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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49화 (149/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49화

루이스 프로이스

기축년(1589년) 8월 10일 일본 이키쓰키섬.

히라도 북쪽에 있는 이 섬에는 6월에 대해국으로 가는 배에 탑승하지 못한 기리시탄들과 대해국으로 가는 배가 히라도를 출항한 이후 히라도에 도착한 기리시탄들이 대해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6월 히라도에 도착했던 대해국의 선단은 2만 명에 가까운 기리시탄들을 전부 대해국으로 데려갈 수 없었다.

대해국으로 이주하기를 희망했던 기리시탄들 중에서 우선 성인남녀 3,000명과 그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아이들 4,000명만이 선단에 탑승할 수 있었고, 그들 외에 6,000명의 성인과 4,000명의 아이는 8월에 다시 히라도로 돌아올 예정인 대해국의 선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리시탄들의 상황을 듣고 그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게 된 나는 대해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히라도의 실권자인 마쓰라 다카노부를 만나 히라도로 피난을 온 기리시탄들의 안전을 부탁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기리시탄들의 사정이 딱하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히라도를 통치하는 영주로써 1만 명이 넘는 기리시탄들이 계속 히라도에 머무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다.

다카노부와 함께 기리시탄들을 어떻게 할지를 의논하던 나는 히라도 인근의 섬에 기리시탄들을 피난시킬 것을 제안했고 다행히 다카노부도 내 의견에 찬성하면서 이키쓰키섬으로 기리시탄들을 피난시키는 데 합의했다.

기리시탄들이 이키쓰키섬으로 이동하는 것은 히라도의 상선의 도움을 받았고, 나는 8월까지 그들이 이키쓰끼섬에서 지낼 수 있도록 쌀 1,000섬과 보리 1,000섬을 식량으로 지원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기리시탄들이 이키쓰키섬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히라도의 상선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기리시탄들이 히라도에서 거주하지만 않는다면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히라도에 상륙하는 것은 저지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히라도로 피난을 온 기리시탄들을 모두 이키쓰키섬으로 이주시킨 후 선단은 대해국으로 돌아왔고 대해국에는 건조 중이던 5척의 전선이 다행히도 완성되어 있었다.

* * *

대해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대해국에 이주한 기리시탄들 중에서 성인들은 조선소에 투입했고 조천군에게 전선의 건조 계획을 보고 받았다.

조천군은 목재와 인력만 넉넉하다면 최대 8척의 전선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고 3개월 안에 8척의 전선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보고했다.

조천군의 보고를 들은 나는 즉시 새로운 전선을 건조할 것을 명령하고 최도진에게 새롭게 건조된 5척의 전선의 시험 운항을 명령했다.

조선소에 배치된 기리시탄들은 이곳에서 만든 배로 아직 대해국에 도착하지 못한 기리시탄들을 대해국으로 데려올 것이라는 말에 함께 모여 대해국과 조선소를 축복하는 기도를 한 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했다.

종교 문제로 고향으로 떠나 대해국으로 온 기리시탄들 중에는 다양한 경력과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아서 작업에 큰 도움이 됐다.

무사 출신들과 농민 출신들은 나무를 베고 통나무를 바닷가로 운반하는 데 힘을 보탰고, 목수 출신들은 목재를 다듬는 일에 앞장섰으며, 기리시탄들 중에는 의술을 아는 이들과 약을 제조하던 이들도 10여 명이나 있어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인들도 땀과 흙투성이가 된 남자들의 옷을 아무 불평 없이 깨끗하게 빨았고, 사내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과 식사가 끝난 후 그릇을 씻는 설거지까지 아무런 불평 없이 열심히 일해주어 작업의 능률이 오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기리시탄들과 장정들이 조선소에서 열심히 전선을 건조하는 동안 나는 밭을 일구기 위해 갈아 얻어 놓은 땅에 감자를 심었다.

한국에서의 기억과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바탕으로 감자를 쪼개서 땅에 심은 나는 감자를 심은 밭 주위로 물길을 내서 밭에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 썼고 호박은 씨를 골라서 감자를 심은 밭 주위의 땅에 심었다.

옥수수는 낱알을 종자로 쓰기 위해 조심히 낱알을 옥수수 대에서 훑어냈고, 고구마는 페드로 선장을 통해 선물 받았던 필리핀인 노예들에게 맡겼다.

조선말이나 일본어는 할 줄 모르지만 그동안 보고들은 것과 눈치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했던 그들은 고구마 상자를 보여주자 이곳에서 고구마 농사를 지으라는 뜻인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고구마 상자를 들고 나갔다.

처음 필리핀인들을 선물 받으면서 함께 받았던 고구마는 절반을 좌수영 근처의 땅에 심었지만 좌수영을 떠났으니 잘 자랐는지 확인할 수 없었고, 남은 절반은 울릉도에 심었고 울릉도에 심은 고구마 중에서 다행히 싹이 자란 것이 있어 다시 옮겨 심어 그 수를 늘리고 있는 중이었다.

구황작물이 거친 땅에서 잘 자란다고는 하지만 다른 대륙에서 가져온 작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다카노부에게서 선물 받은 각각 5상자씩의 작물 중에서 한 상자씩만 땅에 심었고, 땅에 심지 않고 남겨둔 작물들은 건조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따로 보관해 두었다.

