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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35화 (135/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35화

공급선

동해도에 도착한 다음 날.

내 안내를 받으며 함관(函館)[하코다테]의 요새와 새로 일구고 있는 밭을 견학한 정옥남은 밭에 수로를 내고 있는 아이누인들을 가리키며 나에게 물었다.

“영감 저들은 누구요? 조선인들은 아닌 듯한데…….”

“이곳 동해도에 살고 있던 이아누인들이오. 이 땅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직 철기를 만들지 못할 정도로 왜인들에 비해 기술이 뒤처져 있어 왜인들에게 수탈당하고 있었소이다.”

내 대답에 정옥남은 다시 물었다.

“왜인들에게 어떻게 수탈을 당한 것이오?”

“왜인들이 물물교환식으로 아이누인들에게 생선과 동물의 가죽, 해산물 등을 받고 쌀이나 철기 도구 등을 팔면서 엄청난 폭리를 취했고, 아이누인들이 저항하거나 항의하면 왜인들이 칼을 휘두르며 위협했다고 하오.”

아이누인들이 왜인들에게 수탈당했다는 말에 정옥남은 내가 아이누인들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궁금했는지 물었다.

“영감. 이들은 품삯을 얼마나 받고 일하는 것이오?”

“장정이 하루 일하는 품삯으로 쌀 한 되를 주고 있소. 낮에 점심밥도 주고 있고, 저녁에 하루 일이 끝나면 어김없이 쌀 한 되를 주고 있으니 아이누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려고 나와 있소.”

하루 품삯으로 쌀 한 되는 준다는 대답에 정옥남은 그 정도 품삯이면 아이누인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고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 동해도는 쌀이 귀하다고 들었는데 하루 품삯으로 쌀 한 되를 주신다니.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벌이가 될 것 같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침에 일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을 중에서 몸이 아파 보이거나 너무 어려 보이는 사람들은 돌려보내고 있소. 쌀 한 되를 품삯으로 주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동해도에서 자리를 잡고 이곳에서 세력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현지 주민인 아이누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에 품삯을 넉넉히 지불하고 있소.”

“과연. 좌수사 영감은 대인이시오. 멀리 보시고 계시니……!”

아이누인들을 고용해서 일구고 있는 밭과 돌산도에 세웠던 염전과 같은 형태로 조성하고 있는 염전.

그리고 이미 장인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대장간과 공방들을 보면서 정옥남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단하시오. 좌수사 영감.”

“나는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조선을 떠난 것이 아니오. 반드시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왜국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구해낼 것이오.”

“좌수사 영감은 반드시 해내실 것이오. 나는 물론 아버님도 좌수사 영감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것이오.”

“정공 고맙소.”

“좌수사 영감. 앞으로도 힘내시오.”

요새를 중심으로 준비 중이거나 이미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시설들을 보여주자 벌써 정오가 되었다. 이것에서는 정오가 점심시간이었다.

정오가 되자 병사들이 광주리와 나무로 된 국통에 주먹밥과 뭇국을 담아왔다.

병사들이 밥을 가져오자 아이누인들을 익숙한 솜씨로 수로에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줄을 서서 병사들에게 밥과 뭇국이 든 나무 그릇을 받았다.

쌀과 보리가 절반씩 섞인 보리밥과 건더기는 잘 보이지 않는 뭇국이었지만 밥과 국그릇을 받은 아이누인들을 옹기종기 모여앉아 맛있게 밥과 국을 먹었다.

아이누인들이 점심밥을 먹는 모습을 본 정옥남은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아니, 저들이 밥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이오? 그리고 저들에게 쌀밥을 주시는 것이오?”

나는 정옥남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밥을 먹기 전에 깨끗이 손을 씻소. 손에 흙이나 오물이 묻어 있는 사람에게는 병사들이 밥을 주지 않으니 굶고 싶지 않으면 깨끗하게 손을 씻어야 하오. 그리고 이곳에서는 누구나 같은 밥을 먹소. 누구든지 쌀과 보리를 절반씩 섞인 밥을 먹소.”

나는 놀라는 정옥남에게 대답한 후 정옥남이 어제저녁과 오늘 아침 쌀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덧붙여서 말했다.

“아. 정공의 상에 쌀밥이 올라간 것은 뱃멀미로 고생했을 정공을 위한 나의 배려요. 식사라도 편하게 하시라고 특별히 쌀밥을 지어 정공의 상에 올린 것이니. 놀라지 마시고 많이 드시오.”

내 말에 다시 한번 놀란 정옥남은 나에게 물었다.

“그럼 좌수사 영감도 보리밥을 드시오?”

“물론이오. 나도 쌀과 보리가 섞인 밥을 먹소.”

나도 보리가 섞인 밥을 먹는 다는 대답에 정옥남은 크게 놀란 것 같았다.

정옥남의 상식에선 좌수사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일부러 보리밥을 먹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좌수사는 허풍을 떨거나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좌수사가 지금까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좌수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오랑캐(아이누인)들과의 유대를 위해 오랑캐들에게는 쌀로 품삯을 지불하면서 자신은 매번 보리밥을 먹다니. 병사들이 먹는 밥과 같은 보리밥을 매번 먹고 있다니. 인내심이 엄청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신의 야망을 위해 거친 보리밥을 먹는 것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사람인가…….’

정옥남이 시선을 나에게 두고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이자. 나는 정옥남에게 말을 걸었다.

“정공, 시간도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 같이 식사라도 합시다.”

“영감. 실례를 용서하시오.”

“그만 갑시다.”

나는 정옥남과 함께 요새로 돌아가 점심을 먹었다.

정옥남의 상에는 쌀밥과 생선국에 자반구이, 무채, 나물이 올라와 있었고 내 상에는 쌀과 보리가 반씩 섞인 밥에 정옥남과 같은 국과 반찬이 올라와 있었다.

