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64화 (164/223)

< 흑인과 아랍인 >

“저희 대해국에 말과 가죽을 판매하고 있는 야인부족 족장의 아들과 그의 부하들입니다. 대해국에 궁금해 하기에 이번에 저와 함께 왔사옵니다. 전하.”

나는 최도진와 여진족 사내들을 바라보며 나오려는 한숨을 간신히 참았다. 예상하지 못한 손님들이었지만 도착한 사람들을 쫓아낼 수도 없었고 우리에게 말을 판매하는 부족의 사람들이라니 이렇게 인사를 나누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대해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대해국이 그리 부유한 나라는 아니지만 먼 곳에서 온 손님을 소홀히 대접하지는 않겠다.”

내가 여진족 사내들을 환영한다고 하자. 먼타무가 일행일 대표해 대답했다.

“환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하. 이곳에 곰과 늑대가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하께서 허락하신 대면 저희 우지에부 전사들의 사냥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역시 들판을 달리는 여진의 사내들답게 호탕하구나. 이곳에 사냥할 동물은 얼마든지 있으니 마음껏 사냥을 즐기도록 하라. 오늘은 과인이 심신이 피곤해 이만 자리를 마치겠지만 언제 날을 잡아 그대들과 술잔을 나눌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먼타무가 감사인사를 하자 최도진이 나서서 말했다. 

“톨만 족장이 먼타무를 통해 전하께 호피(虎皮)[호랑이 가죽] 1벌과 전하께서 타실 크고 튼튼한 말 2마리를 보내왔사옵니다. 전하.”

말과 호피를 보내왔다는 말에 나는 먼타무를 바라보며 제법 예의를 아닌 이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보내준 예물은 고맙게 받도록 하겠다. 그럼 대해국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의 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지내도록 하여라.”

“감사합니다. 전하.”

여진족 사내들이 인사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조용히 최도진을 불렀다.

“야인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펴 주도록 하여라. 술은 얼마든지 주어도 좋다. 다만 저들이 여인들을 겁탈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내 말을 들은 최도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야인들이 거칠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저들이 술을 찾고 사냥을 즐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함부로 여인을 겁탈하게 할 수는 없다. 알겠느냐.”

“알겠사옵니다. 전하.”

최도진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단호하게 명령하자 알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도진을 내보낸 후 나는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가 커지고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것에 비례해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도 많이 발생했다. 히라도에 다녀온 후 그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하던 나는 도로와 마을을 건설하고 있는 시마즈 도시히사가 길을 닦으면서 나무와 풀을 뽑아 낸 후 흙을 다져서 길을 닦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즉시 벽돌을 제작할 것을 명령했다.

“기와를 굽는 장인들에게 벽돌을 굽도록 하라. 물에 반죽한 흙을 미리 만들어놓은 틀에 부어 벽돌을 찍은 후 햇볕에 말렸다가 구우면 단단한 벽돌이 될 것이다. 함관에서 대소호수 까지 새로 닦는 모든 길에는 땅을 다지고 벽돌을 깔아 벽돌로 도로를 포장할 것이다.”

대해국에 돌아와서도 무기의 제작과 전선의 건조 그리고 새로운 마을과 도로를 건설하는 일에 대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다 보니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나는 대해국의 내정을 살피는 시간 외에는 조선, 히라도, 마카오, 연해주, 사할린과의 대외 무역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특히 올해에는 5월부터 매월 히라도에 선단을 보낼 계획을 하고 있었던 나는 선단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고민했다.

“동원할 수 있는 갤리온과 전선은 총 29척이다. 히라도에는 한번에 10척 이상의 선단을 보내야 노예와 곡식을 수송할 수 있다. 5월부터 매월 선단을 보내기로 했으니 히라도에는 전선 20척을 배정해 한번에 10척씩 교대로 출항시킨다. 연해주에서 말과 모피를 구입하는 일도 중단 할 수는 없으니 5척을 배정하도록 하고 나머지 4척을 상황에 따라 울릉도와 동해도 북부지역 그리고 사할린을 투입하도록 하자.”

내가 히라도에 무려 20척이나 되는 전선을 투입하는 이유는 지금이 히라도를 통해 왜국의 노예들을 구매하기 좋은 시기라는 점과 임진왜란이 발발하면 히라도와 무역을 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즉 히라도와 무역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올해와 내년뿐이었으니 올해는 히라도에 집중적으로 선단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선단의 운용계획을 세워놓고 마카오로 출항했던 선단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사화동이 이끄는 선단이 함관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반가운 마음에 직접 항구로 나갔다. 함관항에서 마카오에 다녀온 갤리온들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나는 사화동과 부하들이 마카오에서 어떤 상품을 구매해 왔는지 기대감에 상품의 하역을 기다렸다. 잠시 후 갤리온에서는 부두로 발판이 내려졌고 사화동이 천천히 배에서 내렸다. 사화동을 발견한 나는 반갑게 사화동과 부하들을 맞이했고 나를 발견한 사화동과 선원들은 황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먼 길을 다녀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전하. 이곳 까지 친히 나와 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래 마카오에서 거래한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내 질문에 사화동은 자세를 바로하고 질문에 대답했다.

“이곳에서 준비해간 모피를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알폰스 비에이라의 주선으로 남만에서 제작한 대포 12문과 노예 600명을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모피를 워낙 높은 가격에 판매한 덕분에 판매대금 만으로도 대포와 노예들을 구매하기 충분해서 가져갔던 은은 그대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사화동은 모피와 함께 은 1000냥을 가져갔었지만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모피를 판매하게 되어 은 1000냥을 그대로 남겨왔다.