* * *

그렇게 두 달간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나는 7월 27일 갤리온과 전선을 모두 동원해 14척의 선단을 거느리고 이키쓰키섬으로 향했다.

대해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을 기리시탄들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대해국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선을 거느리고 이키쓰키섬에 도착한 나는 뜻밖의 상황에 마주쳤다.

우선은 이번에도 대해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던 기리시탄들을 모두 배에 태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대해국에 다녀온 동안 기존에 이키쓰키섬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리시탄들 외에도 1만 명 이상의 기리시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히라도로 피난을 왔고 마쓰라 다카노부는 그들도 모두 이키쓰키섬으로 보냈다.

그 결과 이키쓰키섬에서 대해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던 기리시탄들은 성인과 아이들을 합쳐 모두 2만 명이 넘었고, 이정도 인원을 한 번에 대해국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이키쓰키섬에 도착한 후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난감함을 느꼈다.

‘이번에도 한 번에 모두 데려갈 수 없을 것은 알고 왔지만……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이 2만 명이 넘는다니 너무 많은데.’

이번에 출항한 14척의 선단으로 대해국까지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최대한으로 계산해도 성인 5,000명과 아이들 3,000명 정도였다.

이것도 철, 구리 등 다른 상품을 배에 싣지 않고 대해국까지 가는 동안 사람들이 먹고 마실 식량과 식수만 싣고 갔을 때 가능한 수였다.

이키쓰키섬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리시탄들의 수가 1만 명에 육박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까지 7,000명 이상을 데려갈 수 있으니 남은 3,000명에게는 두 달만 더 기다리라고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배를 기다리던 기리시탄들의 수는 예상을 뛰어넘어 2만 명이 넘었고 선단이 지금처럼 대해국과 이키쓰키섬을 왕복한다면 올 한 해 동안에는 다른 물품은 수송하지도 못하고 꼬박 사람들만 수송시켜야 할 상황이었다.

‘이래서는 곤란해…… 대해국을 위해서도 기리시탄들을 위해서도.’

내가 어찌할 줄을 몰라 난감해하고 있었을 때 사화동이 나를 찾았다.

“전하. 전하를 뵙기를 청하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나를 찾아? 누구냐 기리시탄이냐?”

“아닙니다. 남만인이 전하를 찾아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기리시탄들이 신부라고 합니다.”

‘뭐? 유럽인 신부?’

일본에서 활동하는 유럽인 신부라면 로마가톨릭의 선교사일 것이고 기리시탄들에게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만나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에 나는 사화동에게 대답했다.

“만나보겠다. 곧 나갈 것이니 배 밖에서 보자고 전하라.”

“예. 전하.”

나는 유럽인 신부에게 내 전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갤리온이 아닌 배 밖에서 만날 생각을 했다.

잠시 후 붉은색 두정갑 차림에 투구를 쓰고 허리에 환도를 찬 나는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섬에 상륙했다.

해안가 근처의 공터에는 이미 탁자와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사제복장의 유럽인 신부와 10여 명의 왜인이 탁자가 준비된 공터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신부를 향해 다가가자 신부는 먼저 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군. 저는 루이스 프로이스라고 합니다.”

능숙한 일본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신부의 말을 들은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루이스 프로이스. 바티칸에 오다 노부나가를 소개한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

예상외 거물의 등장에 당황한 나는 잠시 프로이스 신부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일본어로 내 소개를 했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조선국의 해군을 지휘하고 있는 장군 이대원이오. 이곳 사람들은 나를 장군이라고 부르니 신부께서도 편하게 장군이라고 부르시오.”

“감사합니다. 제독님. 그럼 자리에 앉으시지요.”

“좋습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프로이스 신부는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고 나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인사말을 나눈 것과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는 것만 봐도 프로이스 신부가 만만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에게 기독교와 유럽의 문물을 소개했다고 하더니 역시 보통이 아니다.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아주 많이 상대해 본 솜씨야.’

“제독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에게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허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제독님께 함께하시기를.”

“나도 기리시탄들이 필요해서 받아들인 것이고. 이미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기리시탄들에게 모든 것을 허락한 것은 아니오. 기리시탄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생활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대신 내게 충성하고 군역과 조세의 의무를 지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종교와 신앙을 강요할 수 없다고 당부하였으니 말이오.”

“믿음과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저희 형제들의 의무이자 삶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형제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요하지 않아도 저희 형제들의 신앙 생활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도 우리의 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을 믿습니다. 형제들에게 삶의 터전을 주시고 복음전파의 기회를 주신 제독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프로이스 신부와 대화하며 피곤함을 느꼈다.

‘역시 보통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대화를 이끌어 갈 사람이야.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겨서는 곤란하겠어.’

이대로 신앙과 믿음의 이야기를 계속하면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나는 현재 기리시탄들이 처한 현실로 대화 주제를 바꿨다.

“내가 통치하는 영지로 이주하기를 바라는 기리시탄들이 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러나 내가 끌고 온 선박은 14척에 불과하고 영지까지는 최소한 13일 이상이 걸리니. 선박에 사람들을 아무리 많이 태운다고 해도 3분지 1도 태우기가 어렵소. 이번에 선단이 영지로 돌아가면 두 달 후에나 올 수 있을 것인데 배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기다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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