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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32화 (132/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32화

대관(大館)

보트에 몸을 싣고 북해도에 상륙하는 데 성공한 백호대 군사들은 항구를 점령하고 항구 주위에 남아 있는 망루와 요새들을 공격했다.

“어서 서둘러라. 저 망루들부터 점령하란 말이다!”

두정갑 차림에 투구를 쓴 백호대 대장 시마즈 도시히사는 일본도를 휘두르며 아직 무너지지 않은 망루들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고, 조선식 엄심갑 차림에 조선식 투구를 쓴 백호대 군사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아직 함락되지 않은 망루들을 포위해 고립시켰다. 항왜출신과 시마즈 출신들로 군사들로 구성된 백호대였지만 중대장급 이상 무장들은 조선식 두정갑 차림이었고 소대장들과 병사들도 조선식 엄심갑을 입고 있었다.

투구까지 조선식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손에 들고 있는 무기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일본식 병장기들이었다.

일본도와 스야리(素槍), 나게야리(長柄槍) 등 일본식 창 그리고 화승총으로 무장한 백호대 군사들은 하나같이 허리에 와키자시나 단도를 차고 있었다.

나의 지휘를 받는 군사들이 왜군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에 피아식별과 아군의 오인사격이 염려된다는 것을 이유로 백호대 군사들도 모두 조선식 갑주를 지급했다.

백호대 대장인 시마즈 도시히사와 중대장인 혼다 고로자에몬 등 지휘관급의 무장들은 익숙하지 않은 두정갑을 불편해하는 것 같았지만 두정갑에 적응하기 위해 갑옷을 입고 달리거나 검술을 연습하는 등.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일반 군사들은 갑옷과 투구를 지급받는 것을 기뻐했다.

그들 역시 전국시대의 일본에서 살았던 사람들이기에 갑옷과 투구가 목숨을 지키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갑주는 조선식으로 입혔지만 무기는 그들의 손에 익은 일본식 무기를 그대로 지급한 탓에 두정갑 차림에 일본도를 휘두르고 있는 장수들이 엄심갑 차림에 허리에는 단도를 차고 손에는 나게야리를 들고 있는 군사들을 지휘하는 장면이 보였다.

조선식 갑주에 일본식 무기 누가 봐도 이질적으로 보이는 장면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처음에는 어색해 보였지만…… 이제는 자주 봐서 그런지 저런 조합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야. 조선의 갑주와 일본도라 나도 저런 조합에 도전해 볼까.’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가 보낸 예물 중에 명장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일본도와 와키자시 그리고 단도가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 나도 두정갑 차림에 일본도를 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좌수사 영감. 백호대가 항구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나이다.”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최도진의 보고를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엉뚱한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니 나도 아직 멀었구나.’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작전은 세워져 있었다.

백호대가 항구를 점령했으니 다음 단계는 전선을 항구에 정박시키고 흑호대와 대포를 상륙시키는 것이었다.

“항구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니 전선을 항구에 정박시킨다. 바다의 경계를 위해 전선 2척은 바다에 남고 그 외에는 1척씩 천천히 항구에 진입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영감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최도진이 대답하자. 항구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다시 최도진에게 명령을 내렸다.

“백호대장에게 전령을 보내도록 하라. 백호대는 더 이상 진군하지 말고 항구 주변을 경계하라고 전하라 그리고 총병을 포함한 1개 중대 병력으로 항구 밖으로 나가는 길목을 장악하고 적군이 항구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라고 전하라.”

“예. 좌수사 영감. 백호대장에게 영감의 명을 전하겠습니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전령으로부터 내 명령을 전해 듣고는 1중대장 혼다 고로자에몬에게 자신의 중대를 이끌고 항구와 연결된 길을 차단할 것을 지시했다.

흑호대와 포병의 상륙이 끝나기 전에 적의 공격을 받을 것을 염려해 항구 주변을 경계할 것과 항구로 나가는 길목을 차단할 것을 명령했지만 흑호대 400명과 포병 100명, 대포 20문이 무사히 북해도에 상륙할 때까지 적의 공격은 없었다.

흑호대와 포병이 모두 상륙할 때까지도 적의 공격이 없자. 시마즈 도시히사와 최도진은 북쪽으로 진군할 것을 제안했지만 나는 항구를 점령한 것으로 만족하고 항구를 중심으로 군영을 구축할 것을 명령했다.

“별다른 피해 없이 항구를 점령하고 동해도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우선 항구 앞에 울타리를 치고 수로를 파 적의 기습에 대비한 후 막사를 친다. 오늘은 이곳에서 쉴 것이다.”

항구를 점령한 후 더 이상 진군하지 않겠다고 하자 도시히사와 최도진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내 명령을 거역하지는 않았다.

백호대와 흑호대의 병사들이 막사를 칠 만한 공터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수로를 파는 동안 포병대는 큰길 방향으로 대포를 조준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잠시 후 울타리와 수로가 완성되고 병사들이 누울 막사가 쳐지자 화병(취사병)들은 저녁밥을 지었고 병사들은 따듯한 뭇국에 밥을 말아 먹고는 막사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근무를 서는 경계병들과 교대로 순찰을 도는 병사들을 제외한 모든 병사가 잠을 자고 있는 늦은 밤.

나는 병사들의 막사가 모여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쳐진 막사 안에서 호위병들과 함께 포로로 잡힌 왜군들을 심문하고 있었다.

