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54화
기축옥사
기축년(1589년) 10월 05일 조선 한성 의금부.
“어서 바른대로 고하지 못하겠느냐.”
“무엇을 고하란 말이오. 나는 산과 바다의 경치를 즐긴 죄 밖에 없소이다. 관직에서 물러나 경치를 즐기며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내가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이오.”
정여립은 강릉으로 몸을 피하면서까지 몸을 사렸지만 결국 서인들의 모함을 피하지 못했다.
황해도 관찰사 한준은 선조에게 직접 장계를 올려 정여립이 사병을 동원해 한성으로 진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고했고, 한준의 장계를 확인한 선조는 당장 조정의 대신들을 소집하고 금부도사를 파견해 정여립을 의금부로 압송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정여립을 추포하기 위해 전주로 내려간 금부도사들은 정여립은 찾지 못하고 대신 그의 아들 정옥남을 잡았고 정옥남에게서 정여립이 강릉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금부도사들은 정옥남을 의금부로 압송하는 한편 정여립을 추포하기 위해 강릉으로 출발했지만 정옥남이 압송됐다는 소식을 들은 정여립은 직접 한성으로 내려가 스스로 경복궁 앞에 거적을 깔고 앉아 억울함을 호소했다.
기축옥사 당시에는 의금부로 압송되기 전에 정여립이 자결하는 것으로 정여립이 역모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서인들의 주장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조선에 피바람이 불게 되었지만, 정여립이 스스로 한성으로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자 상황은 반전되고 말았다.
선조는 정언신을 위관으로 삼아 철저하게 조사할 것을 명했으나 사관들이 정언신은 정여립과 친척 사이인 것을 들어 정언신이 조사할 경우 공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정언신 대신 정철이 위관이 되었다.
선조는 정철을 위관에 임명하며 철저하게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정철은 정여립을 의금부로 끌고 가 문초했지만 정여립은 억울함을 주장하며 정철에게 맞섰다.
“네놈이 도적들을 모아 역모를 꾀하지 않았느냐.”
정철이 고함을 치자 형틀에 앉은 정여립은 전혀 기죽지 않은 목소리로 외쳤다.
“누가 도적이란 말이오. 흉년으로 굶어 죽어가는 소작농들에게 굶어 죽지 말라고 먹을 양식을 빌려준 적은 있소이다. 그러나 사사로이 사병을 기르거나 도적들을 불러 모은 적은 하늘에 맹세코 없소이다.”
정여립의 대답은 정철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어서 역적을 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저놈이 바른말을 할 때까지 매우 쳐라.”
“예이.”
정철의 명령이 떨어지자 의금부의 나장들이 몽둥이를 들어 정여립을 내려쳤다.
“으악!”
정여립은 매를 맞으며 비명을 질렀지만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미 44세로 적지 않은 나이였던 정여립은 매를 맞으면서도 속으로 이를 갈고 다짐했다.
‘나를 모함한 놈들이 정철 너희 서인 놈들이었구나. 네놈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초를 당하다가 숨을 거두는 한이 있더라도 역모를 시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나를 모함했는지 알았으니 어디 두고 보자. 내가 살아서 의금부를 나가면 네놈들도 제명에 죽지는 못할 것이다!’
의금부의 문초를 당하면서도 정여립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고 물질적인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정여립이 완강히 부인하자 정철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 * *
기축년(1589년) 10월 07일 일본 이키쓰키섬.
이키쓰키섬에는 대선단이 집결해 있었다.
내가 대해국에서 몰고 온 갤리온과 전선들이 17척이었고 마카오에서 출항한 갤리온이 7척이었으니 무려 24척의 대선단이 이키쓰키섬에 모여든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선단이 모였으니 이키쓰키섬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던 기리시탄들을 대해국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이제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는 마카오에서 이키쓰키섬 까지 온 갤리온의 대금을 치르는 것이 문제였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독님.”
알폰스 비에이라는 정말로 반갑다는 표정으로 지으며 나에게 인사를 했고 사화동으로부터 마카오에서의 일을 보고 받은 나는 알폰스 비에이라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마카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소. 정말로 감사하오.”
“환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독님.”
알폰스 비에이라와 사화동이 마카오에서 계약한 내용을 확인한 나는 알폰스 비에이라가 나를 반가워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자기를 원한다는 것은 계약서만 봐도 알겠다. 다행히 대해국에서도 도자기를 제작하고 있으니 원한대로 도자기를 주마.’
대해국으로 이주한 도공들은 도자기를 굽는데 적합한 흙을 찾아 함관은 물론 근처의 산과 들을 누비며 흙을 조사해 도자기를 굽는데 적합한 흙을 찾는 데 성공했다.
나는 도공들이 도자기를 굽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노비들을 시켜 장작과 흙을 퍼다 주었고 도공들은 지금도 열심히 백자를 굽고 있었다.
“마카오에서 내 부하와 맺은 계약은 내가 책임지고 이행하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제독님 그럼 구체적인 대금 지불 방법과 지불 일자를 제독님과 상의하고 싶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겠소.”
알폰스 비에이라와 구체적인 지불 방법을 상의한 나는 지불해야 하는 대금이 생각했던 것 보다 거액인 것에 놀랐지만 알폰스 비에이라가 대금의 절반을 도자기로 원하자 지불 방법과 도자기의 수량을 놓고 알폰스 비에이라와 한참을 상의했다.
장시간 의논한 끝에 우선은 가져온 은화로 대금의 일부를 지불하고 도자기는 11월 말에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대금 지불 방법에 대한 합의가 끝난 후 나는 알폰스 비에이라와 함께 부두로 가서 정식으로 갤리온을 인수했다.
