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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69화 (169/223)

< 이곳은 조선이 아니다. >

경인년(1590년) 5월 01일 대해국에서 히라도와 마카오, 연해주, 울릉도로 향하는 전선들이 일제히 출항했다. 무려 20척의 전선들이 같은 날 출항하다보니 전선들이 동시에 바다에 나가지는 못했다. 우선 거리가 가장 먼 마카오로 향하는 전선들이 제일 먼저 출항해 바다로 나가고 그 다음은 히라도로 향하는 선단이었고 그 뒤를 이어 연해주로 가는 선단이 출항하가 보니 울릉도로 향하는 전선이 맨 마지막으로 바다에 나갔다. 

박언필이 지휘하는 전선은 5월 01일 가장 늦게 출항했지만 목적지가 가장 가까웠기에 다른 선단들 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5월 9일 울릉도에 도착한 전선은 울릉도 인근 바다에 닻을 내리고 단선(보트)을 내려 병사들을 울릉도에 상륙시켰다. 단선이 해안가에 도착하자 엄심갑 차림에 화승총과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섬에 상륙했다. 해안가에 나와서 단선을 기다리면 사람들은 무장한 병사들을 보자 두려운 듯 몸을 움찔 거렸고 병사들과 함께 울릉도에 상륙한 박언필은 해안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보며 외쳤다.

“두려워할 것 없다. 나는 대해국에서 주상전하의 명을 받고 온 박언필이다. 대동계원들은 나와서 전하의 명을 받들라.”

박언필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 중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나와 땅에 엎드리며 외쳤다.

“계주어르신의 명을 받습니다.”

대동계원들이 말한 계주가 바로 대해국의 국왕 이대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박언필은 엎드린 사내들을 살펴보다가 사내들 가운데서 임장춘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임장춘은 일어나라.” 

“예 나리 소인 임장춘이옵니다.”

임장춘이 몸을 일으키자 박언필은 호탕하게 웃으며 임장춘과 인사를 나눴다.

“장춘이 잘 있었는가.”

“안녕하셨습니까. 나으리. 소인은 잘 지냈사옵니다.”

“그래 조선으로 돌아간 일은 잘 되었는가?”

“전하의 명에 따라 화전민 출신 농민 50명을 선발해 데려왔사옵니다. 부족하지만 술과 음식도 준비해 놨으니 마을로 가시지요.”

“그래 수고 많았네. 자네에게 전할 말도 있으니 마을로 가세.”

울릉도에는 정여립이 노비들과 대동계원들을 동원해 건설한 마을이 있었다. 좌수영에서 항왜들과 군사들을 이끌고 동해도로 이주하기 위해서는 중간 기착지인 울릉도에 잠시 군사들과 항왜들이 거주할 마을이 필요했었고 정여립은 내 요청을 받아들여 노비들과 대동계원들을 울릉도로 보내 울릉도에 3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생활할 수 있는 마을을 건설했다. 그 마을은 나를 따르는 항왜들과 군사들이 좌수영을 떠난 후 동해도에 상륙할 때 까지 거주하는 임시 거주지로 쓰였고 항왜들이 동해도로 이주한 이후에는 마을을 건설했던 노비들과 기존에 울릉도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주민들이 그 마을에서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한때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활했던 규모의 마을인 만큼 노비들과 주민들이 함께 생활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집과 생활도구들이 넉넉하게 있었다.

마을에 도착한 박언필은 노비들과 주민들의 인사를 받았다. 조선에서는 울릉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대해국의 전선들은 간간히 울릉도에 들렸고 울릉도에 농기구나 생활용품, 소금 등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울릉도의 주민들의 대해국의 전선이 울릉도에 오는 것을 반가워했다. 박언필은 임장춘과 함께 마을에서 가장 큰집에 들어갔고 곧 술상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상위에는 청주 한병과 몇 가지 나물 그리고 삶은 닭이 한 마리 올라와 있었다. 대해국에서 술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임장춘은 술상이 들어오기 무섭게 박언필의 잔에 술을 따랐고 임장춘에게서 술병을 받은 박언필은 임장춘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박언필과 임장춘은 거의 동시에 시원하게 술잔을 지웠고 닭다리를 잡아 뜯었다. 술과 닭고기로 배를 채운 두 사람은 술병을 비우고 나서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하께서 은 500냥과 서신을 보내셨다. 은의 용도와 전하께서 내리시는 명은 서신에 적혀 있을 것이니 전하께서 내리신 명을 따라야 할 것이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으리.”

