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48화 (148/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48화

구황작물 4종 세트

기축년(1589년) 6월 13일 히라도 마쓰라 다카노부의 저택.

“장군이 기리시탄들을 데려가겠다면 나는 반대할 이유가 없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돕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다카노부공. 다카노부공 덕분에 이번 히라도행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사위에게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지.”

다카노부 능청스러운 대답에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사위 운운하실까?’

내가 별말 없이 웃음으로 넘기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사위에게 공치사를 하려고 했더니 그것도 쉽지 않겠군.”

마쓰라 다카노부 정도의 인물이 공치사를 운운할 정도라면 작은 일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장인어른”

내가 장인이라고 부르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그제 서야 기분이 풀린 얼굴로 말했다.

“사위가 기다리던 선물이 도착했네. 남만의 친구들을 통해 어렵게 구한 선물이야.”

내가 기다리던 선물이라는 말에 나는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선물이라면, 설마…….”

“정말 오래 기다렸네. 주문한 지 1년이 넘었지?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할 정도야.”

말을 마친 다카노부가 시종에게 손짓을 하자 시종들은 나무상자를 연이어서 들고 들어왔다.

“어서 열어보게. 사위가 기다리던 선물들이네.”

다카노부 말에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의 포장지를 뜯는 기분으로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첫 번째 상자에는 작고 동글동글한 물체들이 가득히 들어 있었다.

‘감자다.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크기도 작고 모양도 다르지만 분명히 감자야.’

감자를 보고 흥분한 나는 다카노부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곧바로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두 번째 상자 안에는 기다란 옥수수가 들어 있었다. 나는 연이어서 세 번째 상자와 네 번째 상자도 열어보았고 상자 안에는 각각 호박과 고구마가 들어 있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구황작물들을 확인한 나는 감격한 표정으로 마쓰라 다카노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좋은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군 그래.”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진정으로 마쓰라 다카노부 감사함을 느끼며 장인어른이라고 불렀고 마쓰라 다카노부는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상자에 들어 있는 것들(고구마)은 지난번에 스페인 친구에게 부탁해 구해줬던 것이지. 한번 구해줬던 것이지만 또 필요할지 몰라서 이번에 다시 구해왔네. 사위의 영토에 이 작물들을 심을 생각인 것 같아서 종자로 쓰라고 넉넉히 구했네. 각각 다섯 상자씩 구해왔으니 모두 가져가게. 그리고 이것은 사위에 대한 내 선물이니 따로 값을 치를 필요는 없네. 선물이야.”

선물이라는 말에 나는 놀라서 마쓰라 다카노부를 바라보았다.

“사위가 1년 이상을 기다려가며 구하는 것을 보면 사위에게 크게 가치가 있는 작물들인 것이 분명하지만 나에게는 별다른 가치가 없는 작물들이네. 이 작물들을 구하는데도 그리 많은 돈이 들지는 않았어. 친구들이 궁금해하긴 하더군. 말려서 노예들에게 밥 대신 주는 작물을 왜 구하려고 하는지 말이야. 먹을 수 있는 작물들이니 사위같이 노예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작물이 도움이 되겠지. 그동안 사위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으니 이 정도는 내가 선물하도록 하겠네. 사위를 생각하는 장인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가져가도록 하게.”

‘내게 귀중한 작물인 것을 알고도 대가를 받지 않고 선물하겠다니.’

나는 솔직히 놀랐다. 내가 아는 다카노부는 철저한 장사꾼이었고 수전노까지는 아니어도 돈을 버는 일은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구황작물들을 구할 것을 알고서도 대가를 받지 않겠다고 하니 진심으로 다카노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다카노부에게 큰절을 올리며 외쳤다.

“장인어른, 아니, 아버님 앞으로는 평생 아버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소자를 자식처럼 여겨주소서.”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니 내가 왜 자식으로 여기지 않겠는가. 이 장군 자네는 앞으로 내 사위가 아닌 아들이네. 내 아들이야.”

마쓰라 다카노부는 나를 일으켜 세웠고 그 날 밤이 늦도록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 * *

과음을 한 덕분에 다음 날 정오가 가까워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의 저택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부두로 향했다.

히라도에서 이번에 할 교역은 다카노부와 전날에 이미 협의를 마쳤다.

가져온 자기와 찻잔을 판매하고 이전과 같이 철과 구리, 유황을 구매하기로 했으며 쌀을 2만 섬 더 주문했고 기리시탄들을 데려가야 하는 탓에 노예들은 다음에 데려가기로 합의했다.

갤리온에 도착한 나는 사화동을 보내 자기와 찻잔을 기다리고 있던 상인들에게 자기와 찻잔을 판매할 것을 지시했고 마쓰라 다카노부가 보낸 철과 구리, 유황을 선단의 전선에 나눠서 실었다.

그렇게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이케다 마사이에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전하 그동안 안녕하셨사옵니까.”

“그동안 잘 지냈는가?”

“예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내 신하 노릇을 하는 이케다 마사이에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대해국에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찌 됐건 대해국의 입장에서도 3,000명 이상의 인구가 유입되는 것은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나쁘지 않았기에 나는 밝은 얼굴로 이케다 마사이에에게 물었다.

