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45화
백성들에게 고하다
기축년(1589년) 3월 15일 동해도(북해도) 함관(函館)[하코다테].
눈이 녹고 봄기운이 돌자 함관의 요새 안에서는 나와 헤이메의 혼례식이 열렸다.
나는 관복 차림에 관모를 쓰고 말을 타고 상이 준비된 식장에 들어서 상 앞에 서자 곱게 혼례복을 입고 머리에는 족두리를 한 헤이메가 하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상 앞에 등장했다.
혼례식은 조선식 혼례 예법에 따라 헤이메가 먼저 절을 두 번하고 내가 절을 했으며 절을 마치고 나서는 하녀들이 따라주는 술을 헤이메는 살짝 입술만 적셨고, 하녀들은 헤이메가 받았던 술잔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잔의 술을 모두 마시고 나에게 따라주는 술을 예법에 맞게 살짝 입만 대자 하녀들을 그 술잔을 헤이메에게 내밀었다.
헤이메는 내가 받았던 잔의 술로 살짝 입술만 적셨고 마지막으로 따라주는 합환주는 나와 헤이메 모두 잔을 비웠다.
그렇게 잔을 비우고 안주를 집어 먹는 것으로 혼례식이 끝나고 잔치가 벌어졌다.
이른 새벽부터 여인들은 가마솥을 불에 올려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있었고, 석쇠 위에서는 생선과 사슴고기 올려놓고 소금을 뿌려가며 굽고 있었다.
나와 헤이메가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가자 조천군은 준비해 두었던 술 동이들을 꺼내올 것을 명령하고 잔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포했다.
“자 오늘은 좌수사 영감과 헤이메 아씨께서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시는 기쁜 날이다. 술과 음식을 준비했으니 모두 마음껏 먹고 즐기도록 하여라. 만약 오늘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놈은 내일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릴 것이니 술은 취하지 않도록 적당히 마시도록 하여라.”
“와아~”
조천군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고 공터에는 멍석이 깔리고 상이 차려졌다.
사람들이 멍석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자 노비들 가운데 여인 종인 비(婢)들이 사람들 앞에 상을 놓았고 곧 음식이 차려졌다.
상위에는 사슴고기 혹은 멧돼지 고기를 넣고 끓은 국밥과 자반구이 혹은 소금구이로 구운 사슴고기와 멧돼지고기, 나물, 두부가 반찬으로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국밥과 자반구이의 짭조름한 맛에 정신없이 수저를 움직여 국밥과 반찬을 입으로 가져갔고, 잠시 후 술이 도착하면서 시원한 탁주까지 한 잔씩 돌아가자 모두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탁주 한 잔을 더 요구했다.
사람들이 신나게 음식을 먹으며 잔치를 즐기자 잔치를 준비한 조천군은 흐뭇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조천군이 잔치 자리를 지키며 음식들이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었을 때 녹도군 출신인 박언필이 조천군에게 다가와 말했다.
“군관 나리. 아이누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누인들이. 무슨 일로 왔다고 하는가? 오늘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미리 알려주었을 텐데.”
“오늘 장군님께서 혼례를 치르신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선물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박언필의 대답을 들은 조천군은 껄껄거리며 물었다.
“그래 축하 선물을 가져왔어. 아주 기특하군 그래. 선물로 가져온 것은 받아두고. 고맙게 잘 받겠다고 전하게 그리고 기왕에 잔칫날에 왔으니.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한 상 차려주게.”
“예 알겠습니다. 군관나리.”
박언필의 대답을 들으며 조천군은 이제 곧 군관 소리는 그만 듣게 될 것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좌수사 영감, 아니, 주상전하께서 내일 아침 정식으로 건국을 선포하신다고 하셨으니. 내일부터는 나도 군관이 아닌 장군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조선이 아닌 이곳 동해도에서 대해(大海)국의 장군의 반열에 오르게 되다니. 정말로 재미있는 인생이로구나.’
조천군이 잔치 도중 감상에 잠겨 있었을 때 시마즈 도시히사는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시마즈 출신 무장들과 함께 들러 앉아 생선 자반과 사슴고기를 안주 삼아 탁주를 마시던 도시히사는 감탄하는 말투로 말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주군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혼다 고로자에몬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묻자 도시히사는 주위를 둘러본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아라. 이곳 주민들 중에 왜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도시히사의 말에 밥 먹다 말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 고로자에몬과 무장들은 도시히사에게 대답했다.
“최소한 절반은 넘는 것 같습니다.”
“절반이라니. 6할은 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6할보다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조선식으로 의복을 입는 사람이 많아서 알아보기 어렵지만 7할은 될 것 같습니다.”
무장들의 대답을 들은 후 도시히사는 말했다.
“내가 알기로도 이곳 주민들 중에서 왜인들의 비율은 7할이 넘는다. 조선에서부터 주군을 따라온 주민들도 7할 이상은 고토열도 출신들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이느냐. 저들 중에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있느냐?”
시마즈 도시히사의 질문에 혼다 고로자에몬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모두 즐거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니 주군께서 대단하시다는 말이다. 더구나 오늘 주군은 왜인과 혼례를 치르셨다. 지금까지도 이곳의 주민들은 왜인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주군께서는 왜인들이나 조선인들이 불평하지 못하도록 함관을 통치하셨는데 오늘 왜인을 부인으로 맞이하셨으니 앞으로도 이곳의 주민들 중에 왜인들의 비율이 높은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오늘 잔치가 끝나고 내일은 주군께서 나라를 세우신다고 선포하실 것이다. 왜인을 부인으로 맞이하신 다음 날 건국을 선포하시는 것이 결코 우연이겠느냐.”
