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47화
가장 효율적인 방법
부상자들을 작업에서 제외시키라는 명령에 조천군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전선을 건조하는 일이 시급하지만 그렇다고 다친 사람들을 계속 중노동에 동원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부상자들은 우선 치료부터 해주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전하.”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조천군에게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도 장정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하고 장정들의 식사와 의복에 더욱 신경 쓰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조천군은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고 나는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다.
“지금 작업을 하고 있는 장정들 중에서도 허약하거나 작업을 힘겨워하는 자들을 1,000명 정도 골라 놓도록 하라. 히라도에 갔던 선단이 돌아오는 대로 체력이 약한 자들은 밭을 일구는데 투입할 것이다. 선단이 돌아오며 히라도에서 새로 구매한 노예 2,000명이 도착할 것이니, 그들을 전선 건조에 투입하고 작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자들은 밭일을 하게 될 것이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전하.”
부상자들과 체력이 약한 자들을 벌목과 조선소에서 제외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나는 선전의 건조 계획을 미루거나 축소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 히라도에서 돌아오는 선단을 통해 왜인 노예 2,000명이 새롭게 대해국에 도착할 것이다. 노예들은 남녀가 각각 1,000명씩일 것이니 그들을 벌목작업과 조선소에 투입하면 부상자들과 허약한 자들을 제외한다면 공백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이번에 도착하는 노예들 외에도 6월에는 약 3,000명의 기리시탄들이 도착할 것이니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히라도를 통해 구매한 노예들 외에도 조선에서도 정여립을 통해 노비 5,000명을 지원받을 예정이니 이들을 모두 벌목장과 조선소에 투입해서라도 계획대로 전선을 건조할 것이다.’
나는 매일같이 조선소 주위를 거닐며 목재들이 쌓이고 전선의 건조 작업이 진척되는 것을 확인했고, 히라도에 다녀온 선단이 함관항에 도착해 새로운 노예들이 도착하자 그들도 모조리 전선 건조에 동원했다.
전선 건조에 투입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히라도에 다녀온 선단은 함관항에 도착한 노예들과 히라도에서 실어온 물품들을 항구에 내리기 위해 3일간 정박해 있다가 노예와 물품을 모두 내리자 다시 울릉도로 향했다.
울릉도에서 정옥남이 보낸 장인들과 3,000명의 남녀 노비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고 선단은 다시 노비들과 장인들 그리고 정옥남이 보낸 곡식과 면포를 싣고 함관항으로 돌아왔다.
이런 극한 항해는 선박에도 무리가 가는 강행군이었고, 전선에 승선한 선원들과 병사들도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지만 운송수단이 부족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울릉도에 다녀온 선단이 무사히 함관항에 도착하자 나는 다시 히라도를 향해 출발해야 하는 6월까지 선단에 휴식을 허락했다.
3월 20일에 히라도를 향해 출발해 히라도를 왕복하는데 한 달 그리고 울릉도에 다녀오는데 20일을 바다에서 보낸 선원들과 병사들에게 휴식을 허락한 것이다.
보름 이상의 휴가를 허락받은 선원들과 병사들은 휴식 명령에 환호성을 지르며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기존의 대해국의 인원에 새롭게 도착한 노예와 노비들까지. 그렇게 대규모로 인원들 동원한 보람이 있어 5월 말이 되자 5척의 전선이 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우리에게는 두 번 다시 없을 좋은 기회입니다. 신부님.”
이케다 마사이에는 진지한 태도로 대해국에 대해 설명했지만 마사이에의 앞에 앉아 있는 서양인 신부는 마사이에의 말을 선뜻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인가? 왜인들은 물론 조선인들까지 함께 어울려 지내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더구나 그곳의 통치자는 조선인이지만 왜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믿음의 형제들을 자신의 땅에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는 것이…….”
“물론입니다. 신부님 이 장군님은 비록 조선인이지만 우리말(일본어)도 곧잘 하였고 왜국 여인을 부인으로도 맞이하였습니다. 비록 조선인 정실부인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백성들 앞에서 저희(일본) 여인과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고 부인으로 맞이한 것을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 장군은 저희가 왜인이라고 차별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장군이 일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다는 말에 신부는 그제 서야 마시이에의 말에 믿음이 갔다.
신부는 포르투칼 사람이었지만 일본에서 20년 이상 활동한 덕분에 일본인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듣기에는 조선인들을 왜인들과 마주하기도 싫어할 정도로 배타적인 사람들이라고 하던데 그 이 장군은 일반적인 조선인들과는 다른 것 같군. 왜의 여인을 정식 부인으로 삼고 부하들 앞에서 정식으로 혼례까지 올렸다니. 우리 신도들을 왜인이라고 차별할 사람은 아닌 것 같군.”
“그렇습니다. 신부님 저희 형제들이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케다 마사이에는 신부를 설득하는데 필사적이었다.
대해국에서 겨울을 지내고 히라도에 돌아온 이케다 마사이에는 하나님을 믿는 형제들의 상황이 이전보다 훨씬 악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규슈 지역의 토착 무사들과 사원 승병들의 행패로 많은 기리시탄들이 고향을 떠나 피신하거나 종교를 버리고 개종했고 그 덕분에 히라도로 피신해 온 기리시탄들의 수는 거의 2배로 늘어나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렇지 않아도 기리시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마쓰라 다카노부는 히라도에 거주하고 있는 기리시탄들을 한층 더 경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무역선의 선장들과 유럽인들과 무역을 하는 상인들 그리고 마쓰라 다카노부의 부하들 중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힘써줘서 아직까지는 마쓰라 다카노부도 노골적으로 기리시탄들을 박해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히라도도 안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케다 마사이에가 보기에 기리시탄들이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대해국으로 이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케다 마사이에가 열심히 설득한 보람이 있었는지 한참을 고민하던 신부는 결정을 내리고 마시이에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형제들이 이 장군의 영지로 이주하는 것을 권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 장군이라는 사람은 모르지만 안드레아(이케다 마사이에의 세례명) 형제를 믿습니다. 안드레아 형제의 안목을 믿고 형제들에게 권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는 이케다 마사이에를 믿고 히라도와 규슈의 기리시탄들에게 이케다 마사이에가 인도하는 땅으로 이주하는 것을 권했다.