“마카오에서 지내는 동안 식량이며 식수며 경비가 많이 들었을 텐데 어떻게 돈을 남겨올 수 있었느냐?” 

사화동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마카오에서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님께서 알폰스 비에이라와 함께 모피를 판매하는 것과 대포와 노예를 구매하는 자리에 일일이 참석하시어 도와주신 덕분에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모피를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님의 주선으로 마카오에서 식량과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에게 은혜를 입었군. 언제라도 보답할 기회가 있으면 보답하도록 하겠다.”

내가 혼잣말처럼 말하자 사화동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님께서 배 안에 계십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놀라서 외쳤다. 이번에 도착한 노예들 까지 대략 5만명에 달하는 대해국의 주민들 중에서 27000명이 기리시탄들이었다. 그런데 기리시탄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가 대해국에 도착했다는 나는 놀라는 것을 넘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왜 루이스 프로이스를 데려온 것이냐?”

내 고함소리에 놀란 사화동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마카오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았으니 신부님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대해국으로 이주한 기리시탄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사화동의 변명을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루이스 프로이스에게 도움은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긴 루이스 프로이스 덕분에 겔리온도 구매하고 마카오와의 무역도 가능하게 됐으니 나도 도움을 받았지.’

감정적으로는 루이스 프로이스의 방문을 거절할 수 없었지만 루이스 프로이스의 대해국 방문은 나라를 통치하는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나는 사화동에게 명령을 내렸다.

“루이스 프로이스와 그의 일행은 다른 사람들이 배에서 내린 후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리도록 하고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행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요새로 안내하도록 하라. 내가 직접 루이스 프로이스와 대화를 나눈 것이다.”

“예 전하.”

“그리고 루이스 프로이스가 대해국에 입국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된다. 선원들과 병사들에게도 입단속을 하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사화동에게 명령을 내린 후 나는 먼저 요새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사화동이 나를 붙잡았다.

“전하. 이번에 구매해온 노예들은 전하께서 우선 확인하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사화동의 말에 나는 짜증난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말로 설명하기 어렵사옵니다. 전하. 그리고 알폰스 비에이라가 전하께 선물로 보낸 노예들도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노예들부터 배에서 내리도록 하여라.”

“예. 전하.”

알폰스 비에이라가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왜 사화동이 이토록 노예들을 확인하라고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잠시 후 선원들과 병사들의 지켜보는 가운데 노예들이 부두로 내려오자 나는 왜 사화동이 내게 노예들을 확인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노예로 마카오에 팔려간 왜인들을 구매해올지 알았는데 왜인들이 아니잖아.’ 

발판을 밟으며 내려오는 노예들은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짙은 갈색 피부색에 수염을 기른 아랍인으로 보이는 사내들이었다. 사내들의 뒤를 이어서 부두로 내려오는 이들은 역시 아프리카와 아랍의 여인들이었고 아프리카인 사내들이 약 200명 아랍인 사내들이 약 100명 정도였고 아프리카 여인들이 약 200명 아랍인 여인들이 약 100명이었다. 

‘흑인 노예들은 카리브 해의 섬이나 북미대륙에서 사탕수수 농장이나 목화농장에 일꾼으로 동원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마카오에도 흑인 노예들이 있었네. 그리고 아랍인 노예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노예들이 모두 배에서 내려오자 부두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흑인과 아랍인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중에는 짙은 피부색을 지닌 흑인과 아랍인들을 보며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흑인과 아랍인 노예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노예들을 바라보며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노예들을 씻기고 밥이라도 주어라 그리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잘 지키도록 하여라.”

“예 전하.”

병사들이 노예들을 끌고 가자 나는 사화동을 불러 물었다. 

“저 노예들은 누구고 어떻게 된 일이냐?” 

“알폰스 비에이라의 주선으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저들은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땅에 살고 있는 미개인들이라고 합니다. 모습은 괴상하게 생겼지만 힘이 세고 일을 잘한다고 알폰스 비에이라가 추천했습니다.”

순간 나는 알폰스 비에이라를 의심했다.

‘마카오에는 노예로 팔려간 왜인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왜인들이 아닌 흑인들과 아랍인들을 노예로 추천하다니. 알폰스 비에이라가 왜인 노예보다 가격이 비싼 흑인들과 아랍인들을 팔아먹은 것은 아닐까.’

나는 알폰스 비에이라를 의심하며 사화동에게 물었다.

“마카오에도 왜국 출신 노예들은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왜 저들을 구매하였느냐? 아무리 봐도 저들이 왜인 노예들 보다 비싼 가격에 팔렸을 것 같은데.”

내 질문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선 마카오에서 왜인 노예들은 대부분 여인들이었습니다. 사내들은 그 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왜인 노예들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저들을 보고 대해국에 필요하다고 판단해 구매하였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왜인노예들이 대부분 여인들이라니 매춘부와 성노로 거래가 되겠구나. 남자노예들은 마카오에 들어와도 오래 두지 않고 곧바로 다른 곳으로 팔려간다는 말이겠군.’

상황을 짐작한 나는 사화동에게 다시 물었다.

“마카오의 상황이 그렇다는 것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저들이 대해국에 필요하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전하. 대해국은 전쟁을 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괴상한 용모의 저 노예들에게 갑주를 입혀 선봉에 내세우면 왜군에게 겁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흑인과 아랍인으로 구성된 노예병 부대라 이거 괜찮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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