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34화
하코다테(函館)
다음 날 아침, 대관의 앞에 카키자키 스에히로와 카키자키 요카키자키, 그리고 카키자키 스에히로의 조카들의 투구와 갑옷을 전시해 카키자키 가문이 몰락하고 대관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대관 인근에 거주하는 왜인들과 아이누인들에게 알렸다.
갑주를 전시할 것을 명령한 후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와 최도진에게 주민들의 무기를 압수할 것을 명령을 내렸다.
“백호대는 대관 주변의 마을을 수색해 마을 주민들이 소지하고 있는 무기들을 압수하도록 하라. 주민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식칼이나 괭이 같은 농기구까지 압수할 필요는 없지만, 일본도와 갑옷, 창, 화승총, 활 등의 무기는 하나도 남김없이 압수해야 한다. 저항하거나 무기를 숨기려는 자들은 대관으로 체포해 끌고 오도록 하라. 주민들을 죽이지 않는 한도 안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겠다.”
“주군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내가 명령을 내리자 시마즈 도시히사는 힘차게 대답했다.
주민들에게 무기를 압수하는 것은 반란을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마을 주민들에게 오시마 반도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백호대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무기를 압수하면 백호대의 무장 상태와 위용을 목격한 주민들은 앞으로 내 명령에 쉽게 반항하지 못할 것이다.
시마즈 도시히사를 내보낸 후 나는 최도진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흑호대는 대관 안의 모든 창고를 수색한 후 대관 안에 있는 민가를 수색해 주민들이 숨겨두고 있는 무기를 찾아내서 압수한다. 오늘 안에 대관 안의 모든 창고와 민가를 수색해야 한다.”
“좌수사 영감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최도진은 나에게 힘차게 대답한 후 흑호대의 군사들을 동원해 대관안의 창고들과 민가들을 수색해 무기들을 찾아내고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물품들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백호대와 흑호대의 군사들이 대관 안팎을 누비고 있는 동안 군사들을 북해도에 싣고 왔던 갤리온과 전선들은 갤리온 1척 만 항구에 남기고 바다로 나갔다.
그들은 울릉도로 돌아가 울릉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항왜들과 조선인들을 북해도로 수송할 것이다.
백호대와 흑호대에게 무기 압수를 지시한 후 나는 대관에 남아 있는 문서들을 확인했다.
일본 문자인 “카나(假名)”와 한문을 모두 읽을 수 있는 시마즈 출신 부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대관에 남아 있던 문서의 내용을 확인하면서 오시마 반도 일대의 지형이 나와 있는 지도를 발견했다.
나는 지도와 문서를 통해 지금 이곳이 내가 있던 21세기에 마츠마에정으로 불리게 되는 지역으로 오시마 반도에서도 서쪽 최남단에 위치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곳은 북해도의 최남단이며 서쪽 끝 지역이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지역은 북해도 전체를 통치할 거점으로 삼기에 적당하지 않아…… 더구나 지도를 보니 이곳은 남쪽은 해안지역이고 북쪽은 산지로 막혀 있는 지형이니 고립된 지역이다.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형인지는 몰라도 북해도 전역에 영향력을 끼치기는 어려운 지역이야.’
고민 끝에 나는 거점을 옮길 것을 결정했다. 지도를 살펴보던 나는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오시마 반도의 중간 지점.
이곳에서부터 동쪽에 있는 지역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그곳으로 거점을 옮길 것을 결정했다.
내가 알고 있는 21세기에 하코다테(函館)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 * *
무자년(1588년) 07월 06일 동해도 함관(函館)항.
항구에 갤리온이 도착하자 항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갤리온에 탑승한 승객들이 부두로 내려올 수 있도록 갤리온의 갑판에 나무 발판을 연결했다.
발판을 밟으며 부두로 내려온 정옥남은 주위를 둘러보며 놀랐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제법 잘 정비된 항구로 보였던 것이다.
‘좌수사가 이곳 동해도를 점령한 지 몇 달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다.’
“어서 오시오. 정공.”
항구를 둘러보던 정옥남이 내 목소리를 듣자 황급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정옥남이 반가웠고 정옥남도 반갑다는 얼굴로 내게 안부를 물었다.
“좌수사 영감. 안녕하셨습니까.”
“나는 잘 지내고 있소이다.”
항구에서 정옥남과 안부 인사를 나눈 나는 정옥남과 함께 말에 올랐다.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많이 피곤하시겠지만 조금만 참으시오. 곧 방으로 안내하겠소.”
“감사합니다. 좌수사 영감.”
이곳으로 오면서 갤리온 안에서 9일간이나 뱃멀미를 참으며 왔던 정옥남은 방으로 안내한다는 말이 반갑게 들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많이 피곤하실 것이니 오늘은 푹 쉬시오. 이야기는 내일 나누도록 합시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감.”
정옥남이 말에 오르자 호위병이 말고삐를 잡았고 정옥남은 호위병에게 말을 맡기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해도에 도착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항구와 항구 주위에 개간하고 있는 밭을 바라보며 정옥남이 감탄한 듯이 말하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오. 동해도 최남단의 도도반도(渡島半島)[오시마 반도] 지역만 통치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 동해도 남부지역도 완전히 통치하고 있지 못하고 있소.”
내 대답을 들은 정옥남이 물었다.
“동해도의 남부 지역은 크기가 얼마나 됩니까?”
“이곳에서부터 북쪽으로 250리(약 100km) 올라가는 지점까지를 동해도의 남부로 보고 있소이다. 참고로 남부지역은 동서의 폭이 100리(약 40km) 정도 되오.”
