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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37화 (137/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37화

노예와 보리

“노예는 쓸모가 많지. 좋아. 구해놓도록 하겠네. 노예들을 다섯 차례에 걸쳐 나눠서 구매하겠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우선 두 달 뒤에 배를 보내 2,000명의 노예를 구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가 히라도에 자주 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부하를 보내도록 하고 다카노부 공께 서신을 보내 제 뜻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곳에서의 거래가 적은 액수도 아니고 더구나 노예를 2,000명이나 구매하면서 부하를 보내겠다는 말인가.”

다카노부의 말대로 매번 히라도에서 자기와 찻잔을 판매하고 철, 구리, 유황을 구매하는 것은 거액이 오고 가는 큰 거래였지만 북해도로 거점을 옮기고 나자 히라도에 직접 오기가 어려워졌다.

북해도에서 히라도에 오려면 갤리온으로 달려도 13일이 걸렸다.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26일.

게다가 히라도에서 거래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한 번 왔다 가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리는 셈이니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직접 히라도에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도 다카노부 공과의 거래가 중요한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이 많아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오지는 못하더라도 두 달마다 배를 보낼 것이고 제가 직접 나서야 하는 중요한 일이 벌어지면 히라도를 방문할 것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가볍게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중요한 일이 있어야 오겠다니. 왠지 앞으로는 이 장군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기를 바라게 될 것 같군.”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말 속에 뼈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다카노부와 헤어지면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다카노부에게 말했다.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시지요. 다카노부 공. 기회가 될 때마다 들려서 장인과 장모에게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쌀과 함께 보리도 주문하려고 하니 수고해 주십시오. 다카노부 공.”

장인과 장모에게 인사를 드리겠다는 말에 한결 기분이 풀어진 마쓰라 다카노부는 이미 쌀을 2만 섬이나 주문하고도 보리를 주문하겠다는 말에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물론 보리도 구할 수 있지. 하지만 보리를 주문하기 위해서는 보리를 수확하기 전에 영주들에게 주문해야 하니 정확한 주문량을 알고 싶군. 그래, 보리는 얼마나 필요한가?”

“보리는 3만 섬을 주문하려고 합니다. 이미 쌀을 주문했기는 하지만. 노예에게 쌀밥을 먹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노예들도 밥을 먹어야 하지만 쌀밥을 먹일 수는 없으니 보리 3만 섬을 주문하려고 합니다.”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리가 쌀보다 가격이 싸기는 하지만 3만 섬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니었다.

다른 영주나 상인이 쌀과 보리를 대량 사들이겠다고 했다면 전쟁을 대비한 군량미나 매점매석을 위해 구매하는 것으로 의심했겠지만 내가 노예를 주문한 직후 보리를 구매하겠다고 하니 다카노부는 노예들을 먹일 식량을 구매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지, 노예들도 밥을 먹어야 일을 할 것이니 보리가 필요하겠군. 그럼 올해는 보리가 필요하지 않은가? 당장 두 달 후에 2,000명의 노예를 구매하려면 노예들이 먹을 보리가 필요하지 않은가.”

마쓰라 다카노부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보리 추수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보리의 가격이 올라 지금 구매하면 손해가 아닙니까?”

“추수가 끝나기는 했지만 올해는 보리 농사가 풍년이어서 예년보다 수확량이 많다고 하더군. 보리를 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면 몇 천 섬 정도는 구해줄 수 있네. 어떤가?”

다카노부는 어떻게든 보리를 판매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나는 그런 다카노부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떤 때는 전형적인 전국시대 영주의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런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상인의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정말 대단하다.’

어찌 됐든 곡식을 구하기 어려운 북해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기회가 있을 때 보리를 구매하는 것도 나쁜 일인 아니었다.

다카노부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빚이나 다른 상품의 판매대금 대신 받은 보리를 쌓아두고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다카노부 공께서 보리를 구해주시는 수고를 마다해 주시겠다면 저야 감사한 일입니다. 그럼 노예 2,000명을 구매할 예정이니 올해 수확한 보리를 2,000섬 정도 구매하겠습니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기뻐하며 대답했다.

“좋아. 두 달 후에 이 장군이 보낸 배가 히라도에 도착하니 그때까지 보리를 준비해 놓겠네. 이 장군의 배가 노예와 보리를 함께 싣고 갈 수 있을 것이네.”

“철, 구리, 유황도 함께 구매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카노부 공께 맡겨둔 쌀도 2,000섬 정도 다음에 가져가고 싶습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이번처럼 철 5,000근(3,000kg), 구리 1만 근(6,000kg), 유황 1,000근(600kg)이 필요하겠지. 물론 준비해 주겠네. 이 장군이 맡겨놓은 쌀도 배에 잘 실어주지.”

마쓰라 다카노부가 신이 날만 했다.

내가 다카노부를 통해 곡식과 철, 구리 등 필요한 상품들과 노예들을 구하고 있었지만, 나와의 거래를 통해 다카노부가 벌어들이는 액수도 절대 작지 않았다.

자기와 찻잔 거래의 수수료로부터 시작해서 철, 구리, 유황을 판매하면서 이윤을 붙여 판매할 것이 분명했고.

여기에 노예 1만 명과 쌀, 보리의 거래도 작은 규모가 아니었으니 마쓰라 다카노부가 적지 않은 이익을 볼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나는 불만이 없었다.