시마즈 도시히사는 뛰어난 무장이기에 앞서 시마즈군의 작전계획을 세웠던 참모였고 시마즈가의 당주였던 시마즈 요시히사, 시마즈가의 현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로의 친동생이기에 정치적인 일도 보고 들은 것이 많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정벌 당시 시마즈가에서 처음으로 히데요시와 화친을 주장한 사람이 시마즈 도시히사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안목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봤을 때 함관을 통치하고 있는 그의 주군은 왜인도 아닌 조선인 출신으로 주민들의 대다수가 왜인들인 함관을 놀라울 정도로 잘 통치하고 있었고, 혼례식 다음 날 건국을 선포하는 것도 모두 정치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주군은 대해(大海)국을 건국하신 후 동해도 안에서만 안주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노리고 있다고 하니. 히데요시가 조선으로 출병하여 히데요시의 안마당이 비어 있을 때 주군은 분명 출병을 명하실 것이다. 바로 그 날이 우리가 히데요시에게 당한 치욕을 갚을 수 있는 날이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시마즈 도시히사를 비롯한 시마즈의 무장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고향으로 떠난 사람들이었다.
자연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원한이 쌓여 있었고 히데요시와 다시 싸울 수만 있다면 자신이 시마즈 소속인지 대해국 소속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군은 보통 인물이 아니시니 분명 히데요시를 상대로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때 출병하실 것이다. 그 날 히데요시의 목을 쳐서 원한을 갚고 주군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히데요시에 대한 복수뿐만 아니라 새롭게 건국될 대해국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주군은 그릇이 크고 꿈이 크신 분이시다. 말씀하셨던 대로 이곳 동해도 안에서만 안주하실 분이 아니야. 나도 대해국의 장군으로 주군의 꿈을 함께 이룰 것이다. 시마즈에는 작은형님(시마즈 요시히로)이 당주로 계시고 큰형님(시마즈 요시히사)께서도 계시니 시마즈에 돌아간다고 해도 어차피 내가 있을 자리는 없을 것이다. 이곳 대해국에서 내 명성을 떨칠 것이다.’
모두에게 즐거웠던 잔치는 해가 지자 자연스럽게 끝났다.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었던 여인들은 그제 서야 쉴 수 있었고 상을 치우고 그릇을 씻는 설거지는 남자 노예들과 사내종인 노(奴)들의 몫이었다.
* * *
혼례식을 무사히 마치고 헤이메와 신방을 차린 나는 하루 종일 피곤했고 긴장했을 헤이메를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미리 준비해 둔 물로 목욕을 하고 군사들과 노비들을 동원해 요새 앞의 공터에 제단을 쌓고 제를 올릴 준비를 할 것을 명령했다.
‘드디어 건국을 선언한다. 솔직히 나라를 세운다고 사람들에게 선포하면 그만이지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까지 올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시대 사람들은 이런 일에 민감하니 제단을 쌓고 제를 치러야 안심을 하겠지. 그럼 오늘도 제가 끝난 다음에는 잔치다.’
하늘 높이 해가 올라올 무렵 제단이 완성됐다는 보고에 나는 이날을 위해 준비한 용포를 입고 머리에는 관을 쓴 후 손에는 장검을 들고 제단을 쌓은 공터로 향했다.
제단으로 향하는 길에 아침부터 소문을 들은 주민들이 제단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을 목격한 나는 많은 사람 앞에서 외칠 생각에 벌써부터 긴장되고 목이 말라오는 것을 느꼈다.
제단 주위에는 어느새 군사들이 집결해 제단을 에워싸고 있었고 소문들 듣고 나온 주민들은 경계를 서고 있는 군사들의 바깥쪽에서 제단을 구경하고 있었다.
제단을 구경하던 주민들은 내가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자 내 앞에서 좌우로 갈라져 길을 만들었고 나는 그럼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갈라지는 주민들이 만들어준 길을 통해 제단 앞으로 향했다.
내가 다가가자 제단을 에워싸고 있던 군사들도 좌우로 갈라져 길을 열었고 내가 제단 앞에 도착하자 하얀색 의복을 입은 장정들이 제단 위에 술병과 술잔 그리고 음식이 담긴 그릇들을 올려놓고 어렵게 구한 향도 몇 개 올려놓았다.
그렇게 제를 올릴 준비가 끝나자 나는 제단에 올라가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따르고 그 앞에 큰절을 한 후 잔에 든 술을 재단에 뿌렸다.
제를 올려본 경험도 누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최대한 진지한 태도로 제사를 올리는 시늉을 했고, 재단 주위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과 구경을 나온 주민들도 잡담 한마디 하지 않고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잔의 술을 모두 뿌린 후 다시 제단에서 큰절을 한 나는 제단 위에서 일어나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올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저 이대원은 조선에서 태어났지만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곳 동해도에 새롭게 나라를 건설함을 하늘에 고하나이다. 새롭게 세운 나라의 이름은 바다 해(海)자를 써서 대해(大海)라 명할 것이며 대해(大海)의 안에 살고 있는 백성들과 대해(大海)에 충성하는 백성들은 조선에서 태어났건 왜국에서 태어났건 상관하지 않고 보호할 것을 하늘에 고하나이다.”
하늘을 향해 외친 나는 두 발을 내리고 몸을 돌려 제단 주위의 군사들과 주민들을 향해 외쳤다.
“나 이대원은 대해(大海)의 국왕으로서 너희의 고향과 출신에 상관없이 너희가 나와 대해(大海)에 충성하는 한 너희를 지키고 보호할 것을 천지신명 앞에 선언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