내 대답을 들은 정옥남은 놀라며 물었다,
“남북으로 250리에 동서로 100리라니. 그렇게 넓은 지역입니까?”
“이곳 동해도는 그만큼 넓은 섬이오. 땅의 넓이만 보자면 조선의 3할이 넘을 것이오.”
북해도의 면적은 83,454km²로 남북한을 합한 한반도의 면적이 220,748km²에 달했으니 북해도의 면적은 조선의 38%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 넓었다.
“그렇게 넓은 땅이라는 말입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큰 전투가 2번이나 있었소.”
정옥남과 이야기를 나누며 거점으로 삼고 있는 요새에 도착했지만 정옥남은 쉬는 것보다는 나에게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했다.
“괜찮으시면 더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좋소이다.”
나는 내 방에서 정옥남과 함께 차를 마시며 동해도에 상륙한 이후에 겪은 일들을 정옥남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송전(松前)[마츠마에정] 지역에 상륙한 일이며 대관에서 전투를 치르고 카키자키 가문을 몰락시킨 것과 대관에서 북해도의 지형을 확인하고 이곳 함관(函館)[하코다테]로 거점을 옮기게 된 이야기까지.
정옥남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가 하는 말을 들었고 나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송전(松前)[마츠마에정] 지역은 기후가 온난하고 날씨가 따뜻한 지역이라 사람이 살기에는 좋았지만 해안 지역을 제외하면 북쪽은 산에 막혀 있었고, 동해도 전체로 봤을 때 너무 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동해도 전체를 통치할 거점으로 삼기에는 적합한 위치가 아니었소. 그래서 이곳 함관(函館)으로 거점을 옮길 것을 결정했고 울릉도로 돌아갔던 전선들이 동해도에 도착하자마자 백호대와 흑호대 군사들을 다시 전선에 탑승시켜 바닷길로 동진해 함관(函館)[하코다테]으로 진군해 이곳을 점령한 것이오. 다행히 이곳 함관(函館)에도 왜국과의 교역을 위한 항구가 있어서 군사들이 상륙하고 전선들이 정박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소이다. 그리고 함관(函館)[하코다테]을 점령한 이후 항구를 정비하고 함관(函館)은 물론 동해도를 통치할 거점으로 삼기 위해 요새를 지은 것이고 말이오.”
내 이야기를 들은 정옥남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대단하시오. 좌수사 영감. 불과 몇 달 만에 그것도 군사 1,000여 명만으로 어찌 이렇게 대단한 일을 이루셨단 말이오. 정말 대단하시오.”
나는 정옥남의 극찬에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오.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이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소이다.”
“그래. 좌수사 영감 이곳에서 혹시 필요한 것이 없으시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무엇이든지 말씀하시오. 내 아버님께 말씀드려 무엇이라고 구해오겠소이다.”
정옥남의 질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식량이오. 이곳에서 밭을 개간하고는 있지만 추수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리고 황무지를 개간한 밭이라 추수를 해도 수확량이 많지는 않을 것 같소이다. 동해도에서 필요한 곡식은 왜국에서 들여오고 있었으니 당장 조선에서 곡식을 들여오지 않으면 식량이 부족할 지경이오. 이곳 동해도에 살고 있는 아이누인들과 거래를 하는데도 곡식이 필요하니 쌀이나 보리로 곡식 5,000섬을 구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내 대답을 들은 정옥남은 곡식 5,000섬이 필요하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을 말하자 놀란 것 같았지만 곧 인상을 펴고 대답했다.
“걱정 마시오. 영감. 내 어떻게든 곡식을 구해 보내드릴 것이오. 또 필요한 것은 없으시오?”
나는 정옥남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오. 이곳에서 일하며 정착할 사람 말이오. 땅을 개간해도 사람이 계속 농사를 지으며 관리하지 않으면 다시 황무지로 변하지 않겠소. 이곳은 땅은 넓고 일할 사람은 부족한 것이니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오.”
내 대답을 들은 정옥남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좌수사 영감. 그 문제는 내가 도와드릴 수 있소이다. 내가 이곳 동해도에 온 것도 사실 그 문제를 영감과 상의하기 위해서 온 것이오.”
상의하기 위해 왔다는 말에 나는 정옥남에게 물었다.
“정공, 그것에 무슨 말씀이시오? 나와 상의할 것이 있다는 말씀 말이오.”
정옥남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언젠가 아버님이 영감께 말씀드린 것으로 알고 있소. 아버님께서는 영감께서 동해도를 장악하는데 동원한 대동계원들이 조선에 돌아오는 대로 동해도에 노비들을 보내실 계획을 가지고 있으시오.”
정옥남의 말을 듣고 나서 기억이 났다. 정여립은 대동계원들을 북해도로 파견하는데 소극적이었고 대신 노비들을 보내주겠다고 했었다.
“노비들 말씀이시오?”
“그렇소.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노비 3,000명을 이곳 동해도로 보내실 계획이시오. 노비 3,000이라면 이곳에 일손이 부족한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겠소?”
노비라고는 하지만 무려 3,000명을 북해도로 보내주겠다는 말에 나는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노비를 보내주는 것은 좋지만 대동계원들을 돌려보내라는 조건이 붙었지. 대립군들도 곧 돌려보내야 하는데. 대립군에 대동계원들 까지 조선으로 돌려보내면 병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괜찮을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고민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이미 조선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대립군을 언제까지 북해도에 잡아둘 수는 없는 일이었고 식량과 그 밖의 재물 그리고 조선의 소식까지 정여립을 통해 공급받고 있으면서 정여립의 요청을 거절하고 대동계원들을 북해도에 잡아둘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대립군과 대동계원들을 조선으로 돌려보낼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