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43화 (143/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43화

정교분리

“이케다 마사이에라고 했는가?”

내 질문에 이케다 마사이에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옆에 앉은 청년들은 아들들인가?”

“그렇습니다. 요시아키와 요시나가라고 하옵니다.”

이케다 마사이에가 청년들을 소개하니 청년들은 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다카노부 공께서 서신을 보내셔서 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지만, 이곳에 온 목적을 직접 듣고 싶다. 동해도에 정착하고 싶은 것이냐?”

내 질문에 마사이에는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장군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고, 그래서 신앙을 지키며 생활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관백(関白)[도요토미 히데요시]이 남만에서 온 선교사들에게 추방령을 내리고 다이묘(大名)[일본의 영주] 중에서 기독교를 믿는 자들에게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한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 신자들까지 탄압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데,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니 무슨 일이냐?”

내 말을 들은 이케다 마사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왜. 이런 오지에 떨어져 있으면 규슈와 혼슈의 소식을 모를 줄 알았느냐?”

내 말에 놀란 이케다 마사이에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너무나 정확하게 규슈의 사정을 알고 계셔서 놀랐을 뿐입니다.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군님께서 알고 계신 대로 관백께서 저희를 직접 징벌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관백의 명이 내려진 후 토착 무사들과 사찰의 승려들이 작당을 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집에서 내쫓고 재산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패를 견디지 못해 히라도로 몸을 피한 이들이 1,000여 명에 달하니 저희는 새로운 터전을 간절하게 구하고 있습니다.”

이케다 마사이에의 대답을 들으니 다카노부가 왜 이들을 나에게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히라도로 피신한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의 수가 1,000명이 넘는다니…… 마쓰라 다카노부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귀찮은 난민들로 보였겠지. 히라도는 유럽에는 오는 무역선들과의 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고 있었고, 다카노부 자신도 유럽에서 온 선장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으니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을 매정하게 쫓아낼 수도 없었을 것이고. 다카노부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존재들을 나에게 보냈구나.’

다카노부는 골치 아픈 존재들을 히라도에서 치워 버리기 위해 저들을 동해도로 보낸 것이지만 마쓰라 다카노부의 이번 행동이 나에게는 이익이 될 수 있었다.

‘믿음과 신앙을 위해 고향을 떠날 각오를 한 자들이 1,000여 명이라…… 받아들이기만 하면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나쁠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이케다 마사이에를 노려보며 물었다.

“너는 이곳이 어디이고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느냐?”

내 질문에 이케다 마사이에는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곳은 동해도라는 섬이고 장군님께서 이 섬을 다스리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케다 마사이에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이곳은 왜국이 아니다. 내가 세운 나라이며 내가 다스리는 땅이다. 누구라도 내 허락이 있어야 이곳에 정착할 수 있고 이곳에 정착한 이상 내 통치를 받아야 한다. 이것을 알고 왔느냐?”

“그런 사실은, 모르고 왔습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이곳에 정착하기를 원하느냐? 그런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어느 곳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작은 터전을 얻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이케다 마사이에의 대답에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 마음가짐이면 동해도가 살기 어렵다고 도망가려고 하지는 않겠군.’

“너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 이곳 동해도에 정착할 마음을 먹은 사람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히라도에 있는 저희는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터전으로 이주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장군님께서 저희가 동해도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히라도뿐만 아니라 규슈의 신자들 중에서도 이곳으로 이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니 적어도 3,000명은 넘을 것입니다.”

“3,000명이라…….”

3,000명이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내년에 조선에서는 5,000명의 노비들이 추가로 동해도에 들어올 예정이었고 히라도를 통해 구매하기로 한 노예들의 수가 6,000명에 달했으니.

동해도에 3,000명의 기독교인이 정착하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될 것 같았다.

‘3,000명이라…… 너무 많은 수가 들어와도 부담스러웠을 텐데 3,000명이면 받아들여도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다. 단 종교적인 이유로 동해도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이니 동해도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나라인 것을 처음부터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기독교인들의 정착을 허락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이케다 마사이에에게 말했다.

“동해도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곳은 내가 세운 나라이고 내가 다스리는 곳이다. 알겠느냐?”

내 말을 들은 이케다 마사이에는 희망을 느꼈는지 바닥에 엎드리며 대답했다.

“예, 장군. 신앙만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장군의 명에 복종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고 결정하거라. 우선 너희들이 이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는다면 처음 3년간은 세금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후부터는 세금을 받을 것이니 수확량의 4할(40%)을 세금으로 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수확량의 40%라면 말도 안 되게 세율이 높은 것 같아 보이지만 전국시대 일본의 농민들은 수확량의 5할에서 7할을 다이묘(영주)들에게 세금으로 빼앗겼다.

