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52화
사금과 군마
잠시 후 조천군이 병사들을 시켜 아이누인들이 선물로 가져온 물건들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나무를 다듬은 장식품과 동물의 가죽을 꼬아 만든 끈으로 묶은 주머니 그리고 동물의 뼈를 다듬어서 만든 것 같은 장식품들이었다.
내가 탁자에 놓인 장식품들을 바라보자 조천군은 가죽으로 된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하. 저 주머니를 열어보소서.”
나는 가죽으로 된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주머니 안에는 모래 알갱이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고 주머니를 탁자 위에 쏟아놓자 탁자 위에 노란 알갱이들이 쌓였다. 빛나는 노란 알갱이들은 바로 사금이었다.
“이것은 금이 아닌가?”
나는 물론 최도진과 도시히사도 사금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잔칫날에는 바빠서 아이누인들이 가져온 선물을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아이누인들이 가져온 것이 생각나서 확인해 보니 주머니 안에 사금이 들어 있었사옵니다. 전하.”
나는 조천군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금이라니 이건 대박이다. 북해도에 광산이 많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금이 나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잠깐, 사금이 나온다면 금광이 있다는 말인데.’
동해도(북해도)에 금광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당장 금광을 개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냉정하게 말해 당장은 금광을 개발할 기술도, 시간도 없었다.
‘그래 금광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당장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금광은 천천히 개발하자.’
마음을 정한 나는 조천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금이라니 보물을 눈앞에 두고도 모르고 있었구나. 조장군은 즉시 아이누인들에게 알려 사금을 가져오도록 하게, 사금을 가져오는 자들에게는 원하는 대로 곡식과 옷감과 도구들을 바꿔준다고 전하고.”
“예, 알겠습니다. 전하.”
사금을 발견한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만 회의를 마칠 생각으로 장군들에게 물었다.
“과인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나 의견이 있는가?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도록 하게.”
최도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께 고할 일이 있사옵니다. 전하.”
최도진이 나서자 나는 발언을 허락했다.
“그래 말하도록 하라. 무슨 일인가?”
“전하. 군사를 훈련시키는 데 군마가 턱없이 부족하옵니다. 영토를 넓히지만 기병이 있어야 할 것이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파발도 있어야 할 것인데. 이곳 함관에 있는 말은 전부 20여 필에 불과하니 출병은커녕 군사들을 훈련시키기에도 군마가 부족하옵니다. 전하.”
최도진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동해도에 말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아. 좌수영에서 동해도로 이주했을 때 말을 가져오지는 않았어. 지금 함관에 있는 말도 카키자키 가문에게서 노획한 말들이 전부야.’
조선에서는 수군이었던 탓에 군마보다는 전선에 더 신경을 썼고 그것은 동해도에 상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해도 해전과 상륙전을 벌일 생각이었기에 전선과 화승총 그리고 대포에 신경을 썼지 군마는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나 최도진의 말대로 강한 군대를 키우기 위해서는 기병이 필수였다. 이곳 동해도(북해도)에서도 대해국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의 기병과 정찰병 그리고 전령이 사용할 군마가 필요했다.
“군마라 그 생각을 못 했군. 좋은 지적을 해주었네. 최 장군.”
“감사합니다. 전하.”
최도진의 감사 인사를 들은 나는 장군들에게 말했다.
“우선 일의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이 좋겠군. 갤리온을 구매하는 것과 이키쓰키섬의 기리시탄들을 대해국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10월에나 가능할 것이니 그동안 아이누인들과의 거래를 통해 사금을 확보하도록 하고 기리시탄들이 이주해 오기 전에 영토를 확장해야 할 것 같으니 우선은 군마를 확보하도록 하지.”
일의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은 모두들 찬성했고 그 후에는 어떻게 군마를 구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히라도를 통해 말을 구하는 것은 다녀오는 데만 해도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리니 불가능한 일이었고 조선에서 군마를 구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조선에서 말은 값비싼 동물이었고 특히 군마로 훈련된 말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의견들을 나누다 보니 말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만주의 여진족들뿐이었다.