“어서 드시오. 정공. 별로 차린 것은 없지만 이곳에서 이 정도 상이면 성찬이오.”

정옥남에게 식사를 권한 나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며 정옥남과 대동계원들의 귀환을 의논한 나는 전력의 감소를 이유로 대동계원들을 할 달 간격으로 150명씩 나눠서 조선으로 돌려보낼 것을 제안했고 정옥남도 내 제안에 동의하면서 그 날의 일정을 마쳤다.

정옥남을 방으로 돌려보낸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여립이 노비들을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북해도를 점령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대동계원들의 귀국을 요청한 것을 보니…… 정여립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정여립이 나를 믿고 지금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 대동계원들의 귀국을 요청한 것도 그렇고 정여립은 북해도에 사람들을 보내는 것에는 소극적이야. 정여립은 북해도와는 거리를 두고 있어.’

앞으로도 정여립의 지원이 필요한 나는 이런 정여립의 태도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정여립의 지원과 시마즈 도시히사의 도움으로 필요한 장인들은 대부분 확보했고 구황작물도 마쓰라 다카노부를 통해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구리와 철 역시 마쓰라 다카노부를 통해 구할 수 있고 유황은 이곳 북해도에서 구할 수 있으니 앞으로 필요한 것은 식량과 사람이다. 군사를 늘리기 위해서 그리고 증가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사람이 필요하다. 군인, 농부, 어부. 전부 사람이야. 그리고 북해도에 밭을 일구고는 있지만 필요한 만큼 곡식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니. 그동안 군사들과 주민들을 먹일 식량도 필요하고.’

고민 끝에 나는 히라도에 다녀올 것을 결정했다.

‘어차피 북해도에 상륙하기 전부터 조선과 히라도를 통해 북해도에 필요한 곡식과 물품들을 공급받을 계획이었어. 조선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것은 정여립을 통하고 히라도에서 구매해야 하는 것은 마쓰라 다카노부를 통해서 구하면 필요한 물품들과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맡겨둔 쌀도 있으니. 기회를 봐서 히라도에 다녀오자.’

* * *

그로부터 이틀 후 정옥남과 150명의 대동계원들이 돌아가자 나는 군사들을 동원해 인근 지역에서 사냥을 했다.

사냥을 통해 고기와 동물의 가죽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번 사냥의 진정한 목적은 오시마 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왜인들과 아이누인들에게 나의 군사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미 150명의 대동계원들이 조선으로 돌아갔고 다음 달에 150명의 대동계원들이 추가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여기에 대립군까지 조선으로 돌아가면 북해도의 병력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군사들의 수가 줄어든 것을 보고 카키자키 가문의 통치를 받던 왜인들이나 아이누인들이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화승총과 각궁을 무장한 군사들을 풀어서 대대적으로 동물들을 사냥한 것이다.

사냥을 명령하자 군사들은 신이 나서 무기를 들고 산과 들로 달려갔고 잠시 후 사방에서 들리는 화승총의 총성이 울렸다.

그 날 오후 군사들이 사냥한 멧돼지와 곰을 밧줄로 묶어서 끌고 왔고 밭에서 일하던 왜인들과 아이누인들은 군사들을 사냥한 동물들을 끌고 오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 * *

한편 정옥남과 함께 함관을 출발한 대동계원들은 전선을 타고 울릉도로 향했다.

울릉도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고 항왜들과 군사들이 북해도로 이주하기 전에 울릉도에서 생활했던 집과 우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울릉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 집과 우물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었다.

전선들은 정옥남과 대동계원들과 울릉도에 내려주고는 다시 울릉도에서 북해도로 이주할 사람들과 북해도로 수송할 화물들을 배에 실은 후 북해도로 돌아갔다.

정옥남과 대동계원들은 울릉도에서 배를 기다리다가 정여립이 보낸 상선이 도착하자 그 배를 타고 정여립이 거주하고 있는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에 도착해 정여립이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한 정옥남과 대동계원들은 정여립에게 인사를 올렸다.

“계주 어르신을 뵙습니다.”

대동계원들이 정여립에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자 정여립은 멀리 북해도까지 다녀온 계원들을 위로했다.

“그래 수고들 많았네. 자네들이 올 줄 알고 미리 술을 준비하고 돼지를 잡아 상을 차리게 했으니 오늘은 마음껏 먹고 편히 쉬시게.”

“감사합니다. 계주 어르신.”

술과 돼지고기로 상을 차려준다는 말에 계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대동계원들이 방으로 들어가고 하인들에게 상을 차려줄 것을 명한 정여립은 정옥남과 함께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동해도에 가 보니 어떠하냐?”

정여립의 질문에 정옥남은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대답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이미 성을 대신할 요새를 세운 상태였고 밭과 염전을 만들고 있는 것이 동해도 안에서 자급자족할 계획인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동해도에서 좌수사가 통치하는 영역은 얼마나 되어 보이느냐?”

“좌수사의 말로는 동해도의 면적이 조선의 3할은 넘을 것이라고 하옵니다. 그중에서 좌수사가 통치하고 있는 지역은 동해도의 남부지역으로 남에서 북으로의 거리가 250리(약 100km) 동에서 서로의 거리가 100리(약 4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정옥남의 대답에 정여립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벌써 그렇게 넓은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는 말이냐.”

좌수사가 통치하는 지역이 아직 나라를 세우기에는 부족한 크기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였다.

‘좌수사가 동해도로 간지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만한 넓이의 땅을 통치하고 있다니, 듣기에는 2차례나 왜인들과 전투를 치렀다고…… 하지만 군사들의 피해는 별로 없었다는 것으로 봐서는 전투에서도 왜인들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는 말인데. 이거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키워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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