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동계 >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린 후 나는 임장춘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겨울 동안 대해국에서 지낸 탓인지 임장춘은 망설이지 않고 나를 전하라고 불렀다.
“나는 곧 평호도에 다녀올 것이다. 선단을 몰고 다녀올 것이니 너희들도 조선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 평호도에 가는 길에 조선에 데려다 주겠다.”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임장춘은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대동계의 계주를 맡는 일은 수락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대동계를 지휘하기 위해 내가 조선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울릉도를 통해 소식을 전달할 것이니 조선에서 울릉도까지 정기적으로 연락선을 보내도록 하라.”
울릉도로 연락선을 보내라는 말에 임장춘은 어렵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전하께서 대동계의 계주를 맡아주신다니 더없이 큰 영광이옵니다. 전하. 울릉도로 연락선을 보내는 것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소인 전 계주어르신을 모시고 강릉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강릉에서 울릉도 까지는 조선의 상선으로도 충분히 왕래할 수 있으니 아무 염려 마십시오. 전하. 저희 대동계가 그 정도 능력은 있사옵니다.”
나는 임장춘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대동계는 전라도가 기반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강릉에도 거점을 만들어 놓은 것 같군 아주 제법이야.’
“정공(정옥남)은 이곳에서 계속 요양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부족한 것이 없도록 내가 잘 보살필 것이니 너희는 정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감사합니다. 전하.”
대동계주를 맡기로 했으니 대동계에 신경을 써야 했다.
“계주였던 죽도선생이 그렇게 돌아가셨으니 계원들도 마음이 좋지는 않을 것이고 대동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구나. 대동계에 필요한 것이 있느냐?”
내 질문에 임장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실은 저희 대동계의 기반인 전라도 지역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다른 지방의 계원들은 전 계주어르신께서 돌아가신 일로 위축된 것이 사실입니다. 강릉에서 저희와 전 계주어르신을 돕던 이들 중에서도 저희에게 등을 돌리려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 역모에 연류 됐다는 소문이 돌면 좋은 대접을 받기는 어렵지. 설사 그것이 모함이나 누명이라고 해도 역도로 몰렸다는 것 자체로 역적 대접을 받기 마련이니. 사실 대동계가 그대로 궁중분해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야.’
임장춘의 대답을 통해 대동계의 사정을 들은 나는 임장춘에게 물었다.
“죽도선생께서 강릉에서 활동하셨을 인연을 맺은 상인들이 있느냐? 역모에 연류된 이상 어차피 양반들이나 선비들과는 관계를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니 상인들과의 인맥만 회복해도 상관없다.”
“예 전하. 전 계주어르신께서 울릉도로 배를 보내셨을 때도 상인들의 상선을 보내셨습니다. 강릉에서 지내는 동안 지역의 양반들과 유지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푸시는 일도 많았지만 주로 상인들을 통해 울릉도의 일을 처리하셨습니다.”
임장춘의 대답을 들은 나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강릉지역의 상인들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여라. 어차피 울릉도로 연락선을 보내려면 강릉에서 출발하는 것이 빠르고 편리하니 아예 강릉에 상단을 하나 만들도록 하여라. 상선을 통해 다른 지역의 상품들과 사람들을 강릉으로 수송하고 강릉에서 다른 지역으로 수송하는 업무만 할뿐 다른 장사는 하지 않는 다면 기존의 상단들이 견제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상단을 만들어 강릉지역 대동계의 거점으로 삼도록 하고 강릉에는 죽도선생에 생전에 지내셨던 집도 있으니 그 집도 강릉지역의 대동계가 관리하도록 하여라. 어차피 정공은 계속 대해국에 계실 것이니 그 집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내 명령을 들은 임장춘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오나 전하. 상단을 만들고 상선을 건조하자면 많은 재물이 필요할 것이옵니다. 갑자기 그 정도의 재물을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옵니다.”
임장춘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렇지. 일을 꾸미는데 어찌하여 재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말을 마친 나는 방 밖에서 방문을 지키고 있을 호위병들에게 외쳤다.
“상자를 가지고 오너라.”
잠시 후 두 명의 호위명이 나무 상자를 하나씩 안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상자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쾌 무거운 듯 호위병들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내려놓았다.
“수고 많았다.”
나는 상자를 안고 온 호위병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 임장춘에게 명령을 내렸다.
“상자를 열어보아라.“
내 명령에 임장춘은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들어올렸다. 상자를 연 임장춘은 상자 안에서 빛을 내고 있는 은괴들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전하.”
“은 1000냥이다. 이것이 있으면 상단을 만드는 일과 상선을 건조하는 일이 한결 쉬워지지 않겠느냐.”
“물론이옵니다. 전하. 이것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옵니다.”
임장춘은 할 수 있다고 외쳤고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돈으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돈 없이 되는 일도 없는 법이지. 특히나 사람들이 모인 조직을 운영하는 일에 돈이 들지 않는 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은 1000냥을 투자해 대동계를 조선내의 내 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은 1000냥은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었다. 나는 은을 바라보며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는 임장춘에게 말했다.
