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58화 (158/223)

<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

처음에는 어색한 자리였지만 술을 한잔씩 마시고 나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조천군은 탁주를 한잔 마신 후 안주를 집으며 대동계원들에게 조선의 소식을 물었고 대동계원들은 자신들이 아는 한에서 조천군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김시민 나리가 좌수사에 제수되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네. 좌수영을 떠나면서 전하께서도 좌수영의 걱정을 많이 하셨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군.”

“좌수영의 군관들과 장수들 가운데 자리를 옮긴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전라좌수사이신 김시민 영감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시고 새로운 좌수사가 내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임장춘의 대답에 최도진은 잔을 비우며 말했다.

“김시민 나리가 좌수사직에서 물러나시고 새로운 좌수사가 내려온다면 좌수영도 많은 것이 변하겠군.”

“좌수사 영감뿐만이 아니라 순천부사 이억기 나리와 녹도만호 이순신 나리도 다시 북방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6진은 늘 야인(여진족)들이 말썽을 부리지 않습니까.”

임장춘의 대답을 들은 조천군은 이억기와 이순신이 곧 전라좌수군을 떠나 북방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대답에 안타까워했다.

“두 분 다 훌륭하신 장수들인데 안타깝군.”

함께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취기가 돌자 임장춘은 조천군과 최도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계주어르신께서는 어째서 왕위에 오르신 것입니까?”

임장춘의 질문에 조천군과 최도진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이보게 이곳이 조선인가?”

최도진의 질문에 임장춘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곳은 조선이 아니죠.”

“그럼 이곳이 명나라인가?”

“아닙니다. 이곳은 명나라도 아닙니다.”

“이곳이 조선이 아니고 명나라도 아니니 우리들이 나라를 세운다고 누가 감히 뭐라고 할 수 있겠나. 좌수영을 떠나 이곳 동해도로 이주한 사람들은 모두 전하를 따르는 사람들이네. 나도 전라좌수군의 군관이었지만 전하의 계획을 듣고 동참했고 전하를 따라 동해도 까지 왔지. 전하와 우리들은 이곳 동해도에서 왜인들과 싸워서 승리해 정착할 수 있는 땅을 차지했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전하를 따르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싸워서 차지한 땅인데 나라를 세우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최도진의 대답에 이어서 조천군도 입을 열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 중에는 조선에서 온 사람들도 있지만 왜국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이 있네. 왜인들은 이곳은 조선의 땅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지. 그래서 전하께서는 나라를 세우시고 왕위에 오르셨네. 이곳 대해국은 조선인과 왜인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라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서 말일세.”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임장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계주어르신께서 이곳에 정착하실 때 전임 계주어르신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계주어르신께서는 아예 조선과 연을 끊으실 생각이십니까?”

최도진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임장춘에게 말했다.

“전하라고 부르시게 대해국의 주상전하시네.”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임장춘이 재빨리 사과하자 조천군은 임장춘의 질문에 대답했다.   

“전하께서 죽도선생께서 전하를 지원하신 이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네. 전하께서는 왜국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시고 그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을 떠나 이곳 동해도로 이주하신 것이네. 죽도선생께서도 그 사실을 아시고 전하를 지원하신 것으로 알고 있네.”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임장춘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국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면 조선에서 전쟁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왜 이곳 동해도 까지 오셔서 나라를 세우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임장춘의 질문에 최도진은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전하께서 조선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병장기를 제작하셨다면 무사하셨을 것 같은가. 그나마 조선을 떠나 동해도로 왔기에 마음껏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전선과 병장기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네.”

최도진의 대답을 들은 임장춘과 대동계원들은 정여립이 떠올라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조선에서 전쟁을 준비하려고 했다면 역모로 모함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믿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네.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으니 그러나 이곳에 와서 왜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더군.”

조천군의 말에 임장춘과 대동계원들은 다시 고개를 들어 조천군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임장춘의 질문에 조천군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왜국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전하께서 예상하신 것 말일세.”

임장춘과 대동계원들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조천군을 바라보자 최도진은 잔을 비운 후 임장춘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만약에 왜국이 조선을 침략한다면 몇 명의 왜군이 조선으로 넘어올 것 같은가? 왜국에 조선으로 건너올 수 있는 전선이 몇 척이나 있을 것 같은가?”

최도진의 질문에 임장춘은 잠시 기억을 더듬은 후 대답했다.

“정해년에 일어난 변란(정해왜변) 당시에 왜구들의 전선이 18척에 달했고 왜구들의 수는 2000명에 달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왜구가 아닌 왜군들이 조선에 넘어온다고 하면 못해도 1만 명은 넘어오지 않겠습니까? 1만 명의 왜군이 조선으로 넘어오려면 전선의 수는 적어도 100척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임장춘의 대답을 들은 최도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웃었고 조천군은 다른 대동계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들도 같은 생각인가?”

