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차익 >
장수들을 소집한 것은 5월의 출항을 앞두고 각자에게 임무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우선 군사들을 거느리고 북진하며 도로와 마을을 건설하고 있는 시마즈 도시히사에게는 그동안의 진행상황을 보고 받고 계속 북진할 것을 명령했다. 조천군에게는 전선의 건조와 대해국의 내정을 살필 것을 명령했고 그 다음에는 동해도의 동쪽 해안을 돌며 아이누인들과 교역을 한 강영남을 크게 칭찬했다.
“작은 일이라고 태만하게 처리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니 정말 장하다. 강영남이 지난 3월과 이번 4월에 아이누인들과 교역으로 벌어들인 모피의 수와 사금의 양이 대해국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아이누인들과 교역으로 벌어들인 양보다 많다고 하니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수고가 많았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장수들은 강영남이 벌어들인 양에 놀랐고 많은 장수들 앞에서 칭찬을 받은 강영남은 놀라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전선 1척을 내줄 것이다. 이번에는 동해도 서쪽 해안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누인들과 교역을 하도록 하라. 필요한 소금과 도구들은 얼마든지 내줄 것이니 모피와 사금으로 바꿔오도록 하여라.”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전하.”
강영남의 대답을 들은 후 나는 사화동에게 말했다.
“흑인과 아랍인 노예들을 병사로 동원하는 것은 좋은 계획이었다. 내 이번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사화동은 나에게 허리를 숙이며 망극하다고 외쳤고 나는 그런 사화동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선 4척을 내줄 것이다. 이번에도 마카오로 가서 흑인과 아랍인 노예들을 구매하도록 하여라.”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전하.”
“노예들을 구매하는 것 외에도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해야 할 일이 더 있다는 말에 사화동은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누인들과의 교역으로 얻은 모피와 함께 은 3000냥을 줄 것이다. 모피는 마카오에서 판매하도록 하고 모피의 판매대금으로 노예들을 구매하고 마카오에서 정박하는 동안 필요한 식수와 식량을 구매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노예들을 구매하고 남은 자금과 이것에서 가져간 은을 모두 금으로 바꿔오도록 하여라.”
사화동에게 내가 내린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명을 따를 것이옵니다. 전하.”
사화동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사화동은 물론 장수들 중에 은을 금으로 바꿔오라는 의미를 이해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보이자 나는 장수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은을 금으로 바꿔오라는 것은 금과 은의 교환비율 때문이다.”
내 말을 들은 장수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장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국과 남만에서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느냐?”
내 질문에 나를 대신해서 히라도에서 거래를 했었던 사화동이 대답했다.
“평호도에서 금은 은의 12배의 가치가 있었사옵니다. 즉 금 1냥은 은 12냥의 가치가 있사옵니다.”
“정확하다. 왜국에서는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1대12에 달하고 남만에서는 금의 가치가 더욱 커서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1대12.5에 달한다고 한다. 반면에 명국에서는 금과 은의 가치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아느냐?”
이번에는 사화동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장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명국에서 금은 은의 6배의 가치가 있다. 즉 1대6의 비율로 금과 은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자 장수들도 깨닫는 것이 있었다. 특히 마카오에 가야 하는 사화동은 눈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이제 알겠느냐? 마카오는 포르투갈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지만 명국의 영토이고 명국의 상인들도 드나들 것이니 마카오에서라면 명국에서의 교환 비율로 은을 금으로 교환할 수 있을 것이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전하.”
사화동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그동안 이런 환차익을 알고 있었지만 명국과의 무역을 할 생각도 능력도 없었기에 환차익으로 이익을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마카오에 무역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자 마카오를 통해 은을 금으로 교환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카오에서 3000냥의 은을 명국의 교환비율로 금으로 교환하면 금 500냥이 된다. 그 금을 히라도에서 은으로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은 6000냥을 얻을 수 있으니 갤리온에 은을 싣고 마카오와 히라도를 오고 가며 금과 은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투자한 액수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었으니 이런 손쉬운 돈벌이도 없었다.
‘이익만 생각하면 모피와 도자기 무역이 훨씬 더 이윤이 크지만 어차피 자기와 모피 무역을 하려면 마카오와 히라도에 선단을 보내야 하니 마카오, 히라도에 다녀오는 김에 금과 은을 교환하기만 해도 100%의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금은 거래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닷새 후에 출발하도록 하라.”
사화동에게 명령을 내린 후 최도진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최장군에게는 전선 5척을 맡기겠다. 역시 닷새 후에 출발하도록 하고 우지에부 부족에게서 말과 모피를 구매해오도록 하여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전하.”
나는 최도진의 대답을 들은 후 최도진에게 물었다.
“족장의 이름이 톨만이라고 하였나?”
“그렇사옵니다. 전하. 비록 야인이기는 하지만 사귀어 보니 사람이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면이 있었사옵니다.”
톨만과 술을 마시며 많이 친해졌는지 야인을 좋지 않게 보던 최도진이 친근한 표정으로 톨만에 대해 말했다. 나는 잘됐다고 생각하며 최도진에게 말했다.
“믿음직한 인물이라니 잘된 일이다. 최장군은 톨만과 말을 거래하면서 톨만의 부족에 전장에 나갈만한 사내들은 몇이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라. 왜국이 조선을 침략하면 즉시 왜국을 공격할 것이다. 그때 톨만과 톨만의 부족 사내들을 용병으로 고용할 수 있을지 알아보도록 하라.”
용병이라는 말에 최도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전하. 야인들을 전쟁에 동원하실 생각이십니까?”
