 함께 날아간 차대전은 항구 주위에 세워져 있는 망루와 요새를 향해 날아들었고 차대전이 명중한 망루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셔지거나 무너져 내려갔다.
전선의 갑판 위에서 그 장면을 확인한 나는 소리 높여 외쳤다.
“총병과 사부들은 적병을 저격하라. 백호대는 상륙을 준비하라.”
“예이. 총병과 사부들은 적병을 저격하라. 백호대는 어서 서둘러라.”
내 명령이 떨어지자 화승총으로 무장한 총병들과 각궁으로 든 사부(궁수)들이 갑판 위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승총을 장전한 총병들은 항구와 그 주위에 있는 왜군들을 조준했고 사부들 역시 편전으로 왜군들을 조준했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탕- 탕- 탕- 탕- 탕-
총병과 사부들에게 방포 명령이 떨어지자 총병들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고 사부들은 편전을 날렸다.
이미 포성에 놀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던 왜군들은 총병과 사부들이 자신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편전을 날리자 기겁을 하며 섬 안으로 도망쳤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화승총의 최대 사정거리가 500m에 달한다고는 하지만 적을 살상할 수 있는 유효사거리는 200m 안팎이다. 전선에서 적병을 들을 향해 쏴도 대부분 유효사거리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치는구나.’
총병과 사부들의 사격은 항구의 적병을 살상하는 목적이 아닌 백호대가 오시마 반도에 상륙하고 항구를 장악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도록 백호대를 엄호하기 위한 사격이었다.
유효사거리 밖에서 사격을 하는 것이니 화약과 총탄을 허공에 날리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이미 포성에 놀라고 망루가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왜군들은 총병이 울리자 놀라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고 그 덕분에 보트에 몸을 실은 백호대는 별다른 피해 없이 상륙하는 데 성공했고 순조롭게 항구를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