규슈는 히데요시와 시마즈가의 전쟁으로 황폐화된 곳이 많았고 그 덕분에 치안이 불안하고 민심까지 흉흉했다.
여기에 그 틈을 타고 토착 무사들과 승병들이 행패를 부리자 많은 수의 기리시탄들이 자신의 신앙을 숨기거나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런 기리시탄들에게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있다는 소문은 모든 희망을 걸고 모험을 걸기에 충분한 소식이었다.
여기에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가 기리시탄들에게 이주할 것을 권하자 히라도는 물론 규슈 전역의 기리시탄들에게 새로운 터전에 관한 소문이 퍼졌다.
* * *
기축년(1589년) 6월 01일 대해국 함관.
“우선은 5척인가?”
조선소를 둘러보며 건조 중인 전선들을 바라보던 나는 거의 완성된 5척의 전선을 바라보며 조천군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목재를 준비하며 작업을 해야 해서 벌목과 목재를 다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번에 전선을 건조하며 통나무와 목재를 넉넉하게 준비해 두었으니 다음에는 지금보다 빨리 전선을 건조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전하.”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조천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선은 앞으로도 계속 건조할 것이니 벌목과 목재를 다듬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도록 하라. 그리고 조선소의 인력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였을 때 한 번에 몇 척의 전선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지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하라. 물론 최대한 많은 수의 전선을 동시에 건조하는 것이 아닌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건조했을 때 최대 몇 척의 전선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을지 보고해야 할 것이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전하.”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다시 한번 조선소를 바라보고 항구로 향했다.
처음에는 함관에서 조선소를 짓고 전선을 건조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부상자들은 치료를 받은 후 밭을 일구고 있었고, 안전문제에 신경을 쓸 것을 명령하고 새로운 노예들과 노비들을 벌목장과 조선소에 투입하면서 부상자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듣기로는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모든 작업장에 처음보다 많은 인원을 투입했다고 한다.
두 명이 하던 일을 세 명, 네 명이 하고 다섯 명이 하던 일을 일곱, 여덟 명이 하니 개개인의 부담이 덜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부상자들의 수도 극감하기 시작했다.
목재를 구하기 위해 많은 나무를 베어내고 있었지만 나무를 벤 자리에는 밭을 일구고 있었고 경사가 지거나 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기 어려운 곳에는 어린나무를 심고 있었다.
베어낸 나무들도 목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가지와 나무껍질 그리고 목재를 다듬으면서 잘라낸 부분들은 모아서 주민들의 땔감으로 쓰고 있었고 잎사귀는 모아서 퇴비를 만들거나 염초 밭에서 분뇨를 숙성시키는 데 사용하였으니.
나무를 잘라서 무엇 하나 버리는 것이 없었다.
항구에 가는 동안 조천군에게 다시 한번 조선소의 일과 함관의 내정을 당부한 나는 항구에 도착하자 출항준비를 마친 갤리온에 올랐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히라도에 갈 계획이었다.
내가 배에 오르자 내가 탑승한 갤리온에서 깃발을 올려 전선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갤리온과 전선들은 돛을 펴고 천천히 바다로 나갔다.
나는 점차 멀어지는 항구를 바라보며 히라도에서의 처리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오랜만에 히라도에 가는 것이니 마쓰라 다카노부가 반가워하겠군. 뭐…… 정확히는 내가 반가운 것이 아니라 내가 가져가는 자기와 찻잔들이 반갑겠지만 그래도 반가워해 줄 사람이 있으니 히라도에 가서도 심심하지는 않겠어.’
그동안 히라도와 거래를 하면서 판매했던 자기들은 좌수영에서 동해도로 이주해 오면서 가져온 자기들이었다.
좌수사 시절 도공들에게 구매한 자기와 찻잔들을 좌수영에 모아놓고 있었고 그중에서 히라도에 판매한 분량은 일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동해도로 이주할 때도 내 수중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자기와 찻잔들이 있었고 이제까지 그 자기와 찻잔들을 야금야금 히라도에 풀어놓으며 판매해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이번에 가져가는 자기와 찻잔들도 좌수영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는데 좌수영에서 가져온 자기들도 이제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좌수영에서 가져온 자기와 찻잔 중에서 히라도에 가져가는 것은 이번에 가져가는 것이 마지막이다…… 아직 몇 점 남아 있기는 하지만 나도 몇 점은 소장하고 있어야 하니 히라도에 전부 판매할 수는 없지. 히라도와 무역을 하지 못하면 대해국도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다행히 정여립이 보내준 도공들이 있으니 앞으로도 히라도와 무역을 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좌수사 시절부터 동해도로 이주할 도공과 대장장이 등의 장인들을 확보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고 내 고민을 들은 정여립은 흔쾌히 장인들을 보내줄 것을 약속했다.
정여립의 도움으로 대장장이들과 목수들 심지어는 총통을 제작하는 장인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올해는 약속대로 도공들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도공들은 지금 함관에서 자기를 구울 가마를 만드는 한편 자기를 빚는데 적합한 흙을 찾아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