“정공(정옥남)은 잘 지내고 계시니 걱정할 것 없다.”

정옥남에 관한 예기가 나오자 임장춘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몸은 건강하십니까?”

“정공의 건강은 많이 좋아지셨다. 건강만 좋아지신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찾으신 것 같더구나. 정공을 치료하던 의원의 여식과 정분이 났다고 한다.”

박언필의 말을 들은 임장춘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옥남 나리를 돌보던 의원이라면 왜인이 아닙니까? 왜의 여인과 정분이 나신 겁니까?”

임장춘의 질문에 박언필은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왜인이지. 대해국은 조선이 아니다. 왜인이라고 차별받지 않고 조선인이라고 뽐낼 필요도 없다. 조선인이건 왜인이건 대해국에 살고 있고 주상전하께 충성을 바치면 대해국의 주민이다. 대해국의 주민들은 조선인 보다 왜인이 더 많다는 것을 모르느냐.”

박언필의 대답을 들은 임장춘이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자. 박언필은 그런 임장춘을 바라보며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전하의 신하가 되고 싶다면 그런 마음가짐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해국에 왜인과 부부의 연을 맺은 조선인도 한둘이 아니다. 전하께서 좌수영을 떠나실 때 따라나선 조선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항왜들과 정분이 나서 따라나선 이들이었다. 사내와 여인이 부부의 연을 맺을 때 조선인이거나 왜인인 것은 중요한 일 아니다.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임장춘은 감히 박언필의 말에 감히 반박하지는 못했지만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울릉도에 살고 있는 노비들도 아직 장가가지 못한 총각들입니다. 그놈들도 노총각으로 늙어 가는데 왜의 여인들과 맺어주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임장춘은 불만도 표출할 겸 장난처럼 한 말이지만 박언필의 반응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군.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지 못했어. 좋은 생각이네 대해국에는 아직 여인들이 많아.”

좌수영으로 동해국으로 이주한 항왜들은 사내들보다 여인들과 아이들이 더 많았다. 대부분 가족 단위였지만 노예로 잡혔다가 구출된 여인들이나 정해왜변, 고토열도 정벌 당시 남편이 사망한 과부들도 많았던 탓에 남성보다 여인들이 많았다. 동해도에 정착한 후에는 조선의 노비와 왜인 노예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인구를 늘였지만 노비와 노예들도 남녀 성비를 맞춰서 구매한 탓에 대해국의 전체 인구비율은 항상 남성보다 여성의 수가 더 많았고 기리시탄들이 이주한 후에도 기리시탄들 역시 대부분 가족 단위로 이주한 탓에 여성이 더 많은 인구비율은 변하지 않았다.

“대해국에는 홀로 사는 과부들도 많고 아직 어린 소녀들도 많지 과부들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스물이 넘은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여인들이니 노비들 보다는 나이도 어릴 것이야. 당장 노비들을 불러오게 아직 장가들지 않은 놈들로 왜의 여인에게 장가들 마음이 있는 놈들은 대해국으로 데려가겠네.”

“나으리.”

임장춘은 장난으로 꺼낸 말에 박언필이 당장 노비들을 불러오라고 외치자 당황했지만 박언필은 방문을 열고 병사들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박언필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해국의 병사들은 놀라서 아직 장가들지 않은 노비들을 불러왔고 갑자기 장가들지 않은 총각들은 나오라는 병사들의 외침에 노비들 외에도 울릉도에 살고 있는 총각들은 모조로 불려왔다. 순식간에 100여명의 총각들이 모이자 박언필은 총각들은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그중에는 아직까지 짝을 못 만난 것인지 박언필 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총각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 20대 초중반에서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들이었다.      