부두에 웅장한 자태로 정박해 있는 갤리온들을 보자 알폰스 비에이라를 상대하면서 아팠던 머리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갤리온을 바라보며 마음에 들어 하자 알폰스 비에이라는 내 옆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제독님께서는 복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님 같으신 분과 친문을 맺으셨으니 말입니다. 신부님이 아니셨으면 저희가 제독님께 갤리온을 판매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도 알폰스 비에이라의 말에 공감했다.
‘역사 기록에도 히데요시가 갤리온을 구매하였거나 보유하고 있었다는 기록은 없었지. 규슈정벌 당시 포르투갈 상인의 갤리온에 탑승했었던 히데요시가 이후에 갤리온을 구매했었다는 기록도 없는 것으로 봐서 포르투갈 상인들은 일본에 갤리온을 판매하지 않은 것이 확실해.’
무사히 갤리온을 인수한 나는 기리시탄들을 전선과 갤리온에 승선시킬 것을 명령한 후 히라도로 건너가 마쓰라 다카노부를 만났다.
지난번에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찾아간 마쓰라 다카노부는 변함없이 나를 반가워했다.
“요즘은 아들을 자주 보니 참 좋구나.”
“아버지 그동안 건강히 지내셨는지요.”
마쓰라 다카노부와 부자 관계를 맺기로 했으니 다카노부는 나를 아들이라고 불렀고 나는 다카노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다카노부와 인사를 나눈 나는 부하들을 시켜 곰 가죽 한 벌을 꺼내 놓았다.
“이것이 무엇이나?”
동해도에서 잡은 불곰의 가죽을 펼쳐놓자 다카노부는 놀란 얼굴로 곰 가죽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난번에 사냥한 곰의 가죽입니다. 아버지께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다카노부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귀한 것을 선물로 가져왔단 말이냐.”
“지금까지 아버지께 도움받은 것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앞으로도 도움받을 일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아버지이시지 않습니까. 아들이 아버지께 드리는 설문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받으십시오.”
“정말 고맙다. 잘 받으마.”
다카노부는 곰 가죽이 마음에 드는지 곰의 털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곰 가죽에 이어서 대해국에서 가져온 백자들을 꺼내 놓았다. 이번 새로 만든 자기들로 다카노부에게 빌린 돈을 상환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다.
자기들을 발견한 다카노부는 어느새 눈빛을 반짝이며 자기들을 살펴보았다.
“아들이 가져온 자기의 모양이 이전 것보다 다른 것 같구나?”
다카노부는 평생을 상인으로 살아온 사람답게 상품을 보는 안목이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의 눈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가져온 것은 이전에 가져오던 자기를 만든 도공들이 아닌 다른 도공들이 제작한 자기입니다. 자기의 형태는 조금 달라도 색상은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유심히 자기들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훌륭한 자기 이기는 하지만 좀 아쉽구나.”
이번에 가져온 자기들은 전부 백자였고 자기만 있었을 뿐 다완과 유럽식 찻잔도 가져오지 않았다.
다카노부는 청자와 찻잔이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 것이다. 찻잔은 도공들에게 견본을 보여주고 만들게 하면 되겠지만 청자를 굽는 것은 나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찻잔은 내년부터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그러나 청자는 앞으로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정이 있나 보구나. 뭐 그래도 좋다. 더 이상 청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청자의 가격이 오를 것이니 이미 청자를 구매한 사람들은 더 좋아할 것이다.”
나는 다카노부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청자를 일본에 공급한 것은 나뿐이었고 히라도를 통해서만 판매했으니 청자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으면 히라도에도 매출이 감소할 것 같은데 다카노부는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정말 대단하다.’
다카노부가 백자를 살펴보는 것을 끝내자 나는 다카노부에게 추가로 용건을 말했다.
“기리시탄들은 이번에 모두 데려갈 것입니다.”
“아들이 수고가 많구나. 그들이 히라도에 있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들 덕분에 이제부터는 두 발을 뻗고 편히 쉴 수 있겠구나.”
다카노부는 진짜로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다카노부의 말이 끝나자 다시 입을 열었다,
“입이 늘어난 만큼 곡식이 더 필요합니다.”
“아들이 주문한 쌀이 아직도 내 창고에 가득한데. 더 필요하단 말이냐?”
“내년 보리 추수가 끝나는 대로 보리 3만 섬을 확보해 주십시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노예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기리시탄들을 받아들여서 노예들이 필요가 없다면 구매하지 않아도 좋다.”
“아닙니다. 제가 주문했으니 제가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11월 말에 히라도에 선단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주문했던 노예들을 모두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카노부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은 정말 통이 크구나. 이번에 기리시탄들을 데려가면서 다음 달에 노예를 데려가겠다고 주문했던 노예들 가운데 4,000명이 남아 있다. 정말 다음 달에 모두 데려가겠느냐?”
“언젠가는 데려가야 할 이들이었습니다. 다음 달에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문했던 쌀도 다음 달에 모두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곧 겨울이었고 인구도 크게 늘었으니 많은 곡식이 필요했다. 다카노부에게 주문해 놓고 그동안 히라도에서 보관 중이던 쌀들을 다음 달에는 대해국으로 실어갈 계획이었다.
“그렇게 해라. 철과 구리는 더 필요하지 않느냐?”
“철과 구리는 물론 유황도 더 필요하기는 하지만 다음 달에는 노예와 곡식만 가져가도록 하도록 하겠습니다. 철과 구리는 내년에 주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나는 이때까지 정여립과 정옥남이 의금부에 하옥된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정여립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이전처럼 정여립을 통해 보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조선으로부터의 보급은 어려운 상황이고 대해국은 아직 식량과 생필품의 자급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히라도로부터의 보급이 대해국을 유지하는 젖줄과도 같았다.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과 부자 관계를 맺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