“소금과 무기 그리고 은을 주고 야인여진의 사내들을 고용할 것이다. 왜국으로의 수송은 우리의 선단이 책임질 것이며 전장에서의 전리품과 전장에서 붙잡은 왜인들을 노예로 잡아가도 좋다고 하면 톨만과 야인여진의 사내들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최장군의 톨만의 부족 사내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조심히 알아보도록 하라.”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전하.”
최도진의 대답을 들은 후 나는 그 자리에 처음 나온 박언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지휘하는 전선으로 대동계원들을 돌산도에 내려주고 뒤늦게 선단에 합류했던 박언필은 전라좌수군의 일반 병사출신이었다. 나는 박언필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박언필은 함관항과 울릉도를 왕복해야 한다. 역시 닷새 후에 출발하도록 하여라. 울릉도에 대동계에서 보낸 화전민들과 농민들이 곧 도착할 것이다. 전선 1척을 맡길 것이니 그들을 대해국으로 데려오도록 하라. 그리고 은 500냥을 줄 것이니 은과 내가 보내는 서신을 대동계원들에게 전달하도록 하여라.”
“명을 따를 것이옵니다. 전하.”
좌수군 시절 일반 병사였던 박언필은 자신이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이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모두에게 명령을 내린 나는 장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과인은 전선 10척을 거느리고 평호도에 다녀올 것이다. 과인 역시 닷새 후에 출항할 것이다. 닷새 후에 출항 하려면 준비할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부터 서둘러서 준비하도록 하라.”
“예. 전하.”
장수들은 힘차게 대답했고 나는 조천군과 사화동만 남기고 다른 장수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이번에 마카오로 가는 길에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도 마카오로 데려가도록 하라.”
사화동에게 명령을 내리자 사화동은 곧바로 대답했다.
“전하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그리고 알폰스 비에이라에게 선물을 보낼 것이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선물로 노예를 보낸 것에 대한 답례로 찻잔과 자기를 보낼 것이니 알폰스 비에이라에게 잘 전달하도록 하여라.”
“예. 전하.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사화동은 힘차게 대답했다. 사화동을 내보낸 후 조천군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건조중인 전선이 8척이었나?”
“예 전하. 현재 8척을 건조중이며 5월 중으로 완성될 예정입니다.”
“건조중인 전선들이 완성되면 곧바로 다음 전선들을 건조하도록 하라. 내 생각에는 왜국이 조선을 침략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올해와 내년 중에 최대한 많은 전선과 병장기를 제작해야 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조천군은 대답을 한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께서는 왜국이 언제쯤에 조선을 침략할 것으로 보십니까?”
“풍신수길은 20만 대군을 동원해 호조 가문을 정벌하고 있고 조선에서는 왜국으로 통신사가 출발했다고 한다. 20만 대군이 출병했고 군량의 보급도 선박을 동원해 바다로 수송하고 있다고 하니 호조 가문이 수군을 동원해 풍신수길의 보급로를 차단하지 않는 이상 호고 가문은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20만 대군을 지휘해 호조 가문을 멸망시킨 풍신수길이 조선의 통신사 일행을 어떻게 대할 것 같은가? 조선에서 보낸 통신사들이 자신감이 넘쳐서 방약무인하게 행동할 풍신수길을 어떻게 볼 것 같은가? 내 생각에 조선 통신사는 왜국은 역시 미개하다는 판단을 하고 조선으로 돌아갈 것이고 풍신수길은 조선 통신사를 통해 외교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판단하면 주저 없이 조선을 침략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잠시 말을 마친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조천군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예상에 길어야 2년이다. 풍신수길이 호조가문을 정벌하고 조선에서 온 통신사를 만나는데 올해 1년은 소비하겠지만 풍신수길은 통신사가 돌아간 후 조선과의 외교가 성과가 없었다고 판단하면 풍신수길은 조선을 침략할 생각을 할 것이고 호조정벌에 동원했던 20만 대군을 조선으로 출병시키려고 할 것이다. 풍신수길이 마음먹는다면 출병을 준비하는데 1년 이상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내 대답을 들은 조천군은 전쟁을 대비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긴장한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런 조천군을 격려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우리는 최선을 다해 준비해 왔다. 왜국의 전선들을 충분히 침몰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전선을 건조하고 있고 화승총과 총통도 충분히 준비했으며 지금도 계속 병장기들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흑인과 아랍인 병사들과 야인들을 왜국에 상륙시킨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풍신수길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이 전쟁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내 격려가 도움이 됐는지 조천군의 허리를 숙이며 내게 외쳤다.
“전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조천군와 대화를 나눈 후 돌려보내려다가 문득 생각하는 일이 있어서 물었다.
“정공(정옥남)은 잘 지내고 있는가? 건강은 회복했는가?”
“왜인의원에게 정공을 보살피게 하였습니다. 대해국에 오셨을 때는 쇠약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산책도 즐기신 다고 합니다.”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안심이 됐다.
“그래 다행이구나.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니. 앞으로도 정공을 잘 보살피도록 하라.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릴 것이다.”
“예. 전하. 그리고 전하 정공의 일로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래 무엇이냐? 말해보아라.”
“정공께서 자신을 보살피고 있는 의원의 여식과 정분이 났다고 합니다.”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직 건강도 회복되지 않은 양반이.’
“의원의 여식이 정공을 돌보는 의원을 도우면서 정공과 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함께 산책도 다니고 있고 정공이 식사를 할 때도 의원의 여식이 시중을 들고 있다고 합니다.”
‘환자와 간호사의 로맨스인가.’
“뭐. 좋다. 아니 잘된 일이다. 정공은 어차피 조선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을 것이다. 의금부에서 모진 문초를 당했고 죽도선생(정여립)도 그렇게 돌아가셨으니 차라리 이곳에서 정붙이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천군과의 대화를 마친 후 조천군을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