전국시대 다이묘들은 이웃 다이묘들과의 전쟁을 대비해 군비를 확보하기 위해 상업을 장려하고 금광과 은광의 개발에 사력을 다하는 한편 영지의 농민들을 쥐어짰다.

다이묘들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농민들은 수확량의 7할을 세금으로 빼앗기는 경우가 흔했으니 4할의 세율은 일본의 농민들에게 그렇게 가혹할 정도의 세율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수확량의 4할을 세금으로 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케다 마사이에는 내가 허락했다고 생각했는지 힘차게 대답했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세금 다음으로는 군역이다. 너희 중에서 18세부터 30세까지의 사내들은 모두 5년간 군사로 복무해야 한다. 물론, 복무 대상의 사내들이 모두 한 번에 복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라면 그 누구라도 예외 없이 5년간 군사로 복무해야 할 것이며 군역을 마친 사내들도 전쟁이 벌어지거나 동해도에 반란이 일어나는 등. 내가 군사를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면 다시 군사로 소집될 수 있다. 알겠느냐?”

병역의 의무는 임진왜란을 앞두고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다.

동해도에 정착할 기독교인의 수가 3,000명이라면 그중에 군사로 복무할 수 있는 나이대의 사내들이 1,000명도 안 될 것 같았지만 노예와 노비들까지 군사들로 동원하고 있는 마당에 기독교인들을 군사로 동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 조건도 전국시대를 살아간 왜인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농민들이 농사철에는 논에서 농사를 짓고 농사일이 바쁘지 않은 농한기에는 창을 들고 전쟁터에서 군사로 동원되던 시기였으니 장정들을 군사로 동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이케다 마사이에는 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마지막으로 신앙과 종교에 대한 조건을 말했다.

“너희가 신앙의 자유를 위해 고향으로 떠나 이곳 동해도에 정착하려고 하는 만큼 너희 개개인이 신앙을 지키고 너희 종교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해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이곳 동해도에 정착하려는 자들은 신앙과 종교를 이유로 내 명령에 거역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너희의 신앙과 종교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아무래도 신앙과 종교에 대한 조건이다 보니 이케다 마사이에의 태도가 한층 신중해졌다.

이케다 마사이에는 아까와는 달리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앙을 이유로 장군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너희가 믿는 종교에도 금기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 아니냐.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군사가 전쟁터에 나가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는 없지 않으냐. 또 6일간 일하고 하루는 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일도 전쟁이 벌어지거나 다른 급박한 일이 일어나면 어길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런 경우에는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 만약 동해도에 정착한 후에도 신앙이나 종교를 이유로 내 명에 거역하거나 내 통치를 거부할 시에는 군사를 일으켜 토벌해 버릴 것이니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내 대답을 들은 이케다 마사이에는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신앙과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도 무슨 말씀이신지 묻고 싶습니다.”

“너희의 신앙이나 종교 생활을 보고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너희의 신앙과 종교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너희의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희와 같은 신앙을 가지거나 같은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내가 다스리는 곳에서는 누구나 믿고 싶은 종교를 믿고 믿음에 따라 원하는 대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단,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한도 안에서 말이다. 어떤 종교를 믿건 어느 신을 믿건 상관없다. 신앙이나 믿음을 내세워 금전적인 기부를 강요하거나 상대방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동이 보인다면 군사를 일으켜 토벌해 버릴 것이다.”

내 대답을 들은 이케다 마사이에의 얼굴이 한층 어두워졌다.

“장군님.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이 사안들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히라도로 돌아가 신부님과 신도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래, 어차피 생각할 시간은 많을 것이니 천천히 생각해보고 히라도에 돌아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거라. 히라도에 가는 배는 4월에 출발할 것이니 생각할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배가 4월에 출발한다는 말에 이케다 마사이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장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4월에야 히라도에 돌아갈 수 있다니요.”

“모르고 있었느냐? 겨울에는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거칠어 함부로 배를 내보낼 수 없다. 히라도로 가는 다음 배는 4월에 출발할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동해도를 벗어날 수 없으니 오늘 나와 나눈 이야기를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고 동해도의 경치도 즐기도록 하여라. 이곳에 정착하려면 동해도의 환경도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내 대답을 들은 이케다 마사이에는 절망한 표정을 지었고 그의 아들들도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지만, 그들을 위해 겨울 바다로 전선을 내보낼 수는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