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56화 (156/223)

< 조선에서 들려온 소식 >

최도진의 넉살에 톨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장군. 대해국은 바다 건너 멀리 있다고 하지 않으셨소. 말을 구입해 가신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톨만의 질문에 최도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주상전하께서 이곳에서 구해온 말들을 보시고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네. 말을 더 구해오라는 명을 내리셨기에 내가 직접 왔지. 말을 거래하면서 톨만 자네와 술도 한잔하고 말일세.”

술이라는 말에 톨만의 얼굴이 밝아졌다.

“술이라니 무슨 술 말씀이시오?” 

“톨만 자네 같은 호걸과 사귀는데 술이 없어서야 말이 되겠는가. 지난번에는 급하게 오느라 술을 준비해 오지 못했기에 자네와 술 한 잔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웠네. 이번에는 자네와 한잔 하고 싶어서 내 특별히 준비해 왔네. 복잡한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같이 술이나 한잔 하도록 하세.”

술을 먹자는 말에 톨만은 얼굴이 환해졌다. 대해국은 대부분의 곡식을 수입하는 형편이라 술을 마음대로 담그지는 못했다. 술을 담그는데 쌀을 소모하는 것이 아까웠던 나는 대해국 건국 이전까지 동해도에 아예 금주를 명령했지만 벌목 등의 중노동을 하는 병사들은 항상 술 생각이 항상 간절했다. 조천군과 최도진은 현실을 들어 나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나는 주민들이 사사로이 술을 담그는 것을 금지하는 대신에 관아에서 매달 정해진 만큼 술을 담가 병사들과 주민들에게 분배하도록 했다. 최도진은 이번에 특별히 술 항아리 윗부분에 있는 맑은 술만 떠왔다. 최도진의 부하들이 자리를 펴고 술병과 잔을 놓자 톨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최장군께서 술을 준비하셨으니 우리 우지에부의 사내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 내 당장 안주거리를 준비해 오겠소.”

말을 마친 톨만은 최도진이 말릴 틈도 없이 여진족 사내들을 끌고 목책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최도진은 어이가 없었고 술상을 차리던 병사들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상을 그대로 두거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6진에서 복무하면서 여진족의 성격과 능력을 잘 알고 있었던 최도진은 톨만과 여진족 사내들이 금방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톨만과 그의 부하들은 사슴을 잡아왔다. 톨만은 웃으며 자리에 앉아 최도진과 술잔을 주고받았고 여진족 사내들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는 사슴의 가죽을 벗긴 후 내장을 제거하고 살점을 잘라내 모닥불 위에 올려놓았다. 여진족 사내들은 소금을 뿌려가며 사슴고기를 구웠고 잘 익은 고기를 잘라 톨만과 최도진의 상위에 올려놓았다.

“최장군. 많이 드시오. 사냥한 고기를 바로 먹는 것 보다 맛좋은 별미는 없소.”

톨만은 고기를 씹으며 호탕하게 웃었고 최도진은 톨만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술을 권했다.

“족장도 많이 드시게. 내 특별히 신경 써서 가져온 술이니.”

톨만은 곡주가 마음에 드는지 연신 술잔을 비웠고 최도진도 사슴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최도진은 톨만과 술자리를 하면서 톨만의 부하들에게도 술과 식사를 제공할 것을 명령했고 여진족 사내들은 잡아온 사슴을 모조리 구워. 군영의 병사들에게 고기를 나눠주었다. 술과 고기로 배가 부르고 취기가 오른 톨만은 최도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장군 정말로 무슨 일로 오셨소. 설마 진짜 말을 구하기 위해 오신 것이오?”

“족장은 속고만 살았나? 정말로 말을 구하기 위해서 왔네. 겨울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말을 더 구하기 위해 왔지. 이번에는 말 100필이 필요하네.”

최도진의 대답을 들은 톨만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걱정하지 마시오. 말 100필이야 내일 당장이라고 끌고 올수 있으니 말이오. 정말 다른 용건은 없는 것이오?”

톨만의 끈질긴 질문에 최도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사람 끈질기기는 정말로 말을 구하러 왔지. 말을 구하러 오는 김에 족장 자네와 술도 한잔 하고 싶었고. 그리고 이곳에 온 김에 가죽도 좀 구하고 싶네.”

최도진의 대답을 들은 톨만은 껄껄 거리며 웃었다.

“역시 다른 속셈이 있었어. 이 톨만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암 없고말고.”

“특별히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니네. 자네들은 가축도 많이 기르고 사냥도 할 테니. 짐승의 가죽이 많을 것 아닌가. 그래서 자네들에게 가죽을 구하려는 것일세. 물론 가격은 섭섭하지 않게 지불하겠네.”

“최도진의 대답을 들은 톨만은 상위에 놓인 잔을 비우고 물었다.

“그래 어떤 짐승의 가죽이 필요하시오? 최장군.”

“양과 소의 가죽도 좋고 사슴과 곰, 범(호랑이) 그리고 표범의 가죽도 좋네.”

최도진이 대답하자 톨만은 웃으며 최도진에게 말했다.

“조선에서 곰과 범 그리고 표범의 가죽이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오.”

최도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톨만에게 대답했다.

“우리 대해국은 조선은 물론 왜국 그리고 남만인들 과도 교역을 하는 나라일세. 우리도 가죽의 가치를 잘 알고 있고 자네들을 속이거나 헐값에 구할 생각은 하고 있지 않네.”

말을 마친 최도진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상자를 가져와라.”