“조천군 장군과 최도진 장군에게 과인이 왜 대해국을 건국했으며 대해국이 무엇을 대비하고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들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예상에 전쟁은 반드시 벌어질 것이고 빠르면 3년 안에라도 벌어질 수 있으니 너는 조선에 돌아가는 즉시 강릉에 거점을 만드는 한편 비밀리에 계원들을 준비시켜야 할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임장춘의 얼굴이 어느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하. 소인도 이것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어. 왜군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전하의 뜻에는 공감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왜군들의 수가 2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왜군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낼 수 있을지 걱정되고 염려되는 것이 사실이옵니다.”
임장춘의 대답을 들은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누가 너희들만 나서서 왜군을 막아내라고 했느냐.”
임장춘은 내 말을 듣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나는 답답함을 참고 차근차근하게 설명했다.
“왜군이 조선을 침략했다는 소문이 돌면 사람들은 2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우선 한 가지는 도망가려고 할 것이고 다른 한 가지 어떻게든 왜군들과 싸우려고 할 것이다. 물론 싸우자는 사람들 보다는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지만 어쨌든 왜군들에게 처자식들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우려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아니면 없을 것 같으냐?”
임장춘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왜군들과 싸우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도 충분히 있을 것 같사옵니다.”
“왜군들이 침략해왔다는 소문이 돌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우왕좌왕하고 있었을 때 피난을 가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왜군과 싸워서 고향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나왔을 때 그러나 고을의 수령들과 관군들은 한성을 지키기 위해 혹은 한성에서 내려온 장군의 지휘를 받기 위해 모두 다른 것으로 몰려가서 왜군들과 싸우려는 사람들이 나섰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몰라 어쩌지 못하고 있었을 때 바로 그때가 너희가 나서야 할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임장춘은 깨닫는 것이 있었는지 아까보다 한결 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조선으로 돌아가는 즉시 대동계원들에게 은밀하게 상황을 알리고 군사훈련을 지시하도록 하라. 군사훈련을 한다고 한데 모여서 움직이면 역모로 모함을 받을 수 있으니 100명 이하의 소수로 모여서 각자의 특기에 맞게 훈련을 하도록 하고 군역을 복무한 경험이 있거나 병장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다른 군역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훈련을 돕도록 하라. 왜군의 규모와 무장상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니 왜군과 평지에서 정면대결을 벌일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라. 산이나 고개에서 매복했다가 왜군을 진군을 저지하거나 군량과 화약을 수송하는 보급대를 기습 공격해 왜군의 보급을 차단해야 한다. 산 위에서 뛰어다니며 산길을 달리는 훈련을 하도록 하고 왜군은 창과 검을 사용한 접전에 능하니. 활이나 투창 같은 투척무기로 싸워야 한다. 그리고 계원들 중에 군관이나 장수출신이 있다면 그들이 앞장서서 군사들을 지휘하는 요령을 다른 계원들에게 훈련시켜야 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왜군들과 싸우려는 장정들이 있을 것이니 대동계원들이 나서서 그 장정들을 이끌고 왜군과 싸워야 한다. 대동계원 1명이 10명의 장정들을 이끌고 왜군과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임장춘은 내 말을 들으며 놀랍고 존경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수령들과 장수들도 관아와 병영을 버리고 도망가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모든 관아와 병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관아나 병영이 텅 비는 일이 일어날 것이니 대동계는 미리 관아와 병영들을 주시하고 있다가 수령과 장수들이 도망간 후에는 텅 비어있는 관아와 병영들을 재빨리 장악해야 할 것이다. 곳간의 곡식은 왜군에게 군량이 될 수 있으니 대동계에서 접수해 왜군들과 싸우는 의병들의 군량으로 사용하고 병기고 안의 병장기들을 획득해 의병들을 무장시키도록 하라. 수령과 장수들이 도망간 관아와 병영들만 접수해도 적지 않은 양의 병장기와 군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군 장군이건 의병장이건 평지에 진을 치고 왜군들과 당당하게 싸우겠다는 자들은 절대로 상대하지 말도록 하라. 그런 자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나서지도 말고 그런 자들에게 군량과 병장기를 나눠줄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왜군은 조선의 관군이 평야에서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항상 명심하도록 하라.”
임장춘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내가 말한 일들은 임진왜란이 발발 이후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조선에는 동래부사 송상헌, 경상좌수사 박홍 같이 끝까지 왜군들을 상대로 싸우다가 전사한 장수가 있는가 하면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만 듣고는 성과 관아를 버리고 도망친 수령들도 적지 않았다. 내가 말을 마치자 임장춘은 허리를 숙이며 나에게 말했다.
“전하의 금과옥조 같은 말씀 절대로 잊지 않도록 하겠나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말을 많이 해서 지쳤지만 임장춘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아직도 더 있었다.
“조선으로 돌아가거든 계원들 중에서 화전을 일군 경험이 있거나 산에서 밭을 갈아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자들로 10명만 골라서 울릉도로 보내도록 하라. 되도록 빨리 보내주면 좋겠지만 그런 자들을 찾아야 하고 울릉도로 보내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니 시간을 두 달 주도록 하겠다. 두 달 안에 보내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