생각 끝에 결정을 내린 나는 조천군에게 물었다.
“조 장군. 현재 건조 중인 전선이 8척이었지 언제까지 완성시킬 수 있겠나?”
“예 현재 8척의 전선이 건조 중이며 다음 달 안으로 완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좋아. 건조 중인 전선 중에서 3척을 말이나 소와 같은 큰 동물들을 태울 수 있도록 구조를 변경하도록 하게. 가축들이 보름 이상 배 안에서 지내면서 항해를 할 수도 있으니 선체 안의 구조를 가축들을 수용하기에 편하도록 변경하고, 갑판에서 선체 안까지 말이나 소가 밟고 내려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주면 되겠지. 우선 3척을 말이나 소를 실을 수 있도록 만들게.”
“알겠습니다. 전하.”
전선의 내부 구조를 변경하라는 명령에 조천군은 물론 다른 장군들도 내가 결론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선이 완성되는 대로 6진 북쪽에 살고 있는 야인(여진족)들을 찾아갈 것이네. 우선은 소금과 면포를 주고 말을 구매할 생각이지만 야인들의 성정이 거칠고 난폭한 데다가 우리가 재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니 군사들의 훈련을 한층 더 강화하도록 하고 특히 사격훈련을 더 강화하도록 하게.”
“예, 전하.”
출병한다는 말에 장군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 * *
기축년(1589년) 9월 8일 마카오
“그러고 보니 히라도에서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소. 마카오에서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소.”
“저도 어르신을 뵌 기억이 납니다. 히라도에서 여러 번 뵈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하, 히라도에서 좋은 상품들을 많이 구했소.”
중년의 포르투갈 상인인 호탕하게 웃으며 사화동과 능숙한 일본어로 대화를 주고받았고 사화동 역시 포르투갈 상인에게 밀리지 않고 입담을 자랑했다.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와 김개동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대화가 잘 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8월 대해국으로 이주하기를 희망하는 기리시탄들이 대해국의 전선을 타고 이키쓰키섬을 떠난 후 루이스 프로이스는 마카오로 가기 위해 히라도에서 마카오까지 가는 베를 구했다.
다행히 마카오로 가는 포르투갈 상인의 배를 타고 마카오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의 일행은 신부와 친분이 있던 상인들을 만나 갤리온 구매를 시도했다.
다행히 판매하기 위해 내놓은 중고 갤리온들이 있어서 거래를 시도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갤리온을 7척이나 한꺼번에 구매하려 했고 선박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장비하고 있는 대포를 포함한 항해 장비 일체를 한 번에 구매하는 데다가 갤리온을 히라도까지 몰고 갈 선원들까지 고용해야 했으니 가격협상이 쉽지 않았다.
신부와 친분이 있던 상인들도 자신들이 손해를 보지 않는 한도 안에서 신부를 도와주려고 했지 손해를 보면서까지 신부를 도와줄 생각은 없었기에 가격협상은 어느새 평행선을 걷고 있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보다 못한 사화동이 나서서 우선 갤리온을 히라도까지만 가져가면 부족한 대금은 히라도에서 치르겠다고 말하자 상인들은 그제서야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사화동이 과연 갤리온의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겠느냐는 의문을 가지면서 다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다가 상인들 중에서 사화동을 알아보는 상인이 있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 신부님이 원하시는 대로 갤리온 7척을 히라도까지 운송하는 것은 내가 책임지도록 하고, 부족한 대금도 내가 보증을 서고, 갤리온을 몰고 갈 선원들도 내가 고용하도록 하고, 갤리온에 대포와 항해 장비는 물론 갤리온이 항해를 하던 그대로 모든 도구를 갖춰놓도록 하고, 식량과 식수도 내가 채워놓고, 갤리온의 대금과 히라도까지 운송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히라도에서 받기로 하고, 현금이 부족하면 도자기와 찻잔으로 받기로 하는 것으로.”