‘좋아. 이정도면 대해국에 데려갈 수 있겠어.’

총각들을 바라본 박언필은 큰 소리로 물었다.

“너희는 아직 장가가지 않은 총각들이 맞느냐?”

“예 나리.”

사내들 중에 하나가 대답하자 박언필은 약간 진지한 표정으로 사내들에게 물었다.

“장가가고 싶으냐?”

“예 나리.”

이번에는 모인 사내들이 일제히 외치듯이 대답한 탓에 큰 소리가 울렸다. 박언필은 그런 사내들의 대답을 들은 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대해국에서 왔다. 대해국은 주상전하께서 왜인들도 대해국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백성으로 받아들이셔서 대해국의 백성들 가운에 왜인들이 많은 편이다. 그런 왜인들 가운데 전쟁 통에 신랑을 잃고 홀로 사는 여인들도 많이 있다. 과부들이지만 아직 나이어린 여인들이고 신랑을 한번 잃었던 여인들이기에 신랑의 소중함을 알고 신랑에게 순종적이라고 한다. 어떠냐. 너희 중에서 왜의 여인에게 장가가고 싶은 자가 있느냐. 왜인이고 과부이기는 하지만 장가를 가고 싶은 자는 내가 대해국으로 데려갈 것이다.”

“대해국으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나으리.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사내들은 일제히 대해국으로 가겠다고 외쳤고 기대 이상의 반응에 임장춘은 물론 박언필도 놀라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노비들과 섬에 숨어사는 자들이니 왜인이라도 장가를 갈수 있는 여인이 있다면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것은 기대한 것 이상인데.’

사내들의 반응에 놀란 박언필은 손을 들어 사내들은 진정시킨 후 엄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왜의 여인이고 과부들이다. 그리고 장가를 간 후 왜인이라고 부인을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일이 벌어지면 너희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좋으냐? 자신이 없는 놈들은 나서지 말거라. 대해국에서 왜인이라고 부인을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놈들은 목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일부러 인상을 쓰며 말했지만 사내들은 단 한명도 물러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대해국으로 가겠다고 하니 박언필은 일부로 성난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모레 아침 대해국으로 출항할 것이다. 대해국으로 갈 마음이 있는 자들은 늦기 않게 해안가로 나오너라. 살림살이는 대해국에도 충분히 있으니 모두 이곳에 놓고 오너라. 갈아입을 옷만 가져오면 된다.”

박언필의 말에 떨어지자 사내들은 일제히 감사하다고 외쳤다.

“감사하옵니다. 나리.”

사내들이 돌아간 후 박언필은 아직 까지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임장춘에게 말했다.

“왜. 놀랐는가. 자네도 대해국에서 지냈었으니 보았을 것 아닌가. 조선인이나 왜인이나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일세.”

“그래도 저렇게 쉽게 나설 줄은 몰랐습니다. 왜인이고 무엇보다 과부들한테 장가를 가는 것인데 말입니다.”

임장춘의 대답에 박언필은 혀를 차며 말했다.

“이곳은 조선이 아니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게 저들이 조선에 살고 있고 농사를 짓던 장사를 하던 번듯하게 살고 있는 사내들이라면 왜인 과부에게 장가를 가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저들은 노비들이거나 섬에 숨어살고 있는 이들이네. 섬에 숨어사는 이들이니 만날 수 있는 사람도 같은 섬에 사는 사람들뿐이고 비슷한 나이대의 여인이 없으면 평생 장가를 가기가 어렵지, 그런 저들이 장가를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것 같은가.”

박언필의 말을 들은 임장춘은 반박할 생각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고 박언필은 그런 임장춘에게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대해국도 마찬가지네. 조선에서 보는 눈으로 대해국을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야. 대해국은 조선이 아니고 조선과는 상황도 사람들도 다르니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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