‘마쓰라 다카노부도 이익을 보지만 나도 히라도에서 거래를 하는 덕분에 식량과 무기의 재료가 되는 철과 구리를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 나도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 쌀과 구리를 구매한 대금으로 지불하는 은화도 어차피 자기와 찻잔을 판매해 상인들에게 엄청난 폭리를 취하면 벌어들인 돈이니 아까워 할 것 없다. 흙으로 빚은 자기를 팔아서 쌀과 철, 구리를 구했으니 내가 이익을 본 셈이지.’

마쓰라 다카노부와 대화를 끝낸 나는 헤이메의 방으로 향했고 내 뒤를 이어 시마즈 도시히사가 다카노부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무자년(1588년) 09월 29일 동해도 함관(函館)항.

항구에 갤리온들과 전선들이 연이어서 도착했다.

전선에는 곡식 부대가 가득히 실려 있었고 간간이 소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정여립이 보내온 곡식과 소였다.

지난 7월 대동계원 150명이 정옥남과 함께 조선들 돌아갔고 그 뒤를 이어 8월 동해도에 남아 있던 150명의 대동계원들이 모두 조선으로 돌아가자 정여립은 약속대로 곡식과 노비들을 동해도로 보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정여립이라 하더라도 한 번에 3,000명의 노비와 5,000섬의 곡식을 동해도로 보내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울릉도를 통해 동해도로 곡식과 노비를 보내는 것을 선조나 조정에 발각당하면 역모로 몰릴 수 있는 일이기에 노비와 곡식을 보내는 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신중하게 진행됐다.

오늘 항구에 입항한 갤리온과 전선에는 노비 500명과 소 20마리 쌀 500섬과 보리 800섬이 실려 있었다.

항구에 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헤이메와 함께 부두로 나왔다. 부두에 도착하자 항구에 나와 있던 조천군이 나를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영감. 아직 배에서 내린 사람은 없었습니다.”

조천군의 안내를 받으며 부두 한쪽에 정박한 갤리온에 다가간 나는 갤리온의 갑판에 걸쳐진 발판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내려오는 두 여인을 발견하고 순간 몸이 굳었다.

‘……분명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몸이 긴장되고 있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기억에는 생생하니 이거 참 혼란스럽구나…….’

내가 긴장한 기색을 보이자 비단으로 지은 저고리와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헤이메가 내 팔을 잡았다.

“서방님.”

헤이메의 목소리를 듣고 기운을 낸 나는 힘겹게 발판을 밟으며 부두로 내려오고 있는 중년의 여인과 중년 여인을 부축하며 조심스럽게 발판을 밟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용기를 내서 다가갔다.

“어머니.”

발판을 반쯤 내려온 중년의 여인은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원아.”

중년의 여인은 바로 좌수사 이대원의 친모인 전씨 부인이었다.

“서방님.”

모친을 부축하던 소녀도 나를 보고 외쳤으니 그는 좌수사 이대원의 정실부인 이씨 부인이었다.

“부인.”

나는 발판 위로 올라가 어머니의 팔을 잡고 부축해 천천히 내려왔다.

어머니가 발판을 모두 내려오자 부두에서 서 있던 헤이메가 어머니께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드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님. 마쓰라 헤이메라 하옵니다.”

헤이메가 유창한 조선말로 인사를 올리자 어머니와 이씨 부인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정이 있어서 제가 거둔 제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남편이 첩을 그것도 일본 여자를 첩으로 두었다는 말에 어머니와 이씨 부인은 놀란 것 같았지만 의외로 별말은 없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헤이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반갑구나.”

“감사합니다. 어머님”

어머니가 손을 잡아주자 헤이메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어머니가 헤이메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시자 나는 재빨리 나섰다.

“어머니 제가 지내는 곳으로 가시지요. 지금까지 지낸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가자.”

어머니의 대답을 들은 나는 앞장섰고 헤이메와 부인이 어머니를 부축했다.

항구에는 어머니와 부인 헤이메를 위한 가마가 준비되어 있었고 김개동과 호위병들이 가마를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가 가마가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오시자 조천군과 김개동 그리고 호위병들은 일제히 어머니께 인사를 올렸다.

“제 부하들입니다. 가마에 오르시지요. 어머니.”

어머니와 부인, 헤이메가 가마에 오르자 나는 말에 탔고 호위병들은 가마를 들어 올렸다.

내가 탄 말을 선두로 호위병들은 가마를 들고 요새로 향했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요새로 향하는 동안 전선에 타고 있던 노비들은 배에서 내려 부두로 내려왔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늦장을 부리는 녀석은 밥이 없다.”

“한 줄로 줄을 서지 못하겠느냐!”

노비들이 부두로 내려오자 군사들은 노비들에게 호통을 치며 남자 종 노(奴)와 여자 종 비(婢)들을 분리해 한 줄로 줄을 세웠다.

남자인 노(奴) 100여 명 한 줄로 서자 강영남은 노(奴)들에게 외쳤다.

“이리로 따라 오거라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오늘 밥이 없을 줄 알아라.”

말을 듣지 않으면 밥을 굶긴다는 말에 사내들은 부지런히 강영남의 뒤를 따라갔고 10여 명의 군사들이 그들을 감시했다.

한편 여자 종인 비(婢)들도 한 줄로 줄을 세운 군사들은 비(婢)들을 사내들이 간 곳과는 다른 방향으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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