잠시 후 대해국 병사들이 묵직해 보이는 나무상자를 들고 왔다. 병사들이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자 상자는 무거운 듯 ‘쿵’ 소리를 냈다. 

“이것을 잘 보게. 족장.”

상자를 연 최도진의 상자 안에서 은화를 한 움큼 꺼내 상위에 올려놓았다. 상위에 은화를 내려놓자 톨만은 은화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은과 함께 소금과 철제 도구들을 가져왔네. 가격은 협상해야겠지만 족장이 원하는 방식으로 지불하도록 하지.”

최도진은 야인여진족에게서 말 100필과 함께 많은 양의 모피들을 구매하는데 성공했다. 소와 양의 가죽은 대해국에서 신발과 의복, 생필품을 제작하는데 쓰였고 사슴과 곰 그리고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은 대해국에서 다시 한번 손질해 마카오에 수출할 상품이 되었다. 

경인년(1590년) 1월 대해국

지난해(기축년) 11월 나는 선단을 끌고 히라도에 다녀오면서 전선 1척을 돌산도로 보냈다. 전선에는 강영남을 비롯해 좌수군 출신 병사들이 탑승하고 있었고 이들은 조선의 현재 소식을 알아보고 청자와 찻잔을 제작하던 있는 도공들을 대해국으로 데려오라는 내가 내린 특명을 받고 돌산도에 상륙했다. 다행해 야간에 단선으로 돌산도에 상륙하는데 성공한 강영남과 5명의 병사들은 다행히 안면이 있는 좌수영 병사들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언세를 만나 이언세에게서 도공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이언세의 도움으로 도공들을 찾아가 은으로 도공들을 고용했다. 조선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지금 바로 은 20냥을 지불하고 5년 동안 시키는 대로 청자와 찻잔을 제작하고 제작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해 주면 은 100냥을 지불하겠다는 말에 도공들은 흔쾌히 따라나섰다. 은 100냥은 도공들이 평생 구경하기도 어려운 거액이었다. 어렵지 않게 도공들을 고용하는데 성공한 강영남과 병사들은 전선에 도공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태우고 대해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함관항에 도착한 전선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승객도 탑승하고 있었다.

“좌수사 영감.”

“아니 정공 아니시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나는 초췌한 모습으로 전선에서 내려오고 있는 정옥남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정옥남은 마치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걸었기에 정옥남의 뒤를 따르고 있던 사내들이 정옥남을 부축해야 했다. 쓰러질 듯 걷고 있던 정옥남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자 나는 당황해 병사들에게 외쳤다.

“어서 정공을 관아로 모시도록 하라. 아니 당장 따듯한 방으로 모시도록 하고 의원을 불러오도록 하라. 당장.”

병사들이 정옥남을 방으로 데려가려 하자 정옥남을 부축하던 사내들은 병사들과 함께 정옥남을 들쳐 업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지?”

갑자기 정옥남이 나타나 쓰러지자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정옥남을 부축했던 사내들 중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좌수사 영감.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말을 거는 사내를 바라보니 분명히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소인을 기억하십니까?”

사내가 다시 말을 걸자 그제 서야 그 사내가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자네는 죽도선생(정여립)을 모시던 사람이 아닌가.”

내가 자신을 알아보자 사내는 한층 반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영감 소인 계주어르신을 모셨었습니다.”

정여립을 모셨었다는 사내의 대답에 나는 정여립의 신상에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죽도선생은 평안하신가?”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사내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계주어르신께서는 이미 눈을 감으셨습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렇게 몸을 사렸는데도 기축옥사를 피한지 못한 것인가.’

정여립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놀란 나는 사내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나를 따라오게.”

“예 영감.”

나에게 정여립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한 사내와 그의 동료로 보이는 사내 둘이 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요새로 그들을 데려간 나는 조용한 방을 하나 골라 그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식사를 준비할 것을 명령했다. 

“시장했을 테니. 어서 들게.”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예상한 나는 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식사를 준비할 것을 명령했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국밥과 나물 반찬이 담긴 밥상을 들어오자 사내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수저를 들고 힘차게 국밥을 퍼먹었다. 상위에 놓인 국밥은 사슴고기로 끓인 국밥으로 대해국의 병사들도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사내들이 한 그릇씩 국밥을 비우자 나는 숭늉을 마시며 그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죽도선생께서는 상당히 정정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묻자 나에게 정여립의 사망 사실을 알린 사내는 분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계주어르신께서 모함을 당하셨습니다. 역모를 일으키려고 한다는 모함을 당하셨고 아드님이신 정공이 의금부에 압송됐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직접 한성으로 상경하시에 억울함을 호소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철은 스스로 한성에 상경하신 계주어르신을 의금부로 끌고 가서 매를 치고 온갖 혹독한 방법으로 고문했다고 합니다.”

사내의 대답을 들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모함을 피하지는 못했구나.’ 

“그럼 죽도선생은 역도로 몰려 처형당하신 것인가?”

내 질문에 사내는 눈을 크게 뜨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계주어르신은 의금부에서 한 달 간이나 고초를 당하셨지만 억울함을 주장하셨다고 합니다. 절대로 역모를 꾸몄다고 인정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럼. 어찌된 일이가?”

“결국 이 사건을 조사하던 정철이 물러나고 정언신 대감이 계주어르신을 방면했다고 합니다. 정공께서 계주어르신을 모시고 자택으로 내려오셨지만 계주어르신께서는 이미 의금부에서 고문을 당하시면서 몸이 많이 상하셔서 자택에 도착하자마자 그만 눈을 감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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