조천군의 질문에 임장춘을 제외한 대동계원들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동계원들이 모두 같은 생각인 것을 확인한 조천군은 임장춘과 대동계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네. 나도 처음에는 같은 생각을 했으니. 아니 조선에 있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생각일 것이야.”

조천군의 말을 들은 임장춘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것입니까?”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니네. 왜국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을 뿐이지. 원래 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하지 않았나.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위태롭지 않을 것인데 적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니 문제인 것이지.”

조천군의 대답을 듣고도 임장춘과 대동계원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최도진이 나서서 물었다.

“왜국은 지금 풍신수길이라는 자가 실권을 잡고 있다고 하네. 왜국은 왕을 천황이라고 하고 왕 다음가는 지위를 가진 자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쇼군]이라고 하더군. 그러나 지금 왜국에서 지위에 상관없이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는 풍신수길이라고 하네. 왜국에서 가장 많은 군사와 영지를 가지고 있는 자이고 왜국의 모든 실권은 풍신수길이 가지고 있다고 하네. 풍신수길이 거느리고 있는 군사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최도진의 질문에 임장춘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요. 1만 명쯤 거느리고 있습니까?”

임장춘의 대답에 최도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10만 이네 1만이 아닌 10만. 풍신수길이 거느리고 군사들의 수가 10만 명에 달한다고 하더군.” 

최도진의 말을 들은 대동계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최도진은 대동계원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풍신수길은 왜국 남쪽의 구주(九州)[규슈]라는 섬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20만 대군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하네. 풍신수길의 군사들뿐만 아니라 풍신수길의 명령을 따르는 왜국의 영주들 까지 군사를 일으켜 20만 대군으로 구주를 공격했다고 하더군. 풍신수길은 언제라도 2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할 능력이 있고 또 그 군사들을 실어서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전선들이 왜국에는 충분히 있네.”   

풍신수길이 2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할 수 있고 그 군사들이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말에 임장춘과 대동계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주상전하께서는 왜국이 조선을 침략한다면 풍신수길이 구주를 공격했을 때 동원했던 20만 대군 이상의 대군이 동원될 것으로 예상하고 계시네. 왜구들이 얼마나 포악하고 사나운지는 자네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네. 그런 왜구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갑옷과 날카로운 병장기로 무장한 모습을 상상해보게. 그런 왜군 20만 명 이상이 조선을 침략한다면 조선이 과연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은가.”

조천군의 설명을 들은 임장춘과 대동계원들은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임장춘이 대동계원들을 대신해서 조천군과 최도진에게 물었다.

“주상전하께서는 어떻게 조선을 지원하실 계획이십니까? 아니 어떻게 왜군을 막아내실 계획이십니까?”

임장춘의 질문에 조천군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자네들이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이곳 대해국에 왔다면 우리가 어떻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을 것이네.”

최도진 역시 대동계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곳 동해도에서 자리를 잡은 후 무슨 일을 했을 것 같은가? 대해국의 건국을 선포한 후 주상전하께서는 전선의 건조와 군사들의 훈련을 명령하셨네.”

“이곳에서는 지금도 공방과 대장간에서 총통과 화승총 등의 각종 병장기가 제작되고 있고 날씨가 풀리는 대로 다시 전선을 건조할 것이네. 판옥선 보다 빠르고 먼 거리를 갈 수 있는 전선을 올해 안에 20척 이상 건조할 계획이네 내년에는 대해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선의 수가 50척은 넘을 것이네.”

“대해국에 거주하고 있는 왜인들은 대부분 노예로 팔려왔거나 풍신수길에게 원한을 품은 자들이네 왜인들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켜 풍신수길과의 전쟁에 동원해도 기쁜 마음으로 풍신수길의 군사들에게 총통을 방포하고 화살을 날릴 수 있는 이들이라는 말일세.”

“왜군이 조선을 침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주상전하께서는 친히 군사와 전선들을 거느리시고 출병하실 것이네 친정(親征)을 나가실 계획이시지.”

“전하께서 친히 출병하셔서 남쪽으로 내려가시며 바다에서 만나는 모든 배를 침몰시키시고 왜국의 항구와 해안가 마을에 총통을 방포하시고 화전(火箭)을 날려 불바다로 만드실 계획이시네.”

“풍신수길이 제아무리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모든 항구가 불타고 배들이 침몰한 후에는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조선에 상륙한 왜군은 왜국에서 식량과 병장기를 보급 받지 못하고 고립될 것이고 조선으로 건너가려는 왜선은 모조리 침몰할 것이네.” 

조천군과 최도진이 번갈아가며 대답하는 말을 들은 임장춘과 대동계원들이 이곳 대해국의 사람들이 조선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저희가 할 일은 없겠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