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은 기회 >
히라도에 도착한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의 저택을 찾아가 인사를 한 후 일본의 현재 상황을 물었다.
“간파쿠(関白)[관백]-(도요토미 히데요시)께서 군사를 거느리시고 간토(関東)[관동] 지역으로 진군하셨다고 하더군요. 또 전쟁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역시 내 아들이로군. 겨울 내내 영지에 처박혀 있었으면서도 그런 소식은 놓치지 않았으니 말이야. 역시 너는 내 아들이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고 껄껄거리며 웃은 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19일(3월 19일)에 간파쿠께서 슨푸에 입성하셨다고 한다. 간파쿠께서 관동까지 출병하신 이유는 호조 때문이다. 듣기에 다이나곤(大納言)[대납언]-(도쿠가와 이에야스)께서는 사위인 호조 우지나오에게 몇 차례나 서신을 보내 상경하라고 권하셨지만 호조 우지나오의 아버지인 호조 우지마사가 상경을 반대했다고 하더구나. 간파쿠께서는 호조 우지나오가 계속 상경하지 않자 이번에 호조를 정벌하기로 마음을 먹고 출병하셨다. 이미 간파쿠의 직속군은 슨푸 성에 입성했다고 하고 도카이도에는 간토로 진군하는 군사들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슨푸은 다이나곤(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성 아닙니까? 다이나곤께서도 사위인 호조 우지나오를 정벌하는데 찬성하신 것입니까?”
“아무리 다이나곤이라도 간파쿠께서 직접 출병하셨는데 어찌하겠느냐. 소문에는 다이나곤께서도 3만 이상의 군사를 일으켜 호조의 영지로 진군했다고 한다. 간파쿠와 다이나곤 외에도 오다 노부카쓰(오다 노부나가의 3남), 우에스기 카게카츠, 마에다 도시이에 등의 다이묘(大名)[영주]들도 출병해 간파쿠 측의 군사의 수가 2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호조 가문은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호조 가문의 운명은 마쓰라 다카노부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히데요시가 출병할 것을 예상한 호조 우지나오와 호조 우지마사는 작년 가을부터 호조 가문의 거점인 오다와라 성에 2년 이상 농성할 수 있는 군량을 쌓아놓고 호조 가문의 통치를 받고 있는 영지에도 각 성마다 2년 이상 농성할 수 있는 군량을 준비할 것을 명령했다. 군량을 준비하는 것 외에도 5만 명이 넘는 군사를 일으켜 50여 곳의 성과 요새에 수비병을 배치해 히데요시가 공격해도 2년 이상은 농성을 하며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호조 가문은 거점인 오다와라 성의 방어력을 믿고 있었다. 실제로 오다와라 성은 호조 가문이 차지한 이후 단 한 번도 외부의 공격에 함락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오다와라 성은 야하타 산을 배후에 두고 야하타 산에서부터 바다로 이어지는 해자와 성벽이 성을 감싸고 있었고 왜국의 성으로는 특이하게 성안에 마을이 있는 대규모 성이었다. 실제로 전국시대 최강의 명장으로 알려져 있는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은 고즈케와 무사시의 호조군을 격파하고 사가미 까지 진군하는데 성공했지만 호조 우지야스(호조 우지마사의 부친)가 오다와라 성으로 들어가 농성을 하자 결국 성을 함락시키기 못하고 회군하였으며 우에스기 겐신과 라이벌 관계였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역시 호조 가문과의 전쟁 당시 무사시와 사가미의 호조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지만 역시 호조 우지야스가 오다와라 성에 들어가 농성을 하자 오다와라를 함락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호조 우지나오와 호조 우지마사는 이번에도 오다와라 성에서 농성을 하면서 버티면 히데요시가 견디지 못하고 철수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히데요시가 동원할 수 있는 군사의 수와 군량의 수송능력은 영지의 석고의 수가 100만석 정도에 불과했던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이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간파쿠께서 군사를 크게 일으키셨으니 아버지께서도 많이 바쁘시겠습니다.”
내 말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쟁은 상인에게 좋은 기회가 아니겠느냐. 간파쿠 전하께서 군량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쌀 20만석을 간토지역으로 수송할 것을 명령하셨다고 한다. 히라도의 상선들도 쌀을 수송하기 위해 오사카로 가고 있는 중이다.”
“호조 가문의 오다와라 성은 천하에 둘도 없을 요새라고 들었습니다. 간파쿠께서 20만 대군을 동원하셨어도 호조 우지마사가 오다와라 성안에서 버틴다면 전쟁이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무려 20만 대군이 간토지역으로 몰려갔으니 전쟁이 길어지면 필요한 것이 군량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역시 너는 상인이 되었어도 대성했을 놈이다. 너는 역시 내 아들이야.”
“그래서 말입니다. 아버지.”
“왜. 또 필요한 것이 있느냐?”
“상황이 이러니 당분간은 쌀을 구매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솔직히 쉽지는 않다. 간파쿠 측에서 쌀을 대량으로 구매하시면서 쌀 가격이 폭등했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손해를 보면서 팔수는 없으니 이번에도 쌀을 구매하겠다면 오른 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쌀이 아닌 보리나 잡곡의 가격은 어떻습니까? 아버지 잡곡의 가격도 올랐습니까?”
“쌀의 가격이 오르면서 보리의 가격도 덩달아 오르기는 했지만 쌀 만큼 오르지는 않았다. 다른 잡곡의 가격도 아직까지는 큰 차이가 없을 정도야. 보리나 잡곡도 좋다면 구해주마.”