“그래. 그래서 그대의 가족들과 친구들 중에서 대해국으로 이주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정확히 몇 명인가?”

내 질문에 이케다 마사이에는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전에 말씀드린 것보다는 대해국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규슈로 돌아와 보니 그동안 신앙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워진 탓에 대해국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주하고자 하는 형제들이 지금도 히라도로 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사이에의 대답을 들은 나는 인구가 늘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에 너그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내일 출항할 것이네. 지금 오고 있는 사람들을 기다려줄 시간은 없지만 8월에는 다시 히라도에 선단이 히라도에 올 것이니 그동안 기다릴 수만 있다면 다음 선단을 통해 대해국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조치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전하.”

“그럼 이번 선단으로 대해국으로 이주할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전선에 승선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한계가 있고, 대해국 까지 가는 동안 먹고 마실 식량과 식수의 양도 계산해야 하니 최대한 정확해 대답해야 하네.”

내 질문에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던 이케다 마사이에는 곧 계산을 끝내고 대답했다.

“16세 이상의 남자는 약 4,000명이며 16세 이상의 여성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5,000명에 달합니다. 그리고 16세 이하의 어린아이 남녀 모두 합하여 8,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마사이에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전부 합해서 1만 명이 넘잖아. 이 정도면 약간 많은 수준이 아닌데? 여기에 지금 히라도로 오고 있는 인원이 더 있다고…….’

나는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며 마사이에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3,000명이 이주할 예정이라고 들었었는데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늘었군 그래.”

“성인 남자들의 수를 3,000명으로 예상했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1,000명이나 더 많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마사이에의 대답을 들은 후 어이가 없었다.

‘아니, 성인 남자들의 수만 계산해서 얘기했다는 말이야? 가장이 이주를 결정하면 부인과 아이들이 함께 이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나는 이어가 없었지만 이케다 마사이에를 나무라기도 곤란한 것이 이 시대에는 여인과 아이들은 인구수에서도 제외하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인구수를 계산할 때도 군역이나 부역에 동원할 수 있는 성인 남자들의 수만 계산하던 시대였으니 이케다 마사이에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한다…… 거의 2만에 가까운 사람을 한 번에 데려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뜻밖의 상황에 나는 어떻게 기리시탄들을 수송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 * *

기축년(1589년) 6월 20일 조선 강원도 강릉 정여립의 집.

“이번에 동해도로 보낼 노비의 수는 2,000명입니다. 지난 4월에 이미 3,000명을 보냈었으니 이번에 보내는 2,000명까지 더하면 작년부터 올해까지 총 8,000명의 노비가 동해도로 건너간 것입니다.”

정옥남의 보고를 들은 정여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녹남에게 물었다.

“8,000명이라 적지 않은 수의 노비를 보냈구나. 노비들은 울릉도로 보냈을 것이고…… 노비들을 구하고 보내는데 옥남이 네가 직접 나서지는 않았느냐?”

“아버님 물론입니다. 상인들을 통해서 100명, 200명씩 나눠서 구매했으며 노비들을 울릉도로 보내는 것 역시 상선을 통해 몇 차례에 걸쳐 나눠서 보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옥남의 대답에 정여립은 기특하다는 듯이 말했다.

“수고가 많았구나. 노비를 8,000명이나 보냈으니 좌수사 영감에게도 큰 힘이 됐을 것이다. 이번에 울릉도로 노비들을 보내고 난 후에는 너도 잠시 쉬도록 하거라. 내가 좌수사 영감에게 서신을 써서 나의 상황을 알릴 것이니 좌수사도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정여립은 강릉으로 피신을 온 이후 주변의 양반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술과 잔치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정여립의 이런 행동은 강릉은 물론 강원도 전체에 소문이 퍼졌고 정여립이 강원도의 경치에 반해 매일 같이 풍류를 즐긴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정여립이 강릉으로 피신한 이후 전주의 본가에 남아 본가를 관리하는 일과 울릉도로 노비와 곡식들을 보냈었던 정옥남은 모처럼 아버지 정여립을 만나고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하기 위해 강릉으로 찾아온 것이다.

“이번에 노비들을 보내는 것도 네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아버님 이미 상선을 수배해 놓았고 대동계원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준비해 놓았으니 대동계원들이 울릉도로 노비들을 보내는 것을 확인할 것입니다.”

“잘됐다. 그럼 너도 이번 기회에 이곳에서 며칠 지내며 함께 술이나 한잔하자꾸나.”

정옥남은 갑자기 같이 술을 마시자는 정여립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

“이것도 아버님을 모함하려는 자들을 상대할 계략이십니까?”

“내가 술에 빠져 있는데 아들인 네가 왔으니 며칠은 함께 지내며 부자가 같이 술을 마신다고 해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 너도 그동안 고생이 많았을 것이니 며칠 푹 쉰다고 생각하고 실컷 술이나 마시거라.”

“예 알겠습니다. 아버님.”

정옥남은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 아버지께 효도하는 일이 된 지금의 현실이 우습고도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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