내가 더 이상 진군하지 않고 항구 주변을 점령한 것으로 만족한 것은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당시의 북해도의 오시마 반도에 일본인들이 건너와 살고 있다는 것과 아직은 북해도가 완전히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북해도, 아니, 오시만 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들의 거점이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부족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항구에서 백호대에 붙잡힌 포로들을 심문했고, 우리의 화력에 겁을 먹은 포로들은 순순히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털어놓았다.

“카키자키 스에히로(蠣崎季広)라고 하였느냐?”

내 질문에 포로로 잡힌 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예. 그렇습니다. 카키자키 스에히로 어르신이 당주님이십니다.”

“카키자키 스에히로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당주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는 포로들도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개동과 호위병들이 몽둥이를 들어 올리며 인상을 쓰자 포로들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당주님께서는 평소 오다테(大館)[대관]에 머물고 계십니다.”

“오다테라고 했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곳의 위치는 어디냐?”

내 질문에 포로들은 항구에서 대관까지의 지도를 그렸고 지도를 본 나는 대관의 위치를 보고 생각했다.

‘무작정 북쪽으로 진군했으면 곤란할 뻔했군. 북동쪽으로 진군해야 할 것 같은데.’

“이곳에서 대관까지의 거리는 어떻게 되느냐?”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포로를 통해 대관의 자세한 위치와 대관까지의 거리를 확인한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뭐야. 그렇게 가깝다고? 그 정도 거리면 오늘 밤에 당장 야습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포로를 통해 확인한 대관까지의 거리는 5km 내외였다.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대관까지의 거리를 확인한 나는 김개동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최도진과 도시히사를 깨워서 이곳으로 데려오고 군영 입구와 막사 주위에 화톳불을 피워라. 어서!”

“예. 영감.”

김개동이 호위병들에게 최도진과 시마즈 도시히사를 불러올 것을 명령하고 화톳불을 피우기 위해 호위병들에게 화병을 깨우고 장작더미를 가져올 것을 명령하는 동안 나는 김개동에세 추가로 명령을 내렸다.

“화톳불을 피우는 즉시 경계 중인 병사들과 순찰을 돌고 있는 병사들에게 횃불을 만들어 주어라. 잠들지 않은 병사들은 모두 횃불을 들고 있어야 한다.”

내가 추가 명령을 내리고 있었을 때. 아직 잠들지 않았었는지 최도진과 도시히사가 두정갑 차림으로 내가 있는 막사에 도착했다.

“좌수사 영감. 무슨 일이십니까?”

“주군 명만 내리소서.”

나는 최도진과 도시히사에게 대관에 대해 설명했다.

“적의 거점인 대관까지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지금 적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장을 갖추어 날이 밝기 전에 아군을 기습할 수 있을 거리야. 그래서 화톳불을 피울 것을 명령했다. 백호대와 흑호대에서도 1개 소대씩 군사들을 경계에 추가로 투입하고 경계근무를 서는 군사들은 횃불을 들게 하라.”

내 명령에 최도진과 도시히사는 즉시 대답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즉시 시행할 것입니다.”

불을 피우고 군사들에게 횃불을 들게 한 것은 2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만약에 적군이 야습을 준비하고 있다면 군영 전체를 밝게 비추고 있는 화톳불과 횃불로 아군의 경계가 철통같다는 것을 적들에게 보여주어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적군이 야습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해도 카키자키 가문의 거점은 대관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군영 전체에 비운 화톳불과 횃불이 보일 것으로 예상해 아군의 병력이 실제보다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경계를 서는 병사들은 피곤하겠지만, 이 정도 불을 피워놓으면 적군이 감히 야습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군영을 밝히고 있는 불빛은 야간에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잘 보일 것이니 적군의 사기를 꺾는 효과도 톡톡히 있을 것이다. 오늘의 승리로 아군의 사기는 이미 높고 이 불빛들을 보고 적군의 사기는 낮아질 것이니 내일 전투는 승리가 확실하다.’

* * *

승리를 확신한 나는 다음 날 날이 밝자 병사들에게 서둘러서 아침밥을 먹일 것을 명령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도록 해라. 오늘은 적군과 전투가 있을 것이다. 카키자키 가문의 대관이 이곳에서 멀지 않다고 하니. 오늘 저녁은 카키자키의 대관에서 먹을 것이다.”

“와아-!”

적들의 거점에서 저녁을 먹는다는 말에 군사들의 사기는 다시 한번 치솟았다.

아침을 먹기가 무섭게 내가 이끄는 군사들은 군영을 출발했다.

어제 전투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최도진이 선봉을 나설 것을 요청해 최도진이 지휘하는 흑호대가 앞장섰고.

그 뒤를 포병대, 백호대의 순으로 진군했으며 백호대 뒤에는 보급대와 지원대 병력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보급대와 지원대에 별도의 호위 병력은 없었지만, 보급대와 지원대 소속 병사들 역시 군사훈련을 받았고 화승총과 각궁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포로들이 진술한 대로 항구에서 대관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출발했는데도 불과하고 정오가 되기도 전에 대관이 보이는 곳까지 진군했으니 군영을 출발한 지 불과 2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대관이 보이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카키자키 가문의 대관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거점이나 수도가 항구와 지나치게 가까운 것이 이렇게 위험하구나. 물론 항구가 가까우면 교통이나 무역에 유리하겠지만 1,000명이 넘는 군대가 항구를 출발한 지 2시간도 안 돼서 대관이 시야에 들어오는 곳까지 진군하다니…… 북해도에 상륙하기 전에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면 어제 항구를 점령하자마자 곧바로 대관을 향해 진군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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