포르투갈 상인 알폰스 비에이라는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가 아닌 사화동과 갤리온 판매 협상을 했고 사화동은 도자기를 탐내는 알폰스 비에이라의 속셈을 짐작하면서도 협상에 동의했다. 히라도에서 마카오까지 오는 데 20일 이상이 걸렸으니 시간을 맞추려면 출항을 서둘러야 했다.
“모두 동의합니다. 하지만 도자기는 당장 드리지 못할 수도 있어, 대금을 지불하는 데 한두 달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에서 알폰스 비에이라는 개의치 않았다.
“그것은 상관없소. 대금을 확실히 받을 수만 있다면 몇 달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소.”
이렇게 알폰스 비에이라와 협상을 마친 사화동은 각각 한문과 포르투갈어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가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한 후 각자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렇게 갤리온 구매 계약은 무사히 체결되었다. 그로부터 5일 후 7척의 갤리온은 마카오에서 출항해 히라도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기축년(1589년) 9월 18일 대해국의 함관항을 출발한 5척의 첨저형 전선은 항관항을 출발한 지 9일 만에 드디어 육지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여진족에게서 말을 구매하기 위해 출병한 이들은 대해국 장군 최도진이 지휘하고 있었다. 육지가 보인다는 보고를 받고 갑판 위로 나온 최도진은 해안가를 살펴보았다.
‘대해국에서 곧장 서쪽으로 왔으니 조선의 영역은 아니겠지. 곧장 서쪽으로 가면 육진의 북쪽 야인(여진족)들의 영토에 도착할 것이라고 전하께서 말씀하셨으니. 저곳은 아마도 야인들의 영토일 것이다.’
해안가를 살펴보던 최도진은 야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우선 선발대를 상륙시키기로 결정했다.
“단선을 내려라. 육지에 상륙한다.”
“예이. 단선을 내려라.”
최도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전선에 달려 있던 단선(보트)을 내렸다. 5척의 전선에서 15척의 단선(보트)이 내려졌고 단선 1척당 10명씩 150명의 병사들이 해안가에 상륙했다.
전라좌수영에서 복무하기 전에 북방의 6진에서 군관으로 복무했었던 최도진은 여진족의 거친 성격과 난폭함을 잘 알고 있었다.
최도진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150명의 군사들을 선발대로 상륙시켰고 전선에서도 포병들은 해안가를 향해 대포를 조준하고 있었다.
“영차.” “영차.” “영차.”
단선에 탄 병사들은 열심히 노를 저었다. 9일간이나 배 안에서 지냈던 병사들은 육지에 상륙하는 것이 반갑기만 했다.
상륙하는 곳이 야인들의 영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륙하는 병사들 모두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만약에 야인들의 공격을 받게 되더라도 전선에서 대포를 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병사들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단선이 해안가에 도착하자 강영남은 화승총을 들고 재빨리 단선에서 뛰어내렸다. 강영남을 선두로 해안가에 상륙한 병사들은 화승총에 화약과 탄환을 장전하고 다른 병사들이 해안가에 상륙하는 동안 주위를 경계했다.
잠시 후 병사들이 무사히 상륙하는 데 성공하자 최도진은 선단에 명령을 내렸다.
“좋아, 선발대는 상륙지점을 방어하고 전선을 지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만 전선에 남기고 모두 상륙한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상륙지점에 목책을 설치하고 총통을 배치한다. 오늘부터 상륙지점에서 머물 것이니 서둘러라.”
“예. 알겠습니다.”
최도진의 명령에 따라 300명의 군사들이 육지로 상륙했고, 이들은 대해국에서 준비해온 목재로 해안가에 반원 행태로 목책을 치고 목책 앞에 해자 역할을 할 수로를 팠다.
목책을 친 뒤에 병사들이 머물 막사를 치고 전선에 실려 있던 대포까지 12문이나 가져다 놓자 짧은 시간에 원만한 규모의 여진족들은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할 진채가 완성됐다.
육지에 상륙한 최도진은 병사들의 숙영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 규모의 군사와 진채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면 야인들은 호기심 때문에라도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만만해 보이면 화살부터 날리고 공격해 오겠지만 전선과 총통을 보면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하겠지. 우리가 야인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야인들이 우리를 찾아오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