쌀이 아닌 잡곡의 가격은 아직까지 큰 차이가 없다는 대답에 나는 잘됐다고 생각하며 보리와 잡곡을 주문했다.
“입이 늘어서 뭐라도 곡식을 구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보리와 잡곡으로 1만 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버지.”
마쓰라 다카노부는 흔쾌히 대답했다.
“묵은 곡식을 처분해주겠다니 나야 좋지. 하지만 1만 섬은 안 될 것 같다. 나도 얼마간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줄 수 있는 만큼 주도록 하마. 한 7000섬은 될 것이다. 이번에도 철, 구리, 유황을 사갈 것이냐?”
“예 아버지 철과 구리, 유황의 가격은 어떻습니까?”
“전쟁이 길어지면 철, 구리, 유황의 가격도 오를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괜찮다. 필요하다면 지난번처럼 준비해 주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지난번처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번처럼 부탁한다는 말은 철 5000근(3000kg), 구리 1만근(6000kg), 유황이 1000근(600kg)을 구매하겠다는 말이었다. 적지 않은 수량이었지만 마쓰라 다카노부는 어렵지 않게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버지 전쟁이 길어지면 노예로 팔려오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지 않겠습니까?”
내 질문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너는 상인이 되었어야 할 놈이다. 그래 아직도 노예가 더 필요한 것이냐.”
“간토로 출병한 군사의 수가 20만 명입니다. 호조 우지마사가 순순히 항복할리는 없으니 오다와라 성이 함락되기 전까지는 전쟁이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아마 몇 달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은 표정이었다. 호조 우지마사가 오다와라 성에서 농성전을 벌이면 전쟁은 지루한 포위전이 되기 쉬었다. 20만 명이 넘는 군사들이 간토지역으로 몰려갔으니 전쟁이 길어지면 약탈과 강간 그리고 인신매매가 벌어질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상대방 영지의 주민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삼거나 노예로 판매하는 일은 전국시대 일본에서 흔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군사의 수가 20만 명에 달하고 그것도 단일군이 아닌 영주들의 연합군이니 군사들 중에 사고치는 놈들이 없을 수가 없지. 전쟁이 길어지면 전비 때문에라도 무사들이나 영주들 까지 나서서 호조 영지의 주민들을 납치해 노예로 팔려고 할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노예의 수가 급증할 것을 예상한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노예를 주문하려고 했고 내 말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노예의 수가 급증하면 노예의 가격이 떨어지겠지. 좋다. 나도 미리 판매처를 확보해 놓는 것이니 나쁜 일이 아니구나.”
“올해는 5월부터 11월 까지 매달 15일에 선단을 이곳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매달 노예를 2000명씩을 구매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철과 구리 유황도 매번 같은 양을 구매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그 정도는 가능하다는 모습을 보이며 물었다.
“전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몰라도 네 말대로 노예가 급증할 것은 같으니 필요한 만큼 준비해 놓으마. 내 수중에 판매할 노예가 800명 정도 있다. 네가 필요하면 데려가도 좋다. 그리고 곧 보리를 수확할 것인데. 네가 주문했던 대로 보리는 3만 섬을 준비해 놓으마. 혹시 더 필요한 것이 있느냐?”
“감사합니다. 아버지 노예들은 이번에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가격은 지불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리는 말씀드렸던 대로 3만 섬을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노예들의 가격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아직 판매하지 못한 노예들을 나에게 판매할 생각인 것으로 보였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장사속이 보였지만 어차피 인구를 늘릴 목적으로 노예를 구매하는 것이니 나는 순순히 마쓰라 다카노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대해국에서도 보리와 조, 수수 등의 곡식을 수확하는데 성공했지만 아직까지 벼농사는 성공하지 못했다. 더구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이었으니 나는 기회가 될 때 마다 곡식을 구매해 대해국에 비축해 놓았다.
마쓰라 다카노부와의 거래가 끝난 후 나는 다음날 대해국에서 준비해간 자기를 상인들에게 판매했고 판매대금으로 다카노부에게 지불하는 수수료와 함께 노예와 구매하는 상품의 대금을 지불했다. 히라도에서 이틀간 머물면서 모든 거래를 마친 나는 노예 800명과 보리와 콩 등의 잡곡 8000섬 그리고 철, 구리, 유황을 실은 선단을 이끌고 대해국으로 향했다. 선단이 히라도항을 나와 대해국으로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을 때 선단의 가장 외각에 있던 전선 1척이 다른 전선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선단의 전선들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 남쪽으로 방향을 돌린 전선에는 임장춘을 비롯한 대동계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전라좌수군 출신인 박언필이 지휘하는 그 전선은 대동계원들을 돌산도에 내려준 후에 대해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동계원들을 울릉도에 내려주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렇게 하면 대동계원들이 울릉도에서 강릉으로 돌아갈 상선을 부를 방법이 없었고 강릉에서 전주까지도 가까운 길이 아니기에 결국 돌산도 까지 전선으로 데려다 주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히라도에서 기분 좋게 거래를 마치고 대해국으로 돌아온 나는 돌아오기 무섭게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전하. 야인여진 우지에부 소속 족장 톨만의 아들인 먼타무라고 하옵니다.”
“안녕하십니까. 전하. 같은 부족의 전사 맨추아라고 하옵니다.”
먼티무와 맨추아를 시작으로 10여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나에게 인사를 올리며 자신의 이름 알렸다. 나는 가죽으로 된 옷을 걸친 건장한 사내들의 